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논평] 세법개정안, '넓은 세원'만 있고 '공평과세'는 없다

[정책논평] 세법개정안, ‘넓은 세원’만 있고 ‘공평과세’는 없다

 

-최대피해자는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최대 수혜자는 재벌과 부유층

-보편증세는 A+, 부자증세는 F학점

-불로소득은 관대, 노동소득은 냉정

 

소득공제의 세액공제로 전환 등 근로소득세의 전면 개편, 의제매입세액공제나 신용카드소득공제 축소, 일부 비과세 감면의 축소 정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세법개정안이 발표되었다. 세금깎아주기에 여념이 없었던 역대 세법개정안과는 달리 이번 세법개정안은 세입기반을 확대하고 재정수입을 늘렸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세금의 대부분이 재벌대기업과 부유층이 아닌 노동자나 자영업자에게서 조달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게는 국민개세주의의 엄격한 원칙이, 재벌과 부유층에 대해서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현실적 요구라는 각기 다른 잣대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최대 피해자는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인 반면, 최대 수혜자는 재벌과 부유층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최대 변화는 교육비, 의료비와 같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근로소득자는 매년 1조3천억원의 추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또한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농수산물이나 재활용폐자원에 대한 의제매입세액공제 인하로 연간 6천여억원의 추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영세자영업자들이다. 정부가 밝힌 올해 비과세 감면 정비 목표액 3.4조원의 상당 부분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추가 부담을 통해 마련되는 셈이다. 이에 비해 재벌 대기업의 경우 몇몇 세액공제의 축소로 부담이 일부 늘어나기도 하지만 일감몰아주기 증여세의 과세요건 강화나 이른바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공제 확대 등 이에 못지않는 세금감면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고소득 자영업자는 의제매입세액공제 축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이자나 배당소득 등 부유층에 영향을 미칠만한 세법개정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세법개정안은 서민중산층에 대한 보편증세는 A+인 반면 재벌과 부유층에 대한 부자증세는 의도된 낙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노동의 대가에 대해서는 엄격한 반면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 등 자신의 노동력으로 땀흘려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를 강화하면서 상속증여세나 금융소득 등 무의 무상이전이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과세를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에 세법개정안과 함께 발표한 중장기조세정책 방향에는 개인소득세에 대한 주요 과제로 면세자 비율 축소나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과 같은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방안과 함께 주식양도차익이나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확대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세법개정안에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방안만 담은 채 주식양도차익 등에 대한 과세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MB정부보다 한층 더 지독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발견하게 된다. 정부는 중장기 조세정책방향과 관련하여 소득과세에 대해서는 과세사각지대 해소와 공제제도 정비를 통한 과세기반 확대를 기본 방향으로 설정한 반면, 법인과세에 대해서는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시장친화적 조세체계 구축과 맞춤형 세제지원 체계 마련을 기본 방향으로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개인은 세금을 더 거두고, 기업은 세금을 더 깎아준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법인세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은 기업에 대한 세금이 과다해서가 아니라 국민소득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넌센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 MB정부 5년간 대규모 감세에도 불구하고 세금감면이 투자확대와 경제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상 기업소득에 대해서도 “소득수준에 따른 적정 부담”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세법개정안은 국회의 심의와 의결을 통해 확정되는 만큼 정부의 오늘 발표는 시작일 뿐이다. 국민적 상식과 합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이번 세법개정안의 긍정적인 면은 존중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다. 특히 이번 세법개정안이 조세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3년 8월 8일

정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박 원 석)

 

참여댓글 (1)
  • 노동과 진보통합

    2013.08.14 19:40:49
    이 글은 페이스북에서 퍼온 것입니다.

