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전 토론

  • 2023 혁신재창당 정의당 사회비전

 [정의당 7기 제5차 전국위원회에서 의결]

 

2023 혁신재창당 정의당 사회비전

 

1. 우리 시대 – 복합위기와 붕괴의 시대

 

정의당은 강령에서 밝힌 ‘정의로운 복지국가비전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내용들을 보강한 사회비전을 다듬으려 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여러 개의 엄청난 위기를 동시에 겪는 역사상 초유의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여러 위기가 서로 얽혀 동시에 전개되는 이 상황을 흔히 복합위기라 부르지만, 이미 사회와 문명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진단도 있다. 복합위기를 이루는 거대한 위기들로는 최소한 다음 11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불평등 위기. 강령이 이미 지적한 양극화와 불평등은 이후 더욱 심각해지기만 했다. 강령의 진단대로, 불평등을 방치한 대가는 공동체의 위기로 돌아오고 있다.

 

둘째, 생활비 상승과 경기 침체의 동시 진행이다. 이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될 구조적 문제다. 더 이상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게 된데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역시 한계에 부딪힘으로써 주요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자산 거품 붕괴와 그로 인한 가계부채 폭발 위험이다. 이는 아직은 잠재적 위험 요소이지만, 일단 현실화할 경우에는 특히 중산층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른 어떤 위기보다 심대한 즉각적 혼란을 낳을 것이다.

 

넷째, -중 패권 다툼과 동아시아-한반도 전쟁 위험 증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경제 침체, 인공지능의 급속한 개발, 기후 위기 대응 회피 등과 얽히며 인류의 미래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이 충돌의 한 복판에 있는 한반도에서는 평화가 어느 때보다 더 위협받고 있다.

 

다섯째,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 개발 광풍이다. 기술이 인간에게 끼칠 영향에 대한 고민 없이 오로지 강대국과 대자본의 이익을 위해 디지털 기술 개발이 미친 듯이 가속화하고 있다.

 

여섯째, 돌봄 위기. 고령화, 주기적 감염병 유행, 기후 위기 등이 겹치면서 돌봄의 필요는 급증하지만 그 부담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기만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로 인해 출생률이 급락했고, 이는 다시 세계사상 초유의 초고령화로 이어질 운명이다.

 

일곱째, 대도시 집중화와 지역 쇠퇴. 이는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친 자본주의의 보편적 문제이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 수도권 초집중화와 지역의 급격한 쇠퇴라는 극적인 양상을 보인다.

 

여덟째, 주기적 감염병 유행과 보건 위기. 전 인류의 비상사태였던 팬데믹은 일단 종료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그간 주기적으로 반복된 인수공통감염병 유행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팬데믹과 보건 위기의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아홉째, 인류 문명의 생존을 좌우할 기후 생태 위기. 이 모든 위기 가운데에서 사회와 문명의 생존 자체를 결정할 가장 커다란 위기는 역시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급변이다. 기후 급변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예측 불가능성에 있으며, 그나마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농업 위기에 따른 식량난과 기후 난민 증가로 인한 국민국가 체계의 대혼란이다.

 

열째, 인간성과 사회성의 위기. 신자유주의 시기에 심화된 개인주의화 경향과 전통적 공동체의 쇠퇴는 위의 위기들과 결합하여 고독과 질시, 혐오의 정서를 유례없이 강화한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고립감과 불안, 공포를 타인에 대한 불신, 공격, 무차별 범죄로 분출한다. 온라인 네트워크는 전통적 공동체를 대신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고립과 혐오, 부족(部族)적 분열을 부추긴다.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와 유대가 와해됨으로써 사회의 존속 자체가 의문시된다.

 

마지막으로, 정치 위기. 이상의 위기들을 해결할 제도적 통로는 정치이지만, 바로 그 정치 또한 혼란에 빠져 있다. 한국의 제6공화국 민주주의를 비롯해 전 세계 대다수 국가의 정치 체제가 위기 극복 통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이 모든 위기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의 산물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전 지구적 시스템이 낳은 결과이기에 반전시키거나 해소하기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시 인간이 만든 제도이므로, 이런 제도가 낳은 위기들 역시 인간이 해결해나갈 수 있다. 낡은 사회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는 과감하고 단호한 집단적 의지만 형성된다면, 이 비상사태를 문명의 붕괴가 아닌 새로운 문명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다만, 냉철히 직시해야 할 것은 한국 사회의 유별난 취약성이다. 불행히도 지금 한국 사회는 낯선 위기의 격랑 속에서 새로운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기 쉽지 않은 상태다. 한국 사회의 지배 세력은 사회연대를 확산시키려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억압하거나 포섭해왔고, 그 결과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절박하게 협동과 연대의 정서 ? 윤리 ? 문화를 다지고 확산하는 방향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일상적 실천을 벌이며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절체절명의 임무다.

 

 

2. 생태사회국가/평등사회국가/돌봄사회국가를 향해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 진보세력이 사회 변화를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시각과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이미 주어진 대안은 없다. 과거에 만들어진 어떤 모델도 직접적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사회보다 연대의 토대가 튼튼하고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들을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역시 이 낯선 시대 속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답을 찾아나가고 있을 뿐이다.

 

둘째, 가장 뚜렷한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하여 전반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대안 모델을 미리 설계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시대에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에게 일단 필요한 것은 겸허함이다. 가장 확실하게 꼭 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 확인한 뒤에 우선 이 과제들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산한 지식과 문화, 노하우로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가야 한다.

 

셋째, 기존 상상력의 한계를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주류 상식을 넘어서는 발상이나 접근법을 위기 해법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활용해야 한다. 복합위기는 기성 질서의 산물이다. 따라서 기존 관성의 한계 안에서만 대응한다면, 위기를 지속시키고 더욱 키울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금기시되거나 진보세력조차 먼 미래의 과제(혹은 지나간 과거의 기억)로만 치부하던 요소들, 가령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민주노동당 강령)과 같은 요소를 지금 여기에 필요한 대책과 실천의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

 

넷째, 대안은 모든 시민의 공동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해답을 먼저 아는 이들과 이 해답을 따르는 이들이라는 식의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오로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경험과 지혜, 상상력을 함께 모아야만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모든 현장에서 누구든 빠짐없이 발견과 토론, 합의와 결정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형태의 민주주의다. , 우리 시대에 진보세력이란 어떤 완결된 해답을 먼저 제시하는 이들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든 이런 형태의 민주주의를 열어가는 이들이다.

 

이러한 시대 인식과 성찰을 바탕으로 정의당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비전을 계승, 발전시키는 사회비전의 기본 내용을 생태사회국가/평등사회국가/돌봄사회국가(이하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라 잠정 정리한다. 다만, 사회비전 토론 이후에 이를 일상 활동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보다 대중적인 표현으로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생태’, ‘평등’, ‘돌봄은 정의당이 지금 당장 한국 사회 변화의 방향으로 삼는 세 가지 대원칙이며, 복합위기 상황에서 가장 확실하게 꼭 해야 할 과제들이라 여기는 세 가지 긴급한 과제다. 정의당은 이 과제들에 우선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쌓인 지침과 안목, 능력을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으로 확산함으로써 한국 사회 전체를 바꾸어나간다.

 

우선 사회국가는 정의당이 그간 추구해온 복지국가의 연장선에 있다. 그럼에도 복지국가라 하지 않고 사회국가돌봄사회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간 복지국가는 20세기 중반에 역사적 복지국가들의 토대가 된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와 동일시되곤 했다. 그러나 21세기의 조건 속에서 과거의 복지자본주의를 복원할 수는 없다. 복지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과 지향을 전혀 새로운 조건, 즉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라는 조건에 맞춰 다시 전개해나가지 않을 수 없다.

