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에 한국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의 발전이 정체되기 시작하자 ‘사회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했고, 지금까지도 사회연대는 진보-사회운동의 뜨거운 쟁점이다. 이 점에서 사회연대는 진보정당의 좌표를 새롭게 정하는 토론에서 꼭 짚어야 할 주제다.
○ 본래 연대는 19세기부터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이 추구해온 중요한 가치다. 자유와 평등도 연대와 결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본주의에 갇힌 자유(경쟁의 자유)와 평등(공정)이 되며, 연대와 결합하여야 진정한 만인의 자유와 평등이 된다.
2. 한국 사회와 사회연대
○ 기업별 노동조합이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고 사회 전반에 경쟁을 부추긴 것은 한국 자본주의 질서다. 사회연대에 바탕을 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각 개인이 내린 선택의 결과로 한국 자본주의는 지금 극단적 인구 위기라는 자멸의 함정에 빠져 있다.
○ 사회연대가 확산하지 못하는 대중 내부의 한계와 모순도 있다. 노동계급 내부의 균열과 격차를 심화시키는 조직 노동계급 일부의 ‘경제적-조합적’ 실천과, 경쟁을 격화시키는 고학력 중간계급 일부의 ‘능력주의’가 그것이다.
3. 사회연대가 취해야 할 큰 방향 – 양 극단을 넘어
○ 사회연대론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연대를 둘러싼 입장은 양 극단에 쏠려 있다. 한편에는 사회연대를 진보-사회운동의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이벤트쯤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이런 이유를 들어 사회연대의 문제제기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이런 양 극단의 입장을 넘어 사회연대의 문제의식과 자본주의 비판-극복의 문제의식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연대력’을 확장해가는 과정이 곧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4. 사회연대 강화를 위한 세 가지 실천 방향
○ 산업 영역에서 연대력 강화는 역시 산업별 노동조합과 산업별 교섭 체제를 뿌리 내리는 것이 핵심이다. 당은 기존 기업 중심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새로운 선택을 향해 나서도록 진중하고 끈기 있게 설득해야 한다.
○ 지역사회에서는 사회연대경제를 구축함으로써 연대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당은 각 지역에 맞는 지역순환경제 모델을 만드는 데 앞장섬으로써 사회연대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 국가 전체 차원에서 연대력을 강화하는 노력이야말로 당이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연대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는 사회연대증세를 통해 재정 기반을 확보한 21세기 사회국가인 ‘기후위기 대응-보편적 돌봄 국가’(줄여서 ‘기후-돌봄 국가’)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 당은 우호적인 대중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사회연대증세 지지를 설득해야 한다.
○ 사회연대는 결국 기후-돌봄 국가의 재정 확보에 기꺼이 동참하는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내의 안정된 계층과, 기후-돌봄 국가의 사회정책을 통해 실제 생활이 개선될 저소득-불안정 고용층 사이의 계급연합이 다져지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계급연합을 구축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일상 정치 활동에서 주축이 되어야 한다.
사회비전 토론을 위한 발제문 1 : 사회연대
1. 연대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1-1. 자유, 평등, 연대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기존 이념이 흔들리고 새로운 방향 설정이 요구될 때에 유럽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정당들은 더는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프랑스대혁명의 세 가지 구호에서 찾았다. “자유, 평등, 형제애[우애/박애]”. 오늘날은 이 중 마지막 항을 변형하여 흔히 “자유, 평등, 연대”라 정식화한다.
“자유, 평등, 연대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본 가치다.”(독일 사회민주당 베를린 강령, 1989년) “사회민주주의는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에 바탕을 두고 ... 오늘날의 국내적 · 국제적 과제와 대면하려 한다.”(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강령, 2001년)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를 지향하고, 평화와 사회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독일 좌파당 강령, 2011년)
1-2. 노동운동과 함께 발전한 연대의 가치
처음에 ‘형제애’는 ‘자유’나 ‘평등’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민주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광범한 계급연합(부르주아지 + 농민, 도시 서민)을 유지하기 위한 미사여구에 가까웠다. ‘형제애’의 내용을 채우면서 ‘연대’의 가치로 발전시킨 것은 19세기 자본주의의 발흥과 그 모순에 맞서 대안을 제시하려 한 이념-운동들(유럽에서 그 양대 기둥은 사회주의와 기독교였다)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운동의 중심에는 노동자들의 조직, 특히 노동조합이 있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마침내 다음과 같은 연대의 가치가 형성됐다.
