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으로 가득 찬 윤석열 정부의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폐기해야 마땅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공청회 개최에 부쳐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계획제출 법정기한 3일 전인 오늘 오후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공청회를 하루 앞 둔 어제 계획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이번 계획이 ‘2050 탄소중립 달성과 녹색성장 실현’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청사진이라고 홍보했다. 탄녹위는 또한, 이 계획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충실히 준수하기 위해, 경제·사회 여건과 실행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문별, 연도별 감축목표와 수단 등 ‘합리적’ 이행방안을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계획은 모순으로 가득 찬 말 잔치에 불과하다.
40% 감축률은 허구다.
2018년 IPCC 총회에서 채택된 1.5도씨 특별보고서에서는 지구평균온도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씨 이내로 머무르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의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필요함을 적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20년 말,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을 제출하며 2010년 대비 19%에 불과한 감축량을 제시해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 UN으로부터 목표를 상향해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다. 2021년, 계획을 다시 수립하기위해 만들어진 탄소중립위원회는 2018년 대비 40%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고 홍보했다. 2018년 대비 40% 감축 목표 자체도 1.5도씨 목표 달성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기준년도(2018년) 총배출량 대비 목표연도(2030년) 순배출량을 비교한 것으로, 총배출량 기준으로 통일했을 경우 감축률이 30%에 불과했으며, 목표년도의 순배출량 산정 내역도 문제가 많아 큰 비판을 받았다. CCUS, 국외감축 등을 새로운 흡수원으로 포함시켜 4천4백만톤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는데, 이 양은 국토의 2/3이 숲인 우리나라의 토지가 흡수하는 양의 1.6배에 해당하는 양이었으며, 국외감축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배출을 저개발국가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번 계획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커졌다. 2021년 발표된 계획과 순배출량은 동일하지만, 총배출량은 5백만톤 가까이 증가했다. 산업계 감축량의 완화분 810만톤 중 일부를 전환부문 감축량 증가로 보완했지만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결국 나머지 양은 그렇잖아도 불확실하고, 정의롭지 못한 CCUS와 국외감축을 무리하게 증가시켜 동일한 순배출량으로 끼워 맞춘 것이다.
볼록한 감축경로, 그 자체로 국제사회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게다가 연차별 감축계획을 보면 더욱 심각하다. 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이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감축량을 감소시켜 온 반면, 우리나라는 2019년까지도 배출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국가이다. 지금까지의 배출량 증가, 국가 경제 수준과 1인당 배출량 등을 고려할 때, 동일한 2030년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더 많은 양을 감축하고 감축률이 완만해지는 ‘오목한 경로’를 채택하는 것이 보다 정의롭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지금의 정권에 해당하는 2023-2027년의 평균 감축률은 연 2%에 불과한 반면, 2028-2030년의 평균 감축률은 9%가 넘어 감축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는 계획이다. 이는 그 자체로 즉각적인 감축을 시작하기로 한 파리협정 등 국제사회의 약속을 어기면서, 더 많은 탄소예산을 소진하는 계획이다.
전환 -핵발전은 청정에너지가 아니며, 신규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
전환(발전) 부문은 2021년 발표 된 계획과 비교해 배출량 감축 목표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이다. 이 계획에서는 전환부문 첫 번째 핵심 과제로 청정에너지 전환을 내세우며, 석탄을 재생에너지와 원전으로 전환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떤 폐기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처리도 불가능한 고준위 핵폐기물을 배출하는 핵발전이 청정에너지인가? 이 계획은 핵발전 확대,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포함하면서 고준위 핵폐기물의 처분장 건설의 구체적 이행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화력발전 관련해서도 문제가 많다. 2036년까지 석탄발전 28기 폐지 및 LNG 발전으로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2021년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A안과 B안 중, 2050년 가스를 포함해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은 전면 중단하겠다는 A안은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안이다. 또한, 볼록하게 설계 된 전환 부문 자체의 연차별 감축 계획을 오목한 경로로 바꾸는 방법이 있음에도 이 계획에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바로 신규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다.
전환 -에너지 공급의 기본 원칙은 시장원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성 확보여야 한다.
전환 부문 계획의 또 다른 문제는 ‘시장원리에 기반’하여 합리적인 에너지 요금체계를 마련하고, 수요 효율화를 추진하겠다는 대목이다. 원가주의를 원칙으로 필수재 성격의 기본적인 에너지마저도 시장원리에 기반하여 공급하게 될 경우 우리가 마주할 현실은 참혹할 것이다. 에너지 빈곤층의 절박한 에너지를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 계층의 소비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원가주의 등 시장원리 적용보다 마음껏 쓰고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는 인식의 변화가 보다 절실하다.
