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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준 신년특강] 촛불의 현재와 미래



1월 19일에 있었던 장석준 미래정치센터 부소장의 강연 내용입니다.


1. 오늘의 촛불은 사회운동이 진화해온 과정의 정점
-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현재의 사회운동을 넘어 질적으로 변하는 시기

 
촛불은 사회운동이 진화해온 과정의 정점에 있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혁명부터 3.1운동, 4.19, 87년 항쟁으로 이어진 것이 지금이다. 들불처럼 일어나고,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외부의 폭력적인 힘에 의해 중단되었다는 것까지 닮았다. 역사의 비극적인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촛불은 직접적으로는 87년 항쟁 이후 진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87년이 지나고 이런 운동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95년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참여연대도 그 즈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87년의 산물이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운동들은 다들 알고 있는 약점이 있다. 주체의 잘못이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본다. 노동조합운동은 군사독재시기에 조직되지 못하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이때 새로 출발했는데, 한국사회에서 가장 조직하기 쉬운 경로로 조직이 이루어졌다. 기업내에서, 그것도 대기업과 공기업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나마 노동자의 상당부분은 포괄하지 못했고, 신자유주의 이후에 보니까 결과적으로 살만한 사람들만 조직되어 있는 상황이 되었다. 시민운동은 노동운동의 빈자리에서 성장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주택문제가 있었는데, 노조는 다루지 못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경실련이었다. 시민단체는 민중운동이 다루지 못한 영역을 다뤘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엘리트가 중앙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이슈화하고, 압력넣고, 개량적으로 해결하려는 운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다 합친 사회운동은 그 한계 때문에 그 당시 김영삼 정부를 흔들거나 압력을 넣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96년 말에 방법을 찾았다. 어쩌다보니 찾은 것이다.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을 당시 신한국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그러니까 사회운동 대부분이 동원되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항쟁이 8-9년만에 일어난 것이다. 그간 한계가 있었지만, 힘없고, 토대가 약하고 엘리트 중심적인 사회운동은 이때의 총동원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극복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2000년대 초 효순이 미순이 사건 때 촛불이 나왔다. 이때부터 촛불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촛불이 일어났고,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이 있었다. 그리고 8-9년만에 촛불 시민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몇 차례 반복을 했고, 그 끝에 오늘이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오늘의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일시적이었던 사건들이었고, 촛불이 타오르고 난 뒤 일상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된다. 그래서 지금 일상의 촛불, 일상의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전혀 발전이 없었다. 여전히 우리의 일상은 취약하다. 비관적이다.
 
하지만 반복이 되면서 조금씩 바뀌었고, 많은 것이 누적되고 바뀌기도 했다. 그 사이 조직되지 않은 대중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96년 말 97년 초의 경우 여론이 좋기는 했지만,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조직된 사람들이 나왔다. 2002년부터는 조직되지 않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생겼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04년이 되면서 활성화되어 정치에 참여하고 대선을 치러낸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노사모였다. 정치적인 이슈는 아니었지만, 2002년 월드컵도 거리에 점유한 체험을 한 중요한 경험이었다. 2004년이 되면 조직된 대중보다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많아지다가 2008년에 더 많아졌다. 인터넷도 더 발달했고, 참여하는 계층과 세대도 더 넓어졌었다.
그리고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동물적으로 광화문으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직된 사회운동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느낌을 교환하던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의 촛불은 87년 사회운동의 맥락을 이으면서도 새로운 변화들이 양적으로 쌓이면서 질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앞으로 이런 변화들은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된 사람들과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의 문화적인 차이가 심하게 나타났다. 이번만 하더라도 충돌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2008년 당시에는 충돌했다. 지금도 보면 문화가 많이 다르다. 이번 촛불시위 이후에 사회경제적 문제를 가지고 사회적 약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이야기하면 취직도 쉽지 않은 젊은 세대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조직에 가입한다는 표현자체를 낯설어 한다.
 