“연대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상호적으로 의존하며 협동, 역지사지, 존중에 바탕을 둔 사회가 가장 훌륭한 사회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단결이다. 해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만인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지녀야 하며, 이를 책임 있게 이행할 의무 또한 동등하게 지닌다. 연대는 개인의 발전과 성공을 위한 노력을 배제하지 않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할 수 있다는 이기주의는 배척한다.”(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강령, 2001년) “연대는 상호 연대감, 소속감, 도움을 의미한다. 연대는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의지다 ... 연대는 변화를 위한 힘을 창출하는데, 이는 노동운동의 경험이 증명한다. 연대는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 내는 강력한 힘이다. 이는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헌신의 각오 속에서, 공동의 규율과 조직 속에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보장되고 조직화된 연대인 사회보장국가 속에서 그러하다.”(독일 사회민주당 함부르크 강령, 2007년, 전종덕 · 김정로, 『독일 사회민주당 강령집』, 백산서당, 2018. 166쪽)
1-3. 연대의 이상이 마주하는 근본 난제
그러나 연대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모순과 난제가 대두하기도 했다. 그것은 과거에 치열한 노력을 통해 구축한 현재의 집단연대가 미래의 더 확대된 사회연대로 나아가는 노력에 오히려 한계나 장애물 노릇을 한다는 문제다. 이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회연대가 처한 곤경의 근본적 측면이기도 하다.
“미헬스는 1926년에 이미 독일 노동자 집단의 집단 이기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집단은 자신들이 매우 연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집단 내부에서만 해당되는 것이었지 집단의 경계를 넘어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미헬스의 정신을 우리는 “연대의 이상은 한계가 없다”라고 정식화할 수 있다. 집단연대는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포괄적인 것이 아니면 진정한 연대가 아니다. 연대는 모든 영역에서 발전 과정에 있으며,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대 또한 아직 이상적인 상태라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발전 과정의 한 계기는 집단연대의 극복이다.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고 그것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면 집단연대는 진정한 연대의 사전 단계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연대로의 발전은 그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하다.”(라이너 촐,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5쪽)
1-4. 어쩌면 자유, 평등보다 더 중요한 연대
자유와 평등에 비하면, 연대는 부차적인 가치로만 취급되기도 한다. 자유나 평등을 강하게 내세우는 정치 세력은 있어도 연대를 그런 정도로 내세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연대는 자유와 평등의 내용을 좌우하는 보다 근본적인 가치로 볼 수도 있다. 연대를 전제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자유와 평등의 내용 자체가 바뀐다. 연대의 가치는 다음과 같은 특정한 인간관, 즉 타자와 맺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은 개인적 권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최선의 집단적 해법을 마련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집단적 해법을 찾아내야만 개인에게 기회 실현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협력하는 가운데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개인의 복지에서 중요한 것의 상당 부분은 타인과 함께 함을 통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 이 공동선을 함축하는 가치가 ‘연대’다.”(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강령, 2001년)
연대와 함께 하지 않을 경우에는, 타인을 착취하거나 수탈할 자유까지 자유에 포함된다. 반면에 연대와 함께 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자유가 구속되는 상황에서 누구도 자유롭다 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연대와 함께 하지 않을 경우에, 평등이란 타인과 벌이는 경쟁에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다(한국식 ‘공정’론과 유사해진다). 반면에 연대와 함께 하는 경우에, 평등이란 만인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권리와 의무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즉, 연대와 함께 할 경우에(만) 자유와 평등은 자본주의에 머물 수 없는, 자본주의와 충돌하고 이를 넘어서려 하는 가치가 된다.
[도움이 되는 책]
- 라이너 촐,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연대의 역사적 기원, 변천, 그리고 전망』, 최성환 옮김, 한울, 2008.
- 강수택, 『연대주의: 모나디즘 넘어서기』, 한길사, 2012.
2. 21세기 한국 사회와 연대
2-1. 연대를 억압하다 자멸의 덫에 빠진 한국 자본주의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지배 질서는 연대를 북돋기보다는 억압하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연대를 지키고 부활시키며 새롭게 강화하는 힘은 늘 자본주의 질서에 맞서는 대중의 운동에서 나왔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힘이 지배 질서를 압박해 사회 제도 안에 연대의 원리를 일정하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사회국가/복지국가가 바로 그러한 부분적 성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연대를 파괴하고 말살하는 지배 질서의 힘이 다른 어떤 자본주의 사회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민주항쟁의 일정한 성공 이후에 민주노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사회연대의 시도들이 터져 나온 1980년대 말-1990년대에 한국 자본주의는 이런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본-국가는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계급 연대를 확대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을 폭력으로 탄압했고, 특히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 대기업 노동자들이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의 틀에 갇힌(자본-국가가 그렇게 몰아넣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 비난하는 데 앞장선다.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는 자녀의 입시 경쟁과 아파트단지 자가 보유, 더 나아가 이에 기반한 부동산 투기에 몰두하는 ‘강남 중산층’ 생활양식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대학 교육의 확대를 통해 대량 배출된 하위 중간계급도,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 소득을 상당히 늘린 노동계급 일부도 이 흐름에 휩쓸렸다. 이에 따라 민주화 이후 연대가 아니라 오히려 경쟁이 한국 사회의 기본 가치이자 지향,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에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뿌리 내리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신자유주의는 기존 사회연대 전통을 파괴하고 경쟁과 투기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기존 한국 자본주의 구조와 만나 뒤섞이며 만들어낸 결과들, 즉 정규직/비정규직이나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분단된 노동시장, 대학 서열 체제 내의 경쟁 격화와 부동산 시장 붐, 수도권 집중과 지역 쇠퇴를 통한 전 국토의 위계화 등은 하나 같이 한국 사회에서 연대의 싹을 짓밟았다.
