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91. 아! 민주노동당 분당

91. 아! 민주노동당 분당

 

 

 

 

2007년 대선 직후 12월 29일 개최된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지도부는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했다. 그에 앞서 문성현대표는 심상정 의원을 따로 불러 비대위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심의원은 문대표에게 “우리 당은 걸핏하면 지도부 총사퇴로 모든 걸 덮으려 하는데 진정으로 책임지시려면 왜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되었는지 공개적으로 발언하세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부터 밝히세요. 임기가 며칠 남지도 않은 지도부가 서둘러 사퇴하는 걸로 대충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 그건 책임지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겁니다” [당당한 아름다움 192쪽]며 ‘독배’가 될지도 모르는 제안에 대해 부담스런 심경을 여과없이 밝혔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개최 직전 12월 27일  [조선일보]에서는 “친북세력과 결별해야 민노당에 미래 있어”라는 제목의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튿날 민주노동당원인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이 진보매체인 [레디앙]에 “민주노동당의 당권파인 자주파 또는 주체파는 한국적 분단현실의 산물이긴 하나, 그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책임은 지지 않고,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공부와 학습도 하지 않는 종북 주체일 뿐이다... 이들을 허덕이면서 안고 가는 것은 마이너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차라리 제로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당 창당이 더 낫다”며 신당 창당을 주장했다.

 

당의 일각은 벌써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2008년 1월 8일, 경기도 구리의 지역위원회 전원의 탈당을 시작으로 11일에는 부산 지역 당원 52명이, 이어 광주·여수 등서도 집단 탈당이 이어졌다. 1월 27일에는 조승수를 비롯해 선도 탈당한 홍세화, 김혜경 전 대표, 김석준 부산시당 위원장등이 참가한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이 닻을 올렸다. 민주노동당 분당 압력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에 심상정 비대위 대표는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하는 대다수는 비대위의 혁신이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비대위가 당을 혁신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예단하고 미리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선도 탈당 세력을 설득하는 한편 2월 3일 당대회에 “당의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패권주의를 척결하고 편향적 친북정당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혁신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제 2창당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혁신안을 마련해 미래를 책임지는 진보정당으로 나가겠다”며 강도 높은 혁신 의지를 밝혔다.

 

1월 27일 공개된 당대회 안건에는 세칭 ‘일심회’ 사건의 최기영, 이정훈 당원 제명안과 미군의 완전한 철군과 북핵폐기를 연계시킨 대선공약 폐기 뿐만 아니라 총선 비례대표를 사실상 전략공천으로 채움으로써 정파 패권의 전쟁터가 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그러나 이미 평등파 당대의원 일부가 선도 탈당한 상태에서 대의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자주파는 비대위의 혁신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전의를 불태우며 정면으로 충돌할 기세였다. 한편 당대회가 깨어지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자주파 일부에서는 최기영, 이정훈 제명건에 대해 “당기위에 회부해 절차대로 진행하면 될 일을 비대위에 제출하는 무리수를 뒀다. 당대회 안건으로 올라오면 소명 기회조차 부여하지 못한다. 이건 절차상에 중대한 하자가 있을뿐더러 당 내분을 더욱 확산시킬 수도 있다. 평가의 문제와 인신에 대한 처리 문제는 별개”라며 제명안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대위로서는 일심회 사건에 대한 당 차원의 정치적 의사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드러내는 것을 회피할 수도 없었으며 당기위 뒤로 숨을 수도 없는 핵심 현안으로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선도 탈당한 이들을 다시 돌려세우기 위해서라도 보다 강력한 혁신의 메시지를 던져야 했다.

 

심상정 대표도 배수진을 쳤다. “이번 당대회에서 혁신안이 부결된다면, 비대위 불신임으로 간주해 사퇴하겠다”며 “그 핵심은 일심회 사건 관련자 제명처리 부분”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운명의 날, 2008년 2월 3일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 위원장“오늘 당대회가 우리가 믿음직한 진보정당으로 다시 설 수 있느냐를 가를 역사적 분기점”이라며 두 당원의 제명 방침을 담은 ‘제 2창당을 위한 평가혁신안 승인의 건’과 18대 총선 전략명부 추천을 담은 안건에 대해 “수정안 제출 없이 찬반토론만으로 원안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오후 3시50분에 시작된 최기영,이정훈 두 당원 제명 안건은 정종권 집행위원장이 “북한 및 북한과 연계된 인물에게 전달할 것을 목적으로 당내 동향과 당직자 신상과 성향을 분석한 자료를 유출한 것은 당헌,당규의 당의 기밀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안건 제안 이유를 설명하며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자주파 대의원들은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당원의 양심을 믿어야지 시대악법인 국가보안법 판결문을 믿을 것이냐”는 등 질문공세를 두시간 가까이 이어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제명안을 삭제하자는 수정동의안이 제출되었고 862명 투표에 553명이 찬성해 64.1%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비대위 혁신안의 핵심이 거부된 것이다. 자주파 대의원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수정안 통과가 선포되자 심상정 대표, 노회찬의원, 비대위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퇴장했다.

 

2월 4일 경향신문 사설은 “우리가 보기에 비대위 혁신안은 민노당의 현 상황에서 당의 양대 정파인 자주파와 평등파의 대립을 최소화하고 당을 되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 관련자 2명을 제명하는 등의 조처를 취함으로써 자주파의 친북 편향에 대해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한편 ‘무조건 탈당’을 선도하는 평등파에도 경고를 보냄으로써 양쪽을 다 같이 아우르는 현실적인 방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내 다수파이자 그동안 당을 주도해온 자주파는 비대위의 혁신안을 ‘국가보안법에 대한 굴복’으로 보고 부결시켰으며, 평등파 역시 당을 살리고자 마련한 대회에서 탈당을 감행하기도 했다”며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 부결을 아쉬워했다.

 

심상정, 노회찬 의원도 결국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2월 17일 탈당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자리에서 심의원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틀로는 진보정치의 희망을 만드는데 한계에 달했음을 고통스럽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을 희망으로 만들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노회찬 의원과 함께 2월 24일 ‘진보신당 건설을 위한 연대회의’를 공식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을 떠나 진보신당에 참가한 당원은 대략 2만, 이로써 민주노동당은 8년 만에 분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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