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기업형 주택임대산업, 대기업 특혜에 불과하다
- 정책 효과도 없이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만 키울 것
오늘(13일) 국토교통부가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육성을 통한 중산층 주거혁신 방안>을 발표하였다. 주택 임대사업 패러다임을 ‘규제’에서 ‘지원’으로 전면 개편하여 중산층을 위한 기업형 민간임대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참여를 촉진한다고 밝혔다. 포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수익 사업을 열어주는 ‘종합선물세트’에 불과하다.
이번 방안은 택지 조성, 공급·건설, 매입·운영 등 임대산업 전 단계에 걸쳐 대기업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로 내용이 채워졌다. 먼저 택지 공급과 관련, 기업형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를 도입하면서 사업시행자의 토지 확보 요건을 토지면적의 1/2 이상으로 완화하였다(기존 2/3 이상 확보). 그리고 기업형 임대사업자에게 LH 보유 토지를 할인하여 우선 공급해주고 그린벨트를 해제해주기로 하였다. 공급촉진지구로 지정시 용적률을 국토계획법상 상한까지 높이고 주거지역이라도 판매, 문화·집회시설 등 복합건설을 허용해주었다. 기업들로서는 토지 매입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대신 사업성이 대폭 높아진 것이다.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국토가 이제 대기업 수익사업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임대사업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되었다. 모든 민간임대 사업자는 기금이나 택지를 지원받더라도 임대의무기간(8년), 임대료 상승률 제한(5%)만 적용받을 뿐 나머지 규제는 모두 폐지되었다. 특히 기존에는 주변 시세 이하로 책정되어야 하는 최초 임대료 설정 제한이 폐지됨으로써 기업형 임대사업자는 초기부터 자신들이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되었다. 대기업 브랜드를 앞세운 'OOO New Stay'식의 고가 월세 시장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도 모자라 기업형 임대사업자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장치까지도 마련되었다. 건설사·투자자·주택임대관리회사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기업형 민간임대리츠에 대해 기금 출자 외에 융자도 지원하며, 특히 임대의무기간이 종료된 후 LH에서 매입 확약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임대주택이 팔리지 않으면 LH에서 매각 당시 감정평가 금액으로 사주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자본을 투입하여 시장에 진입할 때 일정 정도 리스크를 공유하는 것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분양이 안 되면 매입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대기업의 경영 손실마저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우 민간 건설사가 지은 공공임대주택이 부도가 나자 이 주택들을 정부가 다시 매입하면서 약 9,900억원의 정부 재정이 투입된 바 있다.
또한 기업형 임대사업자에게는 전방위적인 세제 감면 혜택도 부여된다. 취득세의 경우 전용 60㎡ 이하는 모두 면제해주고 60∼85㎡ 이하의 경우 8년 장기임대는 감면 폭이 25%에서 50%로 늘어난다. 소득세와 법인세는 현재 기준시가 3억원 이하 주택에 적용하는 감면 혜택을 6억원 이하 주택으로 확대하였다. 자기관리 형태의 리츠가 8년간 임대할 경우 임대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8년간 100% 감면해주는 혜택도 주기로 했다. 임대소득에 대한 실효성 있는 과세가 전무한 상황에서 과세형평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문제는 대기업에게 무제한적인 특혜가 주어졌지만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효과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매매에서 임대로, 그리고 전세에서 월세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가 수혜층으로 지목한 중산층이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전세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기업형 주택임대사업은 명품 임대를 표방한 월세다. 이전까지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하더니 이제는 기존의 월세 주택과 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거나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월세로 옮기라는 것이다. 오히려 대기업 주도의 고급 월세시장이 기존 주택 시장에 악영향을 미쳐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전반적인 임대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정책에 있어 공공이 주도하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는 대기업들의 수익 사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재원을 마련하여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제도를 정비하여 서민들의 전월세난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부의 숙명이다. 이처럼 서민의 전월세난을 빌미로 해 공공의 자원과 역할을 대폭 대기업으로 넘기는 것은 정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어제 대통령 기자회견에 이어 오늘 발표된 기업형 임대주택 육성 방안을 보면 대통령과 정부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어떤 문제에 처해있는지, 서민들이 현실에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월세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무주택 세입자들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최소한의 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의 전월세 대책과 공공임대주택의 확충이 기본적인 해법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대기업 특혜 보장에 불과한 기업형 임대사업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2015년 1월 13일
정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조승수
문의 : 김건호 정책연구위원 070-4640-2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