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박근혜 정부 140개 국정과제 중 노동분야, ‘언발에 오줌누기’ 아닌 직접적·근본적 정책 필요
박근혜 정부가 지난 28일 140개의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그중 노동분야에서는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을 만들고, 고용효과를 예측 고려하여 재정집행을 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공공부문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고, 불법파견 판정 사업장을 근로감독할 것이며,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지원하고, 최저임금을 합리적 수준에서 인상하겠다고 한다.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기 위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시키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며, 임금피크제 및 정년연장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고용안정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해고회피노력을 명문화한다고 하고,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책들이다.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경제적 궁핍, 실업, 차별의 정도를 살펴볼 때 보다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로드맵을 만들고 있는데, 로드맵의 내용으로 발표되고 있는 구체적 정책들을 살펴보면 매우 우려스럽다. 일단 최근 제시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에 대해 살펴보면, 우리나라 시간제 일자리 대부분은 단순업무 중심의 저임금 일자리라는 현실을 무시한 채 단순?저임금 일자리라도 일단 고용률만 높이고 보자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규직과 임금?승진?복지 등에서 정규직과 차별이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이겠다고 하는데, 이미 법제도상으로 시간제 노동자는 동종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시간제 일자리가 숙련?고임금 직종으로 확대되도록 하는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여야 하고, 이것이 없는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고용률 지표만 ‘반듯하게’ 할 뿐이다.
고용률 확대는 근로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주요 정책적 수단이 되어야 하고, 나머지 수단들은 보조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대폭 줄이고, 절반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연차휴가와 각종 휴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연평균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당은 연평균근로시간을 1800시간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여러 정책들을 제시한 바 있는데, 정부가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을 OECD 평균수준(1800시간 미만)으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점에 일단 큰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이를 위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1주 12시간)에 포함시키고, 연장근로 한도의 제한을 받지 않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의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하는데, 이 역시 찬성한다. 2011년 우리나라 취업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37시간보다 20% 이상 긴 상황에서 매우 필요한 입법조치들이다.
그런데 장시간 근로 개선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은 근로시간을 오히려 늘이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의미하는 것은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근로시간을 늘이겠다는 것이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역시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현재의 보상휴가제)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으로서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용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의 유인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해결책은 법정 근로시간만 일해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본임금을 올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외의 정책적 수단들은 보조적인 것에 불과하다. 법정 근로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비용이 지금보다 늘어나야 기업은 장시간 노동이라는 손쉬운 이윤창출 방법을 포기하게 되고, 노동자는 가산임금을 목적으로 장시간 노동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사법부의 통상임금 인정범위 확대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각종 수당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여 ‘친시장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여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된 이번 정책과제 발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된 핵심적인 정책들이 모두 빠져있다는 점이다. 일단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현재의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기업들은 비정규직법을 악용하여 2년마다 기간제 노동자를 기계부품 교체하듯이 교체하고 있는데, 이를 문제삼지 않은 채 비정규직 정책을 얘기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상시적 업무에는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도록, 일시적?간헐적 업무에만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하여야 한다.
일시적?간헐적인 업무에 채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하여 차별받지 않도록 하여야 하는 것 역시 기본 중에 기본이다. 사내도급 노동자의 차별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책과제에「사내하도급법」입법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하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업장에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다행스럽다. 다만, 기간제?파견?무기계약직?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종 또는 유사한 일을 할 경우 동일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하고, 이를 전사회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중장기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세우겠다고 하는데, 최저임금은 전체 노동자 평균급여의 절반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합리적 기준이다.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하여 일시에 시행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것과 같이 ‘물가인상률+경제성장률+소득분배조정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이상으로, 단기적으로는 ‘물가인상률+경제성장률+소득분배조정분’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이번 정책과제 발표대로 두루뭉실하게 ‘합리적’이어서는 안된다.
경영상 해고 요건을 강화하기 위해 해고회피노력의 여러 방법들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겠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현재 만연한 정리해고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해고회피노력은 이미 법원에 의해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고, 이러한 방안들을 강구하지 아니한 경우 부당해고로 판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의 구체적 사유를 명시하는 일이다. 현재 법원의 태도에 따르면, 생산성 향상이나 신기술의 도입, 일시적인 경영악화에서도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데, 회사가 도산에 이를 정도의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있어야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2013년 5월 31일
진보정의당 정책위원회(의장 정진후)
문의 : 정책연구위원 이희원(070-4640-2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