열악한 노동환경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2월 1일 파업에 돌입했던 서대문구 여성 가스검침원들이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회사 측이 검침원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여 파업을 마무리하고 일터에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과 성원 보내주신 당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검침원 한명이 한 달 평균 무려 3,400세대를 담당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는 날 거의 없이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20여만 원. 골목 빙판길에 넘어져 손목이 부러지고, 담장에서 굴러 허리 다치고, 갑자기 튀어나온 개에 물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가스안전 점검하러 홀로 집안에 들어서면 알몸 차림의 남성과 마주치는 등 성희롱.성폭력 위협에 늘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하지만 회사는 검침원들의 호소와 개선요구를 늘 묵살해왔습니다.
2년여 전 이러한 사정을 처음 알게 된 저는 이분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함께 서대문지역에서 가스검침원 조직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난관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한군데 모여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돌아다니기 때문에 만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고민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검침원들은 밖에서 걸어 다니는 시간이 많아 물티슈가 매우 요긴합니다. 휴대용 물티슈를 대량 주문해 ‘가스검침원 권리찾기 노동상담 02) OOO-XXXX’라고 적힌 스티커를 일일이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육체적으로 매우 고되기 때문에 초코바나 사탕 같은 간단한 간식들을 물티슈와 함께 담아 작은 꾸러미를 수백 개 만들었습니다. 이 꾸러미들을 서대문당원들에게 하나씩 나눠드리며 당부했습니다. 집에 가스검침원 오면 시원한 물 한잔과 함께 건네며 ‘고생 많으시죠. 일하시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여기 한번 전화해보세요’라고 이야기하시라 했습니다.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티슈 보고 도움 받고 싶다는 검침원 전화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8월 서대문구 가스검침원 20명이 서울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도시가스분회’입니다.
처우개선을 놓고 사측과의 교섭이 시작됐습니다. 회사는 검침원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사장이 교섭하러 와서 묵비(?)를 행사하는 등 비상식적인 태도로 나왔습니다. 요구사항을 하나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6개월 정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노조는 파업을 결정했습니다.
파업에 돌입하자 저는 이분들의 사정을 널리 알려 여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보고, 평소 알던 기자들에게 취재를 요청해 MBC 뉴스데스크, 경향신문 등 주요언론의 보도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서대문당원들에게는 사측에 항의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서대문구 주민인데 뉴스보고 전화했다. 왜 힘들게 일하는 검침원들 파업까지 하게 만드냐. 사장이 직접 우리 집 와서 가스 새는지 봐줄 거냐. 불안해서 못 살겠다. 요구사항 얼른 들어주고 그분들 다시 일하시게 해라’ 당원들이 열심히 전화해주셨습니다.
언론보도와 항의전화가 이어지자 압박을 느낀 사측이 끌려나오듯 교섭에 다시 응했습니다. 하지만 입장차는 여전히 컸습니다. 그 와중에 사장이 직장폐쇄를 운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싶어 우리 당 노동본부장 맡고 계신 이정미 의원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 드렸습니다. 이정미 의원님은 흔쾌히 서울도시가스 본사 앞 항의집회에 참석하여 검침원들 편에 서주셨고, 본사 회장 측에 연락을 취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주셨습니다.
노동조합도, 파업도 난생 처음 겪는 20명의 검침원들은 의연했습니다. 매일 항의집회와 1인 시위를 이어가는 힘든 일정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습니다. 한 달 넘어갈 때쯤 제가 ‘파업 오늘 시작하신 분들 같아요. 두어 달 더 할까요?’ 농담 건네자 다들 웃으며 씩씩하게 ‘네!’라고 답했습니다. 노조 지도부도 파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치열하게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서경지부 상근자들은 차가운 길바닥에서 검침원들과 함께 43일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마음 모아 끈질기게 싸워 승리를 이뤄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서울에만 가스검침원이 천명 훨씬 넘게 있습니다. 이중 20명이 노동조합 만들어 이제 처음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더 많은 분들에게 ‘노동조합 가입하면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제가 검침원들 만날 때 자주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월급 200만원 넘고, 일하시다 위험한 일 억울한 일 더 이상 안 당하시는 날까지 저희 정의당이 늘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마다 너무 고맙다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지으셔서, 약속 안 지키면 제 정치인생(?)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ㅎ 반드시 약속 지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당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