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이 판치는 연구실의 밤
: 사회생활의 모든 편법을 가르쳐준 대학원 잔혹사 시나리오
취재 및 구성: 슈니박 기자
- 다음 기사는 한 이공계 대학원생을 인터뷰 한 후 그의 동의를 얻고 내용을 시나리오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학기 당 700만원 수강료를 주고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크게 1막, 2막, 3막으로 나눴다.
등장인물
대학원생 A (앞으로 원생A로 지칭)
공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학문을 탐구하는게 즐거워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나 그로 인해 곧 시련에 맞닥뜨린다.
교수B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해외 유명 회사 미국지사 경영진을 역임했던 엔지니어 출신. 이번학기부터 정교수로 특별채용되었다.
협력업체 사장 C
교수B씨의 학부 선배이자 업계의 사장. 교수 취임 후 후배인 B가 프로젝트를 따는데 도움을 준다.
동료들
졸업 후 취업이 안되거나 인간적인 환경의 직장에 자리잡기위해 대학원에 들어왔다.
0막. 프롤로그_ 교수임용의 한국적 특수주의
S# 0.1.
[학교 근처 카페] 원생A와 동기들의 모임
동기A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우리과 세명이 모이면 땅이 꺼진다는데.. 넌 이제 졸업하고 뭐할꺼냐?
원생A 학부 때 배운 전공지식만으로는 깊이가 얕아서 사회에서 전공을 전문적으로 살릴 수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우리과는 취업도 어렵고.. 나도 시험용이 아닌 제대로 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 그래서 대학원 어디로 갈지 고민중이야.
A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번 학기부터 새로 부임한 교수 B씨가 보낸 메일이었다. 대학원 입학을 권유하는 내용으로 그에게 상담을 하러오라 하였다.
S# 0.2. 오픈 마인드 해외파 교수님
[교수의 새 연구실] 신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간 A
교수 B (2시간 동안 현란한 ppt와 수많은 영어자료들을 보여주며) … 나는 해외에 있으면서 이런 대형 프로젝트들을 했었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이 많으니, 연구하고 싶은게 아직 뚜렷하지 않다면 다양한 공부를 할 수있도록 도와주겠다. 너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교수에게 인사를 마치고 연구실 문을 나오며
원생 A (생각에 잠기며) 다른 연구실들은 분위기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 교수는 해외경험이 많아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것 같다. 밑에서 열심히 배우며 경험을 쌓는다면 교수 처럼 해외로 갈 수있는 실력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훗날 벌어질 일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해 A씨는 정식으로 그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만다...
S# 0.3 후일담
원생 A (씁쓸한 어조로) 사실 해당 교수의 전문분야는 학교가 임용한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다른 명문대와의 경쟁을 위해 실질적인 실력과는 무관하게 채용되었다는것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대학원에 입학한 뒤의 일이었다.
나레이션_ 미국과 한국의 교수임용은 어떻게 다를까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1960년대 과학자 사회가 과학지식을 생산해내는 이상적인 기준과 절차를 제시하였다. 그 중 보편주의는 과학활동에 있어서 성, 인종, 계급 등의 특수주의적 가치를 배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지식의 사회적 공유와 확대를 위해 과학활동에서 성, 인종, 게급 등의 차별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대학의 교수임용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는 한국이 교수채용과정에서 미국에 비해 훨씬 특수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분석하였다. [1] 미국 대학의 교수채용 과정에서 그러한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대학 교수채용과정의 경우 학벌주의와 성차별, 임용과정의 불투명성, 인맥과 학과내부 정치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용 교수는 그의 저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평가의 심도가 상대적으로 얕은데, 이는 지원자를 깊이 있게 평가할수있는 전문가가 적기 때문이며 이는 소규모성과 연관된다. 한국대학에서 교수 임용 평가 경험이 있는 교수 22명 중 지원자들의 논문을 상세히 읽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논문의 수와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명성 또는 인용지수였다.” “이러한 양적 실력주의와 더불어 대학의 글로벌주의는 대학순위에 매우 중요한 영어 논문을 잘쓰고 영어 강의가 가능한 후보자를 교수로 임용하게끔 한다. 이러한 기준은 특히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보자에게 유리하다”
”교수임용과정에서 인맥은 중요한 변수다.. 한국과 미국 모두 학벌이 교수 임용에 작용하지만, 출신 ‘학부’의 파벌이 교수 임용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국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연고주의 (서울대와 ‘자대’ 사이의 갈등, 서울대와 비서울대의 갈등 등)는 교수 임용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2]
1막_대학원에서 가르쳐준 국가연구 방법론 가이드
1막_0장. 프로젝트 탄생비화
신생 연구실은 연구생들의 학비, 생활비와 급여 등의 자금을 조달에 필요한 연구과제부터 우선적으로 확보해야한다. 교수B씨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민간기업 한곳과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민간기업은 국가예산지원을 받기위해 이론적 정당성을 확보해야했다. 동시에 대학연구실은 연구실을 운영할 자금이 필요하기에 둘 사이에 경제적 공생관계가 성사되었다.
