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총 국가부채 1682조 원다. 이 중 과반이 넘는 56%, 940조 원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다. 문제는 가파른 증가세다. 작년 한 해만 94조1000억 원이 늘었다. 2018년 공무원-군인연금 국고보전금(예산안)만 4조3000억 원이 넘는다.
더 큰 문제는 급여의 9%(2020년)에 이르는 사용주(국가) 부담도 부족해 추가로 연간 수조 원을 적자 보전에 투입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향후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은커녕 더 심해질 것이란 사실이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꼭 할 수 있는 조치부터 시행하자. 사실 국가 부도나 심각한 재정 위기가 아닌 이상 기 수급자 연금액 삭감은 어렵다. 물론 조세 및 건강보험료 개편 등으로 연금소득에 대한 징수 강화, 인상 동결조치 연장(군인/사학연금 적용확대) 등은 가능할 것이다.
그럼 막대한 적자부담을 장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지금 필요한 조치는 무엇일까?
▲ 2018 회계연도 국가결산 기준 국가부채(기획재정부). ⓒ김형모첫째, 연금상한제 도입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 군인, 사학 등 특수직역 연금 평균액은 월 250~300만 원 수준이다. 온종일 노동하는 직장인들의 중위소득은 물론 근로자 평균임금 수준을 넘나든다. 이미 평생 고용과 높은 급여로 상당한 자산을 비축한 부유층이 다수인 이들에게 오직 공적연금 하나로 전일제 노동자 평균임금을 주는 게 과연 합당한지 의문스럽다.
참고로 군인연금은 1인당 적자 보전금만 1609만 원이다. 이 금액도 사실 축소된 것이다. 왜냐면 특수직역 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부분일시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기근속한 상당수의 공무원, 교사, 직업군인들은 은퇴 시 퇴직연금과 일시금을 나눠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언론을 통해 접하는 '평균연금액'은 부분일시금으로 감액된 퇴직연금액을 포함한 평균이다. 전액 연금 수령 시 더 많이 받는다.
그렇다면 적절한 연금상한제의 금액은 얼마여야 할까?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필자는 각종 복지제도의 소득기준인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이 공적연금 상한액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2019년 월 170만7008원)
물론 해당 금액 초과분은 강제 회수하자는 게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일시금'을 적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33년 공무원연금에 가입하고 퇴직연금액이 280만원일 경우 20년에 해당하는 170만 원은 연금으로, 나머지는 (부분)일시금으로 받는 것이다.
현재는 이를 자율적으로 선택하지만, 일정 금액 이상에 대해선 부분일시금 의무 적용으로 제도를 바꾸자. 일시금은 본인과 고용주(국가)가 납부한 금액에 이자를 더해 지급하는 것이므로 재정부담이 사실상 없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방안이 난망한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보전액과 연금충당부채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일시금을 주더라도 당사자에겐 상당액의 공적연금이 보장된다.
공적연금 상한제는 공무원 등 특수직역뿐 아니라 국민연금을 포함한 모든 공적연금 적용이 원칙이다. 국민연금에도 상한 초과액에 '부분일시금' 제도를 도입하자. 지금이야 170만 원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가 매우 드물지만, 높은 소득대체율과 고소득 장기가입을 충족한 현 50대가 수급연령에 도달하면 기준중위소득 이상 받는 국민연금 수급자도 대폭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 연령대·노령연금 예상 연금월액 구간별 가입자(국민연금공단 제공).둘째, 수급연령 일원화이다
연금은 노후보장을 위한 제도지만 공무원 등 특수직역연금은 여전히 일찍 받는다. 일단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수급연령이 늦춰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비해 수급 연령이 빠르다. 예를 들어 2021년 만 60세(1961년생)로 은퇴하는 공무원은 은퇴하자마자 연금을 받는다. 반면 동갑인 국민연금 가입자는 만 63세에야 가능하다.
▲ 퇴직연도별 공무원(사학)연금 개시연령(공무원연금공단). ⓒ김형모더군다나 입직년도에 따라 수급 연령도 달라진다. 심지어 40대도 받을 수 있다. '200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재직기간 20년 미만인 자는 2000년 12월 31일 당시 재직기간 20년 미달 기간의 2배를 재직하고 퇴직하면 퇴직 직후 연금 개시'라는 공무원연금 규정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0년 입직한 1971년생 공무원이 올해 말 퇴직하면 당장 내년 1월부터 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을 언제 가입했는지와 상관없이 나이로 수급연령을 통일했다. 60세부터 받는다는 규정에 따라 1988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1969년생도 2007년 국민연금 개혁으로 65세부터 받는다. 공무원은 퇴직연도에 따라 수급연령이 결정되며, 더군다나 별도 규정으로 일찍 입직한 이들은 더욱 특혜를 누린다.
군인연금은 더 심하다. 군인연금은 여전히 19년 6개월만 납부하면 바로 연금수급이 가능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사관 임관을 받았다면 30대부터도 군인연금을 받는다.
▲ 군인연금, 19년 6개월 이상 납입 시 퇴직 후 즉시 수급 가능(공무원연금공단). ⓒ김형모물론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처럼 이런 특혜구조가 존속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퇴직시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 "군인은 계급정년이 있어 연금을 줘야한다" "직종 특성상 퇴직 후 재취업 힘들어 젊은 시절부터 연금지급 해야 한다" 등. 심지어 이런 저런 대안 제시에 대해선 '소급입법 금지'라며 반발한다.
그러나 이런 '핑계'를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어차피 중장년에 직장을 나서면 재취업 힘든건 매한가지고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했다고 국민연금을 일찍 주는 일은 없다. 실업급여 없는 게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공무원, 직업군인, 사립학교 교사 등도 고용보험법 개정으로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면 된다. 참고로 임기제, 별정직 공무원 등은 현재도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즉각적 효과 가능한 개혁, 지금 당장 시행하자
공무원-군인연금으로 막대한 국가부채가 쌓이고 있다. 또한 여기에 국고보전금으로 혈세가 지원되고 있다. 이미 상당액의 국고지원이 들어가지만 멀지 않아 기금소진이 예상되는 사학연금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특수직역연금은 가장 부유한 이들의 화려한 노후를 위해 다수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다. 필요한 곳에 집중하는 선별적 복지도, 함께 누리는 보편적 복지도 아니다. 이를 방치한다면 복지국가를 향한 필수과제인 보편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더욱 힘들 것이다.
'공적연금 상한제 도입', '국민연금과의 수급연령 일원화'는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지급률로 표현되는 보장성 후퇴나 보험료 인상은 전혀 없다. 즉 '저항은 최소화'하면서 추가 비용투입 없이 '효과의 극대화'가 가능한 연금개혁 방안이다. 더군다나 내는 돈은 늘리고 받는 돈은 줄여가는 일반적인 개혁보다 효과가 즉각적이다.
늦어질수록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발 빠른 제도개혁을 촉구한다.
김형모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