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아동단체·정의당, 아동학대 근절 위한 민법 제 915조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
일시: 2020년 1월 13일 오후 2시
장소: 국회 본청 223호
정의당·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 ‘때려서라도 가르칠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뒷받침
- 부모의 징계권을 허용하면서 아동에 대한 폭력을 근절할 수 없어
- 징계권 조항 삭제, 아동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출발점
[ 모두발언 ]
■ 추혜선 국회의원
오늘 민법 제915조 폐지를 위해 와주신 단체, 그리고 어린이 당사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정의당 원내수석 부대표 추혜선 의원입니다.
한국에서 폭력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당연시 돼 왔는지는 남성들이 얼마 전까지 했던 말, 아니 요즘에도 사석에서 하고 있는 말들에서 잘 드러납니다.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씩 패줘야 한다는 말이지요.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자신의 명을 거역하면 언제든지 폭력으로 굴복시키고 순종시킬 수 있다는 것이 체화된 말입니다.
그 폭력과 굴복의 가장 약한 지점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바로 어린이들입니다. 부모 또는 친권자로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언제든지 폭력으로 다스려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임한울 님이 오늘 발언하시겠지만 ‘어른들은 아동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체벌을 당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정작 그와 똑같은 일을 하는 어른들이 체벌당하는 것은 아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아동에게는 체벌이 당연한가’라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주 공감합니다.
이미 아동복지법 제5조 2항에는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과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하루 빨리 민법 915조 조항은 삭제되어야 하겠습니다.
폭력은 그 자체의 속성이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는 인권에도 충돌하며,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근대법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부모-자녀 관계를 종속적 관계로 이해해 징계권을 명시하는 민법 915조는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이미 민법 913조에 보호자의 교양 의무가 있으므로, 915조가 없어도 훈육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폭력이 아니라, 이해-대화-설득-토론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이후 우리 사회를 더 인간다운 사회로 바꿀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민법 915조의 폐지를 적극 촉구합니다.
■박예휘 부대표
민법 915조의 친권자 자녀 징계권 조항은, 부모에게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민법 개정을 포함해서, 체벌이 학대이자 범죄임을 알리고 교육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 수립·법개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외국의 사례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범죄”란 보호자에 의한 아동학대’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호자라 함은 아동복지법 제3조 제3호의 의미로서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를 통틀어 말합니다. 또한 동조 제7호에 따르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 등이 ‘사랑의 매’라거나 ‘맞을 짓을 안 해야 안 맞지’등 얼토당토않은 말로 정당화되고 또 잔인하리만치 만연해 있습니다.
아동학대처벌법의 입법정신에 비추어 볼 때, 민법 제915조는 구시대적 조항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유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노력에 정치권이 소홀한 것이 현실입니다. 민법 제915조가 남아 있는 것 또한 이러한 현실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를 때릴 권한은 없습니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민법 제915조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이 하루 속히 삭제되어 아동 학대 근절에 우리 사회가 한 뼘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정의당이 노력하겠습니다.
■ 박원석 정책위 의장
오늘 두 어린이 대표가 든 피켓의 문구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세상에 맞을 짓은 없고,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단 아동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랜 관습 속에서 아동에 대한 체벌, 폭력을 정당화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있고 잘못된 행동이 있었습니다. 종종 아동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 아동학대가 벌어지는데, 알고 보면 그런 아동학대도 처음은 경미한 체벌에서 시작됐고, 경미한 체벌이 무감각하게 쌓여가고 누적되다 보니 그런 사건까지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민법 제915조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관념에서 논쟁적인 주제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잘못된 체벌과 폭력으로 받았던 상처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의당에서도 약간은 주저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선거 시기이기도 하고 이런 주제가 취지와 다른 불필요한 논란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했던 면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비단 아동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폭력도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정당화되거나 은폐되어선 안 됩니다. 이제는 당연히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잘못된 관념과 관습의 제도적 근거가 되어왔던 민법 915조 개정에 대해, 이제는 이 자리에 오신 시민사회단체들과 당사자 아동뿐 아니라 정치권이 조금 더 책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겠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폭력 없는 나라, 아동학대가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의당이 여러분과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 아동대표 발언 ]
■ 임한울(만 9세, 서울시)
핸드폰을 자주 봐서, 잘 씻지 않아서, 늦잠을 자서, 시험 성적이 안 좋아서, 거짓말을 해서..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들이 제 주변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체벌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중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분, 잘 안 씻는 분들 계세요. 청소 잘 안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노력해도 일이 안 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그 분들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이유로 맞아도 ‘맞을 만했네’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어른은 맞으면 안 되고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일까요?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습니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 최서인(만 13세, 세종시)