 

‘사회국가복지국가의 동의어이되, 복지국가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보다는 그 근본적 원칙과 지향을 좀 더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사회국가는 보통선거제도 도입으로 실현된 정치적 평등을 바탕으로, 그 다음 단계 과제로서 경제 ?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 사회국가는 자유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권(대중의 생존과 자기 실현, 번영의 권리들)을 보장하는 국가이며, 사회를 해체하고 붕괴시키려는 경향에 맞서 사회를 지키고 육성하는 국가다. 정의당은 복합위기와 붕괴에 맞서야 한다는 우리 시대의 조건 속에서 사회국가를 건설해나간다.

 

21세기 한국에서 사회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 가지 대원칙 중에서 첫 번째로 생태는 지구라는 가능성과 한계가 모든 정책과 실천의 근본 전제이자 절대적 기반임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회와 문명이 지구라는 한계 안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는 일상적인 자각이다. 어떤 제도든 실천이든 철저히 이 한계 안에서만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과거 어떤 진보세력도 알지 못하던 새로운 대원칙이다.

 

즉, ‘생태는 더 이상 한 부문이나 영역이 아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생태적 균형을 회복한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청은 이제 정의당의 모든 정책과 실천을 관통한다. 다른 모든 좋은정책과 실천은 이러한 생태 전환 노력과 결합하고 이에 기여함으로써 더 좋은혹은 가장 바람직한정책과 실천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아무리 불평등 해소나 복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과 실천이라도 지구라는 한계나 생태적 균형을 무시한다면 더는 좋은정책, 실천일 수 없다.

 

다음으로 21세기 사회국가는 신자유주의 시기에 유례없이 심해진 불평등을 해소해가는 것을 긴급한 과제로 삼는다. , 평등을 또 다른 대원칙으로 삼는다. 지난 20여 년간 진보정당 활동을 통해 확인했듯이, 이를 위해서는 고용 형태, 소속 기업 규모, 젠더, 지역, 학력, 장애 유무 등의 차이가 소득, 자산, 지위 등의 격차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것은 불평등 심화로 가장 심각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불평등 심화의 주역인 초고소득층이나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따른 구조적 불로소득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재분배적 조세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소유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소득, 자산, 지위 등의 불평등은 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불평등이라는 더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불평등의 이러한 심층적 수준까지 공략해야 비로소 평등을 향해 성큼 다가갈 수 있다.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격차 해소 논의가 평등이 아닌 공정론에 머물렀던 것은 이런 지향이나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수준의 평등을 향해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20세기에 등장한 역사적 복지국가들의 치명적인 한계이기도 했다. 우리 시대에 새롭게 건설되는 사회국가는 이런 한계를 과감히 넘어서는 평등사회국가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사회국가는 과거 복지국가와는 구별되는 세계관, 인간관을 바탕으로 제도와 실천을 새로 짜나간다. 역사적 복지국가들은 경쟁하고 자립하는 개인이라는 인간관을 자본주의와 일정하게 공유했다. 반면에 우리 시대의 사회국가는, 인간은 무수한 관계들을 통해 상호 의존하지 않고는 존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최근 들어, 특히 기후생태위기, 인구위기, 글로벌 팬데믹 등에 직면하면서 돌봄이 이러한 지향을 압축하는 표어로 급부상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인간관을 넘어 사회국가의 이상과 원칙을 훨씬 더 강력하게 재정초하려는 노력들이 보편적 돌봄사회 건설이라는 틀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발 맞춰 정의당은 돌봄을 사회국가 건설의 대원칙 중 하나로 삼는다(돌봄사회에 관해서는 아래 사회비전 4항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이러한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 건설에서 핵심적인 도전 과제는 생태평등’, ‘돌봄이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건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태 전환이 불평등 해소의 기회가 되고 돌봄 기본서비스 체계 구축이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 기존 지배 세력의 기득권 구조와 대결하며 가장 폭넓고 적극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를 통해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건설이 이렇게 서로 긴밀히 얽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시대 진보정치의 사명이다.

 

 

3.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 10대 비전

 

1) [생태 전환] 생태적 계획으로 에너지, 산업, 소비를 전환한다

 

심각한 생태 위기가 기후 위기 하나만은 아니다. 종 다양성 급감, 해양 폐기물 누적, 물 부족 등 여러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규모와 예측 불가능성, 파국적 결과 등의 측면에서 기후 급변이 인류 문명의 존폐를 결정할 대표적 생태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기후 위기 대응이 생태 전환의 핵심 내용이자 주된 동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기후 위기 대응은 두 방향에서 전개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기후 변화의 완화이고, 둘째는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이다.

 

우선 기후 변화 완화란 온실가스, 특히 탄소 배출을 줄이고 결국은 중단함으로써 기후 변화 가속화를 어떻게든 저지하고 가장 파국적인 기후 재앙의 도래를 막는 것이다. 현재 기후는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의 기후 변화 완화 시나리오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후 변화 완화 노력이 불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시나리오보다 더 빠르고 과감하게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완화 노력은 다음 세 가지 전환을 통해 추진된다.

 

첫째는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다. 탈핵과 탄소 배출 제로를 앞당기기 위해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으로 전력 생산을 개편하고 지능형 전력망 구축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다.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탄소 배출을 50% 감축한다는 목표 아래 신속한 전환에 착수한다. 이를 위해 지역에너지공기업, 재생가능에너지 협동조합, 지역공공은행 등 새로운 형태의 제도들을 적극 활용한다.

 

둘째는 산업의 전환이다.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체제만이 아니라 이와 연결된 생산 체제 역시 전환해야 한다. 혁신가형 정부, 기업계,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공동 논의와 협상, 합의를 통해 에너지, 배터리, 전기차, 자원순환, 친환경농업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다. 특히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건축물 리모델링이나 돌봄 기본서비스 체계 구축은 공공의 주도로 일자리를 늘리고 서민 가계를 지원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득, 고용, 생활 안정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도모한다.

 

셋째는 생활공간과 소비의 전환이다. 변화된 에너지-생산 체제와 선순환을 이룰 생활과 소비의 새로운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널리 퍼진 생각과는 달리,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결단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대중교통과 같은 집합적 소비의 변화(프리패스 등), 신규 공항 건설 중단을 넘어 고속철도로 대체 가능한 국내선 항공노선의 폐지, 안전한 먹거리나 수리할 권리 등에 대한 제도적 보장, 재활용 중심의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집단적인 전환을 추진한다. 공통자원/공동자산(커먼즈)을 늘리고 숲과 같은 녹색 공간을 넓히며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유도하는 도시 공간 계획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후 변화 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후 재앙이 시작돼 인간 사회에 나날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완화 대책과 함께, 기후 재난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모두의 생존을 지키면서도 주로 기후 재난을 불러온 집단(대자본, 부유층)의 부담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방향의 적응 대책을 추진한다. 이러한 상시적 위기 대응 체제는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국가 운영과 긴밀히 관련된다.

 

기후 위기 완화든 적응이든 이 모든 노력은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시장에서 사기업이 내리는 결정만으로는 결코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더 광범하고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참여하여 이윤 추구와는 다른 방향에서 결정을 내리고, 이러한 결정들이 경제 활동 전반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 참여와 합의의 민주적 과정에 바탕을 둔 생태적 계획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적 과정을 실행하고 계획을 수립, 집행하는 사회적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바로 지금부터 삶의 현장들에서 배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부터 전환 추진 세력들의 공생과 확장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미 존재하는 거버넌스에 참여하거나 새롭게 개입 공간을 열어 생태적 계획의 수립, 집행을 훈련한다. 생활공간 안에서 전환과 관련된 모든 정보와 의견을 파악, 소통하고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으로 모아나가는 것을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새로운 일상적 과업으로 정착시킨다.

