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없어 기아선상에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임진각같은 곳에서 몇끼를 굶고 모금하는
행사는 그 자체로서 훌륭하고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결코 당사자를 이해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코 그들을 느낄 수는 없다. 본인이 그 상황에 처해 본 적
조차 없다면 더 더욱 그렇다.
보통예금통장에 남은 잔액 3,000원을 찾기 위해
7,000원을 입금해 본 사람만이 그 상황을 느낄 수 있다.
가난으로 인해 위축되고, 열등감에 빠지고, 그 무능함으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 본 사람만이 그 당사자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아픔과 슬픔이 옅어지고 잊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당시의 가슴저리는 그 고통? 그 느낌은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후보를 지지했고 개표시작초기에
젊은 층의 높은 투표율에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이 된 줄 여겼다.
슬프게도 졌다.
나는 20대 대선에서는 심상정후보, 아니 정의당에 한표를 던졌고
부디 10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기록하길 바랬다. 아쉽다.
나는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19대 대선에서의
진보 보수 1대1 진검승부, 초박빙의 승부가 아니었고,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당연히 표가 갈릴 것이고, 문재인후보의
당선은 따논 당상이라고 확신해서 심상정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어쨌든
평생을 능력있는 엘리트로 살아온 사람보다는,
하층민으로서의 비애를 느껴본 사람,
그 상황을 뚫고 꽃가마를 탈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지만,
다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함께 했던 사람,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
그리고, 상중하 모든 사람들의 위치를 경험해서
그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지금 현재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