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논평 >
섣부른‘덴마크의 노동유연·안정성 모델’도입은 중단되어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국회본회의장 연설에서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에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모델은 경직된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동시에 사회안전망 강화를 모색하는 성장전략의 하나다.
그러나 나무도 옮겨심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토양과 기후를 살피듯이 제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검토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수준의 ‘고용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아 90%의 노동자는 법률상의 해고요건에도 불구하고 법을 무시한 항상적 해고에 시달리고 있다. ‘강성노조’라 부르는 대기업도 경영상의 이유로 언제든지 구조조정으로 해고되어 수 십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높은 고용유연성을 가진 나라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OECD 평균(11.8%) 보다 두 배(22.4%)가 될 정도로 높다. 반면에 덴마크는 8.8%로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15년 OECD 발표기준)
유연성을 확대한 후에도 덴마크는 평균 근속기간이 8년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5년 밖에 안되는데 유연성이 얼마나 더 필요할지 의문이다.
두 번째, 우리나라는 ‘양극화 해소’가 먼저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격차’해소를 위해 고용유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앞서 살핀대로 우리나라는 1-2차 노동시장 모두가 고용불안이 심각한 상황이다.
만약 이 상태에서 고용유연화를 확대한다면 정작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하는 1차 노동 시장은 대부분은 노조가 있기 때문에 쉽지가 않을 것이다. 노조가 없는 90%의 2차 노동 시장은 방어력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쉬운 해고’나 ‘비정규직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극도의 고용불안과 임금 등 근로조건 저하로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켜 정책목표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덴마크의 경우는 노조가입률이 이미 85%나 되고 기업구조도 중소기업이 중심(85%)이며, 노동시장 내 격차와 차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연성 확대가 갈등과 피해를 최소화 하는가운데 진행될 수 있었다.
세 번째, 덴마크의 ‘고용유연화 확대’는 이미 세계 최고수준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실업급여의 경우 지급액은 직전 임금의 90%(우리나라는 50%)이며, 수급기간도 최장 4년(우리나라는 8개월)이나 된다. 또한 수급자격이 없는 경우에도 사회보장급여를 통해 실업급여와 동일한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고, 자영업자를 위한 실업기금도 조성하고 있다.
직업훈련 시스템의 경우도 조속한 직장복귀 와 수평적·수직적 이동 보장을 목표로 실습위주(2/3)의 양성훈련과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계속훈련, 재직자 숙련향상과 대체고용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직무순환제 등 세계최고수준의 다양한 제도를 두고 있다. 특히 직무순환제의 경우 재직자도 유급휴직 기간을 통해 계속고용가능성 및 숙련도를 증대시키고 있다. 또한 휴직기간에는 실업수당이 지급되고 (사용자가 실업수당과 통상임금 차액보상) 있으며, 실업자는 기간제 취업으로 현장경험을 축적하여 정규직 취업가능성을 높이며 프로그램 참가 실업자 중 60% 이상이 해당기업 또는 타 기업에 고용되고 있다.
네 번째, 덴마크의 ‘고용유연화 확대’는 높은 사회적 신뢰와 합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에 근거한 복지국가이념에 기초하여 높은 복지 수준과 완전고용을 추구해온 전통이 사회전반의 체계와 국민의식에 튼튼히 뿌리 내리고 있다. 노조조직률이 높은 만큼 정치참여율도 높아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을 하기도 하며, 약 45%(‘17. 45.9%)라는 높은 세금을 낼 정도 노·사·정 등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도가 높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와 합의의 바탕에는 노조 등 국민참여율이 높은 민주적 정치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제1야당은 복지정책 등 국가의 시장 개입 자체를 사회주의 정책으로 몰아붙이고, 정부와 여당마저도 노·사·정 대화기구를 들러리로 취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고용유연화 확대’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홍영표 원내대표의 주장과는 반대로 '노동시장 양극화해소, 사회안전망 확충'이 우선이자, '고용유연·안정성 모델' 도입의 전제조건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의 실정과 조건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섣부른 ‘고용유연화 확대’는 중단되어야 한다.
2019년 3월 14일
정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김용신) 문의: 명등용 정책연구위원 (02-788-3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