 

2) [노동] 노동자가 연대와 전환을 주도하는 노동 주도’ 사회로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주된 기반은 노동계급이었으며, 진보정당운동의 가장 긴밀한 동반자는 노동운동이었고, 진보정치의 궁극 목표는 노동해방이었다. 그렇다면 진보정치가 생태돌봄이라는 전에 없던 대원칙을 전제하게 된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노동계급은 여전히 진보정당의 핵심 출발점이다. 물론 지구화, 금융화, 정보화라는 거대한 변화를 거치며 노동계급 내부의 다양성과 원심력이 유례없이 강화됐다. 또한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킬 주체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이를 비롯한 광범한 대중들의 연합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인구의 다수는 여전히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에 포괄되며,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최전선에 선 것도 역시 노동자들이다.

 

더구나 ‘임금노동자라는 한 꺼풀을 벗기면, 모든 노동자에게는 산업인이라는 얼굴이 남는다. 사회를 위해, 동료 시민들을 위해 재화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펼치는 산업인들이다. 이런 산업인으로서 노동자는 산업 전환을 비롯한 생태 전환의 모든 방면에서 단순한 객체(피해자나 구제 대상)가 아니라 주인공이다. 기업에게 대안적인 생산과 서비스 방향을 제시하는 노동자는 생태적 계획을 수립, 집행하는 시민들의 중심에 있으며, 기후 재난을 피해 쉴 권리와 재해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는 기후 재난 시대에 적응하려는 시민들의 맨 앞에 서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이런 얼굴이 전면에 부상하려면, 우선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을 바탕으로, 기업별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넘어선 초기업단위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산업별 교섭의 정착은 이제 단순히 기업별 이기주의를 넘어선다는 의미만 지니지 않는다. 사회의 가장 근본적 영역인 산업에서 생태 전환을 비롯한 사회 전체의 긴급한 문제를 대화와 협상, 합의를 통해 해결해나가는 민주적 과정이라는 더 적극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노동운동이 이러한 단계로 성장해나가도록 정의당은 산업별 노동 체제를 뒷받침하는 법제 마련에 앞장서고, 연대임금이나 비정규직 차별 해소, 초기업적 숙련 형성 프로그램, 노동시간 단축, 정의로운 전환 등을 협상하고 결정하는 수준으로 산업별 교섭이 발전하도록 지원한다.

 

물론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당장은 산업별 교섭 체제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영역이 있다. 플랫폼 경제와 같이 기존 노사관계 정형에서 벗어나는 노동 영역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에 대응하려면 기존 근로기준법을 넘어서는 일하는 시민 기본법이 제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이라는 또 다른 초기업단위 연대의 축이 주목받아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협동조합, 공제회, 문화 단체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결사체들이 필요하다. 정의당은 지역에서 노동운동이 사회연대경제 등과 긴밀히 소통하고 결합하게 함으로써 연대의 사슬을 사회 전반에 더욱 촘촘히 확장해나간다.

 

정의당은 이 모든 노력을 노동조합운동과 함께 공동의 전략을 토론 ? 수립하는 기구를 구성해 추진한다. 진보정당-노동조합 공동 전략 기구의 가장 급한 안건은 물론 노동계급 내의 차이와 분열을 넘어서 연대를 확장하는 방안이겠지만, 노동자가 산업인으로서 복합위기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열어가는 데 앞장서는 방안 또한 시급하다.

 

과거에는 진보정당조차 노동자의 기업 소유를 늘리거나 노동자가 경영을 주도하는 기업을 확대하는 것(보통 경제민주주의 혹은 산업민주주의라 일컬어진)은 복지국가 수립 이후에나 시도할 먼 미래의 과제라 여겼다. 그러나 기업에 주주 독재가 관철된 뒤에 노동권이 처참하게 후퇴하고 복지국가가 쇠퇴한 신자유주의 시기를 겪고 난 지금은 전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를 겪고 난 상황에서 더욱 강화된 자본의 힘을 제어하고 사회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노동자의 기업 소유와 결정 과정 참여가 지금 당장의 과제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정의당은 과거 스웨덴 노동운동의 임노동자기금 구상이나 영국 노동당이 한때 제시한 포용소유기금처럼 노동자의 기업 소유 확대를 제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한국 상황에 맞춰 발전시킨다. 이런 대안이 자칫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기업별 이기주의와 결합되지 않도록 산업 수준의 개입과 기업 수준의 소유-경영 참가가 조화를 이룰 방안을 집중적으로 고민하여 제시한다. 이를 통해 제헌헌법에 이미 담겼던(182항의 이익균점권 등) 경제민주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21세기의 조건에 맞게 되살려낸다.

 

과거에 정의당은 노동 ‘존중사회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정의당이 추진하는 대안의 방향은 노동 주도사회다.

 

3) [복지] 모든 시민의 소득을 보장하고 의료?교육?주거 공공성을 확대한다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 비전은 그간 정의당이 발전시켜온 정책과 단절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보완해온 정책들이 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대표적인 내용이다.

 

영국에서 20세기 복지국가의 기본 얼개를 제시한 ?베버리지 보고서?사회보험과 공적부조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근간이라 밝혔다. 모든 시민에게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21세기 사회국가에서도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과제다. 한국 사회에서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 실현 방안으로서 보편적 기본소득 등이 논의됐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선거가 끝나자 기성 양대 정당은 이 모든 논의를 다 망각의 늪에 빠뜨렸다.

 

이에 맞서 정의당은 시민평생소득체계를 공약으로 제시했다(20대 대선공약집). 시민평생소득 체계는 시민최저소득, 전국민소득보험, 범주형 기본소득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시민최저소득을 통해서는 중위소득 이하 시민에게 매월 일정액(20대 대선 당시에는 최소 100만원)의 소득을 보장한다. 고용보험을 대체하는 전국민소득보험을 통해서는 그간 사각지대에 있던 영세자영업자, 불안정 취업자까지 사회보험에 포괄한다. 그리고 청년기초자산제(사회상속제)를 비롯해, 아동, 청소년, 노인, 농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주형 기본소득을 통해 소득보장 체계 전반을 보완한다. 또한 정의당은 21세기의 조건에 맞게 완전고용을 실현하는 국가일자리보장제도 공약했다. 이런 소득보장 체계는 정의당이 지향하는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에서도 계속 가장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 역할을 한다.

 

모든 시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본 서비스, 대표적으로 의료, 교육, 주거 등에 대한 기존 정책 역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의료의 경우, 병원비 상한제 등을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강화하고, 전국민주치의 제도를 도입한다. 교육의 경우, 대학서열체제 혁파와 대학까지 무상교육, 노동주도사회를 위한 직업교육 강화 등을 계속 추진한다. 주거의 경우, 토지공개념 3(토지초과이득 과세, 택지소유 상한, 개발이익 환수)과 함께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중심에 놓되, 특히 민간임대주택의 공공 매입을 통한 공공임대주택 확대 방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는 모두 공적 소유 ? 공급(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대안이며, 돌봄 기본서비스 체계 구축과 맞물려 21세기 사회국가/돌봄사회의 탈상품화된 기본 사회서비스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보편적 최저 소득 보장과 기본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사회임금 효과)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이 정책들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리고 다른 한편으로 정의당의 기존 최고임금법보다 더 강력한 최고급여 상한제, 초고소득에 대한 과감한 부자 증세를 병행하면, 소득 불평등 해소의 정공법이 된다. 가령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0% 이상까지 치솟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붕괴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전시 상황에 준하는 부자 증세가 단행되어야 한다.

