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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장석준 칼럼(프레시안)] 文문대통령, 약속대로 하면 된다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文대통령, 약속대로 하면 된다
[장석준 칼럼]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정의정책연구소 큰그림작업반 반장 

 

조국 논란은 한국 사회에 소중한 기회다. 검찰 개혁 뿐만 아니라 교육 불평등과 계급-계층 사다리 같은 근본 문제들을 새삼 강렬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 논란은 또한 장벽이기도 하다. 모처럼 화제에 오른 이 문제들을 조국 찬반의 회오리로 다시 가려 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9월 30일 발표된 전국 교수-연구자-대학원생 성명서는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촛불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전면적 사회대개혁에 나서자!"라는 제목의 이 성명서는 "검찰 개혁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구조적 불평등과 소수 특권집단이 구축한 '캐슬'의 교육적-문화적 특권과 차별, 이로 인한 광범위한 박탈감과 환멸이 근본적 문제임"을 직시하자고 촉구한다. 성명서가 강조하는 대안은 "전 방위적 경제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경제, 노동 그리고 교육 개혁이 시급하다. 이 중 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이미 조국 논란 초기부터 정부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9월 1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입 제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현행 입시 제도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국 논란 와중에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쟁점이 된 탓에 나온 발언이기도 하지만, '교육 개혁'이라고 하면 입시 제도의 이러저런 변경부터 떠올리는 한국 사회 상식을 충실히 반영한 대응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입시가 좀 더 '공정'해지기만 하면 되는가? 정말 입시 제도 변경이 지금 필요한 교육 개혁의 핵심 내용인가?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입시 제도가 문제라는 이들은 대개 학종 같은 수시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한다. 금수저에게만 유리한 입시 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은 정시 확대가 된다. 더 나아가 아예 정시가 100%였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있다. 시험 한 번으로 대학을 결정하던 방식이 더 '공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학종은 문제가 많다. 학생부 수상 경력 기재나 자기소개서처럼 부모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은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수시 안에 학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부교과전형도 있고, 금수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이들에게 대학 교육의 문을 여는 고른기회 전형이나 지역균형선발 전형도 있다. 이들을 다 없애거나 줄여서 정시 중심 체제로 돌아가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만약 정시 중심 체제로 돌아간다면, 2000년대처럼 사교육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미 경험했듯이 사교육의 비대한 성장은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 하지만 이것만 문제가 아니다. 돈 많은 집안일수록 더 많은 과외 수업을 시킬 수 있고 웬만하면 이는 시험 성적 차이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미 작년에 서울대는 정시 비율을 늘리면 강남3구 출신 합격자 비중만 늘어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시가 모든 계층에게 더 '공정'하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렇듯 입시 제도는 이리 바꾸든 저리 바꾸든 한계가 많다. 뭔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입시 경쟁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입시 제도 변경은 늘 변죽만 울릴 것이다.  

그 문제란 결국 계급-계층 불평등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입시 경쟁을 통해 특정 대학 졸업 증명서를 획득하느냐 혹은 못하느냐에 따라 계급-계층 지위가 결정된다. 4년제 대학 졸업장을 지닌 사무직-기술직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너무나 크다. 게다가 전자 안에서도 이른바 '수도권 명문대학' 졸업장을 갖춘 이들은 관료 체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공 사다리를 오르는 반면 나머지는 이를 바라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교육 개혁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계급-계층 구조 자체를 손보지 않는 한, 교육 제도는 아무리 바꿔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헛되이 교육 개혁을 논하며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차라리 노동 개혁에 매진하는 쪽이 낫다고도 한다. 노동시장을 뜯어고쳐 임금소득자 내부의 소득 격차를 줄이면 계급-계층 사다리에서 더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입시나 취업 경쟁도 줄어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실현될 수 있을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해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임금 격차 완화는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계급-계층 간 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득 격차를 줄이려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임금 차이를 최소화하는 단체협약을 쟁취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여러 계기, 숱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입시 제도 개혁론과 노동 개혁 우선론은 한국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양 극단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한 쪽은 지나치게 부분적 문제에 집착하고, 다른 한 쪽은 너무 근본적인 문제만 바라본다. 전자에만 매몰되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기성 질서 안에서 맴돌 테고, 후자만 강조하면 교육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다. 둘 다 기존 교육 '구조'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혹시 두 접근법이 서로 만나는 중간 지점은 없을까?

있다. 입시 경쟁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늘어선 대학 서열 구조에서 보다 위쪽으로 진입하려는 경쟁이다. 다른 한편 노동시장 불평등 구조의 골간에 자리 잡은 것은 무엇인가? 대학 졸업 여부, 명문대 졸업 여부다. 즉, 입시 제도와 계급-계층 불평등의 중간에 바로 대학이 있다. 대학 서열 구조가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이음매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출발점은 분명하다. 대학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학 서열 구조 해체에 나서야 한다. 대학 서열 구조 해체야말로 한계가 너무 큰 개혁 방안인 입시 제도 변경과 너무 장기적 개혁 과제로만 보이는 계급-계층 불평등 해소를 잇는 꼭짓점이다. 대학 개혁을 추진하기만 한다면, 이는 부분적 개혁과 근본적 개혁, 두 방향 모두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미 구체적인 대학 개혁 방안이 있다. 공동 선발-공동 수업-공동 학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대학 평준화가 그것이다.  

