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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자료] 김지선 후보, 3/1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전문

[보도자료] 김지선 후보, “노회찬이 나보다 먼저 한 건 국회의원 뿐

 

진보정의당 김지선 노원병 재보선 예비후보는 15일 저녁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노회찬 공동대표와의 지난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지선 후보는 노회찬 대표와 결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나니까 믿음이 생겼다이 사람과 결혼하면 나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지선 후보는 16살 때부터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여 19살에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했다는 사실과 함께 노 대표는 용접자격증을 따느라고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못 받고, 용접공 따는 대로 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면서 노동운동은 제가 한참 선배다. 노회찬 의원이 저보다 먼저 한 건 국회의원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안철수 후보가 노회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노원병 출마에 양해를 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야속하다기보다는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 있다양해를 구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고 그 짧은 시간에 전화로 그게 해결된다고 저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아래는 해당 인터뷰 전문이다.

 

정관용> 4.24 재보선 서울 노원병, 관심의 초점이죠. 여기에 출마선언을 한 진보정의당 김지선 예비후보를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이시죠. 그리고 안철수 전 교수가 여기에 출마, 정계복귀 선언해서 참 뜨겁고 복잡한 그런 지역구입니다. 속마음이 복잡하실 김지선 예비후보의 이야기 함께 들어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지선>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김지선 예비후보를 가까이 잘 아는 분들도 많지만 우리 청취자 분들 거의 대부분이 잘 모르실 테니까.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까지만 주로 보도가 됐어요.

 

김지선> .

 

정관용> 우선 좀 소개를 하셔야 됩니다. 제가 뭐 자료나 이런 걸 보니까 노회찬 전 의원보다도 노동운동 선배시라고요?

 

김지선> 그렇습니다. (웃음) 제가 19살 때... 공장노동자로 출발한 건 16살이었고요.

 

정관용> 16살부터.

 

김지선> 19살 때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정관용> 어디에서요?

 

김지선> 인천에 있는, 수출4공단에 있는 삼원섬유주식회사입니다.

 

정관용> 섬유업체?

 

김지선> 섬유업체.

 

정관용> 노동조합을 만드셨죠, 주도로.

 

김지선> 주도해서 만들었고 제가 그때 여성부장을 하다가 나중에 부분회장으로 됐었습니다. 나이가 어렸었기 때문에.

 

정관용> 19살 때면 그게 몇 년도입니까?

 

김지선> 73년도인가?

 

정관용> 73?! , 이때는 그야말로 노동조합 노자만 꺼내도 막 빨갱이 소리 듣고 이러던 때 아닙니까?

 

김지선> 그렇죠. (웃음)

 

정관용> 엄혹한 시절에 노동조합을 만들었군요.

 

김지선> 굉장히 엄혹한 시절이었죠. 그래서 사실은 그때 같이 했던 분회장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하고. 저희는 어리고 아직은 애기 같은 마음으로 그 끌려가는 분회장을 붙들고 저희가 경찰과 절규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정관용> 그게 시작이었군요?

 

김지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노동운동 때문에 옥고도 치르셨잖아요.

 

김지선> , 두 번이나.

 

정관용> 언제가 첫번째였죠?

 

김지선> 78년도에 여의도 부활절 사건입니다.

 

정관용> 부활절 예배사건. 그건 노동운동사에서는 꽤 유명한 사건이던데. 간략히만 소개해 주세요.

 

김지선> 동일방직이라는 회사.

 

정관용> 동일방직?

 

김지선> 여성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124명이 그때 당시 해고당했습니다. 나이 어린 여공들이죠. 그런데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무데도 보도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 여성 노동자들, 사업장이 다른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서 다 기독교 신자였거든요. 신자이고 그래서 부활절 예배 광장에 가서 좀 마이크에 대고 알려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고. 그때는 어쨌든 예배 도중에 올라가서 저희가 마이크에 대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정관용> , 그래요? 맞아요, 맞아요.

 

김지선> 그래도 그렇게 하면 좀 많이 기독교 신자들이, 국민들이 볼까 해서. 그런데 그 자리에서 구속이 돼서 한 6개월 이상 살고 나왔습니다.

 

정관용> 6개월 이상. 두번째 구속은 또 언제입니까?