 

다만,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기에 소득 불평등은 자산 불평등과 긴밀히 얽히게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래 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밑바탕에 경제 권력 불평등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불평등이 자리한다.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 10대 비전의 모든 내용은 이러한 복합 불평등을 타파하는 종합 처방이다.

 

4) [돌봄 전환] 보편적 돌봄 기본서비스를 구축하여 돌봄사회로 나아간다

 

20세기 복지국가의 한계와 약점에 관해서는 여러 비판과 성찰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팬데믹, 기후 재난 등을 겪으며 관심과 지지를 모으는 것은 돌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런 입장에서 보기에 역사적 복지국가들은 자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세계관,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개인은 기본적으로 시장(노동시장을 비롯한)에서 자립하고 경쟁해야 한다고 가정된다. 그리고 공적 복지제도의 역할은 단지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자립하지 못하는 개인을 원조하거나 일시적으로 자립에 실패한 개인이 다시 시장에 진입하도록 준비시키는 경우에 한정된다.

 

그러나 시장에 진출한 개인이 ‘자립하는 존재라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학령기 교육의 지속적인 영향이나 안정된 노후에 대한 신뢰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른바 자립적 개인은 여전히 수많은 다양한 돌봄 활동에 의지해 일상을 살아간다. 진실은 자립이 아니라 끝없는 상호의존과 상호부조다.

 

그런데 이런 돌봄 활동은 주로 저임금 노동이나 무급 노동으로 수행되며, 담당자는 대개 여성이거나 여타 사회적 약자다. 사회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이런 활동들이 제대로 된 인정, 평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덕택에 자본은 사회를 희생시키며 더욱 막대한 이득을 챙기게 된다.

 

특히 한국은 다른 어느 사회보다 더 심각하게 이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돌봄 활동의 모든 노고와 비용이 가족에 전가된 탓에 금세기 초부터 출생률이 기록적으로 급락했고, 시간이 지나자 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역사상 유례없는 초고령화라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돌봄을 비용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사회에서 노인 인구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경우에 인간의 생명과 삶의 가치는 얼마나 더 저평가될 것인가. 더구나 기후 재난 같은 다른 위기 흐름들까지 함께 엄습한다면, 얼마나 더 처참해지겠는가. 오직 모든 인간이 상호의존적 존재임을 전제하면서 이 전제에 부합하는 돌봄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력만이 이런 인간성 파괴 경향에 맞서는 대항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 복지국가들에 대비되는 21세기 사회국가는 모든 시민의 서로에 대한 돌봄을 핵심 가치이자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복합위기 혹은 붕괴의 파도를 헤치며 전에 없던 해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사회, 즉 돌봄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필요한 모든 돌봄 활동을 포괄하는 보편적 돌봄 기본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기존 복지국가의 성취들(3항 참고)을 새로운 돌봄 기본서비스와 통합해나가야 한다.

 

이런 돌봄사회는 전 세계에 아직 선례가 없다. 구체적인 설계도를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선 정의당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건설이 국가 운영의 목표가 되게 한다. 이 양대 국정 목표를 헌법에 명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당연히 두 목표를 실현하기에 적합하도록 모든 국가기구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바꾸어야 함을 뜻한다. 특히 시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착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거의 전적으로 생태 전환과 돌봄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는 기관으로 만든다.

 

출발점은 다양한 돌봄 노동자의 권리와 지위를 개선하고, 돌봄 서비스의 상품화를 중단시키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한 공적 제공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군구 단위에 보육부터 장애인, 노인요양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발굴될 맞춤형 돌봄에 이르기까지 돌봄 서비스의 수요 발견과 공적 공급을 책임지는 통합돌봄센터를 설립한다. 통합돌봄센터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이전하는 통합돌봄기금을 재원으로 삼는다. 이러한 지역별 통합돌봄센터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보편적 돌봄 기본서비스 체계를 만들어나가며, 의료, 교육, 주거 등의 영역까지 점차 결합, 통합시킨다.

 

그러나 너무도 광범하고 다양한 돌봄 활동을 공적 공급만으로 다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돌봄센터는 공적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회연대경제 부문에서 활동하는 돌봄 관련 협동조합, 지역업체 등과 연계, 협력하여 공공의 포괄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더 광범하고 다양한 돌봄 서비스 제공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또한 노동시간의 보편적이고 획기적인 단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보다 평등하게 돌봄 활동을 분담할 가장 근본적인 기반을 마련한다. 돌봄사회로 나아가려면, 각급 국가기구만이 아니라 이렇게 시민사회 내부 역시 근본적으로 변화해야만 한다.

5) [젠더/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다양한 불평등과 차별의 폐지는 그 자체로 복합위기에 대비하는 최선책

 

정의당 강령은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힌다.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이며 직업 선택과 노동환경에 있어 성차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갈 것이라 천명한다. 20대 대선 강령은 성 불평등이라는 동전의 앞면에는 차별이, 뒷면에는 폭력있다고 지적하면서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젠더 기반 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러한 지향을 더욱 구체화한 20대 대선 공약에는 비동의강간죄 도입”, “성별임금격차해소법 제정”, “전국민 육아휴직제도 도입”,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 강화등이 담겨 있다.

 

이 모두가 정의당이 더욱 계승, 발전시켜야 할 내용이다. 여성과 관련해 정의당이 성찰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이런 정책이 앞당겨 실현되도록 더 많은 당력을 쏟지 못했다는 점이다. 돌봄 위기를 비롯한 여러 위기가 동시에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이 점은 한층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전개될수록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날 것이고, 그리 되면 현재 직업 선택과 노동조건에서 나타나는 성별 불평등을 더 많은 여성이 더 심각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취업 여성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봄 활동은 여성, 특히 저소득층 여성에게 전가될 것이며, 이로 인한 경력 단절 등의 문제도 끈질기게 지속될 것이다.

 

성 불평등과 차별을 지금부터라도 해결해가지 않는다면, 복합위기의 여러 측면들은 여성의 고통을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 불평등과 차별을 철폐하려는 정의당의 기존 지향을 더욱 철저하고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복합위기 시대에 개인의 안녕과 사회의 존립, 번영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책 중 하나다.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의당 강령은 장애인의 온전한 자립 생활을 위한 지원을 약속하며, 최근에는 장애인의 탈시설이 긴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이러한 정책과 실천은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모든 시민을 위한 보편적 돌봄 기본서비스 체계를 만들어가는 선구적 시도이기도 하다. , 장애인 권리를 신장하려는 노력은 돌봄사회 구축의 길을 열어가는 실천이다.

 

성 소수자와 관련하여 정의당 강령은 차별 철폐와 혐오 범죄 규제 등과 함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 차별 없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약속하며, 이는 제21대 국회에 제출한 가족구성권 3(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으로 구체화됐다. 이 역시 성 소수자 권리 강화 정책이면서 동시에 사회 전체가 돌봄 위기 시대를 헤쳐 가도록 만들려는 노력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친지공동체는 돌봄사회를 이루는 필수적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주민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정의당 강령은 이미 이주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초고령화에 진입하게 되면 자본주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입장에 선 세력은 필연적으로 이민 확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벌써부터 돌봄 위기를 저임금 이주 여성 노동자를 통해, 즉 전 지구적으로 돌봄활동을 전가하는 사슬에 가담함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은 여전히 무권리 상태이며 상당 부분 인종주의적 차별을 당한다. 이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 채로 미래를 맞이할 경우, 가뜩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한국 사회의 모순들에 본격적인 인종주의적 억압과 차별까지 추가될 것이다. 지금부터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돌봄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막는 길이다.

