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삼성은 백혈병 피해자와 대화 전에 구체적 입장부터 내놓아야 한다
17일,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직업병에 걸린 피해자와 유족들과 대화하겠다고 나섰다. 그간의 삼성전자 태도에 비추자면 진전되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18일 국정감사에 삼성전자 최우수 부사장과 삼성반도체 및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이 참고인으로 채택된 상황에서 국정감사 하루 전에 부랴부랴 이 같은 발표를 한 것은 의아한 측면이 더 많다. 삼성전자의 입장 발표를 둘러싸고 지난 15일 안철수 후보가 내일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한혜경씨(삼성전자 기흥사업장 근무, 뇌종양 투병 중)와 만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시끄럽지 않게 해결하라”는 지시 등 몇 가지 정황들을 놓고 보면 진정성 있는 입장 발표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삼성측이 제시한 입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피해자 및 유족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가 근로복지공단의 피고소송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과 사과, 진상규명, 재발방지 등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는 지난 5년을 끌어온 문제다. 그 핵심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여부이다.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비호지킨림프종 등과 같이 희귀질환에 걸려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희망하는 것은 산재인정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 뿐이다. 그리고 동일한 질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삼성전자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총선 전까지 전향적인 대책을 세웠다가, 총선 결과가 나온 뒤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다시 국정감사, 대선후보의 방문 등 정치적인 상황이 겹쳐지면서 삼성의 입장발표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삼성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잡기까지 국민들의 성원과 노동자들의 피땀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하고선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노력 없이 기업의 성장과 노동자의 권리가 균형있게 발전할 수 없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요구는 소박하고 간단하다. 거액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삼성전자가 지금껏 끌어왔던 시간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사과로 받아들여지려면 첫째, 지금 진행 중인 소송의 피고보조참가인 참여부터 중단해야 한다.
둘째,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을 얻은 노동자 및 사망한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인정을 해야 한다. 이는 지난 4월 처음으로 김지숙씨(삼성전자 기흥공장, 재생불량성 빈혈)가 산재가 인정된 이후, 삼성전자도 산재를 받아들인 바 있다. 셋째, 삼성전자는 직업병으로 의심되거나, 직업병과 관련이 있는 질병 노동자를 파악해 그 실태와 더불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등 사후관리 대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입장을 발표해야만 그 범위 내에서 피해자들, 유족들과의 대화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삼성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전제로 성장하는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땀과 헌신을 정당하게 보상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촉구한다. 삼성의 진정성이 있는 대안이 국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국정감사에서 제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2년 10월 17일
진보정의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통령 후보 심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