 

김지선> 두번째 구속은 83년도에 블랙리스트 사건이라고 해서 사업장마다 열심히 그렇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고. 그다음에 그쪽에서 조금 간부급이나 이런 사람들 사진을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사업장에 뿌려서 취업을 봉쇄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 노동부에 블랙리스트 있는 것을 저희가 발견하고, 항의하고. 그러다가 또 구속이 됐습니다.

 

정관용> 그러면 16살에 처음 공장 노동자로 시작하셔서 노동운동은 73년에 시작하셨고. 그러면서 계속 공장 노동자로서 일은 하셨던 거예요? 아니면 전문 노동운동가로 되셨던 거예요?

 

김지선> 아니에요, 절대 아니고요.

 

정관용> 계속 일을 하시면서.

 

김지선> 제가 스웨터 짜는, 그때만 해도 요꼬라고 했는데. 지금 입고 다니는 스웨터 이런 걸 짜는 기술자였습니다. 그래서 큰 공장에는 취업이 안 되니까 조그만 하청직 같은데 전전하면서 취업을 거의 했습니다.

 

정관용> 구속됐다가도 나오면 다시 취업하고?

 

김지선> 나오면 다시 취업하고. 그럼요, 왜냐 하면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웃음)

 

정관용> 노회찬 전 의원은 그러면 인천 노동운동... 노회찬 전 의원도 인천에서 노동운동 했잖아요. 그러면 언제 처음 만난 거예요?

 

김지선> 처음 만난 게 87년도입니다.

 

정관용> 87?

 

김지선> 남편은 수배 중이었고 저는 해고 노동자들과 같이 또 해고노동자 문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87년 노동자들 막 싸울 때 그 문제 갖고 격려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걸 풀까 이런 것 고민할 때 만났습니다.

 

정관용> 저는 그 전 노동운동 하실 때 만나신 줄 알았더니.

 

김지선> 아니에요.

 

정관용> 그건 아닌 거죠?

 

김지선> 남편은 오랫동안 해 왔는데 서로 얼굴은 몰랐습니다.

 

정관용> 87년에 남편을 만나셔서 결혼은 언제 하셨죠?

 

김지선> 88년도에 했습니다.

 

정관용> 그럼 뭐 첫눈부터 불꽃이 막 튀었나요?

 

김지선> (웃음) 아니요, 그렇지는 않고요. 저는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었고요. 가난한 집이기도 하고 또 결혼을 하면 그때 당시에는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아무 사회적 활동을 못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저는 또 사회적 활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측면이 많아서. 그래서 결혼하기보다는 기독교식으로 하면 목사님 같은. 여자 목사님이었거든요, 저를 많이 도와주신 분이 주화순 목사님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남편을 보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나니까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나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웃음)

 

정관용> 그리고도 활동을 계속하셨던 거죠?

 

김지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40년 가까이요.

 

정관용> 그런데 노동운동을 하시다가 그다음에 여성운동.

 

김지선> .

 

정관용> 언제쯤 그렇게 또 전환하신 건가요?

 

김지선> 제가 여성운동을 한 게 88년부터입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김지선> 88년도 하게 된 것은 여성으로 살면서. 노동자지만 여성으로 살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결혼과 동시에 일을 안 하고 떠나니까 이건 여성문제가 따로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또 이렇게 보니까 여성들이 차별당하는 것도 많이 보이고. 그래서 인천에서 여성노동자회를 조직해서 제가 회장으로 복무하면서 또 많은 시각을 갖고 여성문제에 임하기 시작했고요.

 

정관용> 그리고 여성의 전화.

 

김지선> 여성의 전화도 인천에서 또 만들었습니다.

 

정관용> 가정폭력상담소.

 

김지선> 그것도 한 15년 이상 했습니다.

 

정관용> 그것도 인천 지역에서.

 

김지선> 인천에서 하고 서울 강서, 양천지역에서 하고. 서울 여성의 전화에 제가 부회장이면서 조직위원장까지 맡아서 최근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정관용> 그래요. 그리고 또 지역운동도 하셨죠?

 

김지선> .

 

정관용> 그건 또 뭘 하셨던 겁니까?

 

김지선> 최근에는 의료생협 같은 생활협동조합.

 

정관용> 의료생협, 이건 어디서 시작하셨어요?

 

김지선> 제가 시작한 건 아니고 이미 그 지역에서 많이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제가 그쪽에 참여하면서 이사로서, 거기는 이사가 또 활동이 굉장히 셉니다. (웃음)

 

정관용> 어느 지역?