이 모든 역사적 과정의 결과로, 한국 사회는 비슷한 성장 수준의 자본주의 사회들 가운데에서 가장 연대가 취약한 사회가 되었다. 경쟁이 격화되고 연대를 통한 해법이 등장할 조짐은 보이지 않자 각 개인은 혼인과 출산의 조절로 이에 대응했고, 이는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출생률 급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극단적 인구 위기는 근시안적인 사회공학적 접근으로는 결코 반전될 수 없다. 연대하는 사회로 바뀌지 않는 한, 출구는 없다.
2-2. 사회연대를 가로막는 우리 안의 질곡① - 노동계급 일부의 ‘경제적-조합적’ 실천
한국 자본주의는 단지 아래로부터의 연대의 시도들을 억압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연대의 확산을 가로막지 않는다(‘강제’에 의한 지배).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연대 확산의 진원지가 될 수 있을 집단이나 영역을 경쟁 중심의 기존 상식이나 제도에 단단히 결박시키는 것이다(‘동의’에 의한 지배). 이로써 연대의 확산을 통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의 등장이 미연에 차단된다.
특히 두 가지 지점이 중요하다. 첫째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계급 일부가 가장 편협한 수준의 집단연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대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더 폭넓은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에 노동조합은 집단연대의 보루, 즉 경제적 · 분파적 이익 추구를 위해 더 큰 사회연대를 가로막는 조직으로 뒤바뀌기도 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직업별 노동조합은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진화했고, 기업별 교섭을 넘어선 산업별 교섭이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노동조합운동은 이 방향으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조 1세대를 통해 기업별 노동조합과 기업별 교섭이 단단한 질서로 뿌리를 내렸다. 이 질서는 노동조합에 포괄된 일부 노동자의 권익을 개선하지만, 그럴수록 조직 노동자와 나머지 노동자의 격차가 벌어지고 노동계급 내부의 균열과 분열이 강화된다. 즉, 노동조합이 제 기능을 수행하면 할수록 사회연대가 발전하기는커녕 지체되거나 와해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런 덫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경제적-조합적economic-corporate’ 실천이라 부르며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의 주역이 될 ‘민족-민중national-popular’이 형성될 수 없다.
사회학자 유형근은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인 울산의 노동조합운동을 깊이 있게 분석한 끝에 ‘도구적 집단주의’라 진단했다(『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도구적 집단주의는 연대적 집단주의와 대비되는 행동 양식이다. 연대적 집단주의가 노동계급 내부의 연대와 상호부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주의적 행위를 펼친다면, 도구적 집단주의는 개별 노동자 가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배타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집단주의적 행위에 의존한다. 물론 이런 도구적 집단주의는 연대의 확산을 폭력으로 가로막는 자본-국가의 반응에 노동자들이 나름대로 적응해온 결과이지, 노동자들이 더 나은 대안을 현실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음에도 굳이 회피한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도구적 집단주의가 성공할수록 소수 조직 노동자와 다수 중소기업-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후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것만은, 즉 사회연대의 토대가 파괴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도움이 되는 책]
- 이범연,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 ‘내부자’ 눈으로 본 대기업 정규직 노조 & 조합원』, 레디앙, 2017.
- 유형근,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생애와 노동운동』, 산지니, 2022.
2-3. 사회연대를 가로막는 우리 안의 질곡② - 능력주의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펼치는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란 단순히 능력에 따른 지위나 보상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사고방식만은 아니다. 여기에서 ‘능력’이란 실은 현실의 다양한 능력들이 아니라, 지배 질서가 필요로 하며 시험을 통해 평가하기 쉬운 지극히 한정된 능력일 뿐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근대 교육 제도가 자본주의와 긴밀히 결합된 채 발전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고 확산됐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익숙한 ‘시험능력주의’는 능력주의의 특수한 한 형태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보편적 형태라 봐야 한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연대의 사고나 정서와는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연대가 아닌 경쟁의 무대로 본다. 권력, 부, 위신의 위계구조에서 더 나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제한된 특정 능력을 둘러싸고 벌이는 경쟁이 중심 가치가 된다. 따라서 능력주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집단은 사회연대는커녕 그 맹아인 집단연대에 나서기도 힘들다. 이런 점에서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대의 시도를 사전에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최근 미국이나 일부 서유럽 국가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한 젊은 세대가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정치 세력을 지지하며 기존 정치 지형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흐름이 아직 낯설다. 그 원인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의 직접적 영향 여부 같은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는 분명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능력주의가 있다.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자본주의 성장과 급속한 고등교육 확대가 최근 동시에 전개된 한국 사회에서는 대다수 고학력 중간계급과, 고학력자가 대다수인 청년 세대(2019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70%에 육박한다)가 능력주의를 통해 기존 질서에 강하게 결박돼 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에 따라 한국 사회가 계속 ‘공정한 경쟁’ 주위를 맴돌지, ‘평등한 연대’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도움이 되는 책]
- 박권일, 『한국의 능력주의: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이데아, 2021.
