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일본 안보법안의 참의원 강행 통과 규탄, 한국은 평화와 협력 외교 택해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일본 안보법안이 민주당 등 주요 야당과 국회를 둘러싼 수만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의원 특별위에서 강행 통과되었다. 참의원 본회의에서도 자민당 등 연립여당이 다수라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일본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지금까지의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경우에만 자위적 차원에서 방어하는 나라에서 외국에서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게 된다. ‘다시는 전쟁하는 나라가 되지 않겠다.’, 특히 ‘자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전쟁하는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없을 것’이라던 일본 내부의 합의, 대외적 약속을 저버리는 작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 60%가 넘는 반대여론과 연일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각계각층 시민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전쟁국가로 치닫는 오늘의 일본은 전후 이어져왔던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닌가 걱정된다.
오늘 9월 18일은 84년 전인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날이다. 조선을 식민병탄하고 평화적 3.1운동을 총칼로 제압한데 이어, 중국으로 세계로 15년 전쟁의 폭주를 시작한 날이다. 그 날 안보법제를 강행 통과시키려는 아베의 작태는 괴뢰 만주국에서 전체주의적 국가 건설이라는 이른바 '혁신' 관료의 꿈을 실험하고, 2차대전 당시 상공대신 등으로 총력전에 앞장섰다가 A급 전범이 되었던 기시 전 수상을 연상하게 한다.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자신의 외할아버지 기시의, 정계 복귀 이후 가장 큰 꿈은 평화헌법 개정이었다. 아베는 집단자위권 합헌 해석에 이어 안보법안 통과로 평화헌법을 상당 정도 형해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전쟁포기와 군대보유 금지를 선언한 평화헌법 9조마저 개정하려 들 것이다.
이런 정책이 추진되고 현실화되는 배경에 중국의 대국으로의 거침없는 굴기와 일본을 끌어들여 이에 대해 견제하려는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 있다. 미국은 냉전이 본격화되자 A급 전범 기시를 살려주고 정계복귀를 허용하더니, 지금은 아베가 주도하는 일본의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변모를 적극 후원하고 있다. 상당수의 일본인들도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 질시에 사로잡혀 있다. 안보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야당들은 수의 우위로 밀어붙이는 자민당 등 연립여당을 저지할 현실적 힘이 없다.
그래서 아베의 야욕은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는 일본은 오랫동안 갈구해왔던 국제적 위신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평화국가’를 자부해 온 2차대전 후 일본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인가, 그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의심받는 국가를 누가 신뢰하고 국제적 리더로서 인정하겠는가?
오늘 우리는 아베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야당을 응원하면서도 일본의 현실과 앞날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일본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하는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편에는 북에 대한 억제력이 증가하는 면도 있다며 기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 위협을 빌미로 일본이 포함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화시키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무시할 수 없고, 그것은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하단다. ‘일본군’의 한반도 재진출을 오히려 촉진시킬 수 있는 그런 논리와 정책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남북관계를 조속히 개선하고, 위기에 처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서둘러 재개함으로써 아베의 야욕을 좌절시킬 것인가?
120여 년 전 동학혁명 때 외세를 끌어들임으로써 망국의 길로 갔던 조선 조정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아야한다. 그리고 대국으로 굴기하는 중국, 전쟁국가로 변신하는 일본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가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필수사항일 뿐이다. 오늘 일본의 시계를 다시금 탈아입구의 기치 하에 서구 제국주의의 뒤를 밟던 시대로 되돌리려는 아베의 무모한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적극외교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전체가 청일전쟁에서 시작해 2차대전으로 치달려가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냉전이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신냉전 체제를 선도하는 듯한 대결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청일전쟁 등 강대국 간 전쟁터가 되었던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남북 간에 갈등하는 것은 고래들의 간섭을 초래하고 우리 집에서의 충돌까지 야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 위협 운운하며 과도한 군비경쟁에 앞장 서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쫓는 격이다. 평화와 협력의 길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현명한 돌고래다운 중견국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2015년 9월 18일
정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김용신)
* 문의 : 김수현 정책연구위원(070-4640-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