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글이 무지 깁니다.
오늘 저는 이 지면을 통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오해와 혐오가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가능한 한 구체적인 사례(성소수자와 사회의 광기)를 테마로 하여 우리 사회가 특정 구성원에 대한 오해와 혐오를 통해 어떻게 병들 수 있고, 그러한 광기에서 벗어나 어떻게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탐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오해와 선동을 통해 비정상으로 치부된 모든 ‘비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만드는 기제를 밝은 빛으로 비추어 알리고자 하는 실천의 글쓰기입니다.
1. 성소수자의 사랑이 정신병 리스트에서 사라지기까지
노르웨이의 바르되(Vardø)라는 지역에는 1621년 그 지역의 마녀사냥으로 희생당한 ‘마녀’와 ‘마녀추종자’를 추모하는 공간(Steilneset Memorial)이 있다. 건축 분야의 세계적 거장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 1943~)와 미술 분야의 세계적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가 합작한 이 프로젝트는 1621년 당시에 무지몽매한 세상에서 수많은 오해와 착각 속에서 마녀사냥을 당한 91인의 사람들을 기리는 건축물과 설치미술품으로 이루어져있다. 17세기의 노르웨이 바르되에서 어떤 이유로든 조금 남다른 여성은 ‘마녀’로 취급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 주변인들까지 모두 불합리한 처형을 당하였다. 그리고 2010년에 바르되시 당국은 국제적 공모를 통해 줌토르와 부르주아를 초청하여 그 때 그렇게 공동체 전반에 흐르는 오해와 혐오 속에서 희생 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며 기리는 의미있는 장소를 설계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성소수자가 정신병 리스트에서 사라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 있다.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5월 17일, ‘아이다호 데이.’ 요즘의 명칭은 IDAHOBiT인데 그 의미는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로서 직역하면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바이포비아에 대항하는 국제적 날’이다. ㅋㅋ 우리나라에서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통칭된다. 이 날은 1990년 5월 17일 WHO(세계보건기구)의 ICD(국제 질병 사인 분류,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에서 동성애가 삭제된 날이다. 국내외 정신질환 진단기준 안내서에 해당하는 미국정신의학협회(APA)의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까지 총 다섯 차례 개정되어온 DSM에서도 1990년 ICD에서 동성애가 삭제된 것에 뒤이어 1994년의 네 번째 버전에서 동성애를 삭제하였고 트랜스젠더 역시 다섯 번째 버전에서 삭제되었다.
2. 오해와 착각, 그리고 혐오를 바로잡기
그렇다면 17세기의 마녀, 20세기의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사람이 겪었을 핍박은 어떻게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작동되어온 것일까? 오늘, 바로 지금도 존재하는 성소수자 혐오 실태를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2014.12.)와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1.2.)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 전반에게 사회 내에서의 괴롭힘, 제도화된 차별은 심각한 반면 그에 대한 보호 정책은 부재한 현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아무리 국제사회의 질병기준에서 성소수자의 사랑이 삭제되고 전세계 29개 국가(대부분이 선진국)에서 시민권 결합을 넘어선 동성혼을 합법화하고 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착각, 그리고 혐오는 난무하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과 혐오는 비단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간, 장애여부간, 나이간, 인종간, 피부색간, 출신지역간, 용모 등의 신체조건간, 혼인여부간, 임신 또는 출산 여부간, 가족 및 가구 형태의 상황간,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간, 학력간, 고용형태간, 병력 또는 건강상태간, 사회적 신분간의 영역에서 골고루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광기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내포한다. 이는 매우 우려되는 현실로서, 이해와 소통이 부재한 오해와 착각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의 문제이다.
2020년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9인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앞서 나열한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차별을 법률로서 금지하고자 하는 법안이다. 그 입법취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지는 평등권에 해당하는 헌법 제11조가 오늘날의 우리 사회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기피업종을 지탱하고 있는 이주민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한 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동과 읽기의 자유가 제한된 장애인, 존재를 거부 당하는 HIV감염인, 한부모가족임을 밝힐 수 없는 청소년, 독거노인의 길이 두려운 청년, 그리고 성소수자는 모두 하나같이 차별의 사회 속에서 혐오와 혐오표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핵심은 그러한 혐오와 혐오표현이 하나같이 오해와 착각 속에서 비롯된 일종의 광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오해와 착각을 밝은 불빛으로 비추어 공유할 때에만 그러한 광기는 멈출 수 있다. 이에 관한 당위적 주장을 지양하고 실질적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때문에 동성애와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우리 사회의 흔한 오해를 밝혀보고자 한다. 먼저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이란 자신이 이끌리는 이성, 동성, 혹은 복수의 성별을 나타낸다. 즉,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끌리냐가 중요한 영역이다. 그리고 특정한 성에게 이끌림을 느낀다는 것은 누군가가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니며 단지 누가 누구와 섹스를 하느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누가 누구와 섹스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를 궁금해하는 일은 이성애자에게도 마찬가지이듯이 이성애자라는 성적지향 개념 논의와 별개이다).
한편, 에이즈는 HIV라는 바이러스가 침투되어 생기는 면역력 결핍의 증상을 뜻하는 병명이다. 따라서 내가 여자로 태어나 여성에게 이끌린다고 해서 난데없이 얻게 되는 질병일 수가 없다.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어도 면역력 결핍 증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에이즈가 될 수 없는데, 에이즈라는 증상은 1981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가 되었다. 그러한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안 일으킬 수도 있는 HIV라는 바이러스는 중앙 아프리카에서 침팬지 같은 영장류로부터 발견된 면역결핍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SIV)가 인간에게 접촉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에이즈의 창궐은 HIV라는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들의 숫자와 감염 체계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 때 늘어나는 것이지 동성애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HIV와 에이즈는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바이러스와 병이기 때문에 우리는 HIV에 감염되어 에이즈라는 증상을 가진 사람들을 손가락질할 이유가 없다.
