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경제] 경제성장보다는 경제 불평등 해소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김병권 소장의 정기적인 칼럼을 게재하기로 했다. 첫 번째 칼럼이다. 내년 초에는 2021년 경제전망을 담은 칼럼을 게재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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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탄소배출 감소 동시달성이라는 새로운 목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 사회는 2021년부터 정말 중요한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갖게 되었다. 지난 12월 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포괄적인 비전과 전략, 전략별 추진과제, 그리고 추진체계까지 담은 종합적 계획안에 그 비밀이 있다. 정부 계획안에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한 신 경제?사회구조 시스템 구축”을 그야말로 야심만만한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경제성장과 탈-탄소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획기적인 사건인지 생각해보라. 그동안 한국사회는 완벽하게 경제규모와 탄소배출이 함께 늘어나고 줄어드는 나라였다. 바로 올해까지도. 그런데 앞으로는 경제성장은 과거처럼 계속될 것이지만 탄소배출을 극적으로 줄여나가는, 이른바 ‘탈동조화(decoupling)’ 전략을 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가능한가?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는 실행하지 않았는가?
표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전략에 따른 온실가스와 경제성장 탈동조화 비전
탈동조화는 미션 임파서블?
통상적으로 경제성장은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 자본과 노동이 투입되어 생산과 소비의 규모를 키우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질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이 통상적이었고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경험은 그걸 증명했다.
그런데 만약에 이산화탄소 배출의 약 85%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서도 태양과 풍력 등 재생 에너지원이나 원료를 동원한다면, 어느 정도는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늘지 않거나 심지어 ‘절대적으로’ 감소할 수 있는데, 독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물론 현실에서는 생각처럼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해 유럽환경국이 발표한 보고서 <폭로된 탈동조화(Decoupling Debunked)> 내용을 보면, 각국의 사례분석 결과 탈동조화가 되었다고 해도 ‘상대적(relative)’이거나 일시적(temporarily)이거나 아니면 국지적(locally)인 수준에서만 확인되었다. 또한 대부분은 상대적 탈동조화였다. 절대적 탈동조화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단기간이었거나, 특정자원에 국한되거나 아니면 특정 지역에 한정하거나 아니면 매우 소소한 비율에 불과했다고 보고서는 결론 짓는다. 우리 정부는 이런 분석들을 쉽게 무시하고 너무 희망과 기대만을 섞어 비전을 세운듯한 인상이다.
그러면 2050년 탈탄소 사회로 가기 위해 경제성장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성장감소를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이 대목 역시 성급하게 단언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보자. 올해 코로나19 재난으로 인류의 건강뿐 아니라 경제도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봉쇄(lock down) 조치가 내려지고, 출근 대신 재택근무와 휴교조치가 내려지고, 항공여행이 급격히 줄어들고, 이동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의도치 않게 탄소배출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 결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전년 대비 무려 6~8%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었다.
문제는 기후위기를 막는데 필요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경제규모를 무려 4% 이상 대폭 줄였고, 그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극심한 실업과 영업손실을 포함한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작 1%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감소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의 감소가 매년 일어나야 2030년 탄소배출 절반 감축과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갈 수 있다. 올해 겪었던 고통을 한 해도 아니고 매년 감내하는 식으로 기후위기를 막자고 제안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현실적일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재난은 일방적으로 경제규모를 줄이는 성장축소라는 방식의 탄소배출 감축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장률을 국가목표의 왕좌에서 끌어내리자는 것
의미있는 충분한 탈동조화도 어렵고, 그렇다고 경제규모 축소를 감내하기도 쉽지 않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우선 한 해에 2%씩만 성장해도 35년 뒤에 소비 규모가 두 배가 커진다. 그렇게 복리로 증가하는 성장률에 맞추자면 에너지와 자원 소모량의 상당한 증가 역시 불가피하다.
