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타임스(레디앙 공동) 2019-08호] '언더도그마'에 대한 청년들의 환멸감 확산의 배경은?, 류호성 기자
'언더도그마'에 대한
청년들의 환멸감 확산의 배경은?
[청년기자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에 반발도
 
    2019년 05월 15일 10:41 오전
 

청년·청소년 관련(주체 혹은 주제) 기고 등의 기사에 대해서는 <오재영추모사업회>에서 원고료 일부를 지원 받아 지급한다. 고 오재영 동지가 진보정당의 조직사업에 오래 종사했으며, 진보는 청년·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발언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번 달의 관련 기사들은 정의정책연구소의 청년기자단에서 보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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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마는 약자가 항상 ‘선善’이며 강자가 항상 ‘악惡’이므로, ?언제나 약자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념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온라인을 통해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취재하고자 한다.
 

언더도그마는 이제 외면 받는가
 

술로 외로운 밤을 지새우는 가난하고 병든 독거노인, 그리고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부족할 것 없이 살아가는 청년. 어느 날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만나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전후 사정을 모를 때 당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 아마 연약한 독거노인에게 동정과 연민이 향할 것이다. 어르신이 오죽했으면 목청을 높였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약자를 향해 전적으로 온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정서를 사람들은 ‘언더도그마’라고 부른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이러한 정서에 익숙하다. 본인 스스로는 약자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약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최소한 모질게 굴지는 말아야 한다는 정서가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미 없고 비정한 사람일 뿐이다. 반면 부유한 사람,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부족할 것 없는 사람,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못한 선입견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2010년대 청년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정서는 놀랄 만큼 이와 다르다. 일베저장소와 같은 극우사이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청년들은 더 이상 약자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선량하다고 믿지 않으며, 동정심을 품지도 않는다. 더 이상 ‘인간극장’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인간미 넘치는 선량한 약자의 모습을 믿지 않는다. 가히 극적인 변화라 할만하다.
 

방문자수 상위 20개 커뮤니티(2018년 8월). 청년층이 주로 사용하는 이들 커뮤니티는 모두 언더도그마에 부정적이다.
 

이러한 의식은 청년층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엠엘비파크, 네이트판, 에펨코리아, 웃긴대학, 개드립 등의 커뮤니티에서는 여지없이 언더도그마에 대해 반발심을 표하고 성토하는 글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글들에는 대체로 옹호하는 댓글이 달린다. SilmilarWeb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문자수로 보면, 2018년 8월 현재 해당 커뮤니티들은 모두 커뮤니티 기준 월간 누적 방문자수 15위권 안에 드는 대형 커뮤니티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루리웹의 댓글들
 

예컨대 온라인 커뮤니티 루리웹에서는 2018년 9월 6일에 ‘언더도그마에 빠진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가더라’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에는 “약자는 야비하고 강자는 오만하다”, “내 경험으로는 가난할수록 악한 놈들 비율이 많았음”과 같은 약자에 대해 성토하는 댓글이 달렸다.

적나라한 불쾌감을 낳은 약자에 대한 경험들

이러한 변화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청년층에겐 더 이상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가정이 통용되지 않는다. 종래에는 “강자는 힘이 있는 대신 오만하고 포악하지만, 약자는 힘이 없는 대신 선하고 인간미 있을 것이다” 등지의 가정이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 식으로나마 강자와 약자에게 똑같은 양의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가정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인 약자들의 편을 들어주고,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진보적 의제와 손쉽게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믿음에 금이 간 것이다.

저소득층 노인의 낯설고 권위적 모습에 거부감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 @전국자원봉사연맹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청년들은 이렇게 성토한다. 기성세대에게 배운 대로 약자에게 동정심을 갖고 접근했더니, 도리어 그들이 쉽게 보고 거꾸로 갑질을 하려 들더라고 말이다. 예컨대 온라인 커뮤니티 ‘웃긴대학’에 올라온 ‘공익하는데 너무 힘들다… ’라는 게시글에서 글쓴이는 술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본인이 챙겨오지 않은 서류에 대해 심통을 부리고 화를 내는 노인들에 대한 불쾌감을 성토하고 있다.

