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정의당 통합? 다른 통합은 가능하다!
[의정일기] 야권통합론에 대한 답변과 제안
박원석 국회의원(정의당)
정의당은 노회찬을 내세운 동작을 선거에서 졌다. 단 한 표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선거에서 초반열세를 딛고 929표차면 선전했다는 식의 자기위로는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전체적으로 야권의 패배가 예정된 조용한 선거판을 흔들어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유권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역할과 성과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수도권에 당의 주요자원을 투입하고, 당 대표(천호선)까지 후보직을 사퇴한 선거에서 진 것이다.
역설적으로 선거 이후 정의당은 당의 존재감과 인지도,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패배의 책임이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더 크게 있어서인지 선거이후 정의당 당내 기류에는 별반 위기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 주의를 촉구한다.
동작을 선거에 당은 없었다
동작을 선거는 당으로 치른 선거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의 견해는 그렇다. 물론 당의 결정과 방침으로 후보들이 출마했고, 당의 지도부, 의원단, 당직자들 그리고 전국각지에서 달려온 당원들 모두 헌신적으로 선거에 임했다. 그 열정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부정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번 선거는 노회찬이라는 걸출한 개인의 명성과 기량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후보 단일화로 치른 선거다. 이에 비해 정의당은 재보궐 전체 판도에서나 동작에서나 기초체력 없이 허약했고, 선거 초반까지 유지됐던 당의 방침과 이에 기초한 밸런스-‘당 대 당 연대의 원칙’도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다.
선거이후 정의당의 지지율이 얼마간 오르고 있다. 창당이후 볕들 날이라고는 없었던 당원들에게 용기를 주는 변화이지만,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마저도 어느 날 거품처럼 꺼질 수도 있다. 7.30 재보궐 선거는 무난한 방어전이었을 뿐, 정의당은 여전히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정의당은 독자생존 할 것인가?
7.30 재보궐선거 이후 정의당의 진로와 전망에 대한 세간의 관측이 부쩍 늘었다. 일부에서는‘독자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서둘러 내리기도 한다. 진보정당이 야권연대에 의존하다시피 해 당선자를 배출해 왔는데 이에 대한 유권자의 피로도가 높아졌고, 대표선수격인 노회찬조차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상황에서 다음 총선의 전망이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틀린 진단이 아니다. 현행 소선거구제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이상 전망은 불투명하고 어둡다. 제 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연대에 더욱 소극적이 될 것이다. 정의당은 이렇다 할 지역기반이나 조직 기반이 없으며, 인물로서 경쟁력 있는 후보군도 극히 제한돼 있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비관도 금물이다. 불과 석 달 만에 이기는 선거판도 말아먹는 정치에서 총선까지 남은 20개월은 긴 레이스이며, 민심의 변화는 지혜롭고도 무섭다.
당은 만들어지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쉽게 소멸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른바 귀족정당도 아니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생과 시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다. 원내 다섯 석의 작은 의석으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당원들이 있고, 아직은 곁을 내주지 않지만 지켜보는 국민들도 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과는 결의가 아니라 일로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정의당의 사회민주주의 비전과 복지국가 비전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 명료한 사회경제 개혁의 의제와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 10년 전 진보정치가 체계적 이행 구상도 없이 던졌던 무상의료, 무상교육으로 대한민국 정치의제가 수렴된 것처럼 현안대응이 아닌 차별화된 의제 발굴에 나서야 한다. 임금주도 성장의 각론, 복지증세의 구체안, 원전제로의 이행로드맵 등과 같은 단지 레토릭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에서의 실천 구상과 기획을 만들어 승부를 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정의당과의 통합론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야권 전체가 혁신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해야 하고 새누리당의 장기집권 체제를 막기 위해 연대와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 방안이 통합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듯, 다른 통합은 가능하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가까운 과거만 보더라도 2012년 총선당시 ‘혁신과 통합’, ‘백만 민란’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시민통합당과의 통합, 그리고 올해 안철수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혁신 없는‘세불리기식’통합이나 때 되면 나오는‘계절신상 출시’와 같은 통합은 선거에 임박한 야권연대 만큼이나 맛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저 그런 밥상이다.
그러나 다른 세계가 가능하듯, 다른 통합은 가능하다. 지역주의 보수양당체제의 종식과 전면적 정치개혁을 의미하는 통합, 신자유주의 국가운영 원리와 재벌체제의 전면개혁을 추진하는 통합, 노동과 녹색, 안전의 가치가 조화로운 복지국가를 비전으로 하는 통합, 인권과 평화의 가치가 온전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통합이다.
그와 같은 가치와 비전의 공유에 기초해 양당이 중대선거구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전면도입,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파견제 폐지, 노동 3권의 제한 없는 보장, 재벌감세 원상회복 및 사회복지세 도입, 재벌체제 개혁을 위한 상법,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등의 전면개정, 원전폐지 로드맵 제시 및 국민투표 추진,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국민 앞에 천명하고 즉시 공동으로 발의해 실천한다면 그런 통합은 마다할 이유가 없고 환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다른 통합’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재보궐 선거 이후‘투쟁정당 프레임을 벗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의 일성은‘짝퉁 세월호특별법’합의로 돌아왔다. 엊그제까지 진보와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다던 레토릭은 오늘 중도회귀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간명하다. 정의당에게는 정의당의 길이 있고 진보정치에게는 진보정치의 길이 있다. 더 큰 물에서 그런 가치가 중심이 되도록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제안은 달콤하다. 그러나 그 큰물로의 수혈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물타기의 유구한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답은 충분하다.
다음 총선에서 3자 구도는 공멸이자 필패라지만 그런 공학적 계산은 나중이다. 지금은 누가 이 시대의 과제, 진보를 향한 바닥의 열망을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되게 대변할 것인가, 진정성과 실천으로 보일 것인가가 먼저이며 그것이 곧‘혁신’이다. 그런 혁신의 경쟁 그리고 협력을 새정치민주연합 또는 그 내부의 혁신세력께 제안 드린다. 낡고 감동이 없는 야권정치의 진화, 그에 기초한 새로운 연대로 ‘다른 통합’의 가능성을 만들어보자.
*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정치의 '속살'을 더 노골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의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의정 활동 뒷이야기에 대해 쓰는 <의정일기> 연재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과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필자로 참여합니다. 두 의원은 <프레시안> 조합원이기도 합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