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타인의 중병보다 제 감기를 더욱 아프게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당연한 특징일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고통 받지 않는 선까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 동정과 연민은 가벼운 것이다. 외면과 냉소는 손쉬운 것이다. 그보다 타인의 고통을 더 깊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저 위선으로 취급된다. 인간은 인간에게 그럴 수 없으므로.
어떤 정치인도 인간 한계에 대한 이러한 통념을 바꿔내지 못했다. 서민과 약자와 소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진보주의적 이념도 위선적인데, 하물며 그것을 정치로 이뤄내겠다는 말에 냉소와 조롱이 돌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을 위하는 척 하지만 다 자신의 이익이나 챙기고자 하는 것’이라는 냉소와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조롱이 뒤섞인 그 진흙탕 같은 정치판 속에, 노회찬이 있었다. 그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현실적인 진보의 가치를 놓지 않으며 그것을 점진적으로 이뤄내기 위해 정치를 선택한 현실주의자였다.
고 노회찬 의원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지금의 20대에게 노회찬은 하나의 권능이었다. 그가 암흑의 시대를 뚫고 만들어낸 발판 위에서, 우리는 스스럼없이 진보를 이야기하며 까불어댈 수 있었다. 내가 노회찬을 알게 된 것은, 그를 사랑한 많은 사람들의 이유와 같이 그가 남긴 촌철살인의 말들 덕분이었다.
노회찬 어록을 인터넷에서 키득거리며 소비했던 열일곱의 청소년에게, 노회찬이란 ‘나도 저이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마음먹게 만든 최초의 어른이었다. 강연장에서 실제로 그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나는 그가 속해있던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었다. 이후 당에서 활동하며 속해있던 ‘진보신당 청소년 모임’에 대한 지지의 말을 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을 때 그가 남긴 익살을 아직도 기억한다. “진청모 여러분, 진보신당을 청소해주십시오. 청소년이 우뚝 서야 진짜 신당이 됩니다.”
이런 그의 익살스러움은 노회찬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낯을 많이 가렸다. 발언의 익살스러움이 그의 성격과는 안 맞았다는 이야기다. 빛나는 노회찬의 재치는 차라리 진보 정치를 냉소하는 흐름에 맞서 싸웠던 그의 고통스런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생존 때문에 그렇게 했어요. 노동운동 할 때, 노동자들이 신참인 내 말을 듣기나 하나요. 정당을 만들고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책을 길거리에서 설명할 때 30초도 길어요. 그 이상은 안 들어. 그런 상황을 나는 오래 겪은 사람이에요. <100분토론>에 나가도 소수 정당이니까, 독한 얘기를 하니까, 다른 사람은 안 끊지만 나는 중간에 끊죠. 그러니까 더 줄여야 했고요.”
“우리(진보정당) 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요. 생긴 대로 살자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만 ‘생긴 대로 살지 맙시다!’라는 말은 논리가 복잡해요. 이걸 갖고 반대 측에서는 ‘빨갱이들은 말이 많다’는 식으로 나오죠. 그걸 못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말이 재밌으면 그 얘기를 안 해. 우리의 조건이, 주어진 환경이 강제하는 거지요.” (시사IN, ‘노회찬은 이런 정치인이었습니다’)
내가 번 돈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 말은 간명하지만, ‘세금을 더 거두어 약자를 위한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말의 논리는 더욱 복잡하다. 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배려하라는 말은 그다지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그 때 노회찬은 말한다. “돈 많이 벌어서 비싼 음식 먹는 거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근데 옆에서 누가 굶고 있다는 거죠. 그 때 옆에서 암소갈비 뜯어도 됩니까. 암소갈비 뜯는 사람들, 불고기 먹으라는 거예요. 그럼 그 옆에 사람들, 라면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세상입니까.”
노회찬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서 핵심을 관통한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하는 인간다움의 통념을 그는 뒤바꿔버린다. 메시지를 갈고 닦은 그의 피나는 노력은 그동안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재인식하는 우리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진보주의자를 자처했던 우리들은 그의 권능에 빚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노회찬처럼 되는 것이 언젠가 수많은 누군가들의 꿈이었다. 내 오래된 꿈 역시 결국은 당신 덕분이었다는 걸, 오랜만에 떠올리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진보정당의 역사가 패배와 분열을 거듭할 때, 그리하여 그의 정치적 행보도 어쩔 수 없이 갈지자를 그리며 휘청거릴 때, 타협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끈질김을 떠올리기보단 결국은 타협하고 후퇴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냉소를 더 많이 생각하고 말았다.
빚진 채 대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는 어른이 되는 동안, 내 주변 수많은 20대의 삶은 그가 살아온 시기에 버금가는 암흑 속에 갇혀 있었다. 냉소는 청년들의 시대정신이 되었고, 심지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만이라는 말들 앞에서 왜 여태껏 진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지 못했냐는 원망이 한데 뒤섞여 노회찬과 또 그의 행보를 많이도 원망하였다.
그의 행보가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 만큼 또한 누군가를 생채기 입히기도 했다는 비판적 평가를 아직 온전히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 있는 자들과 사회의 소수자들이 함께 순서를 기다리며 서있던 빈소의 행렬을 보며, 또한 죗값을 죽음으로 감춘 것이 무에 그리 존경스럽냐고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모습들을 보며 마침내 한 가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과 타인의 고통을 지겹다고 이야기하는 징그러운 사람들이 함께 뒤엉켜 있는 이 진흙탕이야말로 바로 노회찬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끝내 버티고 서있던 자리였다는 것을.
이번에 정의당의 청년 부대표로 당선된 박예휘 씨는 노회찬의 서거를 계기로 입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정의당원이 되었다. 노회찬을 기억하는 우리 청년들은 정치판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그가 꿈꿨던 세상을 만들어내겠다는 미련함을 향해 함께 돌진하고 있다. 그가 떠났으므로 우리는 다시 암흑의 시대를 살게 되었지만, 그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 암흑을 뚫고마는 빛의 권능을 결단코 부정할 수 없으리라.
진흙탕 속에서 당신은 외로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슬퍼지지만, 그러나 또 한 번 울음을 참아내기로 한다. 당신을 떠올리며 지겹도록 슬퍼하는 것조차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이므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나아가길 바란다’는 말에서 당신 자신은 버릴지언정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버리지 않아야한다는 울림을 읽는다. 우리는 그러한 당신의 뜻을 지겹도록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호명한 이 땅의 모든 투명인간들이 자신의 빛을 찾아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게 되는 그 날, 먼저 별이 된 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동지였다고 사람들은 노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