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의원단 주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국회 강연>
- 강연 일시 및 장소 : 2014년 2월 12일(수) 10:00,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 국회 강연 전문 (동시통역된 내용을 정리한 강연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의원회관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각당과 각당 대표분들과 한국 국민 여러분들이 따뜻한 환영을 해주셨다. 또한 각당 대표님들과 의원님들이 인사말씀에서 한일관계가 서로 협력하면서 서로의 발전을 희망하는 것이 전체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저도 감동하면서 이 말씀을 들었다. 사실 도쿄를 떠날때 한국은 굉장히 춥기 대문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서울 도착하니 동경보다 더 따뜻했다. 날씨도 좋고 여러분의 마음도 따뜻하고 정말 좋은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우애와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저는 사실 정의당 여러분들로부터 한국 방문 요청을 듣고 방문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런 마음이 통했기 때문에 한국에 왔다. 이렇게 초당적으로 환영해 주셔서 저도 제가 평상시에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격의없이 말하고,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다.
저는 1994년에 총리대신에 취임했다. 오랫동안 일본 국회는 자민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94년 총선에서 미야자와 내각이 져서 자민당이 야당이 되어서 호소카와 정권이 탄생했다. 호소카와 정권 당시 호소카와 총리도 한국을 방문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표명했다. 그러나 기대를 받았던 호소카와 정권도 오래 가지 못했고 8개월 밖에 못 갔다. 그 뒤로 하타 정권이 출범했으나 40일만에 퇴진했다. 일본 정권은 정말 자주 바뀌는 인상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편이다. 자민당, 사회당, 신당사끼가께가 하타 정권 퇴진 이후 왜 서로 협력하면서 안정된 정권을 만들 것인가를 검토하면서 안정된 정권을 만들어 가자는 의견이 있었고, 자민당이 다수여서 총리가 나오는 게 관례지만, 나올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 당시 저는 사회당 당수였다. 그런 저에게 총리를 하라고 했다. 저는 오랜 동안 국회에서 야당이었으며, 장관 경험도 전혀 없었다. 그리고 총리 관저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총리가 되라니 무슨 소리냐 라고 했다. 당시 국회 본회의 후에 총리 지명 선거가 있었는데 중의원 의장이었던 도이 다카코 의장이 무라야마 총리 지명을 발표했고, 그래서 총리가 됐다. 저는 정말 놀랐다.
총리가 되고 총리 관저에 가는데, 저는 단신으로 관저에 갔다.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은 "70명 밖에 없는 소수정당의 대표가 총리가 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역사적인 필연이고, 과제가 있을 것이다. 이 과제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역시 전후청산을 하는 것, 1995년이 전후 50년이었기 때문에 이런 의미깊은 해에 정말 새로운 일본을 만들자 하는 게 우리 내각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이 내각의 사명은 "우리는 오래 하지 말고, 이 역할을 다하면 퇴진하자" 하는 마음으로 총리가 됐다. 3당 연립정권 당시 전후 50년 국회에서 평화의 결의를 하자고 얘기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논의를 거쳤는데, 간단히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무라야마 담화'도 당시 일본 국회 내에서는 비판이 굉장히 컸다. 국회 결의도 어려웠다. 보수가 다수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마음먹은 결의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담화를 해서 천명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94년에 아세안 각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고도경제성장을 이뤘었고, 한국도 경제가 발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를 방문했는데 '일본은 정말 훌륭한 나라다, 전쟁에 졌고, 그런 폐허 속에서 일어나서 세계2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했다, 대단하다'고 경의를 표하는 말들을 들었다. 방문 중에 '일본의 지원으로 동아시아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저는 이것은 잘된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러나 '일본이 전쟁에 대한 청산을 안한 것 같다, 다시 군사대국 우려가 있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저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아세안 순방에서 돌아와서 '역시 이래서는 안되겠다. 50년 전 전쟁을 반성하고 새로 태어난 일본으로 나가야 한다'고 통절히 느꼈다. 그래서 '무라야마 담화'를 내자고 했던 것이다. 발표했을 때 정말 잘 된 담화라고 생각했고, 세계에 표명하면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 이것은 제 개인의 담화가 아니다. 