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심각한 위기국면
입만 열면 투쟁, 성숙하지 못한 조직”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민주노조운동”
“자기 이해 벗어나면 싸우지 않아”
“민주노조운동에 기대할 게 없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19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87년 7·8·9노동자 대투쟁(789투쟁) 30주년 기획토론회를 개최했다. 789투쟁을 주제로 한 토론회였으나 현재의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이후 힘을 잃은 투쟁력, 정치방침 하나도 결정하지 못 하는 지도력, 이례적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자신의 성과로 만들지 못하는 무능함 등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인 민주노총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 장석준 미래정치센터 부소장이 발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신경아 한림대 교수, 양동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이광호 레디앙 대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참석했다.
촛불혁명의 주역이면서도 대중에겐 외면 받는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혁명을 비롯해 세월호, 비정규직, 최저임금 1만원 등 수많은 의제들을 공론화하고 사회·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대중은 해당 의제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민주노총에 대해선 지지하지 않고 있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민주노조운동이 여러 가지 한계 혹은 심각한 위기국면에 봉착해있다”고 진단했다.
노중기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자유한국당 후보가 모든 문제를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떠넘기는 강성귀족노조 주장은 듣기 무척 괴로웠다”며 “문제는 강성귀족론이 쟁점이 된 토론의 기사 댓글을 보면 강성귀조노조 주장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댓글 쓰는 주체가 젊은 층이라는 점을 보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한 “촛불집회의 3분의 1이상은 민주노조의 힘으로 진행됐다”며 “민주노총은 촛불을 이끈 주역이면서도 박근혜 정권 하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한 세력임에도, 촛불 시민들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단상에 오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도 “촛불혁명 주도적으로 이끈 것이 노동운동세력”이라면서도 “그러나 광장의 사람들은 노동조합, 노동정치에 환호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대중이 무지몽매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운동, 노동정치가 뭔가 잘못돼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기 돈 문제 아니면 싸우지 않는 산별노조…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 ‘비판’
이날 토론회에선 특히 산별노조,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노중기 교수는 현재 민주노총의 산별노조에 대해 형식적이고 관료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산별노조들은) 자기 돈이 걸리면 싸우지만, 자기 이해를 벗어나면 싸우지 않는다. 비정규직 투쟁, 세월호 등 (자신들의 이해와 결부되지 않은) 모든 투쟁 과제를 총연맹으로 떠넘긴다”며 “이는 산별노조의 오랜 행태이며, 전교조, 금속, 공공노조 모두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산별노조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기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앞세워서 생각하고 있다”며 협소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내가 성과급을 못 받아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을 넘기면 장기적으론 전체의 임금이 오르고, 고교무상교육을 넘어서 대학무상교육을 실현할 수 있고, 내 자녀가 결혼할 때 주택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회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상임활동가는 “금속노조 산하 기아차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분리한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민주노조인가”고 반문하며 “금속노조는 민주노총에서 제명돼야 한다”고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이남신 활동가는 “전투적 조합주의 깃발 아래 건강했던 민주노조 세력은 이미 모두 타락했다”면서 “개인의 도덕성 아니라 운동성, 변혁성, 자주성, 연대성 등 모든 부분에서 민주노조 정체성 잃었다. 이를 분명히 시인해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 소속의 일부 정규직 교사들이 기간제 교사 등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 사례도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잃은 사례로 지목됐다.
이남신 활동가는 “이번에 전교조를 보며 절망했다. 7차 마지막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에 올라온 첨부자료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전교조의 한 분회장이 (해당 분회에서) 95% 이상의 조합원이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첨부자료에) ‘조창익 지도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정파적이라며 내쫓아야 한다’고도 했다. 중도적인 심의위원들이 돌아섰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은 결국 무산됐다”며 “그러나 전교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의위원회에서도 기권해버렸다. 민주노조운동에 기대할 게 없다”고 말했다.
“‘뻥파업’ 조롱에도 입만 열면 투쟁”…민주노총 집행부 노선에 대한 지적
민주노총 집행부의 ‘투쟁일변도’ 노선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광호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는 “민주노총에 대해선 외부인이기 때문에 피상적인 관찰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성숙이라는 단어로 민주노총을 바라봤을 때 안타까운 점이 많다”며 “지난 30년 동안 민주노총이 양적, 형식적으로 성장했을진 몰라도 질적으론 성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광호 대표는 “대표적으로 민주노총은 입만 열면 투쟁이다. 투쟁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전투력이 세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리가 아니라고 본다. 파업투쟁은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하게 되면 반드시 이기기 위한 결의를 가지고 하는 거다.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을 외치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두고 ‘뻥파업’이라는 조롱이 있었고 이를 비판했던 지도부가 들어와도 또 같은 조롱이 나왔다. 물론 노조의 무기는 투쟁이지만 지속적으로 공허한 소릴 외치는 것은 민주노총이 그런 반성과 성찰 속에서 조직이 성숙하지 못하고 정체돼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질타했다.