 

6) [경제] 사회적 소유와 공적 투자, 생태적 계획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대체한다

 

20세기 복지국가는 국가가 과거에 비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특정한 형태의 경제와 결합함으로써 존립할 수 있었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였으나, 일정한 국가 계획, 확대된 공공부문 같은 새로운 요소도 포함하는 일종의 혼합경제였다. 다만 새로운 요소들보다는 기존 자본주의 쪽에 더 기운 혼합경제였다. 그리고 이렇게 힘의 우위를 점한 자본주의가 결국 새로운 요소들을 위축시키거나 폐지한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본 성격이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는 다시금 새로운 경제적 요소들을 확산시켜 자본 쪽으로 크게 기운 세력균형을 바꿈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의당 강령이 언급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개혁의 핵심이다.

 

이러한 구조적 개혁의 첫 번째 수단은 역시 민주적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이다. 복지국가 전성기에 이는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재정 운용과 재분배 정책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책 수단은 오늘날도 중요하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국가 재정 정책을 통해 통제되던 화폐 흐름을 금융자본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생태 전환, 돌봄 서비스 확대 등의 대규모 공적 투자를 중심으로 재정 정책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생태, 복지 정책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수립하는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의 재정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속적 감세 기조와 균형재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미신에 강박된 한국의 국가기구로는 결코 위기들에 맞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수 없다. 정의당은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구축을 위한 적극적 재정 운용을 과감히 강조하며, 법인세 최고세율 확대 ? 사회복지세 신설 같은 사회연대에 바탕을 둔 증세(상황에 따라 부자증세로도, 복지증세나 보편증세로도 표현될 수 있다)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한다. 또한 국가기구 안에서 낡은 경제 질서와 관성을 대변하는 기획재정부와 같은 단위를 해체 ? 재편하고, 시민사회가 예산안 수립에 참여하는 시민참여예산제의 발상을 전국적 차원에서 실현할 방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며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자본 권력에 맞서고 이를 제어해나가기 위해서는 원하청 이윤공유제나 불공정행위 근절 ? 독과점 방지와 같은 기초적인 경제 민주화 조치에 더해 더욱 새로운 제도적 요소들 또한 필요하다. 정의당 강령은 이미 사적 소유, 공적 소유, 사회적 소유가 균형을 이루게 할 것이며, “공정한 시장경제, 정의로운 공공 경제, 협동의 사회적 경제가 서로를 보완하고 촉진하는 새로운 상생의 경제 체제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 천명한다. 사실 소유권 구조 개혁은 진보정치를 보수정치와 구별해주는 최후의 근거 중 하나다. 이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공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의 확대를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당면 현안들을 해결할 해법의 핵심 구성 요소로서 바라봐야 한다. 또한 공통자원/공동자산(커먼즈), 협동조합 소유, 노동자 소유 등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소유를 구상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자산 거품 붕괴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실 거주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면서 토지, 주택의 공적 소유, 사회적 소유를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플랫폼 경제에서는 이미, 공적으로 구축된 플랫폼과 노동자 협동조합의 연계, 협력이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의 소유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과거에는 너무 급진적이라 여겨졌던 대안들이 현실적 해법으로 동원돼야 할 때다. 이미 해외에서는 기업가들이 나서서 주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이해당사자 기업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기업 내 노동자(종업원), 노동자 전체(산업별 노동조합), 소비자, 지역사회, 연관업체 같은 사회의 광범한 대표자들이 대기업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것이 정당함을 말해준다. 이러한 지배구조와 노동자 지분 소유, 노사 공동결정 구조 등이 중층적으로 결합됨으로써 대기업을 실질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경제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제도들은 각 요소가 고립된 채로 있어서는 그 가능성을 다 발휘할 수 없다. 반드시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 이 새 생태계는 단기적인 이윤 추구나 양적 성장 목표 달성이 아니라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구축에 기여한다는 새로운 목적 아래 움직여야 한다. 이러한 생태계가 일정하게 성숙해야만, 전국 차원에서든 지역 차원에서든 생태적 계획을 실질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해나갈 수 있다. 생태적 계획은 과거 고도성장기의 경제개발계획과는 달리 중앙집권적 국가기구와 재벌 대기업 간의 상명하달식 관계로는 이뤄질 수 없다.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건설을 추진하는 민주적 국가와 새로운 경제 생태계 사이의 수평적 협력과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의당이 추구하는 구조적 개혁의 중장기 목표는 바로 이런 새로운 경제적 행위양식에 익숙해진 사회적 주체들을 육성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추진할 대안 중 대표적인 사례로는 공공은행이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단기 이익 추구 회로에 포획된 화폐 흐름을 공적 통제 아래 두는 과제와 공적 소유나 사회적 소유 같은 새로운 제도적 요소들을 도입하는 과제의 교차점에 바로 공공은행이 있다. 정의당은 전국적인 차원에서 녹색투자은행(20대 대선 공약집)과 같은 공공은행을 신설함으로써 에너지와 산업 등의 생태 전환을 추진하며, 지역적 차원에서 지역공공은행들을 설립함으로써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해나간다.

 

7) [농업] 농업을 친환경의 방향에서 미래산업으로 재건한다

 

기후 급변은 식량 위기를 낳는다. 기후의 일상적인 불안정성 탓에 전 세계 농업이 흔들리고 곡물 등 먹을거리의 수급이 점점 더 크게 위협받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추세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곡물은 20%, 사람이 먹는 식량은 45% 밖에 자립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농업, 농민, 농촌이 계속 방치되면서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이 붕괴일로에 놓여 있다.

 

심지어는 탈탄소화조차 이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민간 자본과 시장에 내맡기자, 발전 설비를 구축하면서 농지와 산림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외부로 유출해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생태 전환의 주된 과제 중 하나가 친환경적 방향에서 농업을 재건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에너지 등의 전환은 기존 도시-농촌 관계를 그대로 이어받은 채 추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것이 생태 전환의 핵심 내용이다.

 

농업은 이제 기후 급변 시대에 모두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래산업이자 공익산업으로서 보호받고 재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의당은 기존에 발전시켜온 정책을 복합위기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더욱 강력하게 추진한다. 모든 농어민 개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공익형 직불제의 규모를 늘려 농어업의 생태적 전환을 촉진한다. 식량자급률 목표를 지속적으로 상향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생태적 계획의 주요 과제로 삼는다. 전국적 ? 지역적 먹을거리 종합계획을 수립, 집행하고, 친환경 로컬푸드 공급 체계를 지역 내 돌봄 기본서비스와 긴밀히 결합한다.

 

재생가능에너지 인프라는 철저히 지역 주민의 주도와 참여로 건설 ? 운영하며, 기후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일상적인 재난 방지 체계를 구축한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제한하며, 농지은행을 통해 공공농지 비축분을 늘린다. 또한 농협 등의 개혁을 통해 협동조합이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든다. 5.16 군사쿠데타로 단절된 읍면동 자치를 농촌에서부터 부활시키고, 마을자치를 통해 농촌을 밑에서부터 재건한다.

 

이런 노력이 일정하게 쌓여갈 때에만 새로운 세대가 농업과 농촌을 선택하고, 농업이 미래산업으로서 실질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다. 이런 이행 과정 중에, 도시와 농촌의 농산물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먹을거리 전체의 수급 균형을 이루는 방향에서 도시농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를 통해 농업이 미래산업 전체의 핵심 부분으로서 제 자리를 잡고 농촌과 도시 사이에 새로운 생태적 균형, 선순환적 공생 관계가 진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장기적 목표다.

