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천호선 대표, 주간경향 “국민 마음 속 촛불 표출되도록 도울 것”

[유인경이 만난 사람]천호선 “박근혜의 따뜻한 보수? 기대 접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 “국민 마음 속 촛불 표출되도록 도울 것”

‘신사’임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많지만 주변사람, 특히 기자들에게 젠틀맨으로 불리는 정치인은 몹시 드물다. 천호선씨가 정의당 새 대표로 선출되었을 때 대표적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도 ‘진보정치의 새로운 세대가 열렸다’고 평했지만 살짝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가 정계의 대표적 신사로 불리는 데다 대변인 등 조력자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였다.

그가 정의당의 대표가 된 것도 궁금하고,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홍보수석 등을 지낸 참여정부 핵심 인사 중의 핵심 인사여서 최근 논란이 되는 국정원 사태 등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국회 측에서 아직 새 간판을 달아주지 않아 ‘진보정의당’이란 간판이 그대로 달려 있는 당대표 사무실에는 그 흔한 축하화환도 잘 보이지 않았다. 진보주의자들은 역시 쿨하다는 생각을 하며 천호선 대표를 만났다.



- 당대표가 되었는데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기가 좀 그렇다.

“주변에서도 다들 축하한다는 덕담보다 어깨가 무겁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걱정해준다. 나 역시 대표 당선 소감으로 ‘숨이 막힌다’는 표현을 했다. 진보정당의 마지막 도전 기회라는 중압감 때문이다. 바닥을 친 진보정당, 특히 우리 정의당이 다시 올라갈 것인가, 혹은 아예 가라앉을 것인가 절체절명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혹은 정통적인 진보당 출신이 아닌 나를 대표로 승인한 당원들의 진보정치 혁신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표에 출마한 이유가 있나.

“올 초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작은 정당이긴 하나 내가 대표로 나설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노회찬 전 공동대표가 지난 판결로 당원이 될 자격까지 상실해서 나라도 나서야 했다. 진보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을 통합할 마지막 기회라는 소명의식에 도전적 선택을 한 것이다.”

- 당대표에 당선된 후 단상에 선 사진을 보니 온통 여성들뿐이다.

“우리 당 원내대표도 여성이고 최고의원도 여성이 대부분이다. 또 전국위원의 70%가 여성이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여성이 강한 정당이다. 우리 당에서 여성을 위한 차별을 없애는 정책을 많이 개발하고 주장한 이유도 있다.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이라고도 주장한다.”.

FTA 집회 등이나 희망버스에 참여한 이들을 봐도 유난히 젊은 여성들이 많다. 또 스스로 진보임을 기꺼이 내세우는 이들도 많은데 왜

- 진보정당들은 당원들이 많지 않나.

“요즘 30대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중·고교 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다른 세대에 비해 개방된 시대이고, 사고적으로 진보의 터전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작년이 사회 여건상 진보가 통합하고 꽃을 피울 절호의 기회였는데, 당내에서 혁신이 아니라 충돌을 일으켜 국민들에게 너무 많은 실망을 안겨드렸다. 우리 당이 제대로 하면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당원들도 늘 것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일단 정의당 당원들의 결속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 당은 정치해온 경로가 다른 이들, 정치활동의 구체적 문화가 다른 이들이 모여 있다. 진보정당 출신이 아닌 내가 당대표가 된 것 자체가 진보정치의 혁신이다. 당내에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작년 패권(지난 총선 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을 둘러싼 내부 투쟁을 의미하는 듯)맞서면서 오히려 서로 결속하고 신뢰가 생긴 것 같다. 그 사건의 수습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와 진보 지향성은 같다는 확신을 가졌다. 우리 당은 작지만, 그리고 순식간에 비약하지는 못하지만 잠재적 발전성이 크다고 믿는다. 그래서 당원들에게 상호 존중과 자기혁신을 하자고 강조했다.”