반면 지금 줄여나가야 할 탄소배출 감축 속도는 과거에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다. 세계 평균으로 매년 7%씩 줄여나가야 하며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그 이상 줄여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탄소배출 감소라는 슬로프가 이제 완만한 초보자용 슬로프가 아니라 최상급의 가파른 곡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총동원해서 탄소배출을 매년 급격히 줄여나가면서도, 상당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탈동조화’를 이루겠다는 것은 좋게 말해도 ‘극단적으로 야심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경제성장 목표와 탄소배출 감축 목표 중 어떤 정책을 우위에 둘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우위에 두면서 경제적으로도 적응할 만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시점에서 경제성장률 3% 목표와 탄소배출 감축목표 –7%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서면, 탄소배출 감축목표 실현을 우위에 두고 가능한 수준의 성장을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목표는 반대일 개연성이 있다. 우선 성장률 목표를 먼저 달성하고, 기술과 자본의 여력이 되는 조건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식으로 움직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경제성장과 탈-탄소화의 병행전략이 추진된다면, 언제나 탈-탄소화는 경제성장의 희생양이 될 것이고, 종래에는 탈-탄소화의 목표는 한없이 지연되어 결국 기후위기를 막는 데 실패할 것이다. 특히 이번에 경기부양을 한다고 탄소배출을 조장하는 내연기관 자동차 개별 소비세 30% 인하하는 정책을 거리낌없이 동원하거나, 무착륙 관광비행을 허가해주는 사례를 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 점이 정부의 새로운 야심찬 목표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기후위기 대처는 성장보다는 불평등 해소와 함께 가야
그럼 반대로 불가피하게 성장률을 희생시킬 때 감수할 수도 있는 국민들의 실업 걱정, 소득손실 걱정, 복지축소 걱정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시장에서 산출되는 경제규모(GDP)의 양적 팽창을 지속적으로 도모해야 국민들의 물질적 삶이 안정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신진 정치경제학자 베스 스트래트포드(Beth Stratford)가 지난 12월 4일 오픈 데모크라시(Open Democracy) 사이트에 게재한, ‘녹색성장과 탈성장: 우리는 요점을 놓치고 있는가?”라는 흥미있는 칼럼이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그는 자원절약적 기술혁신 등으로 인해 탄소배출을 줄이면서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녹색성장 옹호자들과, 성장에 기대지 말고 지구의 생태적 한계범위 안에서의 좋은 삶을 추구하자는 녹색성장 회의론자(탈성장, 성장없는 번영, 정상상태의 경제, 도넛경제, 웰빙경제) 사이에는 쟁점뿐만 아니라 충분히 합의가능한 공통 해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강력한 환경보호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생산과 소비를 줄이자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녹색전환에 필요한 생산(재생에너지, 단열제품, 공공교통) 등 녹색분야의 인프라와 제품 등을 당분간 대폭 늘리는데 탈성장론 지지자도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대신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제품 생산과 소비를 대폭 줄여야겠지만.) 또한 자원사용의 한계를 지우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만병통치약은 아닌데, 모든 이들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이고 인프라 측면에서의 대규모 전환을 병행해야 하는데 이 대목에서 기술의 역할은 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규모 기술투자와 함께 태양광과 풍력 시설, 대중교통 시설의 대대적 증설과 이를 운영할 시스템이 새롭게 도입되어야 하며, 이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제성장의 증대로 귀결될 수 있다.
특히 그는, 현대 경제에서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부족이나, 가계부채 부담으로 인한 소비여력 부진, 또는 부동산과 금융, 독점 기업들의 지대추구로 인한 경제적 성과의 불평등한 분배들을 모두 ‘경제성장에 의존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높은 실업을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로 해결할 수도 있고, 과도한 소비를 위해 미래소득을 끌어들인 부채부담은 일정하게 청산할 필요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사회안전망과 공공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기본적인 시민의 필요를 해소하게 한다면, 과거처럼 과도하게 성장에만 의존해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지탱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그는 성장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력을 사회적 약자에게 분산시키고, 경제 민주주의를 확대하며, 공유부에 대한 기본적 공유 권한을 주자”고 제안한다.
이런 대목에서 보면, 기후위기 대처와 탄소배출 감소는 확실히 경제성장과 함께 가기에 앞서서 ‘불평등 해소’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탈-탄소사회로 전환하는 과제는 경제성장 후에 여력이 되면 실행하고 아니면 말 과제가 절대 아니다. 이 시점에서 모든 사회적 내부 문제를 경제성장으로 해결하려는 그 동안의 관성적 태도를 성찰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