 

8) [지역] 지역순환경제 구축과 수도권 집중의 분산으로 지역의 번영을

 

지금껏 정의당은 지역을 중앙정치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은 전국적 정치와는 구별되는 독자적 의미와 위상을 지닌 정치 공간이다. 기후 급변 등이 벌어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기후 위기는 인간 사회의 대응 속도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시시각각 전개되지만, 중앙정치는 여전히 낡은 권력 게임에 빠져 진지한 대응을 한없이 늦추고 있다. 이럴수록 각 지역에서 시민들이 벌이는 자구(自救) 노력들과, 이로부터 자라나는 대안적 생활양식의 거점들이 중요해진다. , 지역은 오히려 중앙정치보다 더 먼저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건설의 문제의식이 퍼지고 다양한 실험이 펼쳐지며 난국을 타개할 모범 사례가 등장해야 할 무대다.

 

특히 각 지역의 토양에서 성장하는 사회연대경제 부문이 이런 지역정치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사회연대경제는 협동조합, 결사체, 상호부조단체, 재단, 사회적기업, 자조단체 그리고 사회연대경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활동하는 다양한 법인들을 포괄하며, 순전히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과는 달리 이윤 증가보다는 사람과 지구에 대한 돌봄, 평등과 공정, 상호의존, 자치, 투명성과 책임성, 인간다운 노동과 살림살이의 실현을 지향한다(국제노동기구ILO 110차 총회 결의안, 2022). 사회연대경제 부문을 구성하는 재생가능에너지나 돌봄 관련 협동조합 ? 주민조직들은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구축 과정의 필수 요소이며, 민주적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과 연계 ?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정의당은 각 지역에서 사회연대경제 부문이 성장할 기반을 마련하며, 노동운동을 비롯한 지역 사회운동들과 사회연대경제의 교류 ? 협력 ? 중첩을 촉진한다.

 

민주적 지방정부는 지역 내 공공부문과 사회연대경제, 그 밖의 지역경제 구성원들 사이에 유기적 연계를 구축함으로써 지역 안에서 부를 생산하고 분배 ? 재투자하는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순환경제는 외부 자본을 유치한 뒤에 그 성과를 외부로 유출시키거나 토건개발세력에 의존해 지역의 자연환경과 발전 잠재력을 오히려 파괴하는 기존 지역 성장전략을 대체할 대안이다.

 

이런 과거의 전략들과 달리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의 내발(內發)적 번영을 지향하며, 지역에 뿌리 내린 생산 주체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지역 내 재투자와 산업연관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 지역 안에서 순환하게 한다. 공공부문과 지역 내 사회연대경제의 선순환적 연관을 구축하여 지역 내의 공동부, 공통자원/공동자산(커먼즈), 집단적 역량을 강화한 미국의 클리블랜드 모델, 영국의 프레스턴 모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모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의당은 지역순환경제의 한국적 모범 사례를 창출하고 이를 확산함으로써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의 가장 튼튼한 밑바탕을 다진다. 특히 이 과정에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공공은행이 각 지역에서 그 실정에 맞게 설립 ? 운영되게 하는 데 앞장선다.

 

지역의 오랜 풀뿌리 경제 주체인 중소자영업이 자생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자영업자를 괴롭히는 임대료 횡포를 막기 위해 상가 임대료 상한제를 실시하며, 지역공동체에게 상가 매물에 대한 선매권을 부여하여 공동체가 자산을 소유, 관리하게 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한다. 가맹점 본사, 대형 유통매장,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갑을관계를 통한 수탈을 막는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시도되는 지역화폐를 더욱 확대 ? 발전시켜 지역 소상공업을 활성화하고 지역순환경제의 중요한 기반이 되게 한다. 또한 소상공인을 은행 대출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소상공인을 전담하는 공공금융을 발전시킨다. 지역공공은행은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소멸이라고까지 불리는 수도권 이외 지역의 급격한 쇠퇴를 반전시키려면, 이런 지역별 노력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개입 또한 필요하다. 수도권에 자본과 인구, 자원이 너무나 몰려 있기에 이를 각 지역에 전략적으로 분산하는 계획이 수립, 집행되어야 한다. 지역의 자립과 재건이 가능하도록 각 지역의 기본 인프라를 보강하고 주요 기관을 전국에 걸쳐 재배치해야 한다. 오늘날 수도권 초집중화를 불러온 서울 강남 개발 역시 시장에 맡긴 결과가 아니라 국가 계획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수도권 초집중화를 반전시키는 노력 역시 민주적 국가의 계획적 개입 형태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우선 개헌을 통해 세종시로 수도를 이전한다. 그리고 의료, 교육, 주거, 교통 등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의 분산 ? 재배치를 추진한다. 지역 공공의대 설립을 비롯한 공공의료 확대를 통해 지역별 기본 의료 체계를 구비하며, 서울대를 비롯한 기존 국공립대의 전국적 재배치를 통해서든 지역 국공립대학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통해서든 고등교육 역량을 서울에서 전국으로 분산시킨다. 지역에서부터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우선 확보하여 공급하며, 탈탄소화에 부응하는 철도 등 대중교통망을 각 지역으로 확장한다. 무엇보다도 생태 전환 ? 평등사회 ? 돌봄사회 구축과 관련한 공적 투자를 계획적으로 비수도권 지역부터 집행한다. 이를 통해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이 곧 수도권 초집중화와 지역 쇠퇴를 점차 역전시키는 과정이 되게 한다.

 

정의당은 이러한 전망에 따라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지역정치 전략을 수립, 추진한다. 한편으로는 현재 지역에서부터 대두하는 지역정당 실험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생존과 재건을 위해서도 전국적인 계획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함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중앙정치에만 매몰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반대로 각 지역의 풀뿌리 실험이 해당 지역에 매몰된 채 전개되어서도 곤란하다. 지역정치의 실험과 전국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정치가 처음부터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일상적인 협력 ? 조정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운동의 내부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지역정치-전국정치 연계 모델을 시급히 연구하고 실행한다.


9) [평화통일] 한반도 ? 동아시아를 전쟁이 아닌 생태 전환의 출발지로 만드는 녹색 긴장완화를 추진한다

 

탈냉전 이후 미국 일극 패권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점차 약화되면서도 그 지위를 유지하려는 관성적 정책이 작동하는 한편, 중국 · 러시아 등 이에 도전하는 세력과의 전략적 경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그런 경쟁이 지정학적 취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비화했고, 한반도와 대만해협 등 동아시아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는 한편으로는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며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2018년 판문점 공동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등의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지만, 북의 핵개발이 계속됐으며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도 이뤄내지 못했다.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로는 대립이 다시 격화되는 중이다. 북은 선제핵공격까지 포함한 법령을 제정하고 각종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가 하면 한미는 공세적이고 대대적인 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를 추진한다. 남북관계에서도 북의 적대적 공존정책과 남의 평화 없는 통일정책이 맞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심화 등을 과장하여 다시 냉전 시기와 같은 전면적 대립 시대가 도래했다거나, 심지어 미-중 간 전쟁까지 필연적이라고 보는 일각의 주장을 따른다면, 전혀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 언론은 그런 시각에 근거해 이런 패권전쟁에서 승리할 미국과의 동맹 강화,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일 3각 동맹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을 재촉하는 자해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국제 질서가 크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지난 30년간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정책을 단순히 지속하거나, 그 자장에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기존 정책 패러다임을 유지해서는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지향 자체의 포기가 아니라, 현 상황에 걸맞는 더욱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평화 정책의 전개를 요구한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강대국 간 무력충돌을 막고,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 등에 대응할 수 있는 협력의 단초를 키우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정의당은 동아시아 ? 한반도 녹색 긴장완화(그린 데탕트)’ 등 적극적이면서 포괄적인 평화 ? 외교 정책을 추진한다는 제20대 대선 정책을 견지하며 더욱 발전시킨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 감축에 군사부문 활동을 포함시키는 동아시아 녹색 긴장완화를 통해 지역 안보협력을 발전시키는 동아시아판 헬싱키프로세스를 추진한다. ‘동아시아 녹색 긴장완화에는 전쟁 절대 반대, 대규모 군사훈련 중지, 군사 분야 탄소배출 보고 의무화 등이 포함된다. 그 일환으로 남북 군비증강 대결 중지와 남북 재생가능에너지 협력, 산림 협력을 결합한 한반도 녹색 긴장완화를 실현한다.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 진전과 함께 동북아 3 + 3 비핵지대화를 제안하여 추진한다.

