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89. 북핵, 민주노동당을 흔들다.

89. 북핵, 민주노동당을 흔들다.
    : 비핵화 강령이냐? 핵자위권 인정이냐? 내분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 대한민국 지질자원 연구원이 감지한 리히터 규모 3.58의 지진파가 민주노동당을 흔들어 놓았다. 지진파의 진앙은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이었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 지진파를 일으킨 1차 핵실험에 대해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다”라고 열에 들떠 고창했다. 민주노동당북한의 핵실험 발표 직후 의원대표단과 당대표, 최고위원이 참석하는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격론을 거친 끝에 “민주노동당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지지하고 평화군축 강령을 가진 정당”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덧붙여 “북의 핵실험 강행의 과정에서 미국이 취해온 대북 고립·압박 정책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주요 원인”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한 일차적 책임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핵실험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최고위 논의에서 포함됐는데 김선동 사무총장이 대변인 발표에서는 삭제를 요구해 논란을 빚기도 했으며 북한 핵실험에 대한 주요 당직자들의 엇갈린 발언들은 당을 일대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용대 정책위 의장이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북미간 정치군사적 대결 국면인데 북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느냐”며 “핵이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강령에 반하는 ‘핵 자위권’ 인정 문제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10월 15일 열린 민주노동당 중앙위에서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특별 결의문’ 채택을 둘러싸고 다시 격론이 벌어졌다. 북핵 '반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측과 자위권 측면에서 북핵을 용인해야 한다는 측이 나뉘었다. 그러나 이즈음 민주노동당의 의결기구는 숙의가 배제된 다수파 의 다수결이 횡행했다. 최고위원회가 올린 ‘북핵 실험 유감’을 북핵 실험 ‘반대’로 바꿔야 한다는 소수파인 평등파의 수정안은 간단히 부결되었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자주파 측에서는 오히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북미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북의 핵실험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로 수정안을 제출했다. 최고위원인 김선동 사무총장과 이용대 정책위 의장도 원안을 제출한 최고 지도부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져 가결시켰다. 자주파의 수정안은 미국 책임론만 강조되었고 북한의 책임에 대한 언급이 삭제된 것이었다. 결국 평등파를 주축으로 한 중앙위원들이 반발하면서 퇴장했고 자주파의 수정안은 공식 채택되지 못했다. 중앙위가 ‘유감’을 표명하는 결의안조차 채택하지 못하자 노회찬 의원은 이틀 후인 17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위를 위해 개발했기 때문에 용인해야 한다고 한다면 일본의 핵 개발도 용인해야 하고 우리가 전술핵 배치에 반대했던 이유도 부정해야 한다”며 “북한 핵실험에 대해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달 31일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당 지도부가 방북하는 문제를 놓고도 당내에 찬반이 엇갈렸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방북은 그 정치적 의미가 각별한 것이었다. 당연히 민주노동당과 남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공식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방북은 하되 문성현 대표가 ‘개인적’ 차원에서 북한 핵실험에 반대 뜻을 표하는 것으로 어정쩡하게 절충되었다. 다수파인 자주파는 북한의 2005년 미사일 발사에 대한 반핵 결의안도 무산시켰고, 북핵 실험 유감 표명조차 틀어막았으며, 대표단의 방북을 한가한 나들이로 만들어버렸다. 당 내에서는 다수파고 큰 소리를 내지만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국민들에게 납득할만한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불투명한 당의 이미지만 키워간 것이다. 북핵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천명하면서도 지속적인 대북 포용 정책으로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현실 정치의 문법은 아직 민주노동당의 운동권 자주파에게는 요원한 것이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이 같은 혼선으로 당내의 반목과 불신은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이에 김종철 전 서울시장후보는 "북핵에 대해 단일한 슬로건으로 갈 수 없다면 미국을 규탄하는 쪽과 동아시아 핵무장을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서라도 진보진영이 의제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차라리 따로 따로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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