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디앙 기사 인용(2019-07-11] "청년의 파편화", 청년 스스로 묻고 답하다, 배기훈 모멘텀 회원(청년기자단 3기)
“청년의 파편화”, 청년 스스로 묻고 답하다
[모멘텀 목소리] 홀로 있는 청년들
 
    2019년 07월 11일 10:26 오전
 
청년이 원하는 세상은 무엇일까요? 청년 개개인마다 각기 다른 청사진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현실 그대로의 세상을 원했던 청년은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만큼 경쟁하여 부를 배분한다는 자유경쟁사회 아래 청년들은 과도한 스펙 쌓기, 과열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년들은 각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경쟁에서 불합격을 받은 청년들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지탄하며 채찍질하다 지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막다른 길에 몰린 청년들은 자연히 ‘내 몸 챙기기도 바쁜 사회’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 나아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아 사회가 산으로 가고 있으며, 그 책임은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에게 있다는 “20대 책임론”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청년세대의 담론으로 소비되곤 했습니다. 요즘도 이에 대한 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보면 금방 여러 기사를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였으며, 청년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되었으니 20대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의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합니다.

이 글은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20대 두 분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이다경님, 홍익대 법학부 김민석님(現 홍익대학교 노학연대체 ‘모닥불’ 운영위원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두 분의 인터뷰는 각각 5월 13일, 5월 17일에 나누어 진행하였습니다.
 

들어가며 : 과연 청년세대가 역사적으로도 ‘꾸준히’ 정치에 무관심하였나?

인터뷰로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청년세대가 과연 언제부터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걸까요? 아니면 청년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일반화하여 말할 수 있긴 할까요? 중요한 점은 이때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에서 청년 세대는 운동의 주역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4.19 혁명의 김주열 열사부터 6.10 민주항쟁의 박종철, 이한열 열사까지 모두 20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민주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청년들이 이전보다 정치에 무관심해진 걸까요? 인터뷰 사전 조사를 하면서 저는 한 가지 흥미로운 데이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2016년에 있었던 “촛불 혁명”에 대한 빅 데이터입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휴대폰 단말기 신호를 기록, 가입 정보를 분석하여 세대별로 얼마나 집회에 참가하였는지 분석한 데이터입니다.(촛불시민 빅데이터, 남녀 52% 대 48%, 서울앤)

기사에서 제시하는 20대의 광화문 촛불집회 참여율은 서울시 20대 비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이 데이터는 전수 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촛불 민심이 반영된 19대 대선은 어떨까요? 19대 대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76.1%로 전체 평균 77.2%과 비교하여 불과 1.1% 차이가 날 뿐입니다.(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분석, 선거관리위원회)

이 점을 상기시키며 인터뷰 내용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청년의 파편화”를 말하다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두 분에게 우선 청년의 파편화, 즉 청년의 개인주의화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았습니다.

이다경 (이하 이) : 제가 생각하기에, “청년의 파편화”가 현시대의 청년세대를 정의하는 단어인 것 같아요.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 느낌도 있지만, 다시 말하면 개인주의의 심화라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사회, 또는 사회 문제와 분리된 개인이라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파편화”에요. 개인적 측면에서는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지만, 공동체적 측면에서는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죠. 사회 구성원들이 (사건에 대한) 반성이나 고찰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사회는 변화 없이 정체되거나 퇴화합니다.

김민석 (이하 김) :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청년세대는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막 사회에 입문한 사회초년생이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내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 여유를 잃어버리니 주변에 신경을 쓸 수 없어 “청년의 파편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저희 학교의 경우만 하더라도 운동권 총학이 붕괴되고 난 후 노학연대체 ‘모닥불’이 결성되기 이전에는 학내 문제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임을 결성하고 각자 관련된 집회에 따로 참여하는 ‘파편화된 대응’에 머무르는 정도였어요. 당장 운동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도 파편화가 되면 문제가 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역량이 없습니다. 즉 파편화되어 싸우면 이길 수 없어요.
 

여유가 없는 청년들

앞서 청년세대의 파편화에 대해 질문을 드렸을 때, 그 원인으로 ‘청년들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한 생각을 여쭤보았습니다.

이 : 기성세대는 “요즘 청년이 과연 열심히 살아가는가?”에 대해 의문점을 많이 가지는데, 저는 충분히 열심히 살아간다고 봅니다. 현시대의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직업과 회사를 고민하고 취업하려는 기업에 맞는 스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요. 학내 커뮤니티를 보더라도 기업의 서포터스, 홍보대사에 대해 질문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요. 저는 1학년 때 새내기인 동기가 공모전에 나가 수상하면 대단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보편화되었어요. 생각보다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게 어렵지도 않다 보니 좋은 공모전에 출전하여 하나라도 상을 더 받으려 경쟁하게 되었죠.

너무 과도한 노력을 청년에게 요구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어요. 요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생산적 활동을 중시하고 그렇지 않은 활동에서도 생산적 가치를 찾는 강박이 심해요. 저도 그렇고요. 저는 후배들에게 어떠한 활동이라도 다 해보라고 하는데 후배들은 괴리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어떤 활동이든 “그게 취업하는 데 쓸모가 있나요?”부터 생각하게 되니까요. 여행을 가더라도 결과 면에서 더 괜찮은 곳을 가려하고, 쉬더라도 결과물이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아요. 사실 쉬는 건 결과물이 없어도 되는 활동이잖아요. 그런데 청년들은 그렇지 않아요. 여행을 예로 들자면 산티아고 종주, 제주 올레길 종주, 이런 활동들을 선호하더라고요. 결과가 눈에 보이는 활동이니까요. 자소서, 면접에서 “공백기 때 무엇을 했나?”를 주제로 많이 물어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김 : 제가 생각하기에 현 청년정책의 문제는 갈수록 청년들이 (취업, 여가활동 등을 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청년들에게 잃어버린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봐요. 갈수록 취업률은 감소하니 학점 관리하랴 취업 스펙 쌓으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쉴 여유도 없는데, 여유를 늘려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경기도에서 청년 배당을, 서울시에서 청년 수당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보조금을 넘어 (다양한 방면에서) 잃어버린 기회를 되찾아 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 봅니다.
 