#’나레이션_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설문대상 기업의 32.5% 정도는 협력 자체가 목적 이라기보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산학연 협력과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3]
그러나 국가지원 프로젝트로 채택되기 위해 ‘4차산업기술의 사업화’을 핵심키워드로 무리하게 과장된 연구계획서가 심사에 통과되면서부터 일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1막_1장. 연구실 편
S# 1. 스마트 4차 산업시대의 非스마트 연구
[불켜진 연구실의 밤] 며칠째 과제제출보고서를 열심히 작성중인 교수와 학생.
교수 B 프로젝트가 통과하기 위해서는 4차산업기술, 스마트화를 계속해서 언급해야해. 모든 문단에 4차산업이란 말을 집어넣어라.
원생 A (고개를 저으며, 마음의 소리) 지금 분야가 4차산업기술이랑 잘 맞는지 모르겠네...이렇게 써도 되는건가? 하긴 나도 4차산업기술이 뭔지 잘 모르고, 교수님께서 해당 분야를 더 잘 아시겠지.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나레이션_과학기술의 정책적유행
2018년 정부 R&D예산 중 과학기술분야에 6조 920억원의 가장 많은 예산이 편성되었다. 전년대비 0.6프로 증가한 규모이나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예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줄어들었다. 2018년 기준 1.52조원의 예산이 4차산업혁명 기술개발 투자에 배정되었다. AI(30억원), IOT(47억원), 블록체인(45억원)등 단기집중투자를 통해 기술 상용화를 지원하는 민학 협력과제가 전낸대비 37%이상 증가했다. [4]
얼마 뒤 프로젝트가 통과된 후
교수 B (마음의 소리) 지금 연구를 수행할 인력이 없긴한데..다른 연구실에 있는 전문가를 찾아볼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연구비를 나눠야 하고.. 또 학과 내 영향력 확보를 위해선 연구를 독점해야한다. 다른 연구실에게 이 프로젝트들을 넘기면 안돼.
교수는 원생A를 불러 지시한다.
교수B (자신은 잘모르니) 우선 해당 4차산업기술이 뭔지부터 너가 조사부터해봐라.
프로젝트가 진행되어가면서 A는 고민이 깊어갔다.
원생A (혼자 책상앞에 한숨쉬며) 솔직히 교수님 전문분야는 프로젝트의 핵심기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신다. 앞으로 공부할 생각도 딱히 없으신것같다..조언이라고 가끔 해주시지만 솔직히 일에 방해만 된다. 프로젝트가 끝날때까지 몇년 동안 이런 짓을 해야하는건가..
1막_2장. 회사 편
S# 2. 공식적 행정 업무: 연구실의 기업하청화
민간기업이 연구프로젝트와 연구자금을 제공해주는 댓가로 연구생들은 기업의 행정업무를 대신 수행해야했다. 국가에 제출해야 되는 서류는 엄격한 행정절차에 따른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행정시스템 자체를 파악하는데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할수 밖에 없었다.
