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 전원위원회 발언 전문
심상정, 다당제 연합 정치로 간다면 어떠한 제도든 열려있다
- 민생정치, 사회적 약자 권리 확대, 기득권 특권 폐지가 곧 진보정당의 원내진입으로 거둔 성과이자 지난 20년의 존재 이유
- 대한민국 정치적 내전 상태...사생결단의 정치로는 국가적 명운이 달린 문제 해결 할 수 없어
- 가장 공정해야 할 선거제도가 가장 불공정한 결과를 낳고 있어...승자독식 선거제도 개선 없이 제3 정치세력 성장 불가능해
- '정치의 사법화 및 사법의 정치화’... 법조인 출신 과대 대표와 무관하지 않아
- 더불어민주당, 故 노무현 대통령의 절실함으로 정치개혁에 앞장서 주길
- 국민의힘, 국회불신과 정치혐오에 편승할 여력 없어... 집권 여당답게 임해야
- 정의당, 비례대표 확대와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 일치가 최선... 현행제도보다 비례성 대표성 높다면 어떤 제도든 열어두고 검토할 것
- 정당의 압도적 승리는 곧 정치의 붕괴... 승자와 패자 공존하는 다당제 연합정치의 원년 삼아야
[심상정 의원 발언 전문]
존경하는 김영주 전원위원회 위원장님과 동료의원 여러분!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고양갑 국회의원 심상정입니다.
돌이켜보니 저와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온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랜 노동운동을 뒤로 하고 정치의 길에 들어선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국회 담장을 넘지 못하던 보통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회적 약자의 한숨과 울분에 반응하는 정치를 위해서였습니다.
작지만 진보정당이었기에 만들어온 성과가 적지 않았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과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대형마트 규제, 친환경 무상급식, 중대재해처벌법 등 민생정치를 본격화했습니다. 또 호주제 폐지, 장애인차별금지와 저상버스 도입, 그리고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확대와 기득권 특권 폐지의 새로운 장을 열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동과 노동자, 증세와 복지국가, 소수자와 인권 등의 의제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은 진보 정당의 원내 진입으로 가능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지난 시기 양당 사이를 뚫고 등장했던 자유선진당, 바른미래당, 국민의당 등 제3당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오직 저와 진보정당만이 양당 사이 가파른 협곡을 헤쳐오면서 20년을 버텨왔습니다. 지난 20년간 진보정당이 교섭단체가 되지 못한 것에는 저희들의 책임도 큽니다. 하지만 정당득표 10%를 얻고도 국회의원은 2% 의석밖에 얻지 못해 몹시 억울했습니다. 빼앗긴 8%의 의석만큼 이 배제되고 소외된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해서 매우 속상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승자독식 선거제도 개선 없이 제3의 정치세력의 성장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정치적 내전상태’라고 까지 불리는 사생결단의 정치로는 극심한 불평등, 지역소멸, 인구절벽, 기후위기 등 국가적 명운이 달린 문제를 조금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의 착한 선언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수적입니다. 시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사력을 다해 정치를 바꿀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제도 개혁에 큰 힘을 실어주실 것을 간절하게 요청드립니다.
승자독식 소선구제는 36년 양당 체제의 철옹성이었습니다. 단 한 표가 당락을 가르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절반에 가까운 표심이 버려졌습니다. 국민을 닮아야 할 국회가 처음부터 유권자 절반을 배제하고 구성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런 낮은 비례성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제입니다. 그 비율은 고작 15.7%에 불과해서 보완기능이 매우 취약했습니다. 10% 정당 지지율로 2% 의석만 차지하는가 하면은, 특정 지역에서는 50%대 지지율로 90% 의석을 독점하기도 합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선거제도가 가장 불공정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를 방치하고도 1인 1표의 등가성을 원칙으로 삼는 국민 주권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또 21대 총선 당시 2030 유권자 비율은 31.4%였지만 현재 청년 국회의원의 수는 단 4%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국회가 청년들의 절박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인데 여성 국회의원은 19%에 불과합니다. 우리 국회가 성폭력과 성차별의 고통을 책임있게 다룰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은 46명이나 됩니다. 정치로 풀어야 할 쟁점들을 걸핏하면 법원,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정치의 사법화’와 그에 뒤따른 ‘사법의 정치화’가 과연 이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선거제 개혁은 곧 제 밥그릇 챙기기 아니냐는 비난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 우리 정의당도 국민이 지지해 주신 만큼 의석수를 얻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차별과 불평등에 눈물 흘리는 분들에게 손 내밀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세상의 변화를 앞당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의당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이 국회에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그리고 노동과 녹색의 의제가, 또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다면 정의당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국가적 난제와 세계적 도전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다당제 협력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면, 또 다양한 해법을 가진 여러 정당들이 국회에 더 많이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게 정의당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존경하는 동료의원 여러분, 지난 위성정당 사태는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민주주의의 큰 오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성정당의 출현을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정치권의 충분한 합의가 전제되지 못해서 비롯된 일인 만큼, 저부터 성찰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확고한 합의 속에서 선거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위성정당 추진에 대해 사과했고 다당제 연합정치로의 정치교체를 국민들께 약속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이런 절실함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 서주실 것을 믿습니다.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입니다. 국회 불신을 자극하고 정치혐오에 편승할 여력이 없습니다. 연초에 윤석열 대통령께서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의 개선을 언급하신 바처럼, 국민과 미래를 위한 선거제도개혁에 집권 여당답게 진지하게 임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비례대표의 숫자를 확대하고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를 수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100% 반영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최선이라고 봅니다만, 현행 제도 보다 비례성과 대표성이 높아진다면 그 어떤 제도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는 말씀드립니다.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내년 총선에서 어느 당의 압도적 승리가 이뤄진다면 저는 그것은 곧 정치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승자의 저주와 패자의 공포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승자도 패자도 공존할 수 있는, 다당제 연합정치로 전환하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동료 의원 여러분들이 함께 초당적으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정의당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