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공포 속에 우리 국민들은 창문 한 번 속 시원히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태풍이 서유럽을 강타했고, 전대미문의 눈폭풍이 터키 흑해 연안에 들이닥쳤습니다. 2월, 북극의 온도는 18도까지 치솟았고, 빙하가 녹아내리자 북극곰은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이유모를 싱크홀은 도로를 집어삼키고 있고, 호주를 덮친 산불은 아직도 호주국민들을 슬픔에 잠기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밖에 없는 집인 ‘지구’를 영원한 것처럼 사용해왔습니다. '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무분별한 재개발을 일삼아 왔고 그 결과 기후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에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 가해자들 속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있습니다. 6억9760만. 어느 나라 인구수가 아니라 지난해 우리나라의 탄소배출량입니다. 배출량도 상당한데, 배출증가세는 OECD 1위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구의 사용자와 피해자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지구를 막 쓰는 사람들은 지금의 기성세대들이지만, 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지금의 청소년들과 수많은 인류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단순한 피해자로 남기를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결석시위를 비롯해 자신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지구를 위한 행동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현정 후보자는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하신 분입니다. 청소년시절부터 환경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해오셨습니다. 더하여 기후위기를 세대 간 불평등 문제라고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청소년과 기후위기를 관련지어 고민하신 분입니다. 이현정 후보자와 수많은 청소년들이 지구를 위한 행동에 앞장서고 있지만, 명백한 가해자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이런 현실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이젠 변화해야 할 때입니다. 작은 변화가 아닌 거대한 혁명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당당하게 그 변화의 마중물에 이현정이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현정이 만들어갈 전환에는, 국회에서 소극적으로 논의되어왔던 환경이 최우선적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기후위기 앞에, 다시, 생태는 순환되어야 합니다. 다시, 원은 닫혀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닫아야만 합니다. 그 '우리' 속에서, 저는 이현정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일관된 목소리에 반해, 탄소배출을 줄일 의지가 없어 보이튼 정부와 기업,
늘 그랬던 것처럼 과학기술로 당면한 환경문제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기성세대들의 막연한 믿음.
추워야 했을 겨울은 마침 사라진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앞으로 30년 뒤, 아니 8년 뒤, 나의 미래는 존재할까요?
저와 같은 청년들의 목소리는 전세계에서 운동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2019년 한국에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유독 청소년과 청년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에게는 환경을 회복시키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에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혁명 수준의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이현정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현정이 환경운동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현정은 생태운동에 있어 자칫 배제되거나 피해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하자고 말합니다. 기후위기는 세대와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말하며 이를 모두가 함께 극복하자고 말합니다.
저는 이현정에게 제 미래를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현정이 말하는 지금 당장의 '녹색혁명'에 함께 하려고 합니다.
# 이현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3년 전 처음 '허들'을 출범시키며 정의당 안에서 청소년 부문의 중요성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 의욕이 무색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전 조직이던 청소년정의당이 와해되면서 남아있는 청소년 예비당원은 한 손에 꼽을 수준이었습니다. 당이 촛불혁명과 장미대선을 거치며 '몸값'이 치솟은 청소년들을 연단에 모셔오려 부단히 애쓰기는 했지만, 사실 그 때까지는 정말로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기보단 정치적으로 소비하려고 하는 쪽에 가까웠지요. 당 안의 청소년들은 '동원'에도 '소비'에도 별 가치가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준 분들이 계십니다. 반말 대신 꼬박꼬박 존대해주고, 예비당원들이 당원모임에 쭈뼛거리며 나가면 반겨주며 과자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던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들 중 한 분이 이현정 후보입니다. 좌충우돌 정신없었던 '허들'의 첫 총회에서, 축사 한 마디 남겨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귀한 시간을 내주었던 감사한 기억도 떠오르네요.
# 사실 저는 녹색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고백하건대 저는 지구의 생태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그래서 인간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직 잘은 알지 못합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무관심했지요. 이제서야 겨우 후보의 글과 추천받은 책을 하나씩 읽어보며 '배워가는' 중에 있습니다. 으레 '적색과 녹색이 함께 가는 진보정당'을 말하긴 했지만, 여전히 적색도 녹색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현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 정의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어떤 역할을 가질까요
앞서 말했듯 저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배운 것이 아직 많지 않아서 "비례대표제가 무엇을 위해 마련된 제도냐" 같은 질문에 잘 대답할 자신은 없습니다. 교과서적으로야 답할 수 있겠다마는 세상이 교과서 같지는 않으니까요. 누군가는 자칫 직업정치인들에게 부족할 수 있는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기성정치에서 배제되기 십상인 소수자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오랫동안 당을 위해 헌신해온 이들을 위한 일종의 '보상'이라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어느 하나만 맞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특히나,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할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이 배출해온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대부분이 '좋은 사람'이면서 '좋은 정치인'이었다는 데에 아무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진보정치와 정의당은 어떤가요. 마땅히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선명성을 잃어가며 진보정당만 할 수 있는 확실한 역할을 기대했던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겼습니다. 그 결과 정의당은 개혁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민주당과 유의미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범 여권' 어딘가에 표류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평가가 저만의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금, 위기의 정의당에 필요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좋은 사람'도, '좋은 정치인'도 아닙니다. 물론 이현정 후보 역시 '좋은 사람'이고 '좋은 정치인'은 맞지만, 그것이 제가 이현정 후보를 지지하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아닙니다. 후퇴하는 진보정치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부문정치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당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후보는 이현정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감히, 자신있게 이현정을 국회의원 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첫 번째 선거의 무게감
저는 청소년 참정권운동을 해왔지만 선거법 개정의 수혜를 받지는 못했고, 올해로 스물 한 살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는 당직과 공직을 통틀어 제가 투표할 수 있는 첫 기회가 됩니다. 제 삶의 첫 선거에서, 저는 이현정 후보에게 기꺼이 표를 던지려고 합니다.
'정의당 국회의원 이현정'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멀지 않은 시간 안에 그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