 

김지선> 상계동 지역에.

 

정관용> 노원 지역?

 

김지선> , 노원 지역. 노원 상계동 지역.

 

정관용> 남편의 지역활동도 도울 겸, 이런 것도 있겠군요.

 

김지선> 그러기도 하고요. 제가 노모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어차피 다른 지역에서 일하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상계동에서, 노원지역에서 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불과 몇 분이지만 청취자들이 듣고서 아, 이분이 참 대단하신 분이구나. 어려서부터 노동운동 그다음에 여성운동, 지역운동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일종의 사회운동가로 살아오신 분이구나.

 

김지선> 그런 면은 제가 자부심으로 생각합니다. (웃음)

 

정관용> 그러니까 남편 분의 선배라고 불리워지죠.

 

김지선> 맞습니다.

 

정관용> 노회찬 전 의원은 노동운동 시작한 게 언제였죠?

 

김지선> 그분은 아마 대학을, 대학교 다닐 때 졸업장을 따는 날 용접자격증을 따느라고 졸업식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졸업장을 못 받고 용접공 따는 대로 해서 이미 노동운동을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정관용> 그래도 70년대 후반 학번이니까 빨라야 뭐... 80년대 초 이렇게 될 거예요. 그럼 진짜 한참 선배시네요.

 

김지선> 제가 한참 선배죠.

 

정관용> (웃음) 많이 가르쳐 주기도 하세요?

 

김지선> 그럼요. (웃음) 노회찬 의원이 저보다 먼저 한 건 국회의원밖에 없습니다. (웃음) 진짜로요.

 

정관용> 다 부인께서 시키시는 대로, 가르쳐 준 대로.

 

김지선>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웃음)

 

정관용> 고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의원직 박탈되고 진보정의당 후보를 내야 하는데 여러 분들이 또 거론되다가 나가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때 어떤 고민하셨습니까?

 

김지선> 사실 이 선거가 굉장히 중요한 선거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X파일 문제로 사실 이 사회의 정의가 이렇게 박탈된 그런 문제이고. 또 하나를 보면 당으로서 보면 당 대표인 사람이 부당하게 의원을 잃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당의 명예가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후보를 내는데 어떤 사람이 적절하냐 이런 걸 갖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고 저는 주장을 했고. 그래서 제가 아니기를 진짜 바랐습니다. 그랬는데 몇 번 그런 논의가 되다가 거기서는 최종적으로 저한테 요구를 했고. 저는 뭐...

 

정관용> 그러니까 당에서 조사해 보니까 우리 김 예비후보가 제일 경쟁력이 있다고 나왔나보죠?

 

김지선> , 그분들이 판단한 거죠. 그래서 전국위원회 결의를 거쳐서 당 대표다. 그리고 최고위원회 그런 데서 결의를 거쳐서 저한테 요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아들였습니다. .

 

정관용> 혹시 노회찬 전 의원하고 부부지간이니까 당신이 나가보면 어때? 이런 말. 내가 먼저 나가 볼까? 이런 말은 혹시 부부지간에 먼저 시작하셨던 것 아니에요?

 

김지선> (웃음) 제가 텔레비전 출연한다는 걸 보고 다들 덜덜 떨어서 못 봤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제가 주인공이 돼서 나서는 건 두려움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정치활동에 대해서 지금 이 정도로 운동을 했으면 사실 여성후보로 나가라고 엄청나게 제안이 왔지 않겠습니까? 그런 제안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 한다고 하는 거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단호하게 안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이 고생을 나한테 시킬, 말할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말 한마디도 못 붙였어요, 사실은. 되려 당 최고위원들이 설득하고 지역의 주민들 그다음에 저하고 같이 활동했던 여성 활동가들 이런 분들이 그래도 언니가 해야 되지 않느냐. 다시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재보선이 아니라 과거 여러 번 총선에서도 출마권유가 있었군요?

 

김지선> , 인천에서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정관용> 인천지역. 주로 민주노동당 그런 시절부터?

 

김지선> , 그런 시절부터. 어느 때는... 이건 사실니까요. 어느 때는 시의원 나갈 때 초창기에는 민주당에서 후보 안 낼 테니까 선배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지역, 제가 살던 지역.

 

정관용> 그런데 계속 거절하셨던 이유는 뭐예요?