어른들은 흔히 말씀하시기를 ‘아이들은 맞으면서 큰다.’, ‘나도 그렇게 컸다.’, ‘사랑하니까 때리는 거다.’라고 하시며 아이들이 맞으면서 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76.8%라는 상당한 비율의 어른들이 훈육 시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 질문을 어른들에게만 물어보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과연 아동들도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정작 훈육을 받는 당사자인 저를 포함한 모든 아동들에게는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십니까? 분명 같은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과 어른 사이의 관계에서는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어른과 아이 사이의 관계에서는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맞아야 하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단지 맞는 게 두려워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런 존재이고 싶습니다. 맞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훈육이라는 명분하에 전국의 모든 아동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입니다. 누구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만 남길 뿐입니다. 이는 명백한 악습이며, 저는 지금이 이런 악습의 대를 끊을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민법 915조 ‘징계권’에 관련하여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우리 아동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공동주최 발언 ]
■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
우리 사회에는 ‘훈육’의 이름으로 체벌을 정당화하는 관행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버릇을 고치기 위한’ 체벌로 시작하는 만큼, 우리는 징계권 조항을 근본적으로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제5,6차 대한민국 최종권고에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징계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고 권고하며, 징계라는 표현이 부모의 권리로 인식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실제로 최근 실시된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따르면 56.7%의 성인이 민법의 징계권이 체벌을 포함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즉 민법 915조는 부모가 자녀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여지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대표적인 문제조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징계권을 허용하면서 아동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정책은 미봉지책에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친권자에 의한 체벌을 징계권 행사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는 민법 제915조의 전부 삭제를 촉구합니다.
■ 홍창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내 부회장
현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56개국 국가가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입법을 ‘완전히’ 달성한 상태로,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정을 포함하여 아동과 관련된 모든 장소.. 즉, 가정, 대안양육시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소년원, 교도소 등에서 법으로 체벌을 금지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OECD 36개 회원국 중 22개국이 이미 완전한 체벌금지 국가입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체벌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2019년 체벌금지법이 마련되었고, 우리나라와 같이 친권자 징계권이 법으로 명문화된 일본에서조차도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시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해서 내년 4월 시행 예정입니다. 가벼운 체벌에서 시작한 행위가 극심하고 잔혹한 학대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는 민법 915조의 삭제는 이제 더 이상 미뤄서도 안 되는 필수 불가한 국가의 당면과제로써, 민법 제915조의 전면 삭제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 김웅철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지난 5월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들은 ‘아동이 행복한 나라’라는 비전 하에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에 담긴 핵심과제 중 하나가 ‘징계권’의 검토였습니다.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는 ‘징계권’이란 용어가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대상으로만 오인할 수 있는 권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고, 징계권이 ‘체벌’을 포함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어 민법 제915조에 규정된 ‘징계권’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민법 제915조 ‘징계권’ 개정작업은 2019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제자리걸음 중입니다. 정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체벌로 고통 받고 있는 아동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속하게 민법 제915조 ‘징계권’ 개정 작업을 이행하기를 촉구합니다. 아울러, 법 개정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적인 인식 개선 인만큼, 정부는 민간단체와 함께 아동 체벌금지 및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등을 강화해 주기를 촉구합니다.
[ 지지발언 ]
■ 이동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장
친권은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지배권이 아니라, 자녀의 복리실현을 위하여 부모에게 부과된 의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2018년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발생장소 중 80.3%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고, 학대행위자 중 부모에 의한 학대발생이 76.9%였습니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상담원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남의 가정사에 왜 개입하느냐? 내 자녀의 훈육을 못하게 하면 너희들이 내 아이들을 키워 줄거냐 등의 답변입니다. 이는 철저하게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태도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부모들은 훈육을 통해 아동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의 기초가 민법 징계권 조항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은 아이가 울어서, 잠을 자지 않아서, 말을 안 들어서와 같이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학대의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아동이 어른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고정관념 혹은 편견이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잘못된 사회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기 위한 출발로 징계권 삭제를 촉구합니다.
2020년 1월 13일
정의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