- 김동춘, 『시험능력주의: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창비, 2022.
- 장석준 · 김민섭,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갈라파고스, 2022.
2-4. 가장 피해 받는 대중의 ‘투명인간’화
이렇게 연대가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결국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것은 이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최대 피해자인 집단들이다. 소득이 낮고 일자리가 불안정하며 수도권이나 광역시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자, 농민, 영세 자영업자,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등. 이런 피해 대중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는 집단임에도 지배 질서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가 다른 집단들보다 더 어렵다. 캠페인을 벌이고 조직을 유지하며 여론을 움직일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역사의 대다수 기간 동안 자본주의의 최대 피해 대중은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역사상 이런 한계를 돌파한 경우는 대개 사회연대의 시도가 활기를 띨 때였다. 피해 대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원을 지닌 다른 대중 집단이 피해 대중을 향해 연대의 범위를 확산하려 할 때에 피해 대중의 존재는 적극적으로 가시화된다. 즉, 조직화된 노동계급이나 하위 중간계급과 피해 대중을 포괄하는 계급연합이 형성될 경우에 비로소 피해 대중의 요구에 반응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중반에 서유럽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된 복지국가 지지연합이 바로 이러한 사례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계급연합이 부재하다. 이를 형성할 자원을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지닌 대중 집단들, 가령 조직 노동자나 고학력 중간계급의 젊은 세대가 아직은 연대의 확장에서 미래 대안을 찾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피해 대중은 더 고립되고 ‘투명인간’의 운명이 더욱 굳어진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지배계급과 상위 중간계급 그리고 이들의 가치와 상식, 문화를 뒤따르는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야에서 지워진 사회가 되고 만다.
2-5. 복합 위기 시대와 연대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절박한 과제
이와 같은 한국 사회 현실은 단지 도덕적인 차원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연대라는 근본 토대가 취약한 탓에 존립과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 시대가 복합 위기의 시대이기에 그러하다.
복합 위기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급변, 끝없는 경제 침체와 반복적인 금융공황,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따른 (핵)전쟁 위험, 주기적으로 닥치는 감염병 대유행, 급속한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 존엄성과 정체성의 혼란, 이런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정치 체제의 기능 장애 그리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는 저출생-고령화 등이 동시에 전개되는 상황을 말한다. 이런 복합 위기 시대에 우리의 과제는 민주주의를 포기하거나 후퇴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만인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최대한 지켜내는 것이다.
오직 사회연대의 토대가 일정하게 갖춰진 사회만이 이런 과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사회만이 기후 재앙의 피해를 가장 취약한 집단들에게 떠넘긴 채 기득권층의 기존 생활양식을 지키는 데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만이 어지러운 속도의 디지털 기술 발전에 뒤쳐진 수많은 사람들의 적응 역량을 높이는 일에 아낌없이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이런 사회만이 급속히 늘어난 노인 인구를 ‘절감해야 할 비용’이 아닌 인간 생명으로 다루길 고집할 것이다. 이런 사회만이 은행이 아니라 시민을 구제하며 새로운 미래를 짜나갈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 한국 사회는 복합 위기의 격랑 속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연대의 저력을 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에게 사회연대의 구축과 확대는 단지 고상한 미덕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시각을 다투는 참으로 절박한 임무다.
3. 사회연대의 노력이 취해야 할 큰 방향 – 양 극단을 넘어
3-1. 사회연대 논의를 둘러싼 양 극단의 입장
이러한 한국 사회 상황을 경고하며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사회연대전략’이 제기되어왔다. 이후 ‘사회연대’는 사회운동 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상투어구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연대를 다지는 방향에서 진보 · 사회운동 세력이 스스로를 혁신하거나 고립 상태를 타개한 성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사회연대론이 노동운동 등의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고 다양한 시도들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논쟁과 정파적 분열 · 대립의 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당 부분, 사회연대전략을 적극 제기한 쪽과 비판하고 반대한 쪽 모두 자기 한계에 갇힌 탓이었다.
