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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장석준 칼럼] 文정부의 세 가지 '오판',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文정부의 세 가지 '오판'
[장석준 칼럼] 21대 총선까지 남은 1년, 촛불 시민의 마지막 충고
 
2019.04.09 08:21:41

20대 국회의 마지막 재보선이 끝났다. 정의당은 작년 7월 노회찬 의원이 떠난 이후 처음으로 환호했고, 자유한국당은 애써 패배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으며, 다른 정당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어쨌든 결과는 이미 나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읽어내는' 작업은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없다. 본래 선거 결과란 여러 사회 집단과 흐름, 세력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자료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제 다른 선거 없이 내년 이맘때 총선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 결과는 각 정당이 총선을 준비하며 해독해야 할 소중한 자료다.

이 점에서 어떤 정당이든 이 결과에서 '성취'보다는 '위기'를 읽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나는 굳이 정부-여당이 이번 선거의 패배자라 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 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후보에 표를 던져 정권에 항의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쇄도하는 바람에 경남의 두 선거구가 재보선 치고는 사뭇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진지한 해석이야말로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 패배를 피할 마지막 기회의 문이 될 것이다.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 기조를 결정한 3대 전략적 판단  

나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지자도 아니면서 정부-여당의 선거 결과 해독을 놓고 훈수 두는 게 좀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이 촛불 항쟁 이후 첫 총선임을 생각하면, 어색해보이더라도 개입을 안 하기 어렵다.

촛불 이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고, 이 두 선거에서는 촛불 연합이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총선만 남았다. 총선에서도 촛불 연합의 힘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새 국회를 구성하는 수순만 남았다.  

한데 만약 이 선거에서 지난 두 선거와 영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촛불 항쟁의 의미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현 정부-여당이 과연 촛불 민심의 올곧은 대변자인지는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이지만, 그 반대편이 촛불 항쟁을 원천 부정하는 세력임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여당 지지자가 아니어도 촛불 시민으로서 뭔가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조기 대선으로 집권하면서 세 가지 중요한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본다. 이 3대 전략적 판단이 지난 2년간 국정 운영의 주된 흐름과 테두리를 결정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바로 이 판단들이 심각한 오판이라는 선고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커다란 패배가 기다린다는 마지막 경고다. 그럼 3대 전략적 판단이란 무엇인가?

첫째, 현 국회 구도에서는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는 쪽이 낫다는 판단이다.

조기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거치지 못한 채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다들 궁금해 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3년이나 남은 차기 총선까지 새 정부가 선택할 국정 운영 기조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당시는 촛불 항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아 개혁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반면 국회는 촛불 이전에 실시된 총선의 산물이어서,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들이 여전히 다수였다. 즉, 정부-여당의 입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도였다. 새 정부는 이 딜레마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돌파할 것인가?

말들이 많았다. 여당이 협상과 연합의 정치에 적극 나서서 정의당, 국민의당에다 바른정당까지 더한 원내 촛불 최대 연합을 결성해야 개혁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조언이 가장 많았다. 더 나아가 자유한국당까지도 진지한 협상 대상으로 삼아 견인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왼쪽으로는 정의당을 포함하는 연립정부가 시도될 수 있다고 넘겨짚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실제 보여준 선택은 너무나 단순했다. 정부-여당은 국회 입법 절차가 필요한 개혁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다들 어려우리라 예상한 국회 정치를 그냥 포기해버렸다. 촛불 이후 민심과 촛불 이전 선출 국회 사이의 어긋남을 해결하려 시도하기보다는 그저 우회해버린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현 정부 개혁 정책의 상징처럼 된 사연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부-여당이 사회 개혁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신호탄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꺼내든 것은 소득 주도 성장에 끼칠 영향에 관한 무슨 심오한 고민이나 구상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이 주된 이유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개헌 시도가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부-여당의 개혁 전략(그런 게 있었다면)이 결코 진지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에 제출하는 거의 첫 번째 안건으로 개헌안을 내밀었다. 과반 동의를 얻으면 되는 법안 통과도 쉽지 않은 국회인 줄 빤히 알면서 의결 정족수가 2/3 이상인 개헌안부터 냈다. 정말 통과를 염두에 둔 개헌 시도였을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이런 행태의 밑바탕에는 20대 국회의 남은 임기를 어떻게 넘길지에 관한 정부-여당의 분명한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판단이다. 이 국회에서는 개혁을 성사시킬 수도 없고, 무리하게 이를 추진할 이유도 별로 없다. 섣불리 실험을 벌이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치중하며 21대 총선을 맞는 게 낫다. 정치보다는 행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3년을 보내더라도 21대 총선은 분명 조기대선과 지방선거에 뒤이은 또 다른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심판 선거가 될 것이다.  

3년이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현실 관리 중심의 국정 기조로 이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정부-여당은 지금 그 2년차 성적을 받아들고 있다.  

둘째 판단은 한반도 평화 실현이 중심 과제이고 이것만 잘 되면 국내 정치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전쟁 위험을 걷어내고 북미 대화 국면을 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기대 이상의 행보였다. 그래서 2018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개혁은 고사하고 퇴행이 곳곳에서 나타나는데도,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그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는 그만큼 중대했다. 한국 사회의 다른 모든 문제는 그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우리는 더욱더 실감하는 중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평화 노력에는 처음부터 어떤 그림자도 있었다. 그것은 평화 노력을 뒷받침할 국내 기반이 여전히 기대만큼 굳건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비핵화 협상은 북한과 미국이 주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남한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미 협상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을 운명이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이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대화 지속을 강력히 압박할 국내 여론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평화의 대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았다.

