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 가혹행위와 성추행으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故 오혜란 대위의 추모제에 부쳐
지난 10월 오혜란 대위가 성추행과 괴롭힘으로 고통 받던 중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군대라는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남성중심의 조직 내에서 소수자인 여성으로서 오대위가 당했을 가혹행위와 성희롱, 끈질긴 성추행의 고통은 감히 미루어 짐작할 수조차 없다.
만약 오대위에게 성추행 사건을 털어놓고 고민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었더라면, 오대위가 상사의 성추행 사건을 신고하는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군대는 여성이었던 오대위에게 너무도 높은 벽이었다.
혼자서 감내했을 그 고통의 끝에서 결국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오대위의 절망감은 모든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또한 직속 상사에 의한 성추행이 지속되던 그 오랜 기간 동안 갈등과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야만 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해 더더욱 안타까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일, 성추행과 끈질긴 가혹행위로 오대위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는 군사법원 재판부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한 여성의 삶을 비극적으로 끝낸 가해자에게 내려진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상식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다.
작년 이맘때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에 우리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여성정책 1위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였다. 박근혜 정부도 취임 후 국정과제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약속한 바 있다. 국방부 또한 군대 내 성 군기 위반에 엄정히 대처하고, 어떤 경우라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말만 번지르르한 약속이자 공허한 울림일 뿐, 지금까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혹행위를 비롯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은 한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심각한 범죄이다. 그러나 군인들로만 구성된 군사법원 재판부는 이것이 심각한 범죄라고 인식조차 못하고, 군 관계자들은 폐쇄적인 군대 시스템을 이용하여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등 부끄러운 모습만 보여주었다.
이번 오대위 사건은 군대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되며, 이번 재판 과정에서 제기된 군 당국의 증거 인멸 의혹도 반드시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국가 안보와 직결되지 않는 성추행, 성폭행 범죄는 군인들로만 구성된 군사법원이 아니라 일반 법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국방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사과하고, 오혜란 대위의 죽음을 하루빨리 순직 처리하고, 가해자에게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여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군대 내에서 가혹행위와 성추행, 성폭행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되며, 가해자가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는 일도 없어야 한다. 국방부와 박근혜 정부는 군대 내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군대 내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군대 내 성차별적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데에 하루빨리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14. 3. 24.
국회의원 김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