대학 개혁의 요체는 대학 서열 구조 해체  

입시 중심 교육과 대학 서열 구조에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은 이미 2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부터 대학 개혁 방안을 고민했다. 정진상 교수(경상대, 사회학)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책세상, 2004)가 이 시기에 나온 대표적인 저작이다. 이 책에서 정진상은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학들을 학생 선발과 수업, 학위 수여를 함께 하는 통합네트워크로 묶자고 제안했다. 이 통합네트워크는 별도 입시 없이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을 지역별로 선발한다. 이러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은 곧바로 민주노동당 등 진보 세력의 교육 개혁안으로 채택됐다.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도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 국공립대학들을 바탕으로 공동 선발-공동 수업-공동 학위의 대학연합체제를 구성하고 현행 입시는 대학입학자격고사로 대체한다는 기본 내용은 유지됐지만, 논의와 연구를 거듭하며 여러 내용이 덧붙여졌다. 너무 복잡해져서 때로는 이 점이 대학 개혁 운동의 대중화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가령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가 펴낸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대학 개혁의 방향과 쟁점>(한울, 2015)에는 참으로 다양한 세부 방안과 실행 계획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골자는 복잡할 게 없다. 공동으로 학생을 뽑고 공동으로 학위를 주는 대학연합체제를 구축하여 현재의 대학 서열 구조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등장하기 전에 고등학교 체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개편했던 전례에 따라 이름 붙인다면, '대학 평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지금껏 제출된 개혁안들의 핵심을 가장 간명하게 정리한 문헌으로는 교육혁명공동행동 연구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 교육혁명: 교육 체제의 혁명적 전환, 미룰 수 없다>(살림터, 2016)가 있다.  

< 대한민국 교육혁명>의 개혁안이 2000년대 대학 개혁안과 크게 달라진 점은 공동 선발-공동 학위의 대학연합체제에 상당수 사립대학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국공립대학 비중이 24%에 불과하다. 비슷한 경제 수준 국가들 가운데 국공립대학 비중이 이렇게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혹시 이것 역시 일제 잔재인가. 아무튼 이런 상태에서 국공립대학들만 통합해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수도권에는 사립대학들이 밀집한 반면 국공립대학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과기대 정도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혁명>은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립대학들을 대학연합체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립대학들은 공적 재원을 지원받는 만큼 이미 준공영 체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은 연세대나 고려대 같이 대학 서열 구조의 수혜를 받는 이른바 '명문' 사립대학일수록 현재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계속 이런 지원을 받는다면, 이들 대학 역시 대학연합체제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반대한다면, 이들 대학은 국고 지원 없이 완전히 자력으로 생존해야 할 것이다.  

남는 문제는 대학 서열 구조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서울대다. <대한민국 교육혁명>은 서울대를 수도권 대학연합체제에 통합시키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되면 대학연합체제가 구축되더라도 다시 그 안에서 수도권-비수도권 간 서열화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어쩌면 서울대의 학부 과정은 수도권 대학연합체제에 통합하되 대학원은 학과별로 지역 거점 국립대로 이전하는 방안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조치는 권역별로 계열이 특성화된 대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손우정, "서울대 전국 대학화 전략?: 권역별 계열 특성화 공공네트워크 모델",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강력한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방책들은 이미 갖춰져 있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현 집권 세력이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21세기북스, 2017)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 서열화를 없애고 전문 분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대학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예를 들면 공동입학, 공동학위제가 가능합니다. 이 과목은 저 대학에서, 저 과목은 이 대학에서, 단순히 학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학위를 주는 겁니다. 제가 지난 대선[2012년 대선-인용자] 때 국공립대학부터 먼저 공동입학, 공동학위제를 하겠다고 공약을 했었습니다 ... 그러면 적어도 서울대학과 지방 국립대학 간의 서열화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 이 제도가 정착되면 사립대학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약속: 행동하는 양심,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약속", <대한민국이 묻는다>)

이 약속대로 하면 된다. 이제 우리는 더는 주저하지 말고 이 약속의 즉각적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  

대학 평준화와 무상화를 결합하자 

대학 평준화는 대학을 둘러싼 또 다른 중요한 개혁 과제들과 결합해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대학 교육 무상화가 그렇다. 대학 무상화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이고, 버니 샌더스 운동이나 영국 노동당 같은 영미권 좌파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는 대학 평준화와 연동해 단계적으로 대학 교육을 무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대한민국 교육혁명>이 이미 제시하는 대로 대학연합체제에서는 등록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반값 등록금'). 대학연합체제에 합류한 사립대학은 국고 지원을 받는 대신 학생들에게 받는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학연합체제에서는 등록금을 폐지해야 한다. 대학연합체제의 이러한 단계적 무상화는 학생들이 서열화된 잔존 사립대학 대신 대학연합체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중대한 유인 요소가 될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 대학이 요구받는 개혁 과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인구 구조와 지식-기술 환경 변동에 따라 앞으로 대학은 성인을 위한 평생 교육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한 정보화 혁명(유행에 따라 과장을 좀 섞으면 "제4차 산업혁명")에 부응해 교육 체계와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구 자본주의, 지구 정치 질서, 지구 생태계의 3중 위기에 맞서 교육 내용도 새로 짜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과제도 관료화되고 기업화된 현 대학 체계를 뒤흔들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대학 평준화는 이런 화석화된 대학 체계를 크게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한 대학 '개혁'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 '혁명'의 출발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한다.

조국 논란은 의도치 않게 한국 사회에 이 혁명의 시급함을 상기시켰다. 진보 세력이 오랫동안 주장하기는 했지만 가장 급한 과제들 목록에서는 항상 빼놓기 일쑤였던 대학 개혁을 이제는 맨 앞에 내세우자. 소리 높여 입시 철폐-대학 서열 구조 타파를, 대학 평준화-무상화를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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