나레이션_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연구 평가 방식은 해마다 평가하고, 세부 항목까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체로 5년 단위로 평가하고 큰 틀의 평가가 이뤄진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은 그렇게 해야 하지만 큰 틀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5]
#막간타임_ 행정과 함께 춤을
쉬는 시간 대학원생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원생 A (담뱃불을 붙이며) ...하루의 연구실 일과는 대부분 행정업무로 보내고.. 기업일 뿐만 별도로 학교의 행정업무, 조교장학금을 위해 교수님 수업보조 업무도 수행해야하니까.. 진짜 개인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동료 1 (피식 웃으며) 전에 있던 연구실에서도 똑같았어. 뭐 그래도 여기 교수님이 받은 돈을 다시 뺏거나 그런건 전혀 없잖아? 이정도면 진짜 좋은 교수님이지. 뭐 원래 다 그런거 아니야?
나레이션_ 국내 많은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은 별도의 행정담당직원 없이 모든 회계, 예산, 집행 서류를 작성, 관리하는 행정노동을 감내하고 있다.
동료 2 동기가 있는 다른 연구실은 평가점수가 높은 외국저널에 많은 논문을 싣으려 외국학생들의 논문작성에 한국학생들이 동원된대요. 그래서 다들 오래못가 그만두더라고요. 우리교수님은 그정도 까진 아니니까 뭐..
(쉬는시간 끝) 일동 연구실로 돌아간다.
나레이션_을 중의 을인 연구노동자 대학원생
대학원생은 연구자이자 노동자인 중간적 존재이다.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1997년 당시 과학기술처가 도입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는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만든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PBS는 연구 수주와 예산을 연계시켜 연구비 안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처리하도록 한 제도다. 즉 연구과제에서 인건비가 나오다 보니 대학원생은 자신의 연구주제와 관계없는 과제를 맡거나 행정업무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신 사무국장은 “PBS때문에 내가 하고픈 연구를 하고 싶어도 프로젝트 목표나 방향성에 따라서 다른 일을 하게 된다. 노동자의 특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6]’ 이와 더불어 2000년대 이후 “기업이 의뢰하는 용역 연구 형태로 진행되는 산학협력에서 교수는 연구비를 제공하는 기업에 무기력한 ‘을’의 입장”이 되기 쉬운 환경에 있다[7].”
이런 두가지 현상이 결합된 결과, 교수는 기업의 을이되고, 교수 밑의 대학원생은 교수의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결국 대학원생은 이중적 을의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S# 3. 산학카르텔을 위한 유지보수
학부 선후배 간 인맥으로 출발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기업은 교수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싶어하했다. 의견충돌이 발생했을때에도 교수와 직접 논의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기싸움이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회사 회의실]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시일이 지체되는 상황
사장 C (연구생들에게 질책하며) 도대체 일처리가 왜이리 늦어지는거야?
원생 A :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런데 해당부분은 회사측과 제작업체가 직접 계약관계이므로, 회사측에서 직접 처리하시는게 훨씬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사장 C 야, 돈도 주는데 다 해야할거 아냐? 우리 예산으로 편성된거 너희 연구하라고 떼준건데, 이제 일까지 우리보고 다 하라는 거야? 난 돈 줬으니까 너희가 알아서 처리해.
원생 A : 교수님께서도 회사가 처리하는게 맞다고…
사장 C : 내말을 뭘로 들은거냐? 알아서 해라고.
원생 A : ...네 알겠습니다.
[연구실] 회의에서 돌아와서
원생 A: (다시 야근하며 혼자 넋두리) 사장과 교수 사이에 끼여서 새우등 터지는 꼴이네…일이 진행이 안되어서 가만히 욕먹는게 야근보다 더 힘들다. 회사정보를 몰라서 내가 대신 할수 없는 일인데. 그런데 왜 자기들끼리 싸워서 일이 진행안되는걸, 나보고 빨리하라는데 뭘 어쩌라는건지.
나레이션_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대한 접근성과 네트워크가 미약하다. 기업과 학연과의 의사소통은 시스템에 의해 이루지기보다 개별 기업의 연구개발 담당자와 학교 및 연구소의 교수나 연구자 와의 개인적인 관계나 비공식적인 접촉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다.[8]
1막_3장. 프로젝트의 생존후기
S# 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잡음 속에서 결과보고서 제출기한 직전까지 연구는 결국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복잡한 용어와 추상적인 표현들로 최대한 채워넣어 마치 한편의 철학 작품을 보는 듯하였다. 표현상의 모호함으로 객관적 평가가 어렵도록 만들 목적이었다. 목표데이터와 최대한 일치하도록 데이터 핸들링도 수행하였다.
