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헌법 조항과 정신에 저촉되는 해외파병법은 절대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위헌적인 ‘국군의 해외파견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안’(이하 해외파병법)을 통과시켰다. 만일 이 법이 본회의를 통과하여 시행된다면 파병의 조건을 크게 완화시킴으로써 국군의 해외파병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헌법 제5조 ①항의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평화국가로서의 취지에 저촉된다. 그리고 국군이 희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중동 및 동아시아 등의 각종 분쟁에 휩쓸려 우리의 안보와 경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 법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파병을 할 수 있는 조건과 그 활동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군의 대외파병은 주로 ‘국제연합평화유지활동(PKO) 참여 법률(이하 PKO법)’에 근거해 이뤄졌다.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파병, 최근의 UAE 파병 등은 PKO활동이 아니어서, 개별법의 제정과 국회에서의 심의 후 동의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런데 이 법이 통과되면 PKO활동이 아닌 경우에도 쉽게 상시적으로 파병이 이뤄질 것이다. 사실 PKO법만 하더라도 2009년 제정 당시에 국회의 해외파병 사전 동의권을 크게 훼손함으로써 위헌적이며 3권 분립에 저촉된다고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PKO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하며, 그 활동은 치안 및 안정 유지, 인도적 구원, 복구·재건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해외파병법은 ‘국제연합, 다국적군, 특정(파병군 수용 당해) 국가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하며(제5조), 다국적군 파견활동뿐만 아니라 국방교류를 위한 파견활동(제2조) 등을 포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먼저, 파병의 조건이 크게 완화됨으로써 우리가 각종 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엔 안보리 차원 결의만이 아니라 다국적군의 요청만으로도 파병 절차에 들어가 앞으로 다국적군을 주도하는 미군이 요청만 해도 파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IS와 교전을 벌이는 중동이든, 앞으로 분쟁이 격화될 경우 있을지도 모를 우크라이나 사태에의 개입이든, 심지어 중·일 간 충돌 발생 시 미군이 개입을 천명하고 있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에도 참전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헌법과 남한에 대한 침공 격퇴를 목표로 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저촉된다. 그리고 각종 국제분쟁에 휩쓸려 우리의 안보와 함께, 해당 국가와의 관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둘째, 파병 목적과 활동의 범위에 국방교류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평화 유지가 아니라 경제적 목적 등을 위해서도 파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교육훈련 지원을 명분으로 한 UAE파병처럼 실질에 있어서는 원전 건설에 따른 보상 등 경제적 목적의 파병도 사후 합리화시키는 행위이다. “그것이 뭐가 나쁜가,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현재의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행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논리라면 원유지대에 대한 통제를 위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없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그런 논리가 강대국 국민들의 것일 수 있었으나, 그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그런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반역사적이다. 그리고 현재 국제질서에서는 그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에도 저촉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필리핀 재해 발생 당시 국군을 빨리 파병하려고 했으나 이 법이 없어 파병이 지체되었다며, 제정되면 이런 활동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신속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해 구호 활동에 왜 비전문가인 군대가 파병되어야 하는가? 인도적 지원과 재난 구호는 소방대 및 민간 구급·지원 인력과 업체가 훨씬 전문적이고 비용 대비 효과적이다.
셋째, 결과적으로 해외파병법 제정 자체가 전투병의 해외파병을 쉽게 하는 상황을 낳고, 인적 희생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한미동맹 등의 요인에 의해 대외 파병을 하게 되면서도 많은 경우 비전투병만 파견할 수 있었던 것은 파병 당시 관련법이 없었거나 지금도 PKO법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과는 달리 이라크전 당시에는 그나마 다행히도 전투병 파병만은 모면한 바 있다. 우리 정부 스스로 전투병 파병을 기꺼이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경우 법적 미비와 국회 통과의 어려움으로 비전투병 파병밖에 가능하지 않다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군 요청 조항을 넣은 해외파병법의 제정은 전투병의 참가를 바라는 미국에 우리 스스로 협상의 지렛대를 없애버릴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될 경우 우리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최초로 외국에서 우리 군이 전투에 직접 가담하며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해외파병법은 제안 취지와는 달리 파병에 대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국민과 그 대리인인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제도화할 실질적인 조항은 전혀 부재하다. 그동안 최소한의 국회 동의절차도 생략한 채 불법적으로 자행해 오던 국군 개별파견요원을 통제하기 위한 조문도 없다. 군사자문요원 등 핵심적 인력 한 두 명만의 파병으로도 해당 국가의 전투력 및 그에 따른 분쟁의 양상이 바뀔 수도 있다. 우리 헌법은 국군부대뿐만 아니라 국군의 해외파견에 국회가 동의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파견요원에 대한 통제 규정을 삭제한 것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취지와도 상충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며 그에 걸맞은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근본적 원인을 치유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맞다. 제3세계에 대한 ODA 등 개발원조는 OECD 평균 수준에 훨씬 못 미치면서 군대의 상시 파병을 획책하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다. 통상과 자원개발 등 우리의 이익을 앞세우는 ODA가 아니라, 해당 국가와 국민의 이해에 기반한 ODA와 개발원조의 증액 등 기여외교의 원칙을 바로잡을 일이지, 파병 확대를 획책하고 합리화할 것이 아니다. 파병의 확대와 상시화는 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을 높이고,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과도한 국방비 지출로 이어지고, 사회복지에는 소홀하게 된다.
평화국가를 지향하는 헌법 5조에 위배되며,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4조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해외파병법은 절대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헌법 제60조 ②항의 “국회는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국민이 위임해 준 권능이자 의무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2014년 12월 4일
정의당 정책위원회(의장 조승수)
* 문의 : 김수현 정책연구위원 (070-4640-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