사회연대론을 주창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다수가 사회연대전략을 진보 · 사회운동의 고립을 완화해보려는 단기적 전술이나 이벤트로 사고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 연대의 싹이 좀처럼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보다 지배 세력의 선택과 그 누적된 구조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래서 대중조직 집행부에게 ‘도덕적 결단’의 제스처를 주문하는 데 머물곤 했다. 단기간에 여론의 지지를 높여보려는 이런 시도는 기존 운동을 실제로 설득해내기보다는 옛 운동과 가상의 새 운동을 대립시키는 구도로 빠져들거나, 자본-국가의 완고한 관성은 고려하지 않는 다분히 공상적인 사회적 대타협 논의로 이어지곤 했다. 정의당 안팎의 논의도 마찬가지 한계에 갇혀 있었다.
반면에 사회연대론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은 대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강조하면서 사회연대론의 이런 한계와 ‘반자본주의’를 대립시켰다. 복합 위기의 시대에 위기의 근원인 자본주의 구조를 강조하는 태도는 물론 정당하다. 그러나 ‘반자본주의’가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현 지배 질서와 거리를 두며 이를 바꾸려고 하는 다수자연합 혹은 광범한 계급연합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사회연대의 지체와 후퇴라는 문제를 풀지 않고는 실질적인 반자본주의 흐름 또한 대두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도 사회연대론의 비판자들은 현실에서 노동조합운동이 펼치는 ‘경제적-조합적 실천’을 애써 변호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전망 안에는 기성 질서에 익숙했던 대중이 자기 관성에서 벗어나려 하는 집단적인 윤리적 노력이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무시되곤 했다.
3-2. 사회연대전략과 자본주의 비판 · 극복 전망의 (재)통합
사회연대를 향해 다시 힘차게 나아가려면, 지난 십 수 년간 굳어진 이런 양 극단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달리 말하면, 사회연대전략과 자본주의 비판 · 극복 전망을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한다.
가장 편협한 집단연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노동을 비롯한 시민사회 각 부분에 끊임없이 연대의 확장을 요청하고 이를 위한 자기 혁신을 유도하는 것은 분명히 현재 한국 진보 · 사회운동의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다. 그리고 이는 연대의 확장을 가로막는 근본적 장애물인 한국 자본주의 구조를 넘어 연대의 원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다.
이 대목에서, 미국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가 제안하는 ‘사회력social power’ 개념이 도움이 된다. 라이트에 따르면, ‘사회력’[아래 소개한 라이트 저서의 국역본은 ‘사회 권력’이라 옮겼다]이란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종류의 협동적 · 자발적 집단 행동에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역량에 바탕을 둔 힘”이다. “사회력은 경제적 자원의 소유와 통제에 바탕을 둔 경제력과 대비되고, 영토 내의 규칙 결정과 집행 역량의 통제에 바탕을 둔 국가력과도 대비된다.” 라이트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재정의한다. “‘민주주의’가 사회력에 국가력이 복속되는 상황을 일컫는다면, ‘사회주의’는 경제력이 사회력에 복속되는 상황을 가리킨다.”(E. O. 라이트, 『리얼 유토피아』)
라이트가 제시하는 ‘사회력’은 이 글의 맥락에서는 ‘사회연대력’ 혹은 ‘연대력’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연대력 강화는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모든 운동 · 세력의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이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회 모든 영역에 걸친 연대력 강화는 그 자체로, 협동과 연대의 원리가 경쟁과 독점의 원리를 압도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도움이 되는 책]
- 에릭 올린 라이트, 『리얼 유토피아: 좋은 사회를 향한 진지한 대화』, 권화현 옮김, 들녘, 2012.
4. 사회연대 강화를 위한 세 가지 실천 방향
4-1. 산업 영역의 연대력 강화
21세기 자본주의에서도 산업 영역은 연대력이 강화되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산업 영역에서 연대력이 강화되려면, 노동자들이 기업사회를 넘어 광범한 산업 차원에서 단결하는 질서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기업별 교섭 체제에 머물러 있는 노동조합들에게, 산업별 교섭 체제로 전환하여 최대한 연대적인 임금-고용-노동조건 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지난 30여 년의 경험, 특히 외환위기 이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 과제가 한국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렵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 첫째, 한국의 주요 산업을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재벌 대자본은 대기업-중소기업 관계를 스스로 재편해야 하는 산업별 교섭 체계로 전환하길 결코 바라지 않는다. 대기업 노동조합을 비난하면서도 이들은 기업사회의 틀 안에 갇힌 노사관계를 굳건히 유지하려 한다. 둘째, 민주노동조합운동의 폭발적 등장과 성장을 경험한 1세대는 기업별 교섭 체제를 단단한 질서로 굳혀놓은 뒤에 은퇴하고 있고, 반면에 다음 세대 조합원들은 기존 질서를 흔들 격렬한 운동에 나설 이유가 아직은 없다. 셋째, 전 세계적으로 지구화-금융화-정보화 이후의 자본주의에서는 산업별 노동조합이 20세기 중반 복지국가 전성기만큼 조직력과 투쟁력, 교섭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노사 관계가 고도로 분권화되고 파편화된 서비스 부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고, 제조업에서도 복잡한 외주 하청 구조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뒤늦게 산업별 노동조합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전례가 없는 과제다.