원생 A : B형, 현재 데이터가 없어서 데이터 분석결과 자체를 낼 수가 없어요.
동료 B : 넌 지금와서 무슨 소리냐? 그럼 보고서 안낼거야? 그래 데이터 없어서 분석안된다고 해봐바. 그러면 연구비 짤리고 너는 내년에 돈없이 생활하는 거지. 하고싶으면 해.
원생 A : 아닙니다...적당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렇게 A는 어떤 데이터인지도 모르는 데이터를 1000개 정도 만들어 분석결과까지 만들었다. 분석과정은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분석할 데이터 자체가 가짜이기 때문에, 제대로된 분석이라 하기 어려웠다.
원생 A (제출직전 완성된 보고서를 띄운 모니터를 바라보며 신음소리) 어떻게 보면 합법적인 선안에서 이루어진 사기와 데이터 조작이라고 할수도 있는 수준이 아닌가..
다행히(?) 연구평가자들중 해당분야의 4차산업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관심있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당 4차산업기술의 구체적 원리와 응용가능성 여부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건 그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4차산업기술 키워드가 붙은 프로젝트를 실제 적용가능성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 승인한 것 또한 모두 서로 알고 있었다.
나레이션_ ”우리나라의 인력 풀이 적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기 힘들다. 흐리멍텅한 평가가 많고 연구성과가 좋으면 불법도 넘어가는 문제가 있다.” [9]
S# 5. 해피 혹은 새드엔딩
[연구실 책상앞] 프로젝트가 승인 된 뒤 예산보고서를 작성하는 A와 연구실 동료.
원생 A : (모니터를 멍하게 보며, 마음의 소리)이게 통과를 하다니..다른 곳도 원래 다 이런건가?
동료 B : A야 멍때리지 말고, 우리 다음 년도 프로젝트 예산을 짜야하는데… 어디 해외가고 싶은 곳 없냐? 거기 학회 중에 우리랑 관련된거 있는가 알아봐. 기왕이면 유럽쪽가게, 유럽권으로 알아봐.
원생 B : 관련된 학회가 있을까요?
동료 B : 아니, 일단 뭐 우리도 아는게 없으니까. 근데 예산은 짜야할거 아냐. 뭐… 요즘 다 해외학회 놀러가려 해서 나라에서 통제하긴 하는데, 일단 써봐야지.
원생 B : 네…
다행히도(?) 해외학회 예산은 당연히 짤렸다.
결국 A는 해당 첫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돈으로 연구없이 연구하는 법’을 성공적으로 배울수있었다.
2막. 대학원에서 가르쳐준 개인적 연구방법론 가이드
S# 6. 강의실에서_현장과 이론사이
대학원 문을 처음 두드릴때 A는 학문적으로 좀더 심화된 공부를 하고싶었고 교수의 풍부한 경험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싶었다. 교수는 학생을 응원하며 여러가지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수는 경력상 현장 경험이 풍부했을 뿐, 오랫동안 학계 경험이 없어 학문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였다.
나레이션_한국과 다른 미국의 교수채용
‘미국은 신임 교수 채용이나 석좌교수 임용 심사가 있을 때도 위원회가 구성된다. 해당 학과 교수와 관련분야의 타학과 교수, 단과대학의 학장이나 학생처장 등도 심의위원회에 참석한다. 특히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는, 학생과 교수를 상대로 한 공개강의 또는 세미나를 거의 대부분 개최하기 때문에, 학과전체의 반응이 심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많은 경우,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신규채용 교수 심사 위원회를 구성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출하고, 공식 위원회가 이를 반영하도록 촉구한다.’[10]
대부분의 강의는 뚜렷한 방향성 없이 자신의 경험담을 전달하는데에 그쳤다.
원생 A 교수님의 수업만으로는 논문에 나오는 해당 공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좀더 이론적인 기초에 대해 공부를 한 후에 접근을 해도 되겠습니까?