- 다들 진보정의당에서 정의당으로 당명이 바뀐 이유를 궁금해 한다. 어떤 이들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민주정의당을 떠올리기도 하고.

“정의란 단어는 누구나 다 쓰는 용어다. 정의란 말을 보수적 개념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정의야말로 진보적 의미다. 진보는 낯설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다. 과거 진보정당 이미지에 국민들이 실망했고, 각 정당에 ‘진보’가 너무 많다. 또 한국 사회에서 종북좌파,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기도 한다. 국민들에게 과거의 불편함을 없애고 당 혁신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혁신이다. 열심히 하는데 위에서 자꾸 혁신만 강조한다고 되나.

“맞다. 추상적 혁신이 아니라 정책의 혁신, 문화의 혁신, 일하는 방법의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 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거나 실현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계층별 충돌도 많았는데 다양한 계층들과 공감·연대해 상생할 정책을 마련 중이다. 또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정당은 규모나 당원도 적은데 서민들의 투쟁 현장에 주로 다가가느라 정작 실제 정책 개발에 소홀했다. 신영복 선생은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같이 비만 맞느라 비를 피할 새 우산을 만들 여력이 없었다. 또 문화 역시 그동안 페쇄적이었다. 강경하고 투쟁하는 것으로만 보여 집회를 해도 대중들에게 낯설고 어색해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젠 대중, 특히 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들겠다.”



- 서민을 위한 정당을 주장하지만 정작 서민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이번 대선 결과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정당에 투표하는가란 책도 있다. 안팎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단과 전쟁상황, 보수언론의 왜곡 등도 있지만 이것만 핑계댈 상황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혁신과제를 잘 수행하고 그걸 극복할 때 서민들도 우리 당에 다가오리라고 믿는다.”

- 민주당도 야당이고 진보를 주장한다. 민주당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솔직히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진보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참여했지만 보수주의자들도 있다. 무엇보다 공약이 너무 오락가락해서 이념적인 정체성을 모를 정도다. 우리 당은 진보적 가치를 중시한다. 좌파컴플렉스가 강한 분위기에서 개명할 당명 가운데 사회민주당이 두 번째로 지지를 받았다. 안철수 의원도 진보자유주의를 주장하는데, 주장과 실천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부에선 정의당과 안철수 의원의 연대를 예측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작은 정당은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을수록 좋다. 양당 기득권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안 의원은 아직 진보정치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민주당이 자기혁신을 하고, 안 의원이 실천적인 정치력을 보이면 야권 전체가 혁신해 기득권층과 맞서고 새누리당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과 5년 임기를 같이했다. 청와대 대변인 자격으로 2007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동행했다. 이번 NLL 사건을 어찌 보나.

“대변인 당시에도 농담처럼 ‘문제적 대통령’이란 표현을 했다. 그분을 둘러싼 환경, 철학과 기질이 오해를 받고 충동을 빚었다. 그 자료 역시 그분의 독특한 화법을 떠올리며 읽으면, 행간을 알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과거 대통령 후보 유세 시절엔 내가 부대변인이었다.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을 언급하면서 ‘아이썅…’이라고 했다. 당시 중앙일보 기자가 ‘아이썅이라고 했죠? 욕한 것 아닌가요’라기에 나 스스로도 욕으로 들려 일종의 감탄사가 아닐까 둘러대었다. 그런데 나중에 녹음한 것을 들어보니 특유의 사투리 억양으로 ‘안씨장이’라고 말한 거였다. 억양, 화법 등도 노무현 대통령이 오해받는 데 일조했다. NLL 대화록만 해도 노 대통령과 일했던 김장수·윤병세씨 등은 잠자코 있지 않은가. 기록문제에 관해 그분의 태도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으니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다.”

- 그런데 회의록은 왜 사라졌을까.