그럼에도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를 산업별 노동조합 체제로 바꾸려는 노력은 부단히 계속되어야 한다. 설령 복지국가 전성기와 같은 정연한 산업별 교섭 체제를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할지라도 그와는 다른 형태로 산업 영역에서 연대력을 강화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가 현재보다 더 폭넓게 확장되어가는 상황에서만 산업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즉 산업민주주의를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기업사회에서는 개별 기업 차원의 노동자 참여나 자치를 시도하더라도 마치 기업별 노동조합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 영역의 사회연대를 강화하기보다는 균열과 분열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산업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서유럽 국가 수준으로는 기업을 넘어선 노동자 교류와 단결이 성숙해 있어야 한다.
그럼 이를 위해 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기존 노동조합들에게 일상적으로 산업별 노동조합 체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하며, 산업별 노동조합을 발전시키려는 노동조합운동 내의 모든 시도(예를 들어, 금속노조가 2021년에 추진한 ‘정의로운 산업전환 공동결정법’ 캠페인)를 적극 지원 · 연대하고, 조합원인 당원들이 노동조합운동 안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의 전도사가 되게 한다. 또한 당의 고유한 과제로서 산업별 노동조합 체제를 뒷받침하는 입법을 끈질기게 추진한다.
○ 가까운 미래에 산업별 교섭을 확산 · 정착시키기 힘든 상황에서,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산업 영역 내에 연대력을 강화할 구체적 방안을 수립해 노동조합운동에 제안하고 함께 추진한다. 가령 노동조합들이 산업 차원의 노동자 주도 평생교육-숙련형성 체계를 만드는 데 역량을 투입하자는 제안이나 재정 여력이 있는 노동조합들이 (아래에 제시하는) 사회연대경제에 자원을 적극 투자하자는 제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 플랫폼 산업 등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기업별 노동조합과는 다른 형태의 신생 노동조합들을 적극 지원 · 연대하며, 이들을 뒷받침하는 입법에 나선다. 그리고 이들이 기업사회를 뛰어넘는 노동자 연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한다.
반면에 당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 선거 국면에, 혹은 당이 여론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단발적으로 관심과 지지를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동원하려는 수단으로 ‘사회연대’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산업 영역에서 연대력을 강화하려는 진지한 일상적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선거 등에서 노동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정치적 발언권을 지닐 수 없다.
○ 기존 노동조합에 대해 가상의 새로운 노동운동을 대립시키는 식의 구도를 설정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런 구도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촉진하기보다는 기존 노동조합을 설득할 통로만 차단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합원들을 아래로부터 움직여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을 성사시킬 가능성을 더욱 낮춘다.
[도움이 되는 책]
- G. D. H. 콜,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 노동자를 협업자로 인정하라』, 장석준 옮김, 좁쌀한알, 2021. 중 “제2부.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해제 : 민주적 사회주의와 산업민주주의, 두 세기의 모색과 21세기의 과제”.
4-2. 지역사회의 연대력 강화
20세기에 자리 잡은 대의민주제 국가와 대규모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한 사회연대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동요와 쇠퇴를 경험한 뒤에 새삼 주목받는 사회연대의 또 다른 지반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경제, 제3섹터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가장 정확한 이름이 ‘사회연대경제’인 시민사회 영역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2년에 열린 제110차 총회에서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SSE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놓았다. “사회연대경제는 집단적 그리고/또는 보편적인 이익을 위한 경제적 · 사회적 · 환경적 활동에 참여하며, 자발적 협동 · 상호부조 · 민주적 그리고/또는 참여적인 거버넌스 · 자율성 · 독립성의 원칙, 잉여 그리고/또는 이윤뿐만 아니라 자산의 분배와 이용에서 자본보다 사람과 사회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원칙에 바탕을 둔 기업 · 단체 · 기타 법인으로 이뤄진다. 사회연대경제에 속한 법인들은 장기적인 생존력과 지속가능성, 비공식 경제에서 공식 경제로의 전환을 지향하며,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활동한다. 이 법인들은, 사람과 지구에 대한 돌봄 · 평등과 공정 · 상호의존 · 자치 · 투명성과 책임성 · 인간다운 노동과 살림살이의 실현 등에 부응하며 본래 해당 법인의 기능에 내장된 가치들을 실행에 옮긴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사회연대경제에는 협동조합, 결사체, 상호부조 단체, 재단, 사회적기업, 자조 단체 그리고 사회연대경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활동하는 여타 법인들이 포함된다.”