 

현재의 대립 국면을 대체하는 이러한 협력 국면을 열기 위해서는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까지 병행하는 남북미중 4자 평화회담 등이 필요하다. 정상들의 정치적 선언으로서 평화선언등이 실현되면 좋겠지만, 현재의 정치적 조건들을 고려할 때 각국 정권의 최고 책임자에게 이런 선도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지금처럼 자유를 내세우며 진영 간 대립을 부추기는 편향 외교를 전개할 것이 아니라, ‘평화 · 공생 · 기후위기 적극 대응등 국제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원칙을 바탕으로 균형외교를 전개하며 분쟁 연루를 예방하고 가교 국가로서 국제사회 연대를 선도해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에서는 ‘평화 없는 흡수통일은 물론 적대적 공존모두를 배격하고 평화와 협력의 제도화-항구화, 점진적 과정으로서의 통일, 평화적 통일의 정신과 내용을 기조로 하는 남북기본협정 체결 등을 추진해야 한다. 일체의 교류협력과 경협 등이 중단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한반도 녹색 긴장완화를 추진하는 것과 함께, 북의 핵활동 동결-대북제재 완화 등 유연한 정책을 전개하며 경협을 실질적으로 재개할 조건을 마련한다. 이후 재개되는 경협은 정치 · 군사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본가 등 일부만이 아니라 노동자, 청년 등 대다수에게 이익이 되도록 남북경제사회협력강화협정을 체결하게 한다.

 

이런 방향이야말로 “군사 주권과 안보 주권을 되찾고 평화 협정을 체결해 전쟁을 종식시키며 동아시아 평화를 주도한다는 정의당 강령의 평화 지향을 새로운 국제 정세에 맞춰 실천하는 길이다. 또한 상호존중의 원칙에 따라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평화를 정착시키며 정치 ? 경제 ? 군사 ? 사회 ? 문화적 통합을 점차 진전시키는 것이 통일로 가는 가장 현실적이며 강력한 방법이라는 정의당 강령의 통일 지향에 복합위기와 붕괴의 시대에 맞서는 공동의 과업이라는 내용을 더함으로써 시대 변화에 부합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10) [정치] 붕괴를 앞당기는 제6공화국을 넘어, 전환을 실현하는 제7공화국으로

 

지금까지 제시한 비전들을 실현해나가려면, 기존 정치와는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 우선 그간 정치의 의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것들이 정치 현안이 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기후 위기 같은 우리 시대의 엄청난 문제들이 아직도 정치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다. 이런 문제들을 정치 의제로 만들려면, 주류 정치 공간 바깥에서 사회운동이 치열하게 펼쳐져야 한다.

 

다음으로 생태 전환이나 평등사회, 돌봄사회 구축 같은 지향에 동의하는 광범한 대중의 연합이 결집돼야 한다. 이런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는 몇몇 정치인의 일시적인 인기나 엘리트의 명민함을 통해서는 실현될 수 없다. 노동자와 농민, 중소자영업자, 여성과 다양한 소수자 등이 그러한 변화에서 삶의 의미와 이익을 확인하며 동맹을 형성해야 한다. 이런 동맹은 전국적인 거대한 흐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진보정당, 노동조합, 사회연대경제 조직, 시민사회 단체 등의 네트워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지배 세력과, 변화를 바라는 대중 연합 사이의 세력균형이 결정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기업과 금융자본, 부유층에 쏠려 있던 세력균형이 뒤흔들리고 뒤집혀야 한다. 물론 법률이 바뀌고 새로운 제도가 등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오직 세력균형이 변화할 때에만 대규모로 이뤄지며, 역으로 세력균형의 변화 없는 일부 법제의 변화는 현실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는 한국 사회의 기존 계급 세력균형이 결정적으로 바뀜을 통해서만 실현되며, 이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등 민주적 결사체들, 여러 대중운동의 동반 성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상의 내용은 이른바 ‘여의도 정치로는 제대로 시도조차 해볼 수 없다. 선거와 각급 의회 내부의 활동만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은 정치개념을 스스로 확장해야만 한다. ‘(사회)운동의 정치라 불리기도 하는 확장된 정치에 나서야만 한다. 정의당은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를 향해 나아가면서 이런 확장된 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진보정당과 다른 정당들의 정치는 미래에도 선명히 구별될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에 매몰되던 것과는 정반대의 또 다른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앞에서 누누이 확인했듯이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민주적 국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의지가 관통하는 민주적 국가가 시민사회 내의 역동적 흐름들과 유기적 연계를 맺고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켜야만 기득권 세력에 쏠린 세력균형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진보정당은 현재 열려 있는 대의민주주의 통로를 통해 바로 이렇게 국가를 변형하자고 만든 조직이다. 그렇다면 확장된 정치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결코 기성 제도정치에 대한 참여와 개입을 방기해도 된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다. ‘확장된 정치가 필요한 것도 본업인 이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기성 제도정치는 복합위기 시대를 헤쳐 나갈 출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들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촛불항쟁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정착된 정치 지형 때문만은 아니며, 특정한 정치 진영이나 세력 탓만도 아니다. 1987년 이후 자리 잡은 극히 제한된 민주주의 공간과 그에 바탕을 둔 제도정치 전반의 구조가 문제다. 편의상 이를 6공화국 정치 질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특정한 정치 질서는 왜 복합위기 시대에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만 있는가?

 

복합위기 시대에 맞서는 정치는 우선, 새로움을 향해 열린 정치여야 한다. 새로운 입장과 비전이 제도정치에 쉽게 진출할 수 있어야 하고, 지지받는 만큼 정치적 지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전에 없던 목소리와 시도에 항상 열려 있는 정치 체제만이 낯선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다. 둘째로는, 합의를 만들어가는 데 능한 정치여야 한다. 새로운 문제제기와 대안을 포용하여 최대한 기민하고 사려 깊게 다수의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합의된 내용을 과감히 추진할 역량을 갖춘 정치여야 한다. 일단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면, 합의된 정책의 실행을 위해 국가기구의 모든 부분과, 더 나아가 시민사회까지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복합위기 시대에 필요한 정치는 일하는 정치. 그러나 제6공화국 정치 질서는 정확히 그 반대다. 정당법, 선거법 등의 진입 장벽으로 인해 시민사회가 국회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를 독점해온 양대 정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은 대통령직과 국회,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존 대의기구를 두 세력이 끊임없이 권력 장악 경쟁을 벌이는 무대로 전락시킨다. 대통령도, 국회도 차기 선거를 둘러싼 권력 게임에만 골몰하고 통치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일상 통치를 맡는 것은 국가기구 최상층의 관료들이다. , 6공화국 정치는 일하지 않는 정치. 이렇게 대의민주제가 작동하지 않고 관료가 통치하는 체제는 기득권 세력의 지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역사적 국면에서는 그런 지배 구조에 부응하며 관성에 따라 버텨나갈 수 있다. 그러나 위기와 붕괴의 시대에는 그렇지 못하다. 낯선 위기들이 잇달아 닥치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의 멸망을 부추기고야 말 정치가 바로 제6공화국 정치 질서다.

