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있어야 파이팅 한다.”
지난 5일 한국장학재단 안양옥 신임 이사장의 위와 같은 발언이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안 이사장은 앞선 4일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가장학금을 줄이고 무이자 학자금 대출을 늘리자는 취지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이사장의 이러한 발언에 청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과 16개 대학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안 이사장의 이 같은 발언에 사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국가장학금을 학자금 대출로 대체한다는 입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대출을 받은 대학생 당사자들 개개인의 입장은 어떨까? 필자는 대학생 단체로서의 목소리가 아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실제 대출을 받은 적 있는 3명의 청년을 인터뷰하였다.
“대출은 ‘자유’ … 동기부여 될 수 있어.”
제일 먼저 만난 A씨(22)는 지난 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생활비 지원 대출을 받았다. 그는 대출을 받을 만큼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출이 ‘당장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출 받은 돈은 어디에 쓰든 내 자유다. 하지만 용돈은 자유로울 수가 없고, 부모님께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상환에 대한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하면 금방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학에 입학 했을 때부터 알바를 통해 직접 생활비를 벌어온 터라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또한 용돈을 받으면 그만큼 스스로 게을러지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 안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묻자 그는 일반적인 여론과는 사뭇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안 이사장의 발언이 적절했느냐고 묻는 말에 “‘적당한 빚은 동기부여가 된다.’라는 그의 생각이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중요한 것은 등록금을 낮추고 투명한 집행이 되도록 감시하는 것”
작년에 학자금 상환을 모두 완료한 B씨(30)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그는 “학교에서 정해준 기한 내에 학자금을 내려면 대출을 받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교통비, 식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지 그 돈을 모아 등록금을 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라며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그는 “대출은 어차피 내가 필요한 돈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한다.”며 “안 이사장의 발언이 잘한 건 아니지만 이 발언 자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 자체에 집중하기 보단 필요 이상으로 높은 등록금을 낮추고 등록금이 불투명하게 집행되는 부분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안 이사장의 발언에 과도한 비난이 잇따르는 여론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대학생의 현실에 공감하지 못한 발언 분명 문제 있어.”
반면 입학한 후 계속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온 C씨(22)는 앞 선 두 청년보다 더 안 이사장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그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학기 중에 하는 아르바이트는 생활비로 썼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 했던 게 사실.”라고 밝혔다. 그는 안 이사장의 발언이 적절했냐는 물음에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정도라면 대학생들의 사정에 더 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집안 사정 때문에, 또 높은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고 있다. 안 이사장의 발언은 나와 같은 대학생들의 현실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한 발언이었고 분명 문제가 있었다.”며 대학생들의 현실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안 이사장의 발언을 비난했다.
또한 그는 “빚이 있다는 것은 곧 졸업 직후 바로 취직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내 적성에 맞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기보단 당장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대출을 ‘자유’라고 표현한 A씨와는 정반대의 의견이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은 C씨에게 빚은 일종의 ‘구속’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