부족한 정책역량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광호 대표는 “민주노총 초기보다 오히려 지금의 정책역량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직에서 정책의 전문역량, 인적 물적 투자, 외부적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며 “대표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노-노 간) 예상치 못한 갈등이 나오는 것에 대해 민주노총이 해결의 단서를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내 정파적 갈등이 전체 조직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광호 대표는 “정파 갈등 때문에 어떠한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는 일이 민주노총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내부에서도 심각한 것을 알면서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세상을 뒤엎겠다던 조직들이 조직의 발전에 수구적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전망과 비전이 없는 리더십의 심각성은 이명박-박근혜를 통해서 봤다”며 민주노총 집행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파는 노선이 조직화되고 비공식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이다. 이걸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으로 정파 콘서트를 열고 특정이슈에 대해 정파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하고 경쟁하고 또 책임까지 지게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정파는 파벌일 뿐”이라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는 “한상균 집행부의 노선은 틀렸다. 민주노총이 보다 보다 더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사정위 참여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자리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가 어떻게 다른가. 오히려 일자리위원회가 민주노총에 훨씬 더 불리하지만 참여하고 있지 않나. 민주노총은 전술적으로 노사정위에 들어가서 전략적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 그 전략적 과제는 비정규직 문제, 산별노조 제도 개선 등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10대 과제 다 제출하고 하나라도 안 지키면 싸우겠다는 식은 정말 좋지 않은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역대급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죄송하다’ 성명
“투쟁 성과도 챙기지 못해” “현장과 괴리”
내년도 최저임금은 7,530원, 전년대비 16.4%나 인상됐다. 이러한 인상폭은 민주노총과 노동·시민사회 등의 오랜 투쟁의 성과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투쟁의 중심에 있던 민주노총은 지난 7월 16일 성명을 내고 “모든 노동자와 국민들, 특히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해 함께 해온 ‘만원행동’ 모든 동지들께 죄송할 따름”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가로막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주노총의 성명은 노동계 내부, 더 들어가 1만원을 투쟁을 함께 해온 최저임금위원회 노동계위원과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철폐공동행동(만원행동) 구성원들마저도 의아하게 만들었다.
최임위 노동계위원이자 만원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인 이남신 상임활동가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2000년대 이후 양대노총이 공조해서 낸 가장 큰 성과”라며 “6.30 사회적 총파업을 주도했던 노조들도 대부분 큰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16.4% 인상률에 대해 ‘최저임금 1만원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가로막힌 결과’라고 한 것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률) 16.4%는 민주노총 중집 결정이었다. 본인들이 조직적으로 결정해놓고 (정작 16.4%가 인상되고 나니) 성명에선 자기를 죄인으로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가 있는 정규직도 두 자릿수 이상 임금인상은 안 되고 있는 상황인데, 최저임금이 16.4%가 올라간 거다. 적용대상도 넓어서 최저임금 수혜자만 500만 명에 달한다”고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그런 계급적 성과를 안겨놓고도 자기 성과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조직의 대표는 바보”라고 비판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 성과가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률 제고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민주노총이 이를 저평가하면서 그 기회를 놓친 꼴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남신 활동가는 “최저임금 대폭인상의 첫 번째 전략은 조직률 제고라고 생각했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만들어냈으면 ‘우리가 노동자계급을 대표해서,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성과를 만들었다’고 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노조 조직률을 올린다고 했어야 했다”면서 “(그 성명을 보고) 충격이 컸고, 민주노총이 현장과 멀어져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임위 노동계위원인 김민수 청년유니온 대표 또한 “최저임금을 받는 청년유니온 상근활동가들도 처음엔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평가했다가, 민주노총의 성명을 보고 눈치를 보더라. 들썩이던 현장의 기세를 꺾었다는 점이 민주노총 성명의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며 “최저임금 7천 원대 달성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많이 알리는 것이 책임 있는 모습이자 과제”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이렇게 잘 싸우는 위기가 어딨나”
민주노총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진단은 일부 수용하면서도 투쟁의 노선과 실효성 등의 비판엔 적극 반박했다.
양동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현재 한국노동운동이 가진 위기적 측면과 가능성과 역동성을 같이 봐야 한다”며 “지금 세계 노동운동을 보더라도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민주노총처럼) 이토록 치열하게 하는 투쟁하는 곳은 드물다. 한국 노동운동은 건재하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지난 20년부터 위기론이 주창돼왔지만 위기론의 위기라고 본다”며 “위기인데 이렇게 잘 싸우는 위기가 어디에 있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와 관련해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대기업 노동자와 공공노동자의 양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지도부가 신중하지 않으면 아래로부터 저항이 엄청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하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