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냄새를 풍긴다
이재랑 (정의정책연구소 청년위원)
조지 오웰은 부르주아 출신의 유럽인이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로 ‘냄새’를 꼽았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이 문장은 상류 중산층 출신이었던 오웰부터가 어릴 적에 자주 듣고 자란 말이었다. 이런 말들로 형성된 무의식은 노동 계급을 만나기도 전에 그들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오웰은 이 냄새를 직접 체험한다. 1930년대 영국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며 그들의 곤궁한 삶을 그려낸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에서, 오웰은 노동자들과 함께 머문 시간에 대해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이따금 그런 곳들을 찾아가 냄새를 맡아볼(냄새를 맡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의무 같은 게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가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그 역시도 하숙집의 악취를 견디기 힘들었음을 고백한 셈이다.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1930년대 영국 빈민가의 악취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난이 풍기는 냄새라는 건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지방에 사는 가난한 노동 계급의 자식이었던 내가 서울살이를 시작한 스무 살이 되고나서야 처음 알게 된 건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고 산다”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보일러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서 자주 찬물을 끓여 썼는데, 집의 화장실이란 겨울에 알몸으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추웠을 뿐더러 그런 몸을 데울 수 있을 만큼 따뜻한 물이 매번 공급되지도 않는다는 게 십 대까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세계였다. 그러니 온 몸을 닦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서나 가능한 건데, 서울에 오니까 아무리 빈곤한 청년들이라도 매일 샤워를 하고 사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가난이 나를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스무 살에 서울에서 만난 대학 동기들은 함께 자취방에서 깡소주를 나눠 마시고, 월세와 학자금 대출 이자를 걱정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알바를 전전해야 했다는 점에서 분명 나와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는 고달픈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매일 샤워를 하고 산다는 걸 그동안 몰랐다는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친구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비릿한 벽 하나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청년’이라는 말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 ‘가난’이었다.
오늘날 가난의 냄새란 30년대 영국 노동자들의 거북한 체취와 같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일부러 맡으려 킁킁거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차라리 그건 무색무취의 페로몬에 가깝다. 그러나 그 냄새는 너무도 깊고 짙어서, 가난한 자와 가난하지 않은 자 사이에 쉽게 해소할 수 없는 거리감을 만든다. 서로에게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고 나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술을 마시며 고단함을 나누던 친구가 갑자기 위선자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얘기를 듣다가도 그래봤자 배부른 고민이네, 라는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가난이 선사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상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처럼 간명하다.
내 몸에 새겨진 가난의 냄새를 맡는 것은 스스로를 지독한 자기연민에 빠지게 한다. 세상에 괴로운 존재란 나밖에 없고, 남들은 모두 잘나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가난이 또한 전복적인 힘을 갖는 것은, 그 가난이 모두에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데서 나온다. 이런 내가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소득 분위를 확인했을 때 소득 3분위의 가정에 속해있었는데, 그걸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소득 1, 2분위의 삶을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그들의 가난은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한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어떻게 내가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유일한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가난조차 단일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품평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감각을 일상적으로 벼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감각은 참으로 무뎌서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삶의 냄새에는 비단 소득에 기인하는 ‘가난’만 있지 않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장애인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여성의 냄새를 맡지 못하며, 성소수자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난민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냄새를 맡지 못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본 적 없으면서도 그들이 본래부터 ‘불쾌한’ 존재라고 믿어버리는 학습된 무의식 속에 있다. 그 무의식이란, 20세기 초 영국 상류층들이 학습 받았던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라는 비열한 문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적은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난민,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오롯이 보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감각의 무능력함 그 자체이다.
대체로 인간은 차별하고 싶어서 차별하지 않는다. 차별은 본능이다. 낯선 것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내 삶에 드리운 가난이 자기연민에서 빠져나와 전복적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낯선 것을 배격하고 싶다는 본능의 유혹과 단호하게 맞서 싸우던 고결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친구들은 나의 가난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의 가난을 쉽게 연민하지 않았다. 모자란 나를 향해 힘껏 욕을 했을지언정 가난으로 인한 나의 무지를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는 삶에 대해 비아냥거리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참으로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이것은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연대하는 것이다. 서로가 풍기는 삶의 냄새는 매우 다양할 것이고 그 냄새란 정말 불쾌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계속 기억하고 가까이하려 한다면 삶이 자기연민의 늪으로 빠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견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를 냉소와 깊은 허무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에 끝끝내 항복하지 않고 계속 맞서 싸울 수 있게 된다.
영국의 많은 중·상류층 출신 진보주의자들은 ‘노동자에게는 냄새가 난다’는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조지 오웰 역시 그 무의식에서 벗어나는 데 엄청난 힘이 들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오웰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악취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온 계급의식을 부숴버리고야 만다. 상류층의 문화적 배경을 소유한 오웰이 노동자와 가까워지려고 했던 이 시도를 과연 ‘위선’이나 ‘감성팔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건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온갖 종류의 편견을 부수고자 했던 인간의 고귀한 발걸음이었다. 그리하여 오웰은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연합해야 할 사람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다.” 이런 우리들의 연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 <1984>를 통해 전체주의의 위험을 고발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잃지 않았다. 오웰이 평생 동안 가꿔온 “인간적인 형제애”가 그에겐 바로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사회주의 운동은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의 리그가 될 여유가 없다. 그것은 압제자에 맞서 싸우는 피압제자의 리그가 되어야 한다.” 이 문장에 밑줄을 치며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래, 모두가 압제받는 이 시대에 우리라고 왜 사회주의자가 되면 안 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