“학생사회의 파편화”를 말하다

다음으로, 청년세대가 주로 속해 있는 학생사회의 파편화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았습니다.

이 : 실제로 학생사회에서는 정치와 학내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바로 이것이 “청년의 파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볼 수 있어요. 저희 학교의 경우에는 5.18 망언을 한 동문인 김순례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가 철회한 적이 있는데, 그 성명이 정치적 행동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 이전에 “우리 학교에서 관련 분야(정치)에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그 성명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충격과 공포죠. 정치와 ‘나’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저는 오히려 대학생일수록 ‘정치화’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정치인들의 청년, 대학생에 대한 인식이 바뀌죠.

또, 청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대표적 사례로 강사법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사법이 시행되면 원래 시간강사로 일하던 분들이 대폭 감축되면서 자연스럽게 교수의 업무는 가중되고 강의의 개수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개편이 될 것인데, 결국 피해는 학생들이 받아요. 저는 이게 입법부와 현장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봅니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단편적인 법률 개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또한 (이 개정은) 미봉책이에요. 이로써 수업이 줄어들고 교수 개개인의 업무가 증가하면 교육현장이 받을 충격이 큽니다. 고용을 유연화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대체 누구를 위해 강사법이 개정되는 것일까요?

김 : 대학(University)은 라틴어로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교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학생이 되어야 맞지 않을까요? 또한 대학은 학교가 속한 큰 사회에 영향을 미쳐 바꾸어 나가는 작은 사회가 되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몇 주 전에(인터뷰를 진행한 5월 기준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경비원 한 분이 근무를 하시다가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닥불’은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대자보를 학교 건물 외벽에 붙였는데, 교직원이 대자보를 떼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때 “(대자보를 부착할 때) 허가를 받았나?”라는 질문을 다른 학생들에게서 받았습니다. 즉 “대학도 사유재산이 아닌가”라고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것인데, 여기서 저는 학생들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인식하며 적응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에게 정치는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치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을 여쭤보았습니다. 한 분은 정당에 가입하여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셨으며, 다른 한 분은 학교 내에서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노학연대체를 결성, 운영하였습니다.

이 : 저는 모 당에서 대학생위원회 활동을 했는데요.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기성 정당이) 청년 정치에 대한 열망을 그저 소비하고 구색 맞추기로 청년들을 행사에 동원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동원하는가?”가 의문이었어요. 대학생위원장이 할당된 인원수만큼 사람들을 모아주는 역할만을 하고 외양만 청년 정치를 띄어 표리부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의 영역을 침해 받더라도 투쟁하여 기성정치를 바꾸는 활동은 필요한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정당 단위가 아닌) 개인, 동아리 단위로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다수 청년들이 학생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학생자치기구를 통해 정치를 느끼고 배우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동생만 하더라도 총학생회의 활동을 보고, 총학생회에 들어가면서 투쟁과 사회에 대해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고 활동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배우더라고요. 혹은 청년 내에도 남자, 여자, 노동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지요. 공통적인 정체성을 가지는 동아리를 만들어 생활정치를 실현하면 자연스럽게 (동아리의 구성원들이) 국회의원의 주장, 제도, 정책 등과 같은 제도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생각되어요. 바로 그것이 “청년의 파편화”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라 생각합니다.

김 : ‘모닥불’의 운영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은, 학내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가 학생들과 무관하지 않으며 행동하면 바뀐다는 점을 다른 학생들과 끊임없이 말하며 공유하여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일례로 현재 홍익대학교 경비노동자가 처한 문제는 대표적으로 임금 삭감 반대 투쟁, 경비 인원 감축을 병행한 경비초소 단계적 폐지 및 무인 경비 시스템 도입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과 투쟁 상황을 글로 써서 게시판에 공유하였는데, 댓글로 “돈이 없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혹은 “반응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라는 의견이 많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현재 경비 노동자분들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묻는 글을 다음으로 올렸습니다. 거기서 나온 의견으로 “불친절하다.” “경비실(근무지)에서 주무시는 것을 봤다”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의견을 받은 뒤 저희는 긴급 경비 직무교육을 소집하도록 하여 학생들의 의견을 경비 노동자분들에게 전달하고 학생 응대 등의 사항에 대해 숙지하는 시간을 가지고, 이를 알리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앞서 제시한 문제들이 경비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며 우리들의 우리 학생들의 안전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라는 글을 올렸더니 더 이상 부정적인 의견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운동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어야 우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대중적으로, 눈 앞의 문제부터 학생들과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글을 닫으며 : 누군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저와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공감되는 부분이 무척 많았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가 이전보다 사회에 대해 관심이 덜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세대와 비교하여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각박하고 여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청년 모두가 무관심한 것은 아니며, 누군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앞으로 나아가는 데 공헌하고 있습니다. 또한 촛불 혁명에서도 보았듯이 청년들은 부당함에 분노할 줄 알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무관심으로 그저 일관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청년의 정치 참여가 낮다고 청년에게 그 책임을 지우기 전에, 오히려 청년들이 정치에서 효용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실망해 참여를 꺼리게 되어 참여율이 낮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참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