이러한 약자들의 면모에 대해 문성원 교수(부산대 문화철학)는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로 피해의식과 공격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경제적 기반이 있고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나름의 예의와 문화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난한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약자를 일상적으로 대하는 청년들에겐 약자는 인간적인 만큼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태도, 불결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불쾌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이미지는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약자는 선하리라는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이러한 가정을 중요한 토대 중 하나로 삼고 약자 보호를 외치던 진보주의의 입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의 인기 게시글
 

보다 더 우울한 징후는 약자는 적극적으로 도태시켜야 한다는 의견마저도 진지하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유머 커뮤니티인 ‘네이트 판’에는 ‘더치페이 하면서 남자 만나지 마’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어려움에 처해 있고 힘 약한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 글은 많은 추천을 받고 인기 게시글에 올라왔다.
 

배려를 강요하고, 이익에만 치중한다면 따르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청년층 사이에 번지는 언더도그마에 대한 환멸감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와 다른 또 하나 중요한 요인으로 청년들은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거부감’을 꼽았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는 언더도그마에 대해 환멸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20대 후반이라고 밝힌 웃긴대학의 한 회원은 언더도그마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계기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해 “정치적 올바름처럼 도덕을 강제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불쾌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이 회원에 따르면 배려를 강제로 요구하는 모습은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집단들 자체의 판단력과 공정성을 불신하는 모습도 있었다. 취재 중에 축구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의 한 회원은 “워마드를 방치할 정도로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여성에 관대하다”고 말했다. 똑같은 혐오 발언인데, 이에 제동을 걸어주어야 할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등이 그렇지 못하고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의견에 따르면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하여 계속해서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논하려 하는 진보진영의 모습들이 특히나 이러한 의혹을 더 부추긴다. 인터뷰에 응한 웃긴대학 회원부터 수많은 네티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집단이 솔직하지 않으며, 다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러한 집단들 스스로의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바라는 것도 문제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확대가 국가 경제에 큰 효율성을 주고 사회적으로 이득을 안긴다는 식의 논리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의견도 보였다. 경제적으로 이득을 안길 힘이 없는 집단에게 이런 메시지는 더욱 큰 반감을 안길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부를 창출할 수 없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약자, 즉 ‘돈이 되지 않는’ 약자를 다름 아닌 진보진영이 외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는 상당히 폭력적인 함의를 가진 것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약자는 도와야 한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약자들, 특히나 사회구조적으로 지배권력에 다가갈 가능성이 낮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진보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진보는 바로 그 점에서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이 진보 메시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약자에게 전가한다는 기성 진보의 가설도 청년들은 현실감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웃긴대학 회원은 “예전부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정치적 올바름에 거부감을 갖게 된 지금도 변함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언더도그마 및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담론이 주는 환멸감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러한 담론이 신뢰를 잃으면서 청년들도 동요하고 있다. 약자를 항상 선한 피해자로 두고, 강자를 항상 악한 가해자로 두는 발상은 도리어 그렇지 못한 약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길 수 있다. 약자들의 삶은 혼란스럽기 때문에 돌출적일 수 있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스스로 그다지 공정하게 느끼지도 못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받는 데에 지쳐있다.

프랑스의 윤리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재화나 지위를 두고 경쟁하는 문화를 넘어서서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려는 태도가 절실하다고 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권력이나 부, 이익 등을 우리 속에 담아둔다면, 타자를 대할 때에도 그것 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정치적 올바름을 통해 새로운 타자, 다양성을 갖춘 사회, 힘을 얻은 약자를 강조하더라도 그런 정치적 올바름 논의를 전파하는 이들이 지위나 이익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약자로서의 타자들에게 그다지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없다. 똑같이 갑질을 일삼고, 경쟁에 집착하고, 패배한 사람을 깔보는 이들이 될 뿐이다.

부산대 문성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레비나스의 사상은 타자에게서 우리와 같은 것, 즉 서로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하는 면들을 보지 말고, 우리의 한계 너머를 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청년들이 냉소적으로 변한 지금도 여전히 약자를 냉대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또 모든 고통을 약자들에게 전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청년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옳게 발휘할 기회를 찾고자 한다. 인간의 나쁜 측면에 매몰되려 하지 말고, 선한 측면에 기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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