 

제도정치에 대한 정의당의 개입이 단순히 이 질서 안에서 점진적으로 발언권을 늘리는 것이어서는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를 향해 한 걸음도 더 전진하기 힘들다. 기존 제도정치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대전환에 필요한 민주적 국가로 나아갈 수 없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정의당의 정치는 정치 자체를 변화시키는 꼭 그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정치 개혁을 선거제도 개혁에 한정하던 수준을 넘어 6공화국 정치 질서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한다. 현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 이후의 대안은 2016-17년 촛불항쟁 직후처럼 단순히 기존 제도대로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치 개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신속히 단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 정의당은 제6공화국을 넘어선 7공화국을 건설하는 운동에 앞장선다.

 

우선 지역정당이나 정당연합의 결성을 가로막는 선거법 ? 정당법 조항을 개정하여 정당 활동의 자유를 전면 보장한다. 기존 선거제도 개혁 노력의 연장선에서 비례성을 강화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되, 강령에 명시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뿐만 아니라 북유럽 국가들의 권역별 전면 비례대표제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현재의 대통령-국회 관계를 개혁하고 일하는 국회로 나아가도록 의회제(내각제)의 요소를 강화한다. 이를 위해 국회가 국무총리를 선출하는 개헌을 추진하며, 그 전에라도 국무총리를 국회가 추천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한다. 의회제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대통령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대통령제 개혁을 추진하되, 대안으로 순수내각제가 바람직할지, 핀란드식 이원집정부제(대통령은 외교-국방 담당, 국무총리는 내정 담당)가 바람직할지를 정의당 안에서 빠른 시일 내에 토론하여 당론으로 확정한다.

 

이 모두는 결국 사실상 ‘대의를 하지 않는 현행 대의민주주의가 대의에 충실히 나서도록 개혁하려는 것이다. , 대의민주주의를 더욱 민주화하려는 시도다. 사실 제6공화국 정치 질서에 대한 개혁은 대의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한 최소 조치일 뿐이다. 지금과 달리 일하는 국회가 된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단 하나의 전국적 대의기관이 만사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위기와 붕괴의 혹독한 시험기에는 되도록 더 많은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지혜를 모으며 결정권을 나누는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새롭게 바뀐 국회는 정책 결정을 독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접민주주의 형태로든 새롭게 설계된 대의민주주의 형태로든 정책 결정 과정을 더욱 다양하게 개방해야 한다(특히 생태 전환과 평등사회, 돌봄사회 수립과 관련한 토론과 합의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추진한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정의당은 이를 이어받아 대의기구가 일체의 특권 없이 오직 대의기능에 전념하도록 끊임없이 개혁한다.

 

 

4. 생태/평등/돌봄사회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정의당의 5가지 약속

 

이상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의당을 비롯한 한국 진보정치 전반의 혁신-재구성이 필요하다. 이에 정의당은 다음과 같이 사회비전 내용을 발전시키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한다.

 

 1) 제7공화국 건설 운동에 나선다

 

- 생태/평등/돌봄사회국가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제6공화국 정치질서 극복과 제7공화국 건설을 제기한다. 7공화국은 한국 사회에 생태/평등/돌봄사회국가를 수립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기반이 될 정치 체제를 갖추고 다른 어떤 목표나 가치보다도 생태전환, 불평등 타파, 보편적 돌봄을 실현하는 데 매진하는 민주공화국”을 뜻한다.

- 윤석열 대 반윤석열 구도를 넘어 ‘윤석열 정부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세력임을 천명한다.

- 총선을 비롯해 중요한 정치적 계기마다 개헌 등 제7공화국 건설 관련된 개혁을 이슈화한다. 개헌을 제기할 경우에 그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적 전환과 불평등 타파, 돌봄사회 수립을 국가 운영의 양대 목표로 삼는다.

: 교육, 의료, 주거, 교통 등은 시민의 기본권이며 국가가 공공적 방식을 통해 그 실현을 책임진다.

: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한다.

 : 대통령은 투표자 과반수 지지로 선출한다(대통령 결선투표제).

 :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한다.

: 각급 선거의 비례성을 보장한다.

: 국민 발의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 국회의원과 관련한 개정 사항(선거제도 개혁, 국회 특권 폐지 등)은 국회가 아닌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 제7공화국 건설에 동의하는 정치세력, 사회운동 등을 결집하는 데 앞장서며 이를 통해 진보정치의 발전적 재편을 이룬다.

 

2) 생태/평등/돌봄사회국가 비전 토론을 이어가고 확장한다

 

- 정의당의 사회비전 토론은 생태/평등/돌봄사회국가 비전과 프로그램의 1단계 작업이다. 총선 이후 정의당의 경계를 넘어 범진보세력이 함께 하는 2단계 토론에 착수한다.

- 이러한 강령, 정책 토론을 통해, 공학적 차원에 매몰된 진보정치 재편이 아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진보정치 재편을 추진한다.

 

3) 노동조합운동과 함께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실천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한다

 

- 각 산업별 노동조합들을 비롯한 초기업단위 노동조합들과 함께 공동실천전략을 수립한다.

- 공동실천전략의 단계별 목표에 따라 노동조합운동과 함께 공동 실천을 벌인다.

- 이러한 공동 실천을 통해 노동운동의 혁신을 추진함과 동시에 노동대중을 굳건한 토대로 삼은 진보정당으로 거듭난다.

 

4) 기후위기 대응-생태전환의 지역 거점을 일구어 그 모델을 확산시킨다

 

- 녹색-기후운동 세력과 함께 집중 대응 지역을 선정하고 공동 대응하여 2026년 지방선거에서 기후위기 대응-생태전환의 지역 거점()을 구축한다(단체장 당선, 지방의회 다수 의석 확보 등).

- 지역 거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생태전환의 한국적 모델을 실현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 이를 통해 그간 기후위기 전개에 비해 뒤쳐지고만 있던 한국의 녹색-기후 정치의 도약을 이뤄낸다.

 

5) 전국정치-지역정치의 새 모델을 실험한다

 

 - 지역정당 등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당 지역조직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실험을 장려한다.

- 진보정당 안에서 전국정치와 지역정치를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을 정립해나간다. 전통적 중앙집권적 조직형태 대신에, 자치적 성격이 강한 지역조직들의 전국적 네트워크에 가까운 조직형태를 지향하고 실험한다.

- 지역정당, 정당연합 등을 가로막는 정당법, 선거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서고 동시에 이들 법률이 개정되기 이전에 그 한계를 우회할 방안을 타진한다.

    

참여댓글 (2)
  • 선광

    2023.11.30 11:27:06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표결을 국회가 아니라 국민투표로 하는 안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도 좋지만, 시민사회와 직결된 어떤 위원회를 구성하여 각 선거제도의 장단점을 아는 이들의 투표로 결정하게 하는 방법도 좋을 듯 합니다.
    당장에 국민들 중에서는 마치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국회가 개혁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 바람

    2024.01.09 18:43:45
    비젼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자폭하라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