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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정책제안/토론

  • 법조정책에 대한 정의당의 노선전환을 요청한다.
개천에서 용은커녕 지렁이도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사람입니다. 정규학력은 고졸인데 서른이 넘어서 법학을 접했고 형편상 신림동 고시촌에는 못간 채 고만고만한 직업들을 전전하며 고향에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사시폐지가 예정된 관계로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책에서 손을 떼고 있지는 못하고 있답니다.

며칠 전 정의당원이며 오랫 동안 시민운동을 하고 계신 지인과 밥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 분이 제게 왜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느냐고 묻길래, 저는 저와 같은 조건이 로스쿨에 잘 어울리지(?)않는 현실을 아는 데로 얘기했고, 그 분은 그렇다면 고시제도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 하셨습니다.

진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은 대체로 로스쿨 제도를 지지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육법당’을 비롯해서 특권화된 법조귀족들의 횡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에게 고시제도는 개념 없는 법률기술자를 양산하는 이기적 출세주의자의 소굴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로스쿨을 법조기득권을 타파할 개혁대안으로 편애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의당도 사시폐지 입장이며, 노회찬 의원께서는 법사위에 로스쿨 제도 확대 강화를 위한 입법을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로스쿨을 인가주의에서 준칙주의로 전환하고 변호사 정원 제한을 철폐해서 로스쿨 문턱은 낮추고 변호사 시험을 쉽게 해서 공급을 대폭 늘려서 법조인력을 시장 법칙에 맡긴다는 내용이라지요. 아울러 비로스쿨 출신은 예비시험을 통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구상은 물론 사법시험 완전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겠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노 의원과 정의당이 이러한 기존 입장을 재고하여 현재 로스쿨로 독점화된 법조인력정책을 사법시험-로스쿨 다원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논의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드립니다. 구체적으로 보다 합리적인 법조인력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최소한 사시폐지를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로스쿨 독점 강화 주장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의 정체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2018년부터는 로스쿨이 법조인 선발과 양성을 완전 독점합니다. 그러나 과연 대학(로스쿨)이 법률가라는 공공제도를 운용할 자질과 능력이 있는 집단일까요?
특권과 갑질, 차별이 여전한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정의와 공정성을 지향하는 집단인가를 저는 회의합니다. 오히려 대학은 학벌 브랜드라는 신분격차를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적인 악역을 맡고 있지는 않느냐고 반문해 봅니다. 그렇다면 교육 사기업적 성격이 짙은 대학에 법치주의의 뿌리인 법조양성이라는 권력을 통째로 위임한 로스쿨제도의 본질은 결국 시장에 공익을 맡기는 시장주의 법조제도입니다. 이는 정의당이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적 사법제도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노 의원이 추진하는 로스쿨 등록제(완전 개방제)는 법조인 양성을 사영화(민영화가 아닙니다)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게 설계된 법조직역은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거쳐서 결국 독점화되고 서열화된 변호사 시장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자유경쟁의 기조 아래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쳐서 현재 존폐의 기로에 선 일본 로스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시장의 순기능 자체를 배격하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공공재로서 법조제도의 본령이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로스쿨의 가장 큰 성과는 과거 소수 법조인들이 누리던 지대이익을 철폐하고 법률가들의 지위를 보통 전문직 자영업자라는 합당한 지위로 끌어 내린 것이랍니다만, 어느 유명 로스쿨 교수의 고백처럼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합니다. 변호사 수만 많아졌을 뿐, 소수 법조인이 누릴 수 있는 특권적 지위는 여전합니다. 예전 사법시험 체제에서는 이 특권적 지위가 시험성적으로 지정(?)되었다면, 로스쿨에서는 출신성분과 연줄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작용한다)다는 점이 다릅니다.
게다가 간과할 수 없는 뇌관이 로스쿨 제도 안에 숨어 있는데, 로스쿨에 의해 현재의 법조 카르텔보다 훨씬 넓고 강한 카르텔이 완성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선호되는 대부분의 영역을 장악한 유명대학 몇 개 학과 출신이 법조권력에까지 도달하면 우리 사회 전체를 주무르는 광범위한 네트워크 권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걱정은 바로 위 로스쿨 교수의 견해입니다.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고시문화에서 탈피(?)한 로스쿨생들은 인간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통해 법률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마음에 품고 법학 공부를 하고 있을까요. 로펌 입사와 로클럭 합격을 통해서 권력에 접근하는 일류(?) 변호사를 꿈꾸고 있을까요.

현재처럼 로스쿨의 법조인 양성 독점체제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로스쿨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로스쿨 입학의 개방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로스쿨협의회에서 발표한 8년간 통계를 보더라도 전체 로스쿨 졸업생 중 10%정도만이 로스쿨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일반 대학 출신이며, 절반 가량(48.1%)이 이른바 스카이 출신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로스쿨이 학벌 좋고 학점과 스펙을 효과적으로 관리한 인문계 명문대학 졸업생들의 출세 통로가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입학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취업을 둘러 싼 갖은 부정 청탁 시비와 의혹 때문에 로스쿨 제도가 국민들로부터 현대판 음서제가 아니냐는 혐의를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돈스쿨이라는 경제적 진입장벽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로스쿨을 도입한 그 명분과 토대가 흔들리는 셈이지요. 모든 로스쿨생이 금수저 출신일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로스쿨이 경제적 문화적 학벌적 금은동 수저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난이 이는 이유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도입한지 10년이 되어가는 로스쿨 제도가 과연 민주사회와 법치주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제도인지를 근본적으로 따져보아야 합니다. 나쁜 로스쿨과 이를 이용한 못된 기득권자들의 갑질 시비라는 현상을 넘어서, 로스쿨이라는 시스템이 과연 한국사회에 맞는 제도인지에 성찰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의당이 한국판 사회민주주의정당을 지향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민주의를 파멸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시장만능주의의 야만성을 제어하고 통제해서 흙수저와 금수저가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진보적인 정치질서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법조제도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기본 전제로 하는 로스쿨 제도를 당론으로 지지하는 현실은 가치가 전도된 이율배반적인 상황입니다. 아니면 진보의 정체성을 오해한 저의 무지 탓일까요.


법조인 양성제도로서 로스쿨과 사법시험은 각기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 폐쇄적인 사법시험문화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듯이 로스쿨이라는 환상도 깨어야합니다. 하나의 제도를 폐기했다가 부활시키기는 신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갑절은 더 어렵답니다. 사법시험은 출세의 사다리가 아니라 국가가 주관하는 공정한 법조인 선발제도로 자리매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사법시험과 로스쿨을 병행하면서 보다 선진적인 법조인력제도를 마련하는 방책이 합리적 태도일 것입니다.

지금 온 나라를 멘붕시킨 고위 판검사들의 엽기적인 비리는 역설적으로 예비 법조인이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부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법조인력정책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합니다.

가난한 자들의 정당, 정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정의당에 호소합니다. 
사법시험 존치주장에 귀를 기울여 귀 당과 국회 내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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