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사기죄'로 다시 고발한 이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 공약 사기는 형사 처벌해야 한다
조수진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조세팀장, 변호사
기사입력 2013-07-15 오전 11:30:50
대통령 선거에서 허위 공약을 내걸어도 당선되기만 하면 면죄부를 받게 되는가? 우리 국민들은 그 공약을 믿고 권력을 위임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축인 선거 민주주의가 이렇게 훼손되어도 되는가?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맞서 항고장 제출
지난주 11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서울고등검찰청에 대통령을 처벌해달라는 항고장을 제출했다. 지난 3월 최창우·오건호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복지 공약을 발표하여 당선된 것은 형법 사기죄와 공직선거법 허위 사실 유포죄에 해당한다는 내용으로 박 대통령과 진 장관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검찰이 전부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기에 이에 불복하여 항고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나는 왜 박근혜 대통령을 사기죄로 고발했나)
지난 3월 7일 국회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과 '기초연금 지급'과 관련,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대선 때는 공약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캠페인"이라고 말했다. 4대 중증질환의 "비급여 부분은 처음부터 포함이 안 됐었다"며 심지어 "당시에도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라고까지 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공약집에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그리고 '어르신 소득 안정을 위해 기초연금 도입'이라는 문구와 함께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 지급'이라는 '새누리의 약속'이 담겨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당시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이라는 카피가 담긴 현수막을 길거리에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과제를 보면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등의 굵직한 비급여 진료비는 제외됐다. 필수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만 100% 급여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연금도 소득 수준과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라 4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는 쪽으로 수정됐다. 애초 국민에게 말했던 약속을 바꾼 것이다.
진영 장관의 '캠페인' 발언은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인터넷상에서도 많은 국민들이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은 선거 캠페인용이었군요", "여섯 글자로 말하면 '대국민 사기극'", "공약이 아니라 허위 광고"와 같은 비판으로 들끓었다.
▲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
허위 공약으로 표를 얻어 놓고선
4대 중증질환 공약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병원비의 상당 부분이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므로 이를 전액 국가가 보장해 줄 경우 환자와 가족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은 아직 암, 심장질환 등 우리나라에서 발병률이 높은 중병을 100% 커버해주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가장이 덜컥 암에라도 걸려 앓아누우면 비싼 병원비에 집안이 휘청하고 중산층이 빈민층으로 곤두박질친다. 국민건강보험료를 내면서도 별도로 민간의료보험 하나쯤을 다들 납입하고 있는 것도, 4대 중증질환이 가계를 위협하는 큰 불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란 단어는 불안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새누리당은 공약집과 텔레비전 토론회, 거리 현수막 등을 통해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100% 보장해주겠다고 여러 차례 공약하고 발언했다. 기초연금 2배 지급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자식들 부양하고 어른 모시느라 정작 자신들의 노후 대책이 없는 불안한 장년과 노년층은 기초연금을 지금의 2배인 20만 원을 당장 지급하겠다는 정책에 강한 지지 유인을 느꼈을 것이다. 박근혜 캠프의 복지 공약은 여러 가지 미래 불안을 해소해주겠노라 약속하는 것이었고 득표 중 상당 부분은 이에 대한 지지에 힘입은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공약을 총괄했고 이후 인수위원회에서도 부위원장을 한 사람이 공약집 중 주된 부분인 4대 중증질환과 기초연금 내용은 처음부터 그냥 '캠페인'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거짓말로 표심을 현혹했다고 자인한 꼴이다.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던 복지 공약
물론 공약을 지키지 못한 모든 경우가 법적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선 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현실적 제약으로 이행할 수 없는 경우라면 도덕적 비난은 할 수 있겠지만 법적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고 물을 수도 없다.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공약을 지킬 생각이 없고 그것을 캠프에서 알고도 버젓이 공문서인 공약집에 실어 배포한 경우는 다르다. 이것은 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이다. 만약 이러한 행위가 허용된다면, 다음 선거 때부터는 도대체 얼마나 허위 공약이 판을 칠 것인가. 공약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후보 판단의 근거는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떤 후보의 선거 진영에서 서로 공모해서 자신들이 지킬 생각인 정책은 50의 지점까지에 불과하지만,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자신들이 당선되면 100까지 하겠다고 허위 공약하는 것, 이것은 유권자를 현혹하여 정당한 투표권 행사 업무를 방해한 것이다. 또 허위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유포하여 공정 선거 질서를 훼손한 것이다. 국민들이 제대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더라면 획득했을 복지 정책으로 인한 재산상의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만든 기망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정책 책임자였던 진영 장관과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검찰에 사기죄와 선거법 허위 사실 유포죄의 공범으로 고발했다. 대통령이라 하여 기소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재직 중 중지될 뿐이다.
▲ 노년유니온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에 속한 회원들이 지난 3월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 등의 대선 공약을 어겼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장관 후보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
공약은 미래 계획이므로 허위 사실 유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검찰은 '혐의 없다'고 불기소 처분을 했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는 이렇다. 사기죄에 대해서는 국민의 주권 행사인 투표 행위를 재산적 처분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재산적 처분 행위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사기죄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선거법의 허위 사실 공표죄에 대해서는 이 죄의 처벌 대상이 되려면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는데, 공약이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시행하고자 하는 장래에 대한 의사 표시 또는 계획이기 때문에 허위 사실 유포죄에서 처벌하는 사실 적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검찰의 기각 이유는 법률적 면에서나 국민의 상식에서 보나 이해하기 어렵다. 사기가 아니라고? 거짓된 공약을 믿은 우리 국민들은 기망에 의한 투표권 행사로 인해 그만큼의 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는데 투표 행위가 재산적 처분 행위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국민들의 투표 행위는 재산적 행위가 아니고 대체 무엇일까.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라고? 공약은 후보가 당선될 경우 시행하고자 하는 장래에 대한 의사 표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일부러 거짓 공약을 발표한 경우에는 다르다. 그들의 거짓 공약이 허위라는 점은 공약 발표 당시 이미 확정된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이다.
대법원은 허위 사실 공표죄에서 무엇이 허위의 사실인가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허위 사실 공표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여야 하고, 여기에서 허위의 사실이라 함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은 사항으로서 선거인으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이면 충분"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을 판단해 보면, 박근혜 후보 측의 공약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공약이 사실상 당선에 유력한 근거로 작용해서 선거인으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이어서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
대통령과 검찰이 흔든 나라 기강, 유권자가 바로잡는다
공약이 처음부터 '캠페인'일 뿐이었다는 자백 발언이 있고, 유권자들이 고발까지 했는데도 처벌하지 않고 이대로 그냥 지나간다면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공약집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자료를 근거로 공직자를 뽑아야 하겠는가.
대통령 선거라는 중대한 국가사에서 이러한 거짓 공약이 판을 치고, 당선만 되면 나 몰라라 하는 식의 행위를 그대로 용납할 수 없다.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검찰이 나라 기강을 뒤흔드는 꼴이다. 나라의 주인은 우리 유권자이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사건을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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