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비율이 절반만 넘으면 돼
삼성물산·KT&G 이미 컨소시엄 구성
지난 29일 이명박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마무리절차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경제자유구역법)>의 시행규칙을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1일(수) 열린 <32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는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헬스케어 활성화 방안 논의'를 통해 경제자유구역내 영리병원 설립 추진에 이어 제주 복합 헬스케어 타운을 마련해 영리병원 추진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의료는 그 소득수준과 빈부격차를 떠나 모든 국민이 차별없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의료를 상업화하는 '영리 병원 허용'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의한 규제를 받지 않아 기존의 의료수가 범주를 벗어나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중 영리법인병원(투자개방형병원)을 허용하고 있는 조항 삭제에 관한 청원을 제출합니다.
“공공의료 붕괴” 우려에도…끝내 영리병원 ‘빗장’ 열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무상의료 국민연대,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4월2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법원 도입을 허용하는 시행령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한겨레21>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경제자유구역 안 설치 법절차 매듭
민간 국내병원들 “역차별 정책” 반발
영리병원 전면 허용 시발점 될수도
영리병원 전면 허용 시발점 될수도
수익 목매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
한해 의료비 1조5천억 폭등 예측도
한해 의료비 1조5천억 폭등 예측도
보건복지부는 지난 29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의 개설 및 허가 절차 등에 관한 시행규칙을 공포했다. 이로써 2002년 외국 영리병원을 허용한 경제자유구역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0년 만에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법적 장치가 모두 갖춰졌다. 시민단체들은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가뜩이나 공공성이 취약한 국내 의료제도와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 겉으로는 ‘외국 영리병원’이지만…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영리병원 설립은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된 10년 전부터 이미 가능했다. 실제 2008년과 2010년, 미국 뉴욕장로병원과 존스홉킨스병원 쪽이 인천 송도에 영리병원을 설립하려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협상을 벌였으나 무산된 바 있다. 복지부는 외국 영리병원의 개설요건, 절차, 특례 등을 규정한 법률 등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 병원이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올해 4월 개설요건 등을 담은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이 규칙이 지난 29일 공포된 것이다.
공포된 규칙을 보면, 영리병원의 외국인 의사 비율을 ‘최소 10%’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 가운데 외국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도 외국인 의사에 포함된다. 병원 의사의 90% 이상을 한국인 의사로 채워도 되는 것이다. 외국 자본 비율도 50%만 넘기면 된다. 게다가 이사회 등 병원 의사결정기구에도 한국인이 최대 절반까지 참여할 수 있다. 말만 외국 영리병원일 뿐, 실제로는 국내 영리병원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경자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국내 자본과 의료진이 외국 자본을 들러리 삼아 영리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실제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영리병원 투자협상을 진행중인 ‘아이에스아이에이치(ISIH)컨소시엄’은 일본의 다이와증권이 지분의 60%를, 삼성물산과 케이티앤지(KT&G) 등 국내 자본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일본의 다이와증권이 국내 의료 상황에 대해 잘 알기는 어려운 만큼, 삼성의료원을 갖고 있는 삼성이 실질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시행규칙 공포는 차기 성장동력으로 의료산업을 꼽고 있는 삼성에 대한 특례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면서 이미 외국 영리병원은 특별한 조건 없이도 설립될 수 있었다”며 “외국인 의사 비율과 필수 진료과 등을 지정함으로써 오히려 개설 조건이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 국내 의료시스템 뒤흔들 우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등 제한된 곳에만 영리병원이 들어설 수 있고 국내 의료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미국 등 의료 선진국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국외 유수의 병원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미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곳만 인천, 대구·경북, 부산 등 3개의 광역자치단체를 포함해 전국 6개 지역 16개시에 이르기 때문에 영리병원 전면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우 실장은 “인천 송도의 영리병원이 수익을 낸다면 곧바로 다른 경제자유구역에도 앞다퉈 영리병원이 설립될 것”이라며 “더욱이 국내 의료기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 병원들도 외국 자본에만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국내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리병원 전면 허용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비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0년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국내 의료비가 한해 1조5천억원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병원의 도시 쏠림 현상도 더욱 심해져 전국의 지방 병원 100곳이 도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상호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지부 정책위원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진료비는 한해 12~13%씩 증가하고 있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에 견줘 2배가 넘는 수준”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의료비 증가폭이 커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는데 영리병원마저 허용되면 의료비 폭등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위원은 또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소득 상위 계층은 건강보험 이외의 민간보험에 가입하게 되면서 점차 건강보험 자체를 거부하게 될 것”이라며 “중·저소득층의 의료비 걱정을 덜어줄 마지노선인 건강보험마저 무너뜨리는 상황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연구 결과도 많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미국 등에서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의료서비스가 높은 곳은 존스홉킨스나 엠디앤더슨과 같이 대부분 비영리병원”이라며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사망률도 다소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수익이 생기면 병원 인력의 확충, 시설 및 장비 마련 등에 쓰는 비영리병원과 달리,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영리병원의 성격상 의료의 질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