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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비상구

  • [9화] “뇌출혈 치료 후 복직 가능할까요?” 노무사의 답변
    아프면 쉬고 건강해지면 다시 복직하여 일할 권리
 Business time
▲Business time ⓒ martenbjork on Unsplash

# 몸이 아픈데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어느 날 필자의 사무실로 한 통의 상담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상담요청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제가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현재 치료 중인데, 회사에서는 3개월까진 기다려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났을 때에도 건강상태가 회복이 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고용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우니 권고사직 절차에 돌입한다고 하는데... 계속 근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에 필자는 권고사직은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니 거부하면 되고, 이에 회사가 통상해고를 실시할 경우 그 시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다투어 볼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상담자는 "이 회사에 20대 후반에 입사해서 지금 25년 가까이 근속한 만큼 너무나 소중한 회사이기에 회사를 상대로 무언가 문제를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치료기간을 조금만 배려해줬으면 하는 마음 뿐인데, 도저히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재차 문의하였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법적으로 해고가 금지되는 산업재해와 달리 근로자 개인의 질병에 대해서는 회사의 재량에 의한 배려가 이뤄지는 실정이므로, 현재는 뾰족한 수가 없다. 물론 뇌출혈에 대해 요양급여 신청을 고려해볼 수는 있으나, 근로복지공단의 판정기준에 비추어 볼 때 상담자의 경우 승인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상황이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네...' 라는 생각이 들 무렵 필자는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근데 당장 치료에만 전념해도 모자를 상황에 지금부터 치료 이후 생계를 고민하는 것이 과연 치료에 도움이 될까?, 만일 3개월 내에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 어느정도 몸이 낫는다 하더라도 50대 중반 나이에 어디가서 재취업을 해야 할까?, 아파도 무너지지 않고 한 개인과 가정의 생계가 보호될 수는 없을까?' 라는 물음에 닿을 무렵 필자는 질병휴직의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함을 깨달았다.

# 질병휴직, 기업의 유형-규모에 따라 권리의 존부 결정돼

질병휴직이란 근로자 개인의 질병으로 인하여 휴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휴직과 달라, 사업장마다 재량껏 운영한다. 주로 공공기관 내지 공기업이 질병휴직에 대한 권한부여가 잘 되어있는 편이고, 규모가 적은 민간 사업장일수록 질병휴직에 대한 보호가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에 재직할 경우 내규를 근거로 질병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나, 그 외의 경우에는 사실상 회사의 배려를 바랄 수밖에 없다. 만일 회사가 별도 배려를 해주지 않는다면 권고사직으로 고용관계가 종료되거나, 통상해고 분쟁을 겪는 수순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의 상병수당 도입에 관한 연구 - 제도 간 연계와 조정을 중심으로'에 의하면 약 500곳의 취업규칙을 분석한 김수진, 김기태(2020)의 연구에서 업무 외 상병에 대해 유급병가를 지원하는 작업장의 비율은 7.3%에 불과했다.

# 일하다 아파 쉬어야 하는 것은 해외도 마찬가지

일하다가 개인 질병으로 쉬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하면 세계 대다수 국가는 법정 병가 또는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하여 일하는 사람의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사회보장(최저기준)에 관한 협약'과 '의료 및 상병급여 협약'에서 상병급여 지급에 관한 국제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상병수당 제도를 시행 중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은 모두 IILO의 최저기준협약을 상회하는 기준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상병수당 도입 여부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 2022년 7월부터 국민건강보험 상병수당제도를 시범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약 8개 시군구에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해당 시범사업에 따르면 건강보험료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에 해당하는 자가 질병으로 인하여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으며, 구체적인 금액은 1일 4만8150원이다.

보장기간은 최대 150일을 상한으로 하며, 시범사업 대상 시군구 외에서 거주 및 근로하는 사람은 신청대상에서 제외된다.


안양시 · 달서구 상병수당 2단계 시범사업 포터 대구광역시 달서구와 경기 안양시에서 실시하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에 대한 신청자를 모집하는 홍보물
안양시 · 달서구 상병수당 2단계 시범사업 포스터 대구광역시 달서구와 경기 안양시에서 실시하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에 대한 신청자를 모집하는 홍보물 ⓒ 국민건강보험공단

# 당연한 것 놓치지 않았는지 적극적인 성찰 필요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10월 25일 보건복지부장관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제도 정비를 권고하였고, 비록 시범사업이긴 하나, 보건복지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상병수당을 시범적으로 도입하였다.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모든 임금근로자들이 업무외 상병에 대해 일정한 기간 내에서 휴가 및 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추진토록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결과적으로 불수용하였다. 구체적인 답변은 피하였지만, 사업체의 부담능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GDP 기준 14위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은 당당히 선진국의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제도의 미비함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 경제가 그동안 앞서나가고자 열심히 달려나간 것에는 경의를 표하나, 도중에 넘어져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왔는가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헌법 제32조 제3항에 의하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일하다 아플 수 있고, 아프면 당연히 치료를 받고 쉴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 당연한 사항이 아직 대한민국의 근로조건의 기준에는 담겨있지 아니하다.

유급 질병휴직 법제화가 당장 이뤄지기 어렵다면 우선 무급 질병휴직 법제화라도 먼저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점차 사회가 발전해나가고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됨에 따라 유급의 범주를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이때 유급의 방법으로는 고용보험 재원, 건강보험 재원 등 다양한 재원보전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아프면 쉬고, 건강해지면 다시 복직해서 일한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한 권리로 모든 근로자에게 받아 들여지는 날이 오길 간절히 염원한다.

* 위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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