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제2의 가습기 살균제사고 예방 위해
제대로 된 화평법 시행령 만들어야
- 화평법에 대한 경제신문의 왜곡과 편파보도는 중단되어야 -
- 공포된 화평법은 입법예고안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 -
- 산업계, 화평법 시행령 완화를 위한 로비 중단해야 -
최근 전국경제인연합(이하 전경련)과 매일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 등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에 대해 “비전문가 집단인 국회에서 기업을 죽이는 법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이고, 신규화학물질 모두를 등록대상에 포함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산업계가 주장하는 경제적 측면에서 산업계의 주장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는 화평법 도입에 따른 경제성 분석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업계가 주장하는 비용의 경우 환경부가 산출한 직접비용은 982억~4,429억 원이며, 산업연구원의 직접비용은 2조 1,314억~7조 6,054억 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17배나 큰 EU의 경우 REACH 도입에 따른 직접비용은 4조952억 원~7조 6,054억 원이다. 산업계가 주장하는 근거자료인 산업연구원의 자료가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정회석, 2009)에 의하면 한국형 REACH 도입(화평법)에 따른 직접비용은 1조 124억 원이었으며, 직접편익은 1조 1912억~2조 4014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편익으로는 질병회피에 따른 편익이 2조 394억~16조 4027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이승호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화평법이 통과되면서 화학물질에 대한 국내 임상수탁시험기관(CRO) 시장규모는 2020년까지 1조 1,905억~5,627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일부 산업계의 반발이 마치 우리나라 화학산업계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과장된 비용으로 화평법 개악하라는 산업계
환경부의 화평법 ‘입법예고안’에는 중소기업의 비용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REACH와 유사한 화학물질 ‘예비등록제도’를 삭제할 것을 요청한 것이 산업계이다. 공포된 화평법에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규가 삽입된 것은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들의 지적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EU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지금껏 단 한 건의 REACH 위반도 없었다며 화학산업과 제조업의 경쟁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이다. REACH보다 완화된 화평법에 대해 경쟁력 약화를 핑계로 규제를 완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유럽에는 안전한 화학물질을 판매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화학물질을 판매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화학물질의 안전은 REACH처럼 화학물질 자체뿐만 아니라, 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까지 관리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화평법은 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정보공유는 극히 일부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안전관리는 REACH에 비해 매우 부실하고, 제2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도 예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산업계는 이런 내용을 숨기고, 산업계의 비용부담을 과장한 채 왜곡하여 주장하고 있다.
환경부의 화평법 입법예고안에는 0.5톤 이상의 화학물질을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포된 화평법은 화학물질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존화학물질의 경우 등록대상을 1톤 이상으로 하고 있어 입법예고안보다 2배나 규제를 완화하였다. 국회는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기존화학물질에서는 규제를 완화시킨 것이다. 또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모든 신규화학물질은 유해성을 실험하도록 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쪽으로 규제를 강화하였다. 질병관리본부에 401명이 피해자로 등록하고 이중 127명이 사망한 가습기살균제 사고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국회의 선택이었다. 기존화학물질에서는 산업경쟁력을 위해 규제완화를 신규화학물질에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계는 마치 화평법이 전혀 산업계를 고려하지 않은 법안인양 언론을 오도하고 있다.모든 신규화학물질의 경우 산업계의 주장처럼 기존에 비해서 비용이 증가한 것은 맞다. 그러나REACH 규정과 같이 1톤 이상의 신규화학물질만을 화학물질 등록대상에 포함하라는 산업계의 주장은 산업계가 국민의 건강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공포된 화평법의 화학물질 등록과 유사한, 현행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유해법)의 유해성 심사에서는 0.1톤 이상의 신규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유해성 심사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등록기준을 기존화학물질의 경우는 입법예고안보다 2배 수준으로, 신규화학물질은 현행 유해법보다 10배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하는 셈인데, 산업계의 이런 주장은 과도한 것이다.
환경부의 입법예고안에 비해서, 산업계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여 화평법은 후퇴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계가 아니라 국민에게 비판을 받아야 하는 화평법이다. 이를 두고 산업계가 국회의원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화평법을 제정했다고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화평법 시행령을 강화하여, 입법예고안의 후퇴를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계는 마치 화평법에서 조사용·연구용 신규화학물질도 보고하도록 화평법을 제정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화평법 8조 2항 4호에서는 “조사용·연구용으로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은 보고 면제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화평법 8조에서는 보고의 내용을 단순하게“화학물질의 용도 및 그 양 등”을 규정하고 있다. 용도와 양을 보고하는 것이 화학업체의 경쟁력을 얼마나 약화시킬지 의문이다.
또한 유해성정보 등을 작성해야 하는 화학물질 등록에서 ‘조사용·연구용 화학물질’이 누락된 것은 산업계와 정부가 협의하여 국회에 제출한 화평법(안)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국회에서 수정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통과된 화평법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산업계의 주장은 최소한의 협의정신도 없는 행동이며,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주장일 뿐이다.
신규화학물질의 경우는 화학물질 보고와 등록 절차를 통해서 시장 진입 전에 안전성을 입증하는 사전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안전을 바탕으로 화학물질 산업계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기존화학물질의 경우는 이미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대량사용물질과 새로운 용도에 우선 초점을 맞춰 관리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복지국가, 선진국가로 나가는 화학물질 관리체계다.
국회의원 전문성 운운하며, 국회를 폄하한 경제신문 기사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화평법을 대표발의한 본 의원은 화평법과 관련하여 예방의학 전문가, 독성평가 전문가, 환경법 전문변호사, 산업노동환경전문가, 환경보건전문가, 화학물질 산업계 등의 자문을 받았으며, 6개월 여간 준비를 해왔다. 본 의원뿐만 아니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민주당 의원들 모두 전문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자문을 통해서 법안을 준비하고 검토하고 있다.
실명을 거론하며 국회의원 전문성 운운한 기자는 의원실에 단 한통의 전화도 없이 의견도 묻지 않은 채 기사를 내보냈다. 최소한의 기사원칙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그 기사를 기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앵무새처럼 산업계의 목소리를 비판의식 없이 기사화하는 일부 경제신문들은 정론의 길을 걷고 있는지 뒤돌아보길 바란다.
정의당 국회의원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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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심상정의원실 02-784-9530 / 박항주 환경정책담당 010-6339-6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