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노무현대통령의 죽음과 [진보의 미래]
: 노무현이 멈춘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진보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저 근처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며 심경을 밝혔다.
당시 이명박정권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한 불통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며 권위주의 통치 행태로 역주행하고 있었음에 반해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2.0’과 같은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만들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에게 노 전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였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에 대해 “사실상 사이버 정치 복귀 선언이자 사이버 대통령으로 군림하려는 것(이명규의원)”이라며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며 경계했다. 이 같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경계심이 검찰로 하여금 노 전 대통령 측근들과 가족, 그리고 노무현 당사자까지 ‘정관계 로비 수사’라는 이름으로 먼지떨이 식 수사를 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나 지낸 사람이 자살한 사건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동료시민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500만 시민이 빈소를 찾았다. 동료시민들의 정서는 슬픔과 분노였다. 광우병 촛불시위로 ‘명박산성’을 넘어보고자 했으나 결국 불통의 역주행에 가로막힌 울분이 있었고 민주주의의 복원을 희원하던 노무현마저 기어이 잡아먹어버렸다는 원한에 사무친 울분이 겹쳐졌다. 다시 시민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추도하는 촛불을 밝혔다.
그러나 촛불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였다. 그러나 기존의 보수적 양당체제만으로는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정권을 반대하지만 그 대안으로 정치 자영업자 집단과 다를 바 없는 제 1야당인 민주당이 대안이라고도 여기지 않았다. 결국 노무현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며 그것은 좋은 정당, 강한 정당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었다.
진보신당 노회찬대표는 “노무현이 멈춘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하며 노무현 추모 열기가 단순히 폐족이 된 ‘친노’의 복권이나 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퇴행적인 대립구도로 되돌아가는 걸 경계했다. 노무현 사후에 그의 유고인 [진보의 미래]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보수의 시대’에 진보주의 정부로서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진보주의를 펼치려던 구상들을 회고하면서 참여정부의 한계를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232쪽)”라고 고백하며 비정규직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오류를 솔직히 고백하고 있었다. 참여정부의 좌충우돌에 대한 변명을 모두 수긍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동문제에 대한 노무현의 고백은 그의 추종자들이 노무현 이후의 좌표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노무현이 멈춘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려한 이들은 이후 ‘국민참여당’을 만들었고, 이후 기존의 진보정당들과 진보대통합에 합류해 동료시민들과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강한 진보정당을 만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