교수 B : 글쎄 그런걸 굳이 지금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너무 기본적인 거에 집착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챙겨. 다른 할 것도 많은데 너무 거기에 빠지면 안좋아. 일일히 설명해주긴 참, 학부생도 아니고..
원생 A : (말을 삼키며) 정작 학부생때 이런건 대학원가서 배운다고 가르쳐주지않았지. 지금 내가 뭘 모르는 지도 모르겠는데...아무리 공부는 혼자 하는거라지만 학기당 500만원(학부), 700만원(대학원)짜리 가르침이 최소한의 체계성도 방향성도 상실한것이라면 전문가 인력의 제도적 양성이라는 대학원의 거창한 명목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S# 7. 이거슨 융합인가 혼종인가_ 학제간 연구의 융복합 시대
A는 부족한 전공강의의 질을 다른 대학원 수업을 통해 보충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원생 A : OO연구실 학생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연구에 도움이 될것같아 듣고싶습니다.
다른과 교수 D 음 미안하지만 우리과 학생 말고는 안되네. 우리 분야가 다루는 것은 자네 과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그 시간에 자네의 분야에 집중하는걸 추천하네.
[연구실]로 돌아오자 교수님과 학생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교수 B 이번 대학원 수업은 우리 연구실 사람들끼리만 해야겠어. 다른 과 학생에게 우리 내용을 가르치려니 너무 번거롭고 불편하네.
[연구실을 나오는 길] 학교 복도에 붙여진 비판 대자보를 보며 A는 생각한다. 대자보는 <현재 학교는 융복합학문을 명목으로, 국가사업지원을 받은 융합학과들을 신규개설하면서 기존 비인기 학과들의 정원을 강제 삭감하고있다>는 지침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원생 A (한탄조로) 진정한 융복합연구는 융합학과를 새로 만들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학과들간의 교류와 소통을 촉진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회의 기술적 복잡성은 날로 증대해가는데, 단일 연구실에서 정말로 수준높은 상용화 기술을 단독으로 이뤄낼수있을까? 다층적 연구를 위한 네트워크의 제도적 촉진 시스템은 커녕 기본적인 배움의 공유와 이전조차 이루이지 않는 학문의 전당에서 4차산업 연구퍼붓기는 밑빠진, 아니 밑없는 독에 세금붓기로다. 오호 통재라..
S# 8. 좋은 사람들, 나쁜 연구자들
A가 속한 전공은 ‘문송’한 인문계열에 비해 취업이 잘된다는 공대에 속해있다. 그러나 A의 과는 비인기 전공으로 산업수요가 늘 보장되있지 않아 취업률이 정원의 절반 정도 뿐이었다. 때문에 학부 졸업후 바로 취업보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졸업생비율이 높은 편이다.
나레이션_ 전공에 따른 취업양극화는 보통 ‘문송’한 인문계열과 이공계의 격차 뿐만 아니라 이공계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취업이 잘된다는 공대 안에서도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평균 취업률은 최대 30%이상 차이가 난다. 흔히 전화기로 불리는 기계, 전자, 화공 분야가 8~90%대 취업률을 보이는 반면 생명, 환경 분야의 취업률은 60%대이며 이마저도 서울 상위권 대학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11]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인력 확보를 위해 취업이 안되는 졸업예정자들을 최대한 설득해 연구실에 일하게 하였다.
동료들 (마음의 소리로 합창) 교수는 무능하고 프로젝트가 개판인건 알지만.. 어쩌겠나 어떻게든 버텨서 학위받고 빨리 취업하는게 최선이다. 힘들어도 조금만 버티자..
이러한 연유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절차적 엄밀성보다는 결과적 효율성이 중시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문적 욕구를 가지고 '탐구적 연구자(enquiring researcher)'가 되고싶어하는 A씨와 같은 학생이 오히려 예외적 특이케이스로 몰릴 수 밖에 없다.
[혼자 남은 불꺼진 연구실]
원생 A (책상을 치며 좌절하며) 학문적으로 파고들려 할수록 오히려 답답하고 유능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주 취급받으니 너무 답답하다.. 학문을 하고싶어 대학원에 왔는데 하는 일은 회사에서 하는것과 별반 다를게 없고, 돈은 사회보다 훨씬 못받는다. 동료들은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들이지만..연구자로서는는 옳지 못한 사람들이다.
