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에 대한 무차별 보도를 중단하십시오>
근래 칼부림 사건, 묻지마 살인과 같은 이상동기 범죄 보도가 급증하며 정신장애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간 항상 반복되었던 조현병을 넘어 이제는 은둔형 외톨이와 우울증까지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1번 이상 정신장애를 경험할 확률인 평생유병률은 2021년 기준 27.8%입니다. 성인 중 최근 1년 동안 우울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11.3%에 달합니다.
지난 3년 간 팬데믹이 이어짐에 따라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이 급증했습니다. 점점 더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앞으로도 우울과 불안은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정신건강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상동기 범죄를 다루는 기사의 말미에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다’ ‘정신병력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라는 문장을 덧붙임으로서, 이제 시민들은 조현병 뿐만 아니라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장애 자체가 위험하며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소한 성인 중 1/10, 우리 사회의 1/3에 달하는 시민들이 곧 잠재적 범죄자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사실과도 다르며 지난 3년을, 어쩌면 십수 년을 홀로 버텨온 시민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무엇보다 우울증 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향한 공격성으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10%에 달합니다.
OECD 자살률 1위, 우울감 1위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건을 다룰 때 정신장애 그 자체를 범죄와 연결시키는 게 대체 누구를 위한 일입니까?
우울증을 포함한 모든 정신장애가 범죄로 이어진다는 식의 보도들로 인해
범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할 핑계로서 정신장애를 말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정신장애와 정신장애인들을 두려워하며
진짜 도움이 필요한 정신장애인들은 더더욱 고립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신건강 문제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은 고작 4.5%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보도가 이어진다면 치료의 문턱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안 역시 한없이 높아질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고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다시금 정신장애만을 문제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상동기 범죄에 분노하고 피해자와 유족 분들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면, 우리는 범죄의 진짜 원인을 찾아야만 합니다. 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가 형성되었고, 왜 지금에 와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지 알아야만 이 범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방식은 시민들의 불안만 키우고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는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언론은 정신장애에 대한 근거 없는 보도를 중단하십시오.
동시에 정신장애 관련 보도지침을 수립하고, 향후 보도에 이를 적극 반영하기를 촉구합니다.
2023년 8월 22일
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 정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