산업 -산업 전환은 말 뿐, 탄녹위가 기업의 대리인인 줄
산업부문의 전환 계획은 더욱 참혹하다. 이 부문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기업은 2026년까지는 손 놓고 있으면서, 정부는 기업을 위한 온갖 혜택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21년 발표된 계획에서도 14.5% 감축률로 기업의 편의만 반영한 계획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번에 발표된 계획은 이마저도 11.4%로 완화하여 무려 8백만톤의 감축 부담을 덜어주었다. 연차별 계획을 보면 더 기가 막힌데, 2026년까지의 전년대비 감축률은 1% 미만이다.
감축부담은 대폭 줄여주면서 기업의 투자부담 경감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 등은 눈물겨울 지경이다. 탄녹위가 기업의 대리인으로 보이는 것은 정의당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교통, 농축수산, 수소 –그럴듯한 말 뒤에 숨긴 현실, 말뿐인 그린수소와 수소부문 배출량 증가
수송 부문과 농축수산 부문 등, 기존의 목표와 동일한 목표를 유지한 부문도 세부 내용을 보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요응답형교통을 확대해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은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이 짠 계획으로 보인다.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중교통이 절실한 지역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노선이 존재하지 않거나 배차간격이 지나지게 길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공영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농축수산 부문 감축 수단에 스마트팜이 들어가 있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스마트팜은 전기와 난방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만 믿고 스마트팜을 시작한 농가가 지난 겨울 급등한 농사용 전기요금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 이를 주요한 감축수단으로 내세우는 것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부터 수소경제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야심차게 추진하는 수소 부문은 배출량이 이전 계획보다 오히려 늘었다. 그린 수소는 말뿐이고, 실제는 CCS 계획과 연계한 블루수소 계획이 대부분을 차지한 결과이다.
흡수원 –그린벨트 해제, 갯벌 매립하면서 신규 흡수원 확보는 어디에?
‘탄소 흡수원으로 산림, 해양, 습지의 가치를 재발굴한다.’ 보도자료에 명시된 흡수원 부문의 모토이다. 이와 함께 연안습지 복원, 도시숲 조성 등 신규 흡수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문의 가장 큰 모순은 현재의 흡수원을 보전하면서 추가로 확보하는 경우에만 신규 흡수원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를 용인하고,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인 수라갯벌을 매립해서 공항을 만드는 지금의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규 흡수원 확보는 허구에 불과하다.
CCUS & 국제감축 –불확실한 기술에 모두의 미래를 건 도박을 할 수는 없다. 배출 부담 전가는 부정의하다.
전술하였듯이 무리하게 순배출량을 맞추면서 탄소포집,활용 및 저장기술(CCUS)과 국제감축으로인한 흡수/감축량 목표가 5백만톤이나 증가했다. 문제는 이 계획이 불확실한 동시에 부정의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CCUS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다. 그렇기에 계획에서도 ‘신산업 창출’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가 걸린 국가 계획의 주요 감축 수단으로 이런 불확실한 기술의 몫을 늘리는 도박을 해서는 안된다. 국제감축 역시, 감축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는 불확실성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국제감축이 사실상 우리의 책임을 저성장 국가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정의롭지 않은 수단이므로 계획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번 계획의 이행기반 강화정책에 포함되어있는 국제협력과 국제감축기여 등을 논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부문별로 조목조목 살펴 본 이번 기본계획은 어느 부문 하나 뺄 것 없이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발표 시기와 의견수렴 방식 모두 심각한 하자를 가지고 있다. 계획의 제출 법정 기한 3일전인 오늘에야 치러지는 공청회, 공청회 전날에야 발표된 계획안, 이 모든 계획 뒤에 예정되어 있는 시민, 청년단체 간담회 등,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절차가 아니다.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정의당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두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계획의 전면적인 재수립을 요구한다. 계획의 재수립 과정은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의 참여를 포함한 절차적 정의, 승인적 정의, 분배적 정의, 생산적 정의 등,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 요소들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정의당은 대한민국이 정의롭게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414기후정의파업의 전당적 참여 등, 윤석열 정부를 향한 요구와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이다.
2023년 3월 22일
정의당 녹색정의위원회(위원장 이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