A는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이러한 혼란스러움으로 양가적 감정에 시달렸다.
3막. 대학원을 탈출하는 법_닫힌 대학원과 그 적들
S# 9. 전 과가 싫어 전과가 필요한지만 전 과를 바꿀수 없네요
대학원을 다니며 학문을 제외한 다양한 사회경험을 배운 A는 연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안에서 다른 연구실을 찾아보려하였다.
원생 A 그래, 그나마 기초연구에 가까운 자연대 연구실부터 알아보자.. 과사에 문의부터 해봐야겠다.
그러나 과사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다소 절망적이었다.
(통화중)
행정실 직원 ... 1년간 수료한 학점을 모두 포기하고 학비도 입학금부터 학기당 700여만원 등록금까지 전부 새로 지불해야 되요.
원생A 학점 승계가 안되나요??
행정실 직원 네, 학교 행정상 시스템때문에 어쩔수없어요. 현재까지까지 낸 등록금은 속해있는 학과의 예산으로 편성돼요. 그런데 만약 다른 학과로 전향한다면, 새로운 학과의 예산을 위한 등록금을 다시 내야되는거죠.
원생 A 제가 교칙을 찾아보니까 총장의 승인이 있을경우 전과가 가능하다고 명시되있던대요?
행정실 직원 그건 전공교수가 다른과로 옮겨서 어쩔수 없는 경우에만 승인이 되요. 다시말해 학생이 혼자 뜻으로 전과를 하는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에요.
원생 A ….알겠습니다.
(통화끝)
원생A 후우..교칙은 학생이아니라 학교를 위해 있는것이로구나..
나래이션_ 대학원 전과는 학부와 달리 제도적으로 잘 구비되어있지않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과제도의 미비는 폐쇄적 도제관계를 심화시켜 교수의 일방적 갑질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또한 학제간 연구를 가로막는 한가지 제도적 요인일 수 있다.
S# 10. 자연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도 생태계 다양성 보호 캠페인이 시급합니다
그러나 설령 새로 입학해 입학금과 등록금을 모두 지불한다 하더라도 행정적 문제 외에 더 근본적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의 타 학과 연구실들도 국가에서 주도하는 유행분야의 연구를 대부분 수행하고 있었다.
원생 A (학교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서로 다른 전공인데도 연구 주제가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다. 태양전지 아니면 4차산업..
나레이션_연구생태계의 다양성 상실의 한국적 원인
원래 유럽의 전통에서 대학활동 중 연구가 교육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후 미국은 정부가 천문학적 액수의 연구비를 과학연구에 지원하였다. 거대과학으로 불리는 중앙집권적 과학기술정책에서 ‘연구비는 특정 분야에 기초를 둔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결과를 내는 조건으로 지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부 연구비 수주는 주로 단과대 혹은 학과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이뤄졌으므로, 이들 연구 그룹은 학과와 밀접히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다(Slaughter, 1993; Larédo, 2003).’ 이러한 미국 대학의 경쟁체제를 수용한 한국대학에서는 경쟁력 강화를 명목으로 과별 연구성과 실적에 따라 예산규모 편성을 학과별로 차등 분배한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변화한 지식경제사회에서 미국은 몇몇 거대 연구소에 집중되던 ‘정부의 연구비 지원 규모를 대폭 줄이기 시작하였다. 대학연구는 지역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는 지방분권적 형태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지방의 대학들은 하나의 분야에 자신의 핵심 역량을 집 중하는 ‘특화된 연구중심대학’로 발전하는 동시에 그들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다른 대학, 연구기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러한 변화는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연결이 강조됨에 따라 단일한 거대 연구소 대신 여러 분산된 연구기관들의 네트워크 형성이 더욱 중요하게 된 과학기술 연구의 성격 변화를 반영한다[12].’