 

김지선> 왜냐하면 제가 어떻게 보면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는 게 있잖아요. 잘 할 수 있는 것이.

 

정관용>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운동가가 맞다?

 

김지선> , 그러고 그것도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죠.

 

정관용> 물론이죠.

 

김지선> 그래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또 생각했고. 그다음에 또 내가 잘할 수 있고 또 내가 하면서 행복한 그런 게 정치이기보다는 저는 사회운동이고 사회적으로...

 

정관용> 혹시 남편께서 정치인의 길을 가기 때문에 부부가 다 정치할 수 는 없다. 이런 것이 생각을 접게 만든 건 아닙니까?

 

김지선>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정치운동 안할 때도 그런 요구가 사실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천에서 민중당 이런 거 만들 때 제가 인천에서는 대선배이고 또 가장 앞장서 그런 거를 대변해 온 사람이기 때문에 출마권유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정관용> 민중당이면 그게 88년 초창기 때죠.

 

김지선> . 그때인데. 그때는 남편은 이미 결혼하자마자 10개월 만에 구속이 돼서 3개월 동안 있었기 때문에.

 

정관용> 알겠습니다. 정치운동 권유도 사실은 더 선배시로군요.

 

김지선> , 그렇죠. (웃음)

 

정관용> 아까 그말이 맞네요. 남편이 먼저 한 건 국회의원 뱃지 하나밖에 없다.

 

김지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런데 그렇게 계속 거절해 오고 사회운동의 의미를 지켜오려 하셨는데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나 보군요?

 

김지선> 피할 수 없었던 건 이 문제가 그냥 내가 국회의원의 선거에 나간다 이런 측면이 아니라 잘못된 판결에 대한 이것은 사회정의가 무너진 일이다 이런 생각을 일단 하나 했고요. 그리고 노원의 발전이나 이런 것들을 가장 지금 근거리에서 제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합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선적으로 이제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에 내가 여지까지 살아왔던 길이 그런 길인데.

 

정관용> 알겠습니다.

 

김지선> 거절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정관용> 노원지역에 기반을 잡고 사시고 활동하신지도 벌써 오래됐지 않습니까?

 

김지선> 7년 가까이 됐습니다.

 

정관용> 7. 그렇군요. 그런데 일각에서는 남편, 부인 이렇기 때문에 이른바 세습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지선> 저는 다녀보니까도 그렇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상당히 있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면 세습이라는 것은 어떤 권력을 물려받거나 또는 부귀영화를 물려받거나 이런 게 사실 세습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노회찬 대표께서 나한테 권력이나 부귀영화를 나한테 물려줄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그리고 노원병 선거가 굉장히 어려워진 선거지 않습니까? 그런 어려운 의원 선거에 내가 나가서 그걸 받을 수 있는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관용>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국회의원 자리를 큰 권력으로 봅니다.

 

김지선> 아니, 국회의원 자리는 노원병 주민이 선택하는 겁니다.

 

정관용> 그러니까요.

 

김지선> 그러니까 제가 나가는 대표로서 후보로 나가는 거를 권력을 물려줬다고 생각하면 그거는 당연히 나가면 무조건 당선된다.

 

정관용> 자동 당선이면 혹시 몰라도?

 

김지선> . 자동 당선이면, 내가 나가자마자 자동 당선되면 맞는데. 이거는 그냥 후보를 결정하는. 그리고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하는 후보를 결정하는 그 자체를 세습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그것도 그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반대로 부인이기 때문에 세습이라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을 수는 있지만 반대로 부인이기 때문에 또한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 저는 당당하게 이 지역에서 또는 한평생을 그런 약자들하고 함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안철수 전 교수 좀 야속하시겠네요?

 

김지선> 야속하다기보다는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 있었죠.

 

정관용> 어떤 쪽에서요?

 

김지선> 왜 그러냐면 그분이 여기 출마하시는 거는 기본적인 그분의 권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이 어쨌든 억울하게 의원직을 잃은, 나쁜 일을 하다가 한 게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올바른 일을 하다가 의원직을 잃은 것이고. 또 진보정당이 15년 가까이 그 지역에서 진보당이 어렵게 서울에서 의석을 일군 곳이고 그리고 이미 후보를 내기로 내부에서 계속 결의했던 상태고. 그런데 새정치를 하신다는 분이고 많은 국민의 기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분이시라면 나오시더라도 충분히 그런 협의나 그런 논의를 해서 그런 것들이 우선 돼야.

