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비동의간음죄 추진은
21대 총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의 걸림돌입니다>
당원 여러분, 21대 총선 정의당 비례후보로 출마한 배준호입니다.
저 배준호는 어제 2차 정견발표에서 왜 저의 슬로건이 ‘다수를 위한 진보정치’인지를 이야기하며, 시민을 갈라놓는 정치에 맞설 것을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민주당의 비동의간음죄 도입에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왜 우리 정의당으로서도 매우 중요한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민주당이 지난 2월 19일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강간죄를 개정하여 성폭력을 엄단하겠다는 의도를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이 법은 부작용이 더 많습니다.
# 부작용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실효성은 입증되지 못한 대안입니다
비동의간음죄는 “동의”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는 근원적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검사와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는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생겨나고, 재판 끝에 무죄를 받아도 수개월에서 수년간의 재판을 받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2018년 비동의간음죄 법안을 발의했던 천정배 의원조차,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부작용을 시인했습니다.
영국의 25세 남성 벤자민 브리는 여성과 관계를 가진 다음날 아침 동의없이 관계를 맺었다며 체포되었습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2심에서는 무죄를 판결받았습니다. 2심 판결 때까지 그는 6개월 동안 구속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수개월 간 구속되면 직장인은 생계가 파탄이 나고, 학생은 한 학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시민 개인과 국가의 강제력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것입니다. 때문에 법의 운용은 최대한 객관적 사실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국가권력, 공권력의 자의적 적용에서 보호받을 시민의 권리는 민주사회가 보장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권입니다.
‘열 명의 범죄자가 도망치는 것이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초를 겪는 것보다 더 낫다.’ 이것이 현대 사법제도의 정신인 이유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것을 위해 동원하려는 수단이 중요한 기본적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면, 선택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하여 성범죄가 줄었는지, 여성이 더 안전해졌는지는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 비동의간음죄가 도입된 미국 일부 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동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실제 재판에서는 여전히 ‘저항의 유?무’를 기준으로, 즉 이전의 강간죄와 다를 바 없는 기준에 따라 판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동의의 성립이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런 법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공당으로서 매우 부적절합니다.
# 부작용이 적은 더 나은 대안도 있습니다
강간죄를 개정한다면, 현재의 ‘최협의설’을 ‘협의설’에 따라 개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즉, 피해자가 사건 자체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과정 전체가 강압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판단할 객관적 근거가 있다면 강간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간죄 성립 기준이 너무 좁은 한국과 달리 다른 나라들도 모두 이 기준에 따르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동안 여성계가 현행 법률의 문제점으로 처벌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던 사건들 대부분을 처벌 가능하게 됩니다.
비동의간음죄가 다른 선진국에서 모두 적용하는 법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적용 중이고 유럽에서는 아직 8개 국가만 적용중입니다. 노르웨이는 최근 의회 논의 끝에 도입을 미루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비동의간음죄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 의하면 ‘대부분의 국가는 비동의간음죄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 검찰 권력의 남용 가능성 확대로 시민의 인권에 대한 위협만 늘 뿐입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검찰개혁을 강조해 왔습니다. 검찰의 무제한적 공권력 행사로 시민의 인권과 자유가 침해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집권 여당이 이 법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불분명한 처벌 규정을 도입하여 오히려 시민의 삶을 검찰과 경찰로부터 위협받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민주당만이 아니라, 우리 정의당 의원들도 2018년 법안 발의에 동의했습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더욱 이 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복지제도의 도입과 같이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일에는 앞장서고, 형사 처벌과 같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에는 가장 먼저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정신입니다.
# ‘이남자, 이여자 갈라치기 정치’로는 개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이 시점에 다시 이 법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저는 총선을 앞둔 얕은 계산으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성급하게 추진하려 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성급한 추진이 불러오는 가장 확실한 ‘효과’는 무엇일까요. 여성과 남성 모두를 해답 없는 젠더 분쟁으로 몰아넣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젠더 분쟁에 가장 크게 피해를 볼 사람들은 바로 2030 청년들입니다.
민주당은 20대 남성 지지율의 붕괴가 알려진 이후, 내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한번은 여성을, 그 다음엔 남성을, 어르고 달래고, 추켜세우고 비난하는 행보를 반복하며 이러저런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젠더 갈등을 ‘배우지 못한 청년’, ‘성평등 의식이 낮은 청년’이라는 식으로 폄하해왔습니다.
# 진짜 해결해야 할 것은 하지 않으려는 면피성 발상입니다
저는 민주당의 이런 정치가 결국은 사회경제적 개혁과 같은 구조적인 해결은 하지 않고, 시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면피성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서민들과 청년 다수의 고민과 고통은 깊고 무겁습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대다수 청년들이 직면한 좌절, 박탈감, 불안이 있습니다. ‘경제신분제’라 부를 만큼 불평등과 불공정의 높은 장벽 탓입니다.
민주당의 ‘성별 맞춤형 각개격파 정치’는 청년들의 분노가 잘못된 곳에서 폭발하게 만드는 불쏘시개가 되어왔을 따름입니다. 그 결과 처음에는 청년 남성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청년 여성들까지 개혁정부로부터 등을 돌리는 총체적 이탈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제가 이와 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이와 비슷한 엇나간 시도들이 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의당 역시 이미 제대로 된 문제해결이 아니라, 젠더 분쟁만을 부추기는 엇나간 주장과 행동에 휘말려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성별로 편을 갈라 대립하게 만드는 이런 방식은 심지어 성차별의 극복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최근 숙명여대 트렌스젠더 학생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 입학이 취소된 사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비동의간음죄 추진은 21대 총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의 걸림돌입니다
기성 세대와 기성 정치인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청년세대는 심각한 젠더갈등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 갈등이 남긴 폐해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청년들은 이미 서로를 향한 해답 없는 갈등으로 몰아가는 정치에 신물을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기성 정치권은 ‘이남자’와 ‘이여자’를 갈라치는 정치를 하면서, 한편으로 청년세대들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들켜왔습니다. 조국 논란 당시 청년들의 싸늘한 시선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 냉담함에는 여성도, 남성도 따로 없었습니다.
이번 21대 총선은 민주, 진보세력이 과반을 달성하고 적폐세력을 청산하는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남녀, 지역, 세대를 넘는 모두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시민들을 대립시키는 이런 정치에 맞서야만, 우리는 다수의 연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보정당 정의당이 키운 정치인, 저 배준호는 이와 같은 정치에 단호하게 맞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