그러나 한국은 아직까지 정부의 연구 지원금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으며 국가주도의 탑다운 방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9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는 미국식 글로벌 경쟁체제를 도입하였으나 아직까지 정책적으로는 아직 과학의 민주화를 달성하지못하고 산업화 시절의 국가주의적 유산이 혼재된 상태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학과별로 고립된 경쟁상태 속 한정된 국가 지원금을 최대한 지원받기위해 결국 정권 입맛에 맞는 유사한 주제들로 몰리게 된다. 연구 생태계의 다양성 상실은 한국 기초연구 부실의 제일 중대한 원인중 하나일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민간 상용화 기술 발전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S# 11. 새드엔딩 혹은 열린 결말
결국 A는 하고싶은 연구를 위해 그동안 받았던 학점, 장학금을 모두 포기하고 타 대학교의 연구실을 알아보는 중이다.
원생 A : (연구실에서 몰래 다른 교수의 홈페이지와 논문실적 등을 뒤적이며) 이런 공식적 정보로 알수없는 정보들 즉 교수의 평판, 조직문화, 팀워크 분위기, 연구 성과, 월급 등... 사실상 핵심적인 정보들은 비공식적인 사실이라 인맥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으로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위해 가능한 최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지만 A는 아직까지 새로운 출발 장소를 선뜻 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원생 A : 아직 연구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해서 부모님께 죄송하다. 나이는 먹어가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만큼 결코 실수 없는 선택이 되어야하는데.. 새로 들어간 곳에서는 정말이지 또다시 같은 일을 다시는 겪고싶지 않다. 국내에 내게 기회가 주어진 곳이 남아있을까? 차라리 해외쪽으로 알아보는게..? 괜히 선배들이 영어공부 열심히 해놓으라는게 아니었구나..
나가며_합법이 판치는 대학원의 밤
[어두워지며] 무대에 혼자 남은 A의 독백
원생 A : (담담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내가 대학원에서 겪은 일들 중 대놓고 불법적인 것은 없었다. 바꿔 말하면 현재 한국의 대학원과 연구실에서 가장 흔하게 펼쳐진 합법적 지옥이었다.
새로운 무대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대학원생A는 쓸쓸히 자신의 무대를 퇴장한다.
무대 뒤_에필로그
대학원생에 대한 갑질, 폭력, 횡령 등의 뉴스들은 메인뉴스로 간간히 들려오고 그때마다 처벌과 감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우리사회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그러나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문제들은 교수 개개인에 대한 사법적 처벌과 신고기관 활성화로 사라지지않고 유령처럼 다시 돌아오곤 한다. 취업이 힘들면 대학원 진학자 수가 는다는 과거 통계도 이제는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이공대 대학원 진학자 수는 줄어들고 있으며, 지방대의 경우 외국인 학생들이 그 줄어든 수를 채워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해소하려고 정부는 이공계 석사·박사과정 학생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매달 기본 생활비를 지급하기로 하고 석·박사급 대학원생이 받는 학생 인건비 최저 지급 기준을 마련하기로 작년과 올해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엄밀한 질적 관리 없이 지원금 활당 방식의 현 산학연대 구조를 개선시키지 않고서는, 그리고 기술 다양성 확보를 위한 체계적 제도 마련 없이는 A와 같은 대학원생들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A씨들은 대학이 탐구적 연구자들을 위한 장소로 기능할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오늘도 연구실의 밤을 밝히고 있다. (끝)
[2] <지배받는 지배자,> 김종용, 2016
[3] 자료출처: <기업의 산학연 협력과 정책과제 보고서>,산업연구원,2016
[4] 자료출처: 2018 정부 R&D 예산의 주요 현황과 특징,한국과학기술평가원
[5] 기사출처ㅣ’정권과 유행바람 타지 않는 과기정책을 말하다’, 사이언스온
[6] 기사출처ㅣ ‘대학원생은 학생이자 노동자, 계약의 경계 명확해야 ‘갑질’사라질것’, 동아사이언스
[7] (이덕환, ‘가습기 살균제만큼 위험한 산학협력)
[8] 자료출처: 기업의 산학연 협력과 정책과제 , 산업연구원
[9] 기사출처ㅣ’정권과 유행바람 타지 않는 과기정책을 말하다’, 사이언스온
[10] ‘위원회에 권력 분산, 공정성 강조’, 교수신문
[11] 참고: 상위17개대 공학계열 취업률, 베리타스 알파
[12] 자료출처: R&D 환경변화에 대응한 대학내 연구조직 지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