“진실도 모르고 맥락도 없이 ‘노 대통령이 국정원에는 넘기고, 국가기록원에는 파기시키라고 했다’, ‘7~8개로 나눠 보관한 것이 수상하다’ 등의 억측을 한다. 일단 유난히 기록을 중시한 노 대통령은 무려 800만건에 가까운 자료를 만들었다. 크기나 용량 문제로 나눠서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국정원에 넘긴 것은 이미 오픈했다는 증거다. 국가기록원에 넘긴 것은 차기 대통령이 볼 수 없지만 국정원에 넘긴 자료는 다음 대통령이 볼 수 있다. 남북대화가 그토록 중요한 사안이기에 적대적 정권이지만 차기 대통령이 참고해 최고의 정부를 만들라는 바람이다. 그건 현명하고 칭찬받을 처사가 아닌가.”

- 대표가 된 후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고 ‘당신의 뜻이 더 커집니다’란 글을 남겼다. 그분의 뜻은 뭔가.

“그분은 스스로 무슨무슨 주의자라고 밝힌 적이 없다.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여 진보주의자로 각인됐다. 정치하는 이유도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정치의 판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지역주의 타파가 가장 대표적이다. 지역주의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싸움을 통해 생산적 발전을 이루려고 했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란 말을 들으면서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 출마하는 등의 시도를 한 것이다. 나 역시 민주당과 결별해 국민참여당을 만드는 데 동참한 것은 노 대통령의 시행착오를 포함해 그분의 철학을 큰 자산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 노 대통령의 마지막 대변인이었다. 당시에 언론과 관계가 극도로 나빴는데도 천 대변인에 대해서는 기자들이 호의적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8번째 대변인이고 10개월 동안만 일했는데 남들은 5년 내내 한 것으로 안다.(웃음) 인간적 친화력이 뛰어나거나 술자리를 자주 해서가 아니라 기자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서가 아닐까. 그건 기자들에게 최대한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공개하고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다. 매일 평일 오후 2시 반에 생중계 브리핑을 했다. 그건 미국 백악관이나 국무성에서도 하는 일이다. 당시 샘물교회 선교단의 피랍사건이 있었는데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청와대에서 직접 브리핑을 했다. 생중계는 그대로 나가버리면 끝이라 다시 번복할 수도 없고 애매한 표현을 하면 청와대 신뢰가 떨어져서 나름 준비를 많이 했고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됐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60%나 된다고 한다. 박 대통령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 압수에 대해선 사실 노무현 정부 등 지난 정부에서도 했어야 할 일이다. 다만 법·원칙이 아닌 다른 개인적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국정원 NLL 자료 공개 등은 청와대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청와대의 기획은 아니어도 관리하고 득을 얻은 것은 사실 아닌가. 박 대통령에게 따뜻한 보수를 기대했는데, 일말의 기대를 접었다. 매우 실망스럽다.”

- 당대표로서 앞으로 어떻게 당을 이끌 것인가.

“거듭된 청와대 인사문제, 국정원 사건 등으로 국민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이미 촛불이 켜진 상태다. 물가문제 등 피부에 직접 와닿는 문제가 아니라 침잠해 있을 뿐이다. 이들의 마음 속 촛불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데 노력하겠다. 일단 10월 재·보궐선거에서는 2~3곳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2~3곳의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겠다. ‘당은 작지만 후보는 훌륭하다’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 정의당은 작은 정당이지만 가장 매력적인 진보정당이 될 것이다.”

대표가 된 부담감에 ‘숨이 막힐 것 같다’면서도 천 대표는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고 유머감각도 풍부했다. 일부 언론에 머리에 띠를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은 모습, 길거리에 주저앉아 함성을 지르던 투쟁적인 모습으로만 비치던 과거 진보정당 대표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적어도 당대표의 태도만으로는 서민들과 유쾌하게 어깨를 마주하고, 비를 같이 맞으며 투덜거리는 것보다 기꺼이 튼튼한 우산을 내어주는 진보정당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진보란 원래 세련되고 매력적이지 않았던가.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참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