일본 각의 결정에서 결정된 총리담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봤다. 각의에는 자민당이 많은데 만장일치가 될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설득작업을 했다. 각의에서 부결되면 총리직을 그만두겠다고 설득하면서 각의 결정에 내걸었다. 이 담화가 부결된다면 총리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결정될 수 있었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반대할 수가 없다. 굉장히 아시아 여러분들에게 고통을 많이 주었던 전쟁을 두번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성, 일본 국민들이 그것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반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담화 발표 뒤 한국, 중국, 아시아 여러나라, 미국에서도 정말 좋았다, 어느 정도 결착은 지어진 것이다, 협력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저는 그 나름의 역사적 사명을 다 했다고 봤다. 전후 50년, 우리 내각의 사명은 다했다고 봐서 96년 1월 5일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자민당이 다시 잡았는데, 역사적으로 매우 짧지만 의미있는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가한다. 이렇게 무라야마 담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일본 국내에도 우익 쪽에서 상당한 반대가 있었다. 위협을 가하는 세력도 있고, 저에게 매국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저는 '누가 매국노냐, 무슨 소리냐' 라고 생각했다. 담화 발표 이후에 한국,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저에 대한 질문은 '담화에서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은 언론의 자유가 있어서 말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자신있게 말하는데, 소수에 불과하다. 압도적 다수가 담화를 지지한다. 그 점에 대해 안심해 달라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낮아질 때가 있는데 그런 일본의 모습은, 솔직히 말씀드리고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독일에서는 독일 총리가 폴란드에 가서 무릎꿇고 사과를 했다. 그에 필적하게 무라야마 담화를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점점 좋아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후계 내각이 모두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국, 중국, 여러나라에 서약했다. 1차 아베 내각도 계승을 명확히 했다. 그 사실에 거짓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2차 아베 내각이 여러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면서 좀 흔들리고 있지만, 궁지에 몰린다면 잘못된 말을 할 수 없다.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국민 전체가 이를 계승하자는 것인데, 계승하지 않으면 총리를 그만둬야 한다.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아베가 무슨 말을 하던 총리로서 부정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된다.
그리고 동남아 순방 당시 반응에 대해 아까 말씀드렸는데,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를 만났다. 그분께서 상당이 의욕적인데, 우리의 개발계획은 '동방을 배우라', 무슨 말이냐면 일본과 한국을 배우라는 말이었다. 힘든 상황에서 일본, 한국이 발전해서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하셨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셨다. 어느 나라에 가도,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은 아시아다. 아시아가 정말 발전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일본, 한국, 중국이 얼마나 손잡고 협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기대를 하는 분들이 많다. 중요한 책임이 그만큼 있다고 판단했다. 무라야마 담화로 그런 협력이 가능하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얘기가 잠시 벗어나지만, 동해안에서 폭설 피해가 있었다고 들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주 작은 일로 나라들끼리 싸우거나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안전하게 지속적으로 후손에게 물려줘 생활하게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온난화 등 지구 전체를 어떻게 유지할지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들 끼리 갈등할 상황이 아니다.
일본 헌법은 영구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9조는 무력 불사용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 덕분에 일본 자위대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 헌법을 지켜나갈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이해를 부탁드린다.
