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고 있는 '한국판 뉴딜', 완전 재설계해야 한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3일, 제 2차 그린뉴딜 전략회를 주재하면서 "튼튼한 안전망과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에 더해 한국판 뉴딜의 기본 정신으로 지역균형 뉴딜을 추가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이로써 이제 한국판 뉴딜이 ICT산업정책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신규로 녹색회복정책을 추가하겠다는 것인지, 사회안전망 보강정책의 다른 이름인지, 아니면 지역균형개발정책인지 도무지 그 실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태는 이미 한국판 뉴딜 시작부터 '디지털 뉴딜'정책을 전면에 내세울때 예견되었던 것이다. 정부가 작명한 D.N.A(Digital, Network, AI)를 축으로 디지털 뉴딜은 원래부터 공공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할 뉴딜의 대상이 아니었다. 민간에서 이미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작동하던 것이었고, 관련 지원정책도 이미 다 실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많은 국비를 투입해서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기존 ICT대기업들에게 덤으로 재정지원하고 규제풀어주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 댓가로 만들겠다는 일자리는 대체로 인공지능 학습데이터 만들어주는 소위 '유령 노동(Ghost Work)'가 대부분일 개연성이 높다.
디지털 산업관련해서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이미 시장숙성이 된 디지털 산업에서 각종 사회적 부작용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버 등 거대 디지털 기업들의 검색정보 왜곡등 디지털 독점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점점 더 큰 글로벌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용과 연관된 사회적 비용을 모조리 기업밖으로 떠넘기는 방식으로 이른바 혁신(?)을 해온 플랫폼 기업들의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의 양산은 한국 노동시장의 질서를 뿌리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새롭게 노동권을 확립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게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해야 한다. 개인정보 호보에 대한 숙고가 미흡한 채로 데이터3법 등이 통과되면서 기업들의 무차별한 국민정보 오남용을 적절히 제어할 대책 역시 시급하다.
이처럼 디지털 분야에서 현재 정부의 긴요한 역할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이익에 맞게 플랫폼기업의 지배력 남용을 규제하면서 무너져가는 노동권을 다시 확립하는 것이다. 이는 90년 전에 미국 뉴질정책이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시장을 망가뜨린 금융을 강력히 규제하는 한편, 와그너법 등을 통해 노동권을 강화한 것이다. 만약 현재 시점에서 디지털 뉴딜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뉴딜이 필요하다면, 유일하게 녹색회복-그린뉴딜이다.
OECD를 포함한 대부분이 국제 기관등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코로나 이후의 경기회복 정책은 '녹색회복'을 가르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마지못해 디지털 뒤에 끼워넣은 '그린 없는 그린뉴딜'로 면피하고 있을 뿐, 오히려 여기저기 '뉴딜'용어를 남용함으로써 그린뉴딜의 원래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디지털 분야와 달리 녹색분야는 산업적 시각에서 봐도, 시장형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 매우 초기 산업영역이다. 따라서 민간 플레이어도 제한되어 있고,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으며, 산업생태계도 형편없다. 따라서 연구개발부터 자본투자, 인프라 구축, 공공수요까지 공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디지털 뉴딜은 국비 비중을 77%까지 책정하면서 그린뉴딜은 국비 비중이 58%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민간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완전한 넌센스다. 여기에 더불어 수익보장 뉴딜펀드까지 얘기될 정도다.
더욱이 답답한 것은 지금 세계적으로 왜 그린뉴딜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린뉴딜정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데 있다. 지금은 10여년 전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추구하던 때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지구온도 추가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10년 안에 탄소배출 절반 감축, 당장 올해부터 매년 평균 7%이상 탄소배출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특히 전기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그 만큼 석탄화력을 조기 가동중지시키야 한다.
그러나 OECD국가들 중 재생에너지 비중 꼴찌 국가이면서 기존 3020계획의 업그레이드도, 석탄화력발전의 조기종료계획도, 탄소배출 추가감축계획도 없는 그린뉴딜이 지금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이다. 이 분야의 추가 논의가 사실상 1차, 그리고 2차 그린뉴딜 전략회의에서 핵심으로 다뤄졌어야 했지만, 1차 전략회의에는 금융회사 사장들 불러놓고 민간펀드 조성하는 얘기로 , 그리고 2차 전략회의에는 시도지사들 불러놓고 지역균형발전하는 얘기로 소모해버렸다.
그린뉴딜 위한 국가-지방정부-지역사회의 역할을 제대로 짜야 한다.
그린뉴딜 핵심인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구축은 여러모로 기존 화석연료기반 산업과 추진주체와 사업전개방식이 다르다고 알려졌다. 특히 그린뉴딜이 중시하는 재생에너지 확대, 그린 모빌리티 구축, 그린 리모델링, 순환경제 확대 등은 거의 대부분이 지역 분산형, 내수 지향형, 주민 참여형 속성을 그 자체로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적 수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중앙정부는 종합계획과 연구개발, 재정지원과 법,제도적 뒷받침을 맡고, 구체적인 실행은 광역및 기초 정부에서 맡아야 하며, 지방정부들은 특히 지역의 주민과 시민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책임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지역뉴딜이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이고 추진하는 것은 녹색영역의 지역분산성을 감안한 역할분담 차원과 완전히 다르다. 정부 버전의 지역뉴딜은 기존의 다양한 지역개발 사업과 민원들을 거의 무차별적으로 재정지원하겠다는 것으로 가득차 있다. 기존 지역사업에 '스마트'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다 지역뉴딜이 되는 식이다. 정부 표현대로 "창의에 기반한 지역균형"사업을 발굴한다면서, 지역민원개발 사업에 스마트 수식어가 붙으면 모조리 지역뉴딜이 될 판이다. 이렇게 지역별 개발사업들이 '지역뉴딜'이라는 외피를 입고 난립할 것이 예상된다.
국회에서 원점 재검토 해야한다.
정부가 발표한 국책사업인 '한국판 뉴딜'은 국비만 매년 20조 이상이 투입되는 전국가적 5년 사업이다. 이 사업결과에 따라 이후 한국경제와 한국사회, 한국의 각 도시와 지역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고, 코로나 이후 국민들의 삶의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정책이 발표된 3개월도 안되어 실체가 뭔지 도무지 알수 없는 국가 사업이 되고 있다면, 이 사업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 못 꿴 것이다. 현재의 추세로 보건데, 4대강 사업에 이어서 21세기 한국정부의 최대 정책 실패작이 될 위험성도 있다. 국민의 대변기관인 국회에서 원점 재검토를 하길 바란다. 이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올해가 최적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