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신의 양 날개, 6411버스와 진보정당
화제의 드라마 <보좌관>을 뒤늦게 '다시 보기'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극중 인물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하는 이상민 의원이 노회찬 전 대표를 떠올리게 해서 가슴이 아프다는 글들을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접했기에, 상당히 긴장하고 시청했습니다.
그러나 <보좌관>의 이상민 의원과 노회찬 전 대표가 닮은 부분은 미간의 주름 뿐이었습니다. 저는 굵은 주름을 지으며, 원칙을 꾸짖듯 이야기하는 노회찬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진보정치의 대표적 현실주의자였던 노회찬은 자기 자신이나 우리의 기준에서만 생각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노회찬은 우리가 대표해야 할 사람들에게 눈높이와 기준을 늘 맞췄습니다.
사실 노회찬은 승승장구만 하던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는 두 차례 선거에서 매우 적은 표차로 낙선했던, 아쉬운 패배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었습니다. 2008년과 2014년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마다 지못미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지만,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것은 초선 때 단 한번 뿐입니다. 재선 임기는 삼성X파일 선고로 중단됐고, 3선 임기는 자기 희생으로 인해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노회찬이 국민을 탓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노회찬은 "국민을 탓하면 내가 할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 국민이 변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외국인에게 나를 뽑아달라고 할 것인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 의지로 낙관하는 정치가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회찬을 유머로 기억합니다. 삭막한 한국 정치에서 노회찬의 언어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삼성 X파일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하던 날,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노회찬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였습니다. 침통한 분위기의 동료들이 순간 웃음을 지었습니다. 야권연대를 비난하는 보수 정치인에게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일본하고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을 때 박수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도, 정치적 반대 세력의 비난이 거칠더라도, 노회찬은 상황을 반전시켜 냈습니다. 상대방을 공경에 빠뜨리겠다는 투쟁심이나, 말솜씨로 주목받고 싶다는 공명심이 아니라, 내면이 단단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품격 높은 언어였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사실 바로 엊그제 일 같기도 하고, 마치 아주 오래전 일인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회찬 이라는 세글자는 우연히 읽거나 듣게 되었을 때, 아직도 가슴 한 복판에서는 통증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통증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정의당과 저는 '노회찬 정신'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정신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회찬 정신은 무엇일까요? 정의당은 간명하게 그것을 '6411버스 정신'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6411버스 정신'은 우리 정치가 한번도 제대로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거명하는 것이고 권력 밖으로 밀려난 시민들을 정치의 한복판의 데려오는 것입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사회 경제적 약자에 대한 막연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닙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배제된 한국 민주주의를 바꾸겠다는 정치적 소명입니다. 그래서 노회찬 정신의 또 다른 한쪽 날개는 '진보정당'입니다. 6411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로 취급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을 대표할 정당이 필요합니다. 그 정당이 온전히 민주정치의 일원이 될 때, 그들의 삶을 바뀌며 그들의 자존 또한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회찬은 생의 모든 과정을 진보정당 건설에 바쳤고, 정의당의 성공을 위해 분투해 왔습니다. 저와 노회찬 동료들은 창당 이후 지난 7년간 노회찬과 함께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슴의 통증은 여전하지만 사무치는 슬픔에 눈물짓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그 석자를 때문에 생기는 통증은 이제는 채찍질이고 응원입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진보정치의 길에서 나태해지거나, 좌절하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가라는 채찍질이자 응원입니다.
2020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노회찬은 15년 전 대한민국 낡은 정치의 불판을 갈자고 했습니다. 그 '오래된 미래'는 2020년 총선에서 마침내 실현될 것입니다. 사실, 권력도 돈도 없는 평범한 시민이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노회찬 만의 정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의 오랜 이상이며,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권력 밖으로 쫓아낸 기득권 양당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정의당만의 과제가 아니며, 한국 민주주의의 공통과제입니다. 정의당이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낡은 정치 질서를 바꾸겠습니다. 총선 승리로 대한민국 정치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하나하나 새롭게 써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진보집권으로 가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