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4년 6월 6일 (목) 11:00
장소 : 마석모란공원
저는 홍세화 선생님과 그렇게 큰 인연은 없었습니다.
제가 거리의 변호사라 불리며 열심히 활동하던 시기에 선생님은 진보신당 대표로 선출되셨고 그때부터 집회현장과 기자회견 등의 자리에서 거리의 당대표로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서 뵈었을 때 매우 겸손하셨고 또 조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는 뜨거운 용광로를 안고 사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소박한 자유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볼 때는 가장 뜨거운 자유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 스스로를 (난민으로서) 소멸할 뻔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소멸할 뻔한 그 자리에서 소멸에 몰린 존재들, 노회찬 의원님이 얘기했던 투명 인간들에게 연대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겠다고 한 다짐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제가 이번에 정의당 대표로 나설 결심을 할 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많이 용기를 냈습니다.
선생님께서 진보신당 단독 후보로 출마하실 때 그 출마의 변 제목을 봤습니다.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저도 출마의 변을 ‘피하고 싶은 무대에 오르며’라고 쓸까 몇번이나 쓰다 지웠다 반복하며 고민을 해야했습니다. 선생님 마음이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진보정당과는 거리를 두는 진보 지식인들을 향해 “진흙탕으로 묘사되는 정치판에 몸담지 않고 정치현실을 비판하는 타성”을 지적한 일침에 참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보정치를 하자고 하시는 분들에게 현실 정치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 그 진흙탕 싸움에 발을 빼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려고 할 때 주변에서 “상처받을 것이 분명하다”며 하나같이 극구 만류하였는데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상처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저보다 한 수 위였던 것입니다.
진보정치에 대한 신념을 스스로 행동으로 옮긴 실천가였다는 점에서 귀감이 될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자유에 대해 언급하며 민주시민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민주시민인가, (구매력으로 판단되는) 고객인가’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민주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세 가지를 역설했습니다.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 이것들이 민주시민으로서 품어야 하는 기본 성격이라고…
22대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제가 몸담고 있는 정의당은 소멸할 위기에 있는 정당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진보정치의 현 주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홍세화 선생님이 염원했던, 소멸에 몰린 존재, 배제된 자들의 편에 서는 우리들의 진보정치를 살려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약속을 드립니다.
홍세화 선생님의 따뜻한 표정을 기억하며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겸손하라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고맙습니다.
마석모란공원에서
정의당 대표 권영국 올림
2024년 6월 6일
정의당 대변인실
2024년 6월 6일
정의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