저도 여러나라들을 방문해서 많은 점을 배웠다. 어느 나라든 생각은 거의 비슷하다. 모두가 평화를 바라고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유감이지만 전쟁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역사를 배우고 잘못을 없게 하는 게 역사의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화를 지켜야 한다. 이 점도 이해해 달라.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일본 국민 전체가 담화를 지켜나간다,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도 있지만 중요한 부분은 양보하지 않고 지켜나간다, 이것이 저의 역할이기도 하고 보물.보석과 같은 헌법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이해해 달라. 한국, 중국 분들도 그런 부분을 이해해 달라. 이 담화를 지키고 헌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생각한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어제 만나뵈었고 그림도 봤다. 뭐라 말할 수 없었고, 말이 안 나왔다. 머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였다.
위안부 문제는 90년 무렵부터, 한국에서 스스로 밝히고 나오는 할머니들이 계셨다. 미야자와 내각 때 고노담화가 발표됐는데 당시에 군, 여러 관계자들, 위안부의 증언을 조사해 정리한 것이 고노담화다. 고노담화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 무라야마 내각이 이를 이어갔는데 어떻게는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에 연립정권 3당이 '50년 문제 프로젝트'를 가동해서 논의했다. 그 논의 안에서 의견이 엇길리는 부분, 대립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는 한일조약에서 다 해결됐다, 배상했다, 또 다시 배상은 무리라고 저항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것은 여성의 존엄을 빼앗아 간 것이라 다 정리됐다고 말할 수 없다, 책임을 갖고 보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서 상당히 대립했다. 아주 오래 토론했다. 상당히 이 분들의 연령도 고령이 되고 돌아가시기 때문에 생존해 있을때 보상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나와서 여러 의견교환을 했다. 그렇다면 기금을 만들고, 정부도 마땅한 돈을 내서 정부 차원에서 사죄의 편지를 보내서 명예를 회복해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국민평화기금을 만들게 됐다. 제가 그때 생각한 것은 역시 과거를 잘 알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은 잘 몰랐다. 그들이 이를 다시 한번 알게 되고, 국민 전체가 전쟁을 반성.사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화기금을 창설하게 됐다. 관련 국가들에게, 위안부 여러분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금을 드리고 납득한 분들도 계시지만 한국, 대만은 미해결 상태인 것이 안타깝다. "국민이 돈을 조성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정식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안 받으신 분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대만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미해결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총리를 그만둔 뒤에 이 기금의 이사장을 맡기는 했다. 하지만 10년 뒤에 이 기금은 해산됐다.
그러나 어제 만나뵙고, 저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도 봬었다. 좀 더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서로 잘 논의한 후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그러한 위안부 문제 경과가 있었다는 점을 보고드린다. 여성의 존엄을 빼앗는 잘못을 저희가 저질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저희가 해결해야 한다. 망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부끄럽다. 그런 국민들이 많이 계시다.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한국 국민 여러분들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언론인들도 계시지만, 나쁜 것 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많이 써달라. 여러분들을 봬면 따뜻하게 저를 맞이해 주셨다. 오랜 역사와 교류를 해 온 한일관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흉금을 터놓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협력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아시아로 나가도록 하는 게 한중일에 모두 플러스가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시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일본 국회에서도 역사문제를 청산하고 다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한일 의원연맹이 그런 가교의 역할을 다해 주셨으면 좋겠다. 국민 여론도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가서 이런 움직임에 협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계기는 김대중.오부치 한일공동파트너십이었다. 정말 훌륭한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를 전제로 하고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양해하셔서 문화교류 활성화를 선언하셨다. 한일관계가 발전하고 정말 새롭게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 천안 독립기념관 방문한 적이 있다. 굉장히 역사적인 한일 공동선언이 한국 젊은이들, 일본 젊은이들이 알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립기념에서 감명을 받고 나갈때 관장님께, “작년(1998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일본을 방문하시어 오부치 총리대신과 회담하신 후 ‘한일 공동선언'에 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과거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에 입각하여 과거 역사를 뛰어넘어 화해하고 협력하여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자고 선언하셨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독립기념관에 이 선언문을 게시해 주실 수 없을까요? ”라고 부탁드린 바 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똑같다. 한일관계는 영원히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되고, 아시아, 세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강연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