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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노회찬 의원님 1주기 추모 릴레이 언론기고⑧] <오마이뉴스> 노회찬 부엌에 붙은 은박지... “두 덩이 매생이가 가정을 구합니다”, 강상구 전 교육연수원장
노회찬 부엌에 붙은 은박지... "두 덩이 매생이가 가정을 구합니다"
[추모 1주기] 요리 좋아하고, 발가락이 아팠던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정치란 우선 '인간'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다. 그 특별함을 소상히 듣는 것으로부터 정치는 출발한다.

"바이올린은 작잖아요. 소리내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첼로는 크니까 아무 데나 누르면 소리가 잘 날 것 같아서 첼로를 택했죠. 첼로가 가장 인간의 목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요."

고 노회찬 의원은 첼로가 인간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워 선택했다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다. 노회찬은 평생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정해진 말을 하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 그것이 그의 일이었다.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주로 옳은 얘기를 한다. 공감보다는 설명에 강하고, 경청보다는 주장에 익숙하다.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무엇보다 고되다.

첼로가 저음역 악기라는 것도 노회찬 의원과 잘 맞다. 그래 결국 그는 인간의 목소리, 그중에서도 낮은 목소리에 애착이 있었구나. 그랬을 것 같다. 노회찬 의원은 첼로를 연주하던 학생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제가 제일 잘 나가는 때였어요."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때 노회찬은 제일 잘 나갔다.

"저에겐 아직 2덩이의 매생이가 있습니다"
 
 2010년 촬영한 '노회찬의 요리교실' 중 한 장면. 노 의원의 앞치마는 평범하면서도 화려했다.
 2010년 촬영한 "노회찬의 요리교실" 중 한 장면. 노 의원의 앞치마는 평범하면서도 화려했다.
ⓒ 말의힘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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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국민과 똑같이 사는 생활인이었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삶이 그의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말은 곧 국민의 말이었다. 그는 사는 대로 말했다.

2010년 초 노회찬 의원이 진보신당의 대표시절이던 때다. 매생이굴국 만드는 법을 촬영해 '노회찬의 요리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렸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조상이 있다면 노회찬이다.

"과거에 매생이는 주로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주로 1월, 2월에 나는 햇매생이를 가지고서 음식을 마련했는데요. 요즘에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냉동매생이도 건조매생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영양분이나 맛은 햇매생이, 참매생이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한두 번 경험으로는 이런 멘트가 나올 수 없다.

"무를 먼저 넣고, 무가 익을 정도로 한번 끓여내고요. 한 10분만 끓이면 됩니다. 그 다음에 굴을 넣고 또 한 번 끓여내고, 세 번째에 매생이를 넣고 끓이는 방법으로 하면은..."
 

내 눈에 들어온 건 노회찬 의원의 능숙한 요리실력이 아니라 부엌의 모습이었다. 꽤 오래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냉장고 앞면과 옆면에는 여느 집처럼 이런 저런 자석이 붙어 있었다. 우리 집엔 피자집·치킨집 홍보 자석 같은 게 붙어 있다.

선반 아래 설치한 식기거치대에는 오래된 분홍색 그물망사 수세미가 얼마 전에 설거지를 하고 널어놓은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그 바로 아래쪽 싱크대 위에는 또 다른 수세미와 세제가 놓여 있었다.

숟가락 통에는 몇 벌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었고, 옆의 조리기걸이엔 국자와 뒤집개가 걸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내용물 없는 작은 음료수병 같은 것도 하나 놓여 있었다. 이런 병, 우리 집에도 많다.

매생이국을 끓였던 부엌 구석의 가스레인지 부근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바로 옆 벽에 은박지가 붙어 있었다. 낡은 집 부엌 가스레인지 옆면은 그을음이 심해져 은박지를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대 이후 나의 부엌에도 대개 은박지가 있었다.

이 부엌에서 노회찬 대표는 가장자리가 닳아 매끈해진 도마 위에서 무를 썰고, 오래 사용해 온갖 미세한 기스들이 잔뜩 보이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매생이를 넣어 씻고, 그래도 좀 깔끔해 보이는 냄비에다 매생이국을 끓였다. 당최 요리 교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체크무늬 남방에 그 남방과 역시 별로 안 어울리는 화려한 앞치마를 두르고서 말이다. 요리를 마치며 노회찬은 이렇게 말했다.

"남은 매생이 두 덩이는 냉동실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매생이 철인 2월이 저물지만 마음은 든든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고 말했다는데 저에겐 '아직 두 덩이의 매생이가 있습니다.' 열두 척의 배가 결국 나라를 구하듯이 두 덩이의 매생이가 가정을 구합니다.^^"

진보정당 16년째인 내게 노회찬은 든든한 '매생이' 같은 존재였다. 국민과 똑같이 사는 보통의 사람이 우리는 든든했다.

