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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공 현지에서 보내는 칼럼] 내 편만 있는 광장(2) 혐오.분리.배제의 정치: 남아공 국민당과 한국당, 장영욱 박사
[남아공 현지에서 보내는 칼럼] 내 편만 있는 광장(2)
혐오·분리·배제의 정치,
남아공 국민당과 한국당
[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가끔은 투박한 표현이 진실을 가장 가깝게 표현하기도 한다. 궤도를 이탈한 듯한 자유한국당의 망발을 여기 멀리 남아공에서 지켜보자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촌평이 딱 맞아 보인다.

“개도 자기 밥그릇을 뺏으면 주인이라도 문다.”

개에 물린 주인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몰려가 “자유한국당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5월 22일 현재 기준 청원자가 180만명을 넘어섰다.

일전에 남아공의 현재 정치상황이 한국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글을 썼었는데(링크), 이번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사태를 보면서 오히려 1990년대의 남아공 국민당 (National Party)이 더 많이 떠올랐다. 이번 글에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국민당의 역사를 간략하게 되짚어 보며 자유한국당의 미래를 짐작해 보려 한다.
 

아파르트헤이트 정당의 퇴장

국민당은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47년간 장기 집권한 백인우월주의 극우정당으로,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실행한 바로 그 정당이다. 48년 집권 이후 수십 가지 법안을 통해 인종분리를 시도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전체 인구를 백인, 흑인, 컬러드, 인디안의 4가지 인종으로 분류한 주민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 인종별로 거주지역을 정해 강제이주시킨 집단지구법(Group Areas Act),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한 혼종결혼금지법(Prohibition of Mixed Marriages Act) 등이 있다.

아파르드헤이트 시절 인종차별주의의 징표들

국민당은 전체 인구 90%에 달하는 흑인 및 유색인종의 투표권을 박탈하여 권력을 장기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이기지 못하고, 93년 헌법 개정을 통해 모든 인종에게 동일한 선거권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열린 총선거에서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 ANC)가 흑인 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다수당이 되고, 처음으로 흑인정권이 세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줄곧 백인우월주의를 주창하던 국민당이 94년 선거에선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고 2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당시 백인 인구가 전체의 9%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10% 이상 유색인종의 지지를 받은 셈이다. 심지어 국민당 당수 프레드릭 데 클러크는 비상한 정치력을 보이며 ANC와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부통령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오월동주라고 흑인정부와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또 다른 보수정당 민주당 (Democratic Party, 현 제1야당 DA의 전신)의 활약에 국민당은 점점 존재감을 잃어간다. 이에 국민당은 1997년 당명을 신국민당으로 바꾸고 재도약을 도모해 보지만, 인종분리 정책을 주도했다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99년 총선에서 6.9%, 2004년 총선에서 1.7%의 득표율을 올리는데 그치고 만다. 결국 2005년, 신국민당은 해체되고 아파르트헤이트를 주도한 사람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아파르드헤이트 반대 집회와 국민당 당수 프레드릭 데 클러크(위)
 

혐오와 분리, 배제의 정치

자유한국당을 보며 90년대의 국민당이 떠오른 이유는, 혐오와 분리가 얼마나 자주 정권 유지의 자양분으로 사용되는지, 또 그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가 두 사례에서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국민당이 인종차별주의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면, 자한당은 반공주의를 통해 지지세력을 규합해 왔다. 둘 다 “흑인” 혹은 “공산주의자”라는 범주 안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범주 안과 밖의 우열을 나누어 차별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이 분리는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 세계인의 지지 아래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진 직후에도 국민당은 20% 넘는 지지를 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을 망쳐놓고 퇴진했는데도 자한당 대선후보가 25% 가까이 득표한다.

그러나 낡은 세계관은 결국 도태하고 만다. 국민당이 점점 지지를 잃고 11년 만에 완전히 소멸한 것처럼, 내년 총선이 될지, 그 다음이 될지 모르겠지만 자한당 역시 곧 사라질 것이라 본다. 더 이상 반공주의와 같은 철 지난 색깔론은 힘을 못 쓰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물론 자한당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혐오와 분리의 뿌리까지 함께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다. 특별히 세계화는 저출산과 맞물려 우리나라를 급속도로 이민 사회로 바꿔갈 텐데, 예멘 난민 사태에서 보았든 우리는 (비백인) 이민자를 수용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낡은 정당이 나와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을 도모하려 할 수도 있다. 지금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극우 민족주의의 득세가 한국의 미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회를 관통하는 혐오와 분리, 차별과 배제의 정서는 정의당을 비롯해 모든 진보세력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다. 자유한국당은 국민당과 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만, 성별이, 부의 수준이, 피부색이, 종교가, 언어가, 문화가 다른 이들을 “환대하는” 사회로 우리 문화를 바꿔가는 작업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에필로그

여담이지만, 필자는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에 참여하지 않았다. 청원에 동의한 분들의 취지엔 백분 공감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어떤 경우라도 정부가 정당을 해산하려 시도하는 것은 끔찍하고 반민주주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전 그 끔찍한 일을 주도한 사람이 현 자한당 대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요즘 목놓아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 “내 편만 있는 광장”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이성을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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