몇 가지 조짐이 이미 있었다. 가령 평창 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이 있었다.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하지만 공정성 문제, 청년 문제 등이 불거지던 촛불 직후 한국 사회에서 이 시도는 전혀 예상 못한 방향의 논란으로 비화됐다. 흔들리지 않는 평화 국면의 구축이 국내 사회 개혁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런 신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가 경제"라거나 "평화가 민생"이라는 식의 구호만 반복했다. 여기에는 정부-여당의 또 다른 중대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한반도 평화 협상이 착착 진행되는 한, 국내 정치는 그 종속 변수일 뿐이라는 판단이다. 남북미 대화의 기대가 가장 높았던 시점에 실시된 작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이런 판단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미 대화는 난관에 부딪힌 상태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로 하락한 근본 이유는 결국 이것이다. 이 상황에서 집권 세력은 과연 무엇으로 반전을 시도할 것인가? 오로지 북한과 미국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가?  

지난 2년간을 지배한 정부-여당의 전략적 판단은 잘못됐다

마지막으로 검토할 정부-여당의 전략적 판단은 더불어민주당의 장기 집권 전략과 직결돼 있다. 그것은 위 두 판단을 바탕으로 정국을 운영하면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층 상당수를 흡수해 한국 사회의 장기 집권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방선거 이후 여당 일각에서는 "20년 집권"이니 "100년 집권"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가올 총선을 지극히 낙관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재연하는 총선 결과가 거의 정해져 있다는 식이다.  

승리의 기본 전제는 바로 위의 두 전략적 판단, 즉 찬반 격론을 불러올 수 있는 개혁 조치는 되도록 피하고 한반도 평화 협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껏 새누리당 계열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으로 흡수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의 여론조사에서는 실제 그런 양상이 일부 나타났다. 50%에 치달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옛 새누리당 지지층의 구심력 와해와 일부 유입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개혁 조치에는 미온적이던 정부-여당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억제하는 반동 개혁에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통해 진보층 일부의 지지를 잃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옛 새누리당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으며, 그게 더 바람직하다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정치 스펙트럼 내 중앙의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정당들에게는 왼쪽과 오른쪽의 잔여 공간만 남기는 정당 구도를 만들려 한다. 이것이 이른바 "20년 혹은 30년 장기 집권 정당"의 공간적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전략은 먹히고 있는가?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줄어드는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점점 촛불 이전 수준에 근접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양당 구도가 복원되고 있다. 보수층은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되거나 심지어는 바른미래당을 선택하기보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 현 정부 반대 민심이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는 한 마디로 촛불 항쟁의 효과가 무(無)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결론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2년간 일관되게 보여 온 모종의 전략적 지향과 행보는 실패하고 있다. 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는 3대 전략적 판단은 오류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명확한 사실 때문이다.  

첫째,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의 침체 국면이다. 주기적 불황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 아니면 장기 불황의 초입이라 해야 할지는 쟁점이지만, 아무튼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간은 호황 국면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심을 정부 반대편으로 이끄는 중력이 작동한다. 더구나 정부가 이 중력을 상쇄하는 조치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두 번째 이유가 뒤따라 나온다. 정치 세계에서 상황을 단지 고수하려는 세력은 수동적 입장에 머물게 되고 수동적 정치 세력에게는 실패가 예정돼 있을 뿐이다. 반면 가장 저열한 수준에서라도 뭔가 정치 행위를 지속하는 정치 세력은 단기간이나마 주도권을 쥐게 된다. 총선을 1년 앞둔 지금이 그런 국면이다.  

1년, 반격에는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내년 총선이 촛불 항쟁의 최종적 실패로 귀결되지 않게 막으려면 정부-여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해오던 바의 정반대로 하면 된다. 관리 정부에서 개혁 정부로 돌아서면 된다. 북미 협상만 바라보기보다는 국내 개혁을 병행하면 된다.

우선 뒤늦게나마 사회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일단은 복지 혜택을 늘리는 조치에 전념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자유한국당도 쉽게 반대할 수 없다. 가령 기초연금을 조기 인상해 현실화하거나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확충에 착수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장벽은 오직 경제 관료와 보수 언론의 균형재정 이데올로기를 돌파하지 못하는 정부-여당 자신의 소심함뿐이다.  

또한 개혁 공세를 통해 적극적인 국회 정치를 펼쳐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사법 개혁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한 방안이 현재 지지부진하기는 하지만, 이는 앞으로 1년간 국회에서 반복돼야 할 세력 구도와 대립 전선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한 대화의 정치를 시도할 때는 지났다. 극우화한 자유한국당과 정면 대립하길 두려워하지 말고 개혁 연합을 밀고 나가야 한다.  

단, 자유한국당과 대치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개혁 입법을 실제 관철해야 한다. 그러자면 원내 최대 연합을 구축할 수 있도록 개혁 내용을 최소 합의 수준에 맞추길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극우 세력을 합리적 여론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촛불 계승 연합이 '유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보다 먼저 결단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노동법 개악과 같이 기득권층의 환심을 사려던 정책을 즉각 중단하는 일이다. 그런다고 보수층을 흡수하지도 못한다. 보수층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오히려 정부-여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 다시 관심과 지지를 표할 것이다. 이것이 촛불 국면에서 작동한 동학(動學) 아니었는가.

이제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딱 1년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국정 운영 기조를 지속한다면, 쏜살같이 지나갈 시간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조를 과감히 추진한다면, 결코 부족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다. 충분히 반전이 가능하다. 10년 같은 1년이 될 수 있다.  

정부-여당은 재보선 결과가 던지는 이 마지막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이 정권의 부침에 공동의 운명으로 엮여 있는 촛불 시민들이 던지는 마지막 충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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