"강 위원장도 똑같은 신발이네요"
 
 2009년 7월 18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원들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모습.
 2009년 7월 18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원들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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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후 노회찬 의원이 사람들을 껴안았다. 땀, 빗물, 아니면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됐다.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들이었다. 그 행렬의 맨 뒤에는 나도 있었다. 

비가 오니까 좀 나았다. 원래 삼보일배는 절을 할 때 아스팔트의 열기와 먼지가 얼굴과 입으로 훅 들어오는 게 곤혹이다.

도로 위의 빗물이 실개천처럼 줄줄 흘렀다. 손에 낀 목장갑은 축축히 젖었고, 바지며 윗옷도 온통 다 젖었다. 땀이기도 했고, 빗물이기도 했다. 그래도 덥지 않고, 아스팔트의 열기도 없었다. '삼보일배하기 딱 좋은 날씨네'라고 계속 생각했다.

빗속에서 삼보일배를 하면서 용산참사를 생각하고, 아스팔트에 흐르는 물을 한참 응시하고, 허리, 목, 다리에 전해지는 몸의 무게를 느꼈다.

노회찬 의원의 발가락이 걱정됐다.

난 목디스크, 허리디스크가 다 있다. 척추질환 분야의 2관왕이다. 나의 인생은 평생 불편한 목과 허리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한방 병원에서 침의 노예가 되기도 했고, 이름만 대면 알만 한 척추 전문 병원에서 물리치료에 매달리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종착은 신발이었다.

거금 수십만 원을 주고 신발을 샀다. 바닥이 굴곡져 툭 튀어 나와 있는 신발. 이 신발을 신고 걸으면 좀 나았다. 패션에는 큰 지장이 있었으나 원래 활동가는 패션 안 따진다. 요샌 안 신는다.

구로 지역위원장을 하던 시절 노회찬 의원을 만났다. 나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 아닌가. 거물과 내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다니 큰 위로가 되었고, 쓸데없이 자부심까지 일었다.

"대표님도 그 신발 신으시네요."
"어... 강 위원장도 똑같은 신발이네요."
"대표님도 허리나 목이 안 좋으신가요?"
"내가 가운데 발가락이 좀 안 좋은데, 이 신발을 신으면 괜찮더라고."


노회찬 의원은 한 동안 나와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 그때부터 난 그가 어디 장례식장 같은 델 가면 항상 마음이 쓰였다. '발가락 아프시다던데 괜찮나.' 제일 마음에 쓰였던 게 삼보일배였다. 아예 3걸음에 한번 씩 절을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날도 문득 그랬다. '노대표 발가락은 괜찮나?'

보통사람은 이곳저곳이 아프고,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럭저럭 산다. 대개는 아주 열심히. 노회찬도 그랬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안 탈 거예요" 
 
노회찬 익살에 '눈물바다' 대신 '웃음바다' 4.24재보선 투표일인 지난 2013년 4월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부근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노원병)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부인인 김지선 후보와 포옹을 하던 중 춤을 추는 포즈로 익살을 부리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노회찬 익살에 "눈물바다" 대신 "웃음바다" 4.24재보선 투표일인 지난 2013년 4월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부근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노원병)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부인인 김지선 후보와 포옹을 하던 중 춤을 추는 포즈로 익살을 부리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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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이 있다면, 안 탈 거예요. 돌이켜보면 후회가 되는 대목들도 있지만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타고 싶은 유혹이 있을지라도 유혹을 끊고, 오히려 앞일을 생각하고 노력하며 사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중에 타임머신 잘 안 팔리겠네요."

처음 봤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살면서 후회되지 않는 인생이 없을 텐데 말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초심이 흔들린 적은, 놀랍게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지금까지 올 수 없죠.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초심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얘기예요."

무던하고 지독한 사람이었다. 영웅 만들기는 싫지만 노회찬 의원은 정말 영웅이었을지도 모른다. 초심은 늘 흔들린다. 1년에도 수 차례, 하루에도 몇 번씩. 살면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많은 난관이 있어도. 쉽게 극복할 수 있어요. 겨울에 추운 데서 얼음 뚫고 낚시하는 사람 보세요. 싫어하는 사람한테 돈 줄 테니까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해요. 좋아하니까 하는 거지. 추운 데서 벌벌 떨고 있어도 좋아서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낙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악조건도 악조건이 아니게 되는 겁니다."

추위에 벌벌 떨었구나. 눈에 들어오는 건 그 문장이었다. 좋은 조건에서 일 할 수 없었다는 건 다 안다. 우리가 증인이었고 동료였으니까. 노회찬 의원이 했던 일이 그에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었길 빈다. 그의 '어록'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쁨의 말이었길 빈다.

그래도 타임머신이 있다면 안 탈거라는 말은 별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난 탈 거다. 요리를 좋아하고 발가락이 아팠던, 추위에 벌벌 떨었던 노회찬이 있던 그날로.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 사이로 영정이 보이고 있다.
 2018년 7월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 사이로 영정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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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상구씨는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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