이어서,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이란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떤 성별(gender)로 생각하고 느끼느냐에 대한 정체성이다. 내가 생물학적으로 여자로 태어났어도 나 자신에 대해서 인지하고 느끼는 바가 남성에 가깝다면 나의 성별정체성은 남성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생물학적으로 남자로 태어났지만 스스로에 대해서 인지하고 느끼는 바가 여성에 가깝다면 나의 성별정체성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느끼는 상태에서 앞서 말한 성적지향에 따라 ‘내’가 여성에게 끌리는지, 남성에게 끌리는지, 둘 다에게 끌리는지, 둘 다에게 끌리지 않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내가 나를 어떤 성별로 여기는지의 문제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할 리 만무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적지향이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은 변태성욕자라고 착각을 하는 것은 페티시, SM과 같은 성적취향을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개념으로부터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성애자 중에서 페티시나 SM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듯이 성소수자 중에서도 페티시나 SM을 즐기는 사람들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성도착증과 같은 이상성욕에 해당하는 질병의 영역은 또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에 따른 범죄의 문제는 건전한 사회를 바라는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모두가 분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즉, 이런 문제들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한 개념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이런 내용을 알고서도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때문에 동성애와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주장에 당신은 설득당할 수 있는가?
3. 선동에 취약한 진실없는 병든 사회,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까
인류사의 어느 시점에서 마녀는 정신병자였고 동성애자는 정신병자였다. 다행이도 점차적으로 정신건강과 정신의학, 심리학의 영역에서 지속된 연구를 했고, 진보한 지식을 신념과 실천으로 사회에 연결한 수많은 위인들이 존재해왔다. 그에 따라 인간과 사회의 기제에 대한 이해의 폭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그렇게 깊고 넓어진 지평과 이해를 보편화하는 일은 사회 구성원 간의 혐오와 차별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혐오표현이 온라인 상에서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다. 그 대상은 여성, 남성, 노인, 어린이를 막론하고 있으며 사회적 소수자 집단(minorities)를 향해서는 혐오표현에 그치지 않는 일상의 장애물이 되어있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의 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이제 내게 너무나 익숙한 통계이다. 차별을 당하는 구성원이 점차 서로를 향하고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내는 증표는 무엇일까. 나는 감히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있음을 알리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사회적 광기는 그 구성원을 힘들거나 병들게 하는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한 번 불이 붙은 혐오와 차별의 사회는 계속해서 혐오하고 차별할 근거없는 기준을 마련할 것이고 점점 더 우리 개개인을 소외되고 배제되고 분열되게 만들 것이다.
4. 치유와 회복의 경험, 그리고 온전한 나와 너의 정신건강을 향한 실천적 활동
2021년 5월 17일, 올해의 아이다호 데이에 나는 정의당 인천시당 당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IDAHOBiT 누구나 발언대>를 준비하고 참여했다. 정의당 관계자 여러분은 물론, 한부모가족, 이주민 활동가,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부모, 60대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어느 선생님 등이 각자 자신의 차별의 경험을 공유한 자리에서 나는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하였다. 1621년에 처형당한 마녀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였던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나누었을 이야기도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엊그제인 2021년 5월 24일, 차별금지법 제정 10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되었다. 국회에 대한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되기 위해 필요한 대한민국 국민 10만 명이라는 숫자는, 개인에게는 많은 숫자다. 나와 내 친구들 모두를 모아도 10만 명이 되기는 어렵다. 그와 달리 어떤 집단에게 10만 명은 그리 큰 숫자가 아닐 수 있다. 대표적으로 대형교회 신도 수가 그러하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주간리포트 『넘버즈』 제67호(2020년 10월)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2019년도를 기준으로 교인이 10,001명을 넘는 개신교 교회의 교인 수는 53만 명이라고 한다. 아주 약간이라도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련이 된 전국의 조례와 법안에 반대의견을 열렬히 표현하는 열혈 반동성애 진영의 조직화된 행동은 사실상 개신교 교회 혹은 해당 개신교 교회의 신앙이 그 근거지이다. 하지만 실제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해당자들은 그렇게 모이지를 못한다.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해 모일 이유도 없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000명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쉽지 않은 숫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은 불과 이틀만에 10만 명의 35%에 해당하는 3만 5천 명을 넘어섰다. 자원도 조직도 없는 차별금지법 찬성 진영이 성취하는 10만 명의 동의는, 이미 조직화가 되어있고 자원도 풍부한 친차별적인 집단의 10만 명과 질적으로 다르다. 차별이 차별을 낳고 혐오가 소외와 배제를 낳는 일에 브레이크를 거는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원청원이 성취된다면, 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을 확인하는 척도에서 긍정적인 희망을 볼 것이다. 오해보다 이해를, 배제보다 소통을 하는, 차이를 차별로 여기지 않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결국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가 혐오, 낙인, 소외, 배제, 분열을 넘어서기 위해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우리 손으로 튼튼하게 만드는 일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오해와 차별 속에서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의 정신건강 간의 영향관계를 예리하게 알아보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일원이 되겠습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바로가기
bit.ly/equality100000
▶ 국민동의청원 참여방법 안내
equalityact.kr/100000-guide
2021년 5월 26일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 운영위원 조서울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 운영위원 조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