또 산업화초기에 만들어지지 않았던 노동조합이 87년에서야 등장하면서 이전에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있었는데 그 시민들은 노조가 아니라 촛불 반대쪽에서 박사모나 해병대 전우회 같은 활동을 하고 계신다. 이런 결과는 세대별로 경향성을 가지고 시민들이 나누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지금의 이시기에서는 박사모도 아니고 386도 아닌 새로운 2030세대가 등장해, 시민들이 셋으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2. 촛불은 전세계적인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 기존질서에 대한 ‘대중의 반란’
- 트럼프, 브렉시트와 다른 점은 시민들이 주어진 답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
- 촛불 이후, 우리는 승리감이 큰 자산이 될 것
 

트럼프가 당선되고 브렉시트 투표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촛불이 일어나는데, 바깥에서는 안좋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일면적인 시각이다. 트럼프 현상과 한국촛불은 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중의 반란이다. 기존의 질서와 경로를 따르면 행복해질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전세계 대중은 ‘엿먹어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트럼프와 브렉시트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은 단지 엿먹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다. 촛불시민혁명도 그런 반란의 정서에 바탕한다.
 
대중의 반란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혁명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진압될 수도 있고,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오늘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용어를 쓸까 고민했었는데, 다들 촛불시민혁명이라고 부르더라. 촛불시민혁명은 아직 혁명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12월 9일 탄핵 국회가결이라는 혁명적 정국이 열렸다. 12월 2일만하더라도 과반이 넘는 야당은 나눠져있어서 우왕좌왕하고 탄핵이 안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서는 다들 느낌으로 알았다. ‘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결기같은 게 느껴졌다. 이것을 제일 먼저 감지한 것은 야당이 아니라 가장 감각있는 새누리당이었다. 여러 시민적인 조건들이 결합되면서, 대중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혁명의 형태로 나타났다.
 
혁명 혹은 대중의 반란이 성공하려면 미국에서는 트럼프 찍을 수 밖에 없다. 힐러리로 대표되는 질서에 감자를 먹이려면. 엘리트들이 준 선택지를 버려야 한다. 유럽탈퇴할 것인가 말것인가도 마찬가지다. 보수당은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 체제에 저항을 하기 위해서는 브렉시트에 투표해야했다. 한국은 뭐가 다른가. 선택지를 시민들이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이 처음부터 탄핵이냐 아니냐, 퇴진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했따. 정의당은 처음부터 그 뜻을 함께 했지만, 기존의 보수 정치인들은 이야기를 안하고 있다가 뒤늦게 끌려서 갔다. 그래서 혁명이라고 남사스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시민이 조직되고 의식화되어서가 아니라, 사안 자체가 옳고 그름이 분명했다. 딱 한명이 문제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같이 왕 한명에게 부패 추문 무능이 집약되었고, 여왕의 목을 날리는면 된다는 본능적인 판단이 있었다. 판단을 하기 위한 조건은 한국역사 속에서 누적되어왔다. 한국엘리트들이 자초한 것이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대통령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이유 때문에 그를 물러나라 한다.
 
이제는 여왕의 목을 날리고 나서가 문제다. 박근혜는 박근혜 체제의 상징에 불과하며,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우리도 기연가미연가 하고 회의하고 있지 않나. 비관적일 수 있다. 그리고 촛불시민은 분열될 수 밖에 없다. 몇 백만이 모인 것을 경험한 뒤 더 적게 오면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의 운동은 2011년 재정위기와 긴축재정에 반대하며 10만명이 모여서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스페인 사회운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우리는 10만이 모였다는 말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정치세력화 한 것이 포데모스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10만 모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헌재에서 판결이 나면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뒤늦게라도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적인 것을 갖고 있다. 그것은 승리감이다. 87년 6월 있고 나서 6.29선언 있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승리는 아니었다. 속았던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울산에서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 그건 승리감의 결과였다. 전두환도 이겼는데, 정주영이라고 못 이기겠냐. 숨죽이던 사람이 나왔다. 더 억압받으면 사회운동이 열리는 게 아니라, 승리의 기대가 열려야 폭발한다. 승리가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승리감이라는 것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일찍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대선이 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촛불시민혁명은 끝이 날 것이다. 그 다음 시기에 뭘 갖고 할 것인가.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은 너무 크게 벌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집중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 승리감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수십년간 안되었지만, 이렇게 하니까 되는구나 하는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최저임금 투쟁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승리할 가능성이 무엇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야 3당 모두 이야기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사회구조 집약된 문제이기도 하다.
 
대선을 치르면서 사회경제적 쟁점을 가지고 사회운동을 지속하는 투트랙으고 가야 한다. 앞으로 30년을 결정할 핵심적인 시기가 되지 않을까한다. 꼭 최저임금이 아니라 승리할 수 있는 것을 잡아서 촛불을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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