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애 처벌법"이다. 즉각 폐지하라!
- 합의 여부·장소·상황 불문 처벌하는 존재해서는 안 될 제도적 성소수자 차별
- 동성인 경우만 처벌하는 평등권 위배 조문이 필요성 있고 합리적이라는 헌재 판결 시대착오적
26일, 헌법재판소가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겨례_10.26 군 내무반 생활이 동성 성행위 키운다? 헌법재판관의 무지와 편견)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규탄하며, 나아가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요구한다.
군형법 제92조의6는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폭력·협박으로 인한 강간이나 추행을 처벌하는 조문은 군형법 제92조부터 제92조의3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남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처벌하겠다는 목적으로 군형법상 추행죄가 존속해 온 것이다. 이는 시간, 장소, 합의 여부를 막론하고 남성 군인 간의 성관계가 처벌당할 근거를 만들어냈고, 결국 군대 내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과 낙인, 차별을 조장했다. 정의당은 이 조문의 본질이 성추행 처벌이 아닌 "동성애 처벌법"이라고 보고 창당 이래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폐지를 추진해 왔다.
이번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소송은 2002년, 2011년, 2016년에 이어 벌써 4번째에 들어섰다. 그만큼 이 법으로 인해 오랜기간 많은 피해자들이 차별과 고통을 겪어 왔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2016년과 다름없이 5대4로 합헌 결정을 내려, 변화한 시대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곧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차별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나 다를 바 없다.
헌재의 판결을 살펴보면, 재판관 5인의 합헌의견에서는 군형법상 추행죄의 처벌 대상이 동성이자 군기 침해가 있는 경우임이 명확하다고 주장하였다.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른" 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해석한 2022년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면서, 조문의 해석이 분명하므로 문제가 없다고 한 것이다.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헌재 주장처럼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합의하의 관계는 제외한다는 것이 상식적 해석이라면 2017년 동성애자 군인 색출지시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조문의 모호성과 위헌성을 인정하고 더이상의 인권 침해를 즉시 막아야 한다.
또한 합헌의견에서는 군대의 특성상 폭력이나 협박이 없었더라도 위력에 의하거나 비자발적인 관계는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군형법에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처벌할 조항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성 간 성관계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을 존치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군형법에 성폭력 처벌 규정이 미비하다면, 그 점을 보완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이성 간 성적 행위에 대해서는 징계로 다스리면서도 동성 간 성적 행위만을 군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 결국 합헌의견은 이 이유 저 이유를 뒤섞어 동성 간 성관계를 일률적으로 처벌하겠다는 군형법 제92조의6와 그로 인한 성소수자 인권침해를 용인했을 뿐이다.
위헌의견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군형법 제92조의6 조문만으로는 어디까지가 처벌의 대상인지 알기 어렵고, 법 집행기관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이 조문은 대상의 성별도, 상대가 동성인지 이성인지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에 근거하더라도, 사적인 장소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함이 남는다. 2017년 동성애자 군인 색출지시 사건을 돌아보면, 이 조문이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성소수자 차별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 법이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헌법재판관 의견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우리나라 헌법은 성별을 이유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 이 법이 동성 간 성적 행위를 성별에 따라 다르게 처벌함으로써 헌법 조항을 위배하고는 행위라는 종래의 평가를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현 시점에서, 동성 군인 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와 이성 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규범적으로 달리 평가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문장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시대착오적인 인식에 기반한 동성애 차별법임을 말해준다.
군형법 제92조의6이 사문화되었으므로 폐지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 조문으로 인해 당장 처벌받지 않더라도, 이 조문의 존재만으로 군대 내 성소수자들은 피해와 차별을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조문으로 부당한 혐의를 받아 결국 무죄를 받은 장병들 역시 신상 노출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 고통받아야만 했다.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겪는 고됨과, '나도 혹시 수사를 받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 역시 가볍지 않다. 군대 내 동성애자가 언제라도 낙인 찍히고 수사, 처벌까지 받게 될 가능성을 남기는 차별적 제도를 방치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군형법 제92조의6이 밑바탕을 둔 미국의 '소도미 법(Sodomy law)'은 이미 200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헌 결정 이후 폐지되었다. 2015년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2012년·2017년·2023년 유엔 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군형법 제92조의6의 폐지를 수차례 권고하였다. 동성애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은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그런 가운데 군인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제도는 세계 선진국 사이에서도 유례 없는 인권 퇴행적 제도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금언을 무색하게 만든다. 현시대에 버젓이 남아있는 "동성애 처벌법"은 군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낡은 악법이자, 대한민국이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미흡함을 보여주는 명백한 제도적 차별이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의 잔재이자, 존재만으로도 군대 내 성소수자들을 옭아매는 인권 침해이다. 그러므로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제92조의6 합헌 판결을 규탄하며, 조문의 폐지를 요구한다.
일찍이 정의당의 의원들은 지난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을 대표발의하였다. "누구나 존중받는 차별 없는 사회"라는 정의당의 강령에 따라, 차별적인 제도를 없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군인의 인권이 지켜지는 평등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힘써 왔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가족구성권 3법, 강서구 생활동반자 인증제 공약 등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추진해 왔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앞으로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키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울 것을 약속한다.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제92조의6 합헌 판결 규탄한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애 처벌법"이다. 즉각 폐지하라!
2023년 10월 27일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