 

정관용> 협의나 논의라면 진보정의당과의 충분한 협의나 논의. 최소한 그런 것은 있어야 된다?

 

김지선> 뭐 그러실 수도 있고. 그런 거 있어야 되고. 아니, 나오신다면 그러셔야 되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나오실 수는 있는데. 전화 한 통 해서 우리가 사실은 안부, 이번에 X파일 사건에 대해서 유감의 뜻을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전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것이 마치 양해의 구한 것처럼.

 

정관용> 전화 통화 내용이 약간의 진실 공방처럼 가고 있어요.

 

김지선> 그러게요. 저는 그 자리에는 제가 같이 있기는 했었는데요.

 

정관용> 통화하실 때요?

 

김지선> . 집에서 있었습니다. 일요일이고 해서. 그런데 아주 짧게 통화를 하기에 제가 사실은 통화 초기에 하는 걸 듣고 문을 닫았는데 금방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통화했다는 것만 알았는데. 나중에 한 한 시간 한참 넘어서 또 기자분이 전화 와서 이 사람이 기자한테 그것 아니다라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저는 알았습니다.

 

정관용> 무슨 얘기냐?

 

김지선> 무슨 얘기냐 했더니 그런 소위 얘기하면 안철수 후보님께서 미리 양해를 구한 것처럼 보도가 됐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항의하는, 남편이 항의하는 걸로 나오고.

 

정관용> 전혀 그런 얘기는 없었다?

 

김지선> 그렇죠.

 

정관용> 위로의 말만 전했다?

 

김지선> 소위 얘기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공당의 대표가 이 지역에 이렇게 억울하게 당했는데 이 지역에 나가는데 양해를 구해달라고 하면. , 그러시면 좋겠다고. 이렇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고 그 짧은 시간에 전화로 그게 해결된다고 저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게요. 당 대표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 대표가 자기가 나갔던 지역에 후보를 내려고 당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나가시라고 이렇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저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보고요. 노회찬 씨와의 진실 공방, 뭐 이런 건 제가 얘기할 부분은 아니라고 보고요.

 

정관용> 물론 그렇겠습니다만. 뭐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정치적 가십에 해당되는 문제긴 한데. 어쨌든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사전에 통보 내지 양해를 구했다. 이런 얘기가 흘러나왔었고. 최근에는 노회찬 대표를 존경한다 오해가 있었다면 유감이다. 이런 표현까지는 지금 나온 상태예요.

 

김지선> . 저는 그분이 그런 말씀한 것은 존중하고요.

 

정관용> 이길 자신 있으세요?

 

김지선> 이길 자신 갖고 하는 거죠.

 

정관용> 물론이죠.

 

김지선> 그리고 이길 자신 있죠. 있고 그런 마음으로 또 주민들과 만나면서 그런 마음을 적극적으로 만나본 주민들은 대부분 X파일 판결로 잘못된 판결이 내린 것을 굉장히 아쉬워하시고.

 

정관용> 그 점을 주목한다?

 

김지선> . 사실 여론조사 63%가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이미 작년에 노회찬 대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상대후보로부터 공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57%라는 지지를 보내주셨거든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국민들이 심판해 주시는 건데. 이제 다시 또 그 문제를 서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러냐면 사회의 정의가 후퇴되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정의를 바로세우는 이런 관점에서 전 출발하려고 합니다.

 

정관용> 아침부터 밤중까지 뛰어다니시겠어요? 지금.

 

김지선> .

 

정관용> 많이 만나고 계십니까?

 

김지선> ,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정관용> 반응은 좋고요?

 

김지선> . 반응 좋습니다. 반응 좋고 일일이 말씀드릴 순 없지만 어제도 지역의 식당에서 지역의 어려운 어르신들 점심식사 배달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우리가 그런 걸 같이 나눠드렸고요. 오늘 아침에는 상계동 저희가 자주 가는 상계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 도시락 만들어서 배달하는 거 했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해 왔던 일을 하는 겁니다.

 

정관용> 아무튼 정말 참 인생이 험난합니다. 안 하려고 안 하려고 했던 정치까지 이제 끼어드셨으니.

 

김지선> 그러게요.

 

정관용> 아무쪼록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하면서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지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관용> 4.24 재보선 노원병 진보정의당 김지선 예비후보를 함께 만났습니다.

 

2013316

진보정의당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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