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원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두 살 난 아이의 아빠입니다. 2019년 3월에 아기가 태어났고, 한 달 남짓 지난 2019년 4월에 어린이집 입소 대기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인 2020년 12월 1월에 입소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입소 시에 적용되는 우선순위를 특별히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저희의 상황이 맞벌이 가정의 조건에 부합했고 학위 논문 제출 일정 등을 감안해서 [부모가 취업 중이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영유아] 유형으로 입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증빙이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의 고용 형태가 ‘취업 중이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상태’가 아니라고 판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 엄마나 저나 전업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는 터라 이 상황을 수긍하기 힘들었습니다. 총 네 군데에 전화로 문의를 드렸는데, 놀랍게도 각기 다른 사유로 문제를 삼으셨습니다. 지적하신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매우 애매한 사안이라는 부연을 다셨다는 점과 추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므로 반려가 불가피하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점은 한결같았습니다. 일선에서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의 수완이 부족하시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겪고 있는 사례가 워낙 흔치 않기 때문에 그분들께서도 난처해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적 사항이 분분해서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그저 제가 이해한 한도 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된 문제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린이집 입소를 위해서는 입소 통지일(2020년 12월 1일)과 입소일(2021년 3월 예정)을 기준으로 두 번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재직 증명과 소득 증빙을 해야 합니다. 소득 증빙의 취지가 재직 상태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므로 최근 3개월 간의 소득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절차 운용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강사로서 근무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고용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전업 학생 내지 학자들은 여타 근로자들처럼 매달 일정한 일자에 급여를 수령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사법 개정 이후 시간강사로 계약할 수 기회 자체도 매우 드물어졌지만, 계약 체결 이후에도 폐강 등의 사유로 임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혹여 운이 좋아 강의가 예정대로 개설되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방학 중에는 봉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최근 3개월의 소득 증명원을 근거로 재직 상태를 가늠하게 된다면 모든 시간강사들의 자녀들은 방학 직후인 9월이나 3월에 어린이집 입소를 포기해야 어이없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이러한 문제는 시간강사라는 특수한 직군에만 국한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닐 거라고 여겨집니다. 고용하는 측의 급여 지급 방식에 따라 재직 여부가 다르게 판정된다면 언뜻 생각해 봐도 여러 문제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조금만 숙고해 주신다면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집행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가 모두 취업 중인 영유아 적용 원칙] 가운데 대학(원)생 항목에 관한 것입니다. 이 규정이 제시하고 있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학 증명서가 필요합니다. 대학원 과정에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기와 논문 집필을 위한 연구 학기가 있습니다. 두 과정 모두 등록금을 내고 해당 학기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하기에 수료 상태와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박사과정에 한해서는 정해진 수업 연한에 학점을 취득하는 것보다 연구 학기를 이수하는 것이 훨씬 고되다는 점을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 그리고 논문을 지도하는 교수들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학점을 모두 이수했으나 논문을 취득하지 못해 수료 상태로 공부를 마치는 분들이 많다는 실정이 이를 방증하므로 이와 관련해서는 굳이 추가적인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사/석사/박사과정의 재학 상태를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부모가 모두 취업 중인 영유아 적용 원칙]에 의거하면 논문 학기 또는 연구 학기에 등록한 박사과정 학생은 재학 상태로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박사과정 입학과 동시에 월급을 받으며 사회·경제적으로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받는 어느 먼 나라의 꿈 같은 사례와 비교해서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전업 예술인처럼 전업 학술인을 위한 제도를 지금 당장 마련해 달라는 호소도 아닙니다. 최소한 어렵게 모은 돈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하는 연구 및 논문 학기만이라도 재학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아야 육아와 학업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쓰려고 했는데 장황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양육과 돈벌이를 위해 불철주야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저희는 재직도 증명받을 수 없고, 재학도 증명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이의 양육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아이 엄마와 저는 남들보다 오랫동안 학교에 머물며 읽고 쓸 수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에게 특전이 주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위에서 설명드린 내용이 모두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끝끝내 근로자/예술인/학생 가운데 그 어디에도 포함될 수 없다고 판정받더라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발버둥을 치며 지내 온 기간이 ‘취업을 준비 중인 상태’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공부하는 후배에게 결혼을 권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결혼한 후배에게 대학원 진학을 추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