    어떤 분/ < 뒤늦게, 정의당의 세제개편 논평을 보고 ? 그래, ‘증세’도 학습하는 것이다. >

    기획재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것은 8월 8일(목)이었다. 지금 링크된 글은 세제개편 방안이 나온 ‘바로 그날’ 발표된 정의당의 정책논평인 셈이다. 링크된 글을 보면 알겠지만, 민주당처럼 ‘세금폭탄론’이라는 오버는 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주당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8월 8일(목) 발표 당일 날 나왔던 정의당의 논평 내용은, 기획재정부의 세제개편안을 비판하며, 노동자-자영업자에게는 세금을 더 걷고, 부자와 대기업에게는 유리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기재부의 세제개편안에서 부자와 대기업에게 <왜, 어떤 지점>에서 유리하다는 것인지에 관한 <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나는 기재부의 세제개편안이 부자와 대기업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

    8월 8일(목) 기재부의 세제개편안이 나왔을 때,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반응을 보인 것은 비단 민주당-정의당뿐만 아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세금 더 내자> 캠페인까지 벌였던 경향신문조차도, 그리고 한겨레신문-오마이뉴스-프레시안 등의 소위 진보 매체 역시도 민주당-정의당과 ‘도찐 개찐’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 그들 역시도 대체로 노동자-자영업자 유리지갑 털기를 비난하고, 부자-대기업을 비판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전된 것은 ‘주말’을 경과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포진해있던 ‘복지국가론자’들의 칼럼이 알게 모르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당 정치론자’이다. 내가 이해하는 정당정치론에는 정치를 <공급자 중심주의>가 작동되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래서 정치권에 종사하는 사람은 ‘유권자’를 탓하는 그 어떤 논리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유권자를 탓하는 논리들은, 소위 △깨어있는 시민론 △계급배판투표론 △욕망의 정치학 따위의 담론들이 해당한다. 이런 논리들은 본질적으로 <‘변종’ 엘리트주의>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가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정당은 <대안의 선택지> 역할을 한다. 유권자들은 오직 <‘주어진’ 대안의 선택지>에서만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정책보좌관 활동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주어진’ 대안의 선택지>에 해당하는 개념에는 지식인 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거꾸로 정당의 입장에서 볼 때, 정당은 <대안 담론의 소비자>이기도 한 셈이다. 대안 담론의 공급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지식인 사회>이며, <(조직된) 시민사회>이다.

    예컨대, 내가 알고 있는 경제학적 원리들에 비추어 봤을 때, 나는 현행 공정거래체계 전반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의문을 품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대안적 방향성’에 대한 논리적 방향도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과문해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이론적-정책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학자-지식인-운동단체’를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넓게 보면, 참여정부의 실패와 진보정당의 실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V.I.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이 말을 조금 더 세련되게 해석한다면, <‘대안적’ 담론과 ‘대안적’ 정책수단 없이 ‘대안적’ 정치 없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진보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자산의 대안적 방향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4대 개혁 입법 따위나 주장하던 민주당도, 복지국가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며,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던 NL/PD 운동권 출신 진보정당 활동가들도 이러한 시대적 방향을 거스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시대적 분위기를 보아서 ‘채택’한 수준은 되었지만, 아직은 <자기 머리>로 그것을 ‘학습’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고, <자기 머리>로 ‘철학’으로 정립한 수준은 이르지 못했고, <자기 몸>으로 ‘체화(滯貨)’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민주당이 덩치가 더 큰 정당이었기에, 나를 비롯한 복지국가론자들은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을 주로 비판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정의당의 수준과 한겨레-경향-오마이-프레시안(소위 ‘한경오프’)의 대응 수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셈이다.

    물론, 지난 주말(8/10~11)을 정점으로 복지국가론자들의 논리적 반격이 시작되자, 민주당은 세금폭탄론을 슬그머니 철회했고, 정의당은 자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민주당을 비난하며 ‘복지 증세’를 주장하고 있고, 한경오프는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은 ‘자기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거꾸로, 이러한 현상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면, 복지국가의 방향성에 대해서 <학습할 자세와 마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역설적인’ 희망의 틈새>이기도 한 셈이다.

    소위 논객들을 포함하여 ‘광의의 지식인들’이, 적절한 시기에, 좋은 분석과 좋은 대안을 많이 제출할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더디지만 한발자국 더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변화는 언제나 답답하지만, 그것을 답답해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 탓’에 에너지를 쏟아봤자 자신의 인성만 더 핍폐해 질 뿐이다.

    더 좋은 세상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좋은 분석과 더 좋은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약간은 답답하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