(https://www.ilo.org/global/topics/cooperatives/sse/WCMS_849066/lang—en/index.htm)
이러한 사회연대경제는 역설적으로 20세기보다는 19세기와 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처음 태동할 무렵에 초기 노동운동, 사회주의 · 아나키즘운동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공제회, 노동자 교육기관 같은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을 실험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을 필두로 19세기 말에 등장한 노동계급 · 사회주의정당들 역시 당 지역조직과 노동조합, 협동조합, 교육 · 문화단체 등으로 이뤄진 활력 넘치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 생태계는 20세기에 노동운동, 사회(민주)주의운동이 거둔 성공(복지국가, 산업별 노동조합 체계) 때문에 오히려 부차화되거나 사멸했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다시 적극적으로 부활시켜야 할 전통으로 떠오르고 있다.
20세기형 복지국가의 기억이나 전재가 아예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도 사회연대경제는 노동조합운동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사회연대의 요구에 부응할 중요한 대안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진보 · 사회운동마저 특유의 초중앙집권적 정치 구조에 갇혀 있는 탓에 지역 시민사회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다. 사회연대경제는 이런 지역사회에서 아래로부터 연대력을 새롭게 다져나갈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재생에너지 확대, 농업 회생 등)과 다양한 돌봄 활동이 사회연대경제의 주된 사업 영역이 될 것이다.
그럼 이를 위해 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지역순환경제 비전을 연구 · 수립하여 해당 지역의 사회연대경제가 발전할 방향을 제시한다. 장기적인 실천 계획에 따라, 지역에서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이 서로 어울려 유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한다.
○ 당의 고유한 과제로서 사회연대경제를 뒷받침할 각종 제도를 입법한다. 또한 당원들이, 더 나아가서는 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이나 여러 단체의 구성원들이 자기 지역의 사회연대경제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한다.
반면에 당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 사회연대경제 관련 활동을 각종 선거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런 도구적 관점은 사회연대경제의 존속과 발전을 방해하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속가능한 지역정치의 토대가 될 수도 없다. 사회연대경제의 발전 자체가 지역 차원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바라봐야 한다.
○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한 중앙정부 ·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사회 단체들과 맺은 관계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기에 시민사회 내의 활동적 부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있었지만, 이는 대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고 국가기구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라이트의 정식에 따르면, 사회력이 아니라 국가력의 강화).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한 국가-시민사회 관계와 새로운 지원 체계를 집중 연구하여 실천해야 한다.
[도움이 되는 책]
- 자끄 드푸르니, 『사회연대경제: 사회적경제, 연대경제, 사회적기업으로 이해하는 제3섹터의 사회경제학』, 김신양 · 엄형식 옮김, 착한책가게, 2021.
- 낸시 님탄, 『사회적경제, 풀뿌리로부터의 혁신: 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홍기빈 옮김, CoopDream, 2022.
- 딘 스페이드, 『21세기 상호부조론: 자선이 아닌 연대』, 장석준 옮김, 니케북스, 2022.
- 강수택, 『연대의 억압과 시장화를 넘어: 한국사회 연대영역의 구조 변화』,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 2016.
4-3. 국가 차원의 연대력 강화 - 진보정당의 보다 직접적인 과제
그러나 진보정당이 사회연대 강화에 보다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영역은 따로 있다. 그것은 국가 전체 차원에서 연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이는 늘 연대의 원리에 따른 조세 분담을 통해 대의민주제 국가의 재정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분배 정책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이나 사회연대경제의 경우와는 달리, 국가 재정 및 재분배 정책의 경우에 정당은 입법 등을 통해 훨씬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늘날의 복합 위기에 맞서려면, 이런 상황에 맞는 강력한 사회국가가 필요하다. 20세기에 몇몇 지역에서 실현된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를 이어받으면서도 21세기에 맞게 진화한 사회국가인 ‘기후위기 대응-보편적 돌봄 국가’(이하 ‘기후-돌봄국가’)가 필요하다. 노동운동이나 사회연대경제 같은 시민사회 영역도 기후-돌봄국가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복합 위기 속에서 버틸 수 있고, 새롭게 꽃을 피울 수도 있다. ― 부연하면, 여기에서 ‘돌봄’이란 사회 서비스의 한 하위 유형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복지’의 더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이다. 단순히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사회 정책이 아니라, 기후재앙 · 디지털 미래 · 인구위기 · 팬데믹 등에 의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지반과 의미의 위협에 사회가 모든 역량을 투입해 대처해야 한다는 요청을 뜻한다(아래 소개한 『돌봄선언』 참고).
기후-돌봄국가가 작동하려면, 그에 맞는 재정 기반과 재정 운용 원리, 재정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절감해야 할 비용’으로 치부되던 지출이 긍정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하고, 탈탄소화나 돌봄 지원 같은 미래 투자 성격의 지출을 위해 확장 재정 정책이 구사될 수 있어야 하며, 재정의 총규모를 키우기 위한 증세가 필요하다. 증세에는 당연히, 모든 소득과 자산에 대해 누진 과세를 강화하는 ‘부자증세’, 재정 증가분을 기후-돌봄 예산으로 우선 투입하는 ‘기후-돌봄증세’, 모든 시민이 증세 부담을 함께 나누는 ‘보편증세’ 같은 연대의 원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사회연대증세’라 통칭할 수 있으며, 사회연대증세의 실현은 국가 전체 차원에서 연대력을 강화하는 주된 수단이 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면, 사회연대증세는 균형재정론과는 관계가 없다. 단기적으로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증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증세이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확장적 재정 정책을 가장 열렬히 주창하는 현대화폐이론MMT의 주창자조차 “통화의 유통을 추동하는 힘은 조세”라고 정리한다(L. 랜덜 레이,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296쪽). 조세에 바탕을 둔 국가의 기본 재정 역량이 클수록 단기적으로 확장 재정 정책을 운용할 여지는 더 커진다. 즉, 사회연대증세와 유연한 재정 정책은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다른 한편 사회연대증세를 통해 기후-돌봄국가의 재정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해 그다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견해를 지닌 이들은 대개 사회적 소유나 민주적 계획 강화 같은 정책을 증세나 재분배와 분리하여 전자를 배타적으로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충분한 재정 역량을 갖추고 국가기구의 상당 부분이 재분배 정책의 집행에 배치된 사회국가 없이는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소유를 늘리고 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그런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량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사회연대증세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모든 시도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다.
다만 시민들에게 사회연대증세를 설득하려면, 기존 노동조합에게 산업별 교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득할 때와 마찬가지로 세심한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부자증세, 기후-돌봄증세, 보편증세 모두 연대의 원리에 부합하므로 정세에 따라 이 중 어느 요소를 더 강조할지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등 대중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사회연대증세의 절박한 필요성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더 나아가 대중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사회연대증세의 출발점 중 하나로 근로소득세 강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 차원의 사회연대전략 이상으로 사회연대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높일 수 있으며, 정당이 앞장서서 추진하기에 가장 알맞은 접근법이기도 하다.
[도움이 되는 책]
-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정소영 옮김, 니케북스, 2021.
- 뤼카 샹셀,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 사회정의와 환경을 위하여』, 이세진 옮김, 김병권 해제, 니케북스, 2023.
- 토마 피케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중 “제17장. 21세기 참여사회주의를 위한 요소들”.
4-4. 어떤 다수자연합-계급연합을 형성할 것인가?
이상의 모든 연대 확장·강화 시도는 결국 새로운 사회 질서로 나아가길 지지하는 특정 형태의 다수자연합-계급연합의 형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은 어떤 계급·계층·집단들을 주된 축 혹은 최초의 동심원으로 삼아 광범한 계급연합을 구축해나가야 하는가? 사회연대에는 깊은 집단적 윤리의 측면도 있지만, 이 물음과 같은 냉철한 사회 분석과 전략 수립의 측면도 있다.
영국 사회학자 파올로 제르바우도는 2021년에 발표한 저작 『거대한 반격』에서 대도시의 프레카리아트와 서비스 노동자들이 신중간계급의 젊은 세대와 함께 급진적인 탈신자유주의 정치를 지지하는 반면에 구 공업 중심지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구중간계급과 함께 우익 포퓰리즘을 지지한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이런 계급 간 연합-대립 구도를 흔들고 새로운 탈신자유주의 계급연합을 형성하지 않고는 새로운 질서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러한 분석과 전략 수립이다. 정의당의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약에는 이미 이와 관련된 일정한 시각이 깔려 있다. 대선 공약집은 4대 핵심 공약 중 일부로서 ‘모든 시민에게 시민최저소득 100만원 보장’과 ‘국가일자리보장제’를 제시하며 여기에 필요한 60조원 이상의 예산을 조세 개혁을 통해 확보하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은 시민최저소득이나 국가일자리보장제의 효과와 직결된 저소득층 · 불안정 고용층과, 이를 위한 증세를 수용하는 하위 중간계급 · 노동계급의 또 다른 부분들 사이의 연합을 전제하는 비전이다.
이러한 비전과 정책이 계속 유효하다면, 정의당은 당장의 여론 호응도에만 주목하여 온라인 댓글이나 조직 노동의 반응만 바라보는 정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같은 정의당 대선 핵심 공약임에도 ‘주4일제’는 부각된 반면 ‘시민최저소득’은 그렇지 못했던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시민최저소득이나 국가일자리보장제 같은 정책을 널리 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까운 대중조직들부터 사회연대증세를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활동을 묵묵히, 꾸준히 펼쳐야 한다. 